강 해/창세기(1-11)

창세기 6장 5절 - 6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20. 13:48

5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1500년간이나 성경이 없이 지내왔던 이 시점에 이르면 죄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고, 더욱 마음속을 파고들어 결국 습관화되고 완전히 지배권을 장악하게 된다. 벧후2:14에 따르면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다. 20세기에 들어서서 통신의 발달로 인해 정치가들의 거짓들, 사악한 전쟁소식, 더러운 음악, 인종혼합, 포르노 및 영화, 성경에 대한 공격과 심령술, 과학과 종교를 우상화하는 작업이 전세계로 너무도 쉽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벧후2:14 음욕이 가득 찬 눈을 가지며 죄로부터 단절될 수 없고, 견고하지 못한 혼들을 유혹하며 그들은 마음이 탐욕으로 단련되었으니 저주받은 자식들이니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구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 장면은 아무리 봐도 다윈의 구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로마서1-3장에 잘 나와있다. 주님께서 컴퓨터보다도 정확하게 사람들의 생각들과 상상을 읽어내므로(대상28:9 렘11:19-20 17:10) 현대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생각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려고 한다.(롬1:18-32)

대상28:9 너,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라. 그리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그 분을 섬기라. 주께서는 모든 마음을 살피시고 생각의 모든 상상을 아시나니, 만일 네가 그 분을 찾으면 그가 너를 만나실 것이나, 만일 네가 그 분을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렘11:19-20 그러나 나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나 소 같아서 그들이 나를 대적하여 계략을 꾸미며 말하기를 "그 나무를 과실과 더불어 진멸하자. 산 자의 땅에서 그를 끊어 버려서 그의 이름이 더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의롭게 판단하시고 속과 마음을 단련하시는, 오 만군의 주여, 그들에 대한 주의 복수를 나로 보게 하소서. 이는 내가 주께 나의 송사를 드러내었음이니이다.

렘17:10 나 주는 마음을 살피고 나는 속을 시험하며 그 사람의 행위와 행실의 결과대로 각인에게 주노라.

롬1:28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림받은 마음에 내버려 두시어 온당치 아니한 일을 하게 하셨도다.

결국 현대교육의 경향은 과학을 동원해서, 고전1:21은 아인슈타인, 다윈, 헉슬리 등의 생각들을 미리 내다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살아있는 인격적인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 속임수의 내용은 이러하다. 모든 일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하여 죄인들로 자기의 내적 생활이라는 개인적 성소 안으로 숨어 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죄인들은 이제 그 안에 숨어 계속해서 악을 즐긴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전도의 어리석음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느니라.

이처럼 성경이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제시하면 앞서 언급한 낙관론자들은 곧바로 이에 반기를 들고 나온다. 이들은 마음의 생각을 인간이 이제껏 만들어온 문학작품과 연관을 시키려고 한다.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인 것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의 내적상황을 가리키는 것이지 인간이 글을 쓰거나 생각하려고 할 때 구상하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성경구절은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 인간이 만든 문학이라는 허구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생각이란 인간의 공상이나 욕망, 자아를 위해 뭔가를 얻으려고 짜는 계획과 구상, 가상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드높이는 생각, 자기가 희생물이 되는 비극적 상황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 들을 말한다. 한 마디로 해서 이것은 정신과의사들이 스스로 올무에 걸려들면서도 연구해 보겠다고 나서는 그런 모든 현상을 말한다.(벧후2:1-3 14-15 18-20)

벧후2:1-3 그러나 백성 가운데도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저주받을 이단들을 비밀리에 불러들여서 자기들을 사신 주마저 부인하며 급격한 파멸을 스스로 불러들이느니라.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파멸의 길을 따르리니 그들로 인하여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을 것이라. 그들은 탐욕을 품고 지어낸 말로 너희에게서 이득을 취하리니, 이제 그들의 심판은 옛부터 지체하지 않으며 그들의 멸망은 졸지 아니하느니라.

벧후2:14-15 음욕이 가득 찬 눈을 가지며 죄로부터 단절될 수 없고, 견고하지 못한 혼들을 유혹하며 그들은 마음이 탐욕으로 단련되었으니 저주받은 자식들이니라. 그들이 바른 길을 버리고 빗나가서 브올의 아들 발라암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으나

벧후2:18-20 그들은 헛된 말로 자랑하며 잘못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서 온전히 피해 나온 자들을 방탕함과 육체의 정욕으로 유혹하며 그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나 자기들 자신은 타락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정복을 당하면 그 사람은 정복한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라. 만일 그들이 주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해 세상의 오염에서 피했다가 다시 거기에 말려들고 패배하면 그들의 나중 결과가 처음보다 더 악화되나니

하나님께서는 아인슈타인이 세상의 잡지를 들여다보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관심이 있지 그가 연구한 것을 학회에 보고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내 말을 알아듣겠는가?(갈5:19 잠23:7 욥31:1 35:2 시50:21 마15:18-20)

갈5:19 이제 육신의 일들은 분명히 나타나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

잠23:7 이는 그가 마음에 생각하는 대로 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고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있지 아니함이라.

욥31:1 내가 내 눈과 더불어 언약을 세웠는데 어찌하여 내가 소녀를 생각하랴?

욥35:2 "당신이 말하기를 '나의 의는 하나님의 의보다 더 낫다' 하였으니, 당신은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뇨?

시50:21 네가 이런 일들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자인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겠고 그것들을 네 눈 앞에 정연하게 두리라.

마15:18-20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나니 이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느니라. 마음에서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모독이 나오느니라.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며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시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지는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이 연구해 낸 것 따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단12:4에서 20세기 사람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말씀하고 계시며, 딤후3:7에서는 인간이 하지 않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계신다.

단12:4 그러나, 오 너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그 말씀을 닫고 그 책을 봉하라. 그 때에는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릴 것이요, 지식이 증가하리라.

딤후3:7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느니라.

사람들이 말씀을 좋아하든 않든, 그는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 것이며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인 그 책(성경)에 대해 반역하는 마음을 품더라도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최후의 심판날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보다는 그가 밤 11시 이후부터 깨어날 때까지 꿈속에서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더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마음의 생각이란 현대인들이 꾸며낸 사고력 체계니 자아실현의 재평가에 대한 사고 따위가 아니라 인간의 외적 생활을 결정짓는 내적 삶(inner life)이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성격을 낳고 성격은 운명을 낳는다. ’삶의 문제들은 마음에서 나온다.(잠4:23) 현대과학자들이 인과의 법칙에 대한 신뢰를 포기할 때 그들은 자유가 아닌 혼돈의 문을 연 셈이다.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한 것은(창6:5) 인간의 마음의 생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며 바로 그 결과였다. 뭔가를 오래 생각하고 있으면 그 일을 행할 것이다.(롬7:7-8)

잠4:23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이는 삶의 문제들이 거기서 나옴이라

롬7:7-8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정욕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계명을 통하여 기회를 잡아 내 안에서 온갖 색욕을 일으켰느니라.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임이라.

지식인들의 사고(머리 속의 생각)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① 육체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② 사회의 규례와 관습은 본질적으로 선한 자연적 본능들을 억제시키거나 좌절시킨다.

③ 죄와 사회악에 대해 싸우는 것은 설교자들의 의무이다.

④ 사회규범과 규례들이 육체를 절망케 하므로 이들은 자살, 가정파괴, 신경쇠약, 계급간의 갈등, 사회투쟁 등에 책임을 져야할 악이라고 할 수 있다.

⑤ 따라서 모든 설교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연적인 인간의 자유스러운 표현들을 억제하는 모든 규례와 규범들을 대항하여 싸워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다음과 같은 것들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레즈비언, 성도착자, 히피, 자유사색가, 오렌지족, 게이, 마약중독자, 성인영화, 시민운동을 위한 데모 등 현대인들이 자유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방종(갈5:13)이라고 부르신다. 현대의 학자들이 학문적 자유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독사의 독(롬3:13)이라고 부르신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에로 부름을 받았으니 그 자유를 육신을 위한 계기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

롬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들이 자기 혀로는 속였으며, 그들의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고

B.C.3000년부터 B.C.2350년 (혹은 그 이상) 사이의 노아의 삶의 모습은 오늘날 젊은이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관능적이고 호색적이고 환란적인 대도시의 모습과 똑같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인간의 딸들과 합쳐서 새로운 인종을 만들고 이런 방식으로 우주를 정복하고 전우주에 번식해 나가자고 인류를 설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6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으니

후회하시는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확고했던 그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 생각을 바꾸시는 것으로 성경에서 정의되고 있다. 민23:9와 같은 경우는 모든 것이 확정되어 있으나 출2:14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결정에 융통성이 있다. 요한 칼빈은 이 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 따라서 성경의 상당부분이 그에게는 닫혀버렸다. 특히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계시록 등 신약성경의 4/1이 칼빈에게는 닫힌 책이 되어버렸다.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않으시며, 또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그 분이 말씀하신 것을 행하지 않으시랴? 또한 이르신 것을 이루지 않으시랴?

출2:14 그가 말하기를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릴 왕과 재판관으로 삼았더냐? 네가 이집트인을 죽인 것같이 나도 죽일 생각이냐?" 하니 모세가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분명히 이 일이 알려졌도다." 하더라.

그 일이 그의 마음을 비통케 하였더라.

이 표현은 신학자들이 신인동형적 표현(Anthropomorphic experssion)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그곳은 성경이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간의 방식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이다. 이 구절을 읽고 마음이 비통한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혹은 사업이 망해서, 혹은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들었을 때, 슬퍼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므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신은 죽었다고 주장했던 니체와 알티저의 신(god)은 현대인들에게는 쓸모가 없어져서 돌아가셨는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살아 계셔서 한번도 병을 앓아 보신 적도 없다.(사40:28-30)

사40:28-30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주는 땅 끝들의 창조주시며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신 분인 것을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그의 명철은 한없이 깊으시도다. 그는 곤비한 자에게 힘을 주시며 무력한 자에게 힘을 더해 주시나니 젊은이들일지라도 곤비하고 피곤하며 청년들이라도 넘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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