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비평

칼빈주의 비평 - 나는 왜 칼빈주의를 믿지 않는가?②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14. 11:02

2. 무조건적인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나는 왜 칼빈주의 5대 강령의 두 번째 강령을 믿지 않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이것은 TULIP의 U 즉 Unconditioal election(무조건적 선택)의 첫 글자 U로 표현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선택하신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됩니다. 즉 선택의 교리는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엡1:3-5을 이에 대한 구절로 들겠습니다.

엡1:3-5 그리스도 안에서 천상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는 복되시도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이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분 앞에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어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할 것을 미리 정하셨으니

일단 여기에는 성도들의 선택과 예정이라는 말이 분명히 나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은 선택을 가르치고 또한 예정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의 예정과 선택, 성경의 예정과 선택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A. 칼빈주의자들의 관점

하나님 편에서 선택은 무조건적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데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또한 받아들이는 사람 편에서도 전혀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그냥 무조건적입니다.

B. 성경적 관점 혹은 조금 온건한 칼빈주의적 관점

하나님 편에서 선택은 무조건적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데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즉 선택은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 편에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으며 그 조건은 믿음입니다.

* 칼빈주의자들의 관점 추가 설명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구원받은 자들을 결정하시고 이들이 구원을 받아들일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 은혜를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이들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즉 이들이 믿으려 하든지 안하든지 상관없이,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이들이 복음의 메시지를 들으려 하든지 안하든지 상관없이 이들을 무조건 다시 태어나게 하셔서 믿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 편에서도 무조건적이고 사람 편에서도 무조건적입니다. 죄인인 사람은 하나님이 살려 주시면 자동으로 믿게 됩니다.

* 성경의 관점 추가 설명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 롬8:29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롬8:29 그 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 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미리 사람들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예정하십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벧전1:2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하여,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에 이르도록 택함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충만할지어다.

성경적 관점은 선택과 예정에 대해 무어라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미리 아심, 즉 예지에 따라 다시 말해 복음이 전달될 때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을 것을 미리 아심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편에서 선택은 무조건적입니다. 그러나 사람 편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그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나님이 그것을 미리 보시고 그를 선택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믿든지 안 믿든지 무조건 하나님의 선택을 받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습니다.

* 두 관점의 차이 추가 설명

내가 1억 원을 누구에게 주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나의 선한 마음에서 나온 선물입니다. 여기에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즉 받으려는 사람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만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이것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 조건없이 이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편에서의 무조건적 선택입니다.

그런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것을 받기 위해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주려는 선물, 즉 1억원을 그가 받아야만 합니다. 즉 내가 아무 조건없이 1억원을 주려고 하는데 당사자가 그것을 받아 자기 것으로 심으려면 손을 내밀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취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주는 사람 편에서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받는 사람 편에서는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이 그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은 무엇을 말합니까?

너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믿을 필요도 없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으면 그것은 무조건적으로 네 것이 된다. 네가 믿으려 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이. 또 실제로 너는 그것을 받을 수도 없다. 너는 죄들 가운데서 전적으로 죽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체이므로 복음을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셔야 그것을 받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이 구원받아야 할 자들, 즉 선택받은 자들을 먼저 구원해야 하며 그 뒤에 비로소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으려면 사람이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믿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이 믿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기 바랍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즉 아들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지 않습니다.

롬6:23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

이 구절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선물은 내가 받아야만 선물이됩니다. 선물을 주려고 하는 사람이 아무 조건없이 주려고 해도 내가 받지 않으면 선물이 결코 선물이 되지 않습니다.

요1:10-13 그가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더라. 그가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더라.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

분명히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뜻이나 의지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 혹은 의지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우리의 의지를 통해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엡2:8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통해 그분의 선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도 무조건적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은 칼빈주의자들의 명백한 오류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칼빈주의자들은 이상한 말을 둘러댑니다.

그러면 나의 구원은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느냐? 혹은 이 구원에 대해 누가 칭찬과 영광을 받아야 하느냐? 내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들이면 결국 내가 구원에 일조한 것이 아니냐? 이것은 행위이다.

이것은 사실 어느 면에서 궤변입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무조건적으로 1억원을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 그것을 내가 받아들여서 1억원이 진짜로 내게 선물로 주어졌다고 가정해봅시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여서 이 일이나 혹은 선물에 일조하였습니까? 나는 단순히 선물을 준다는 사람의 말을 진정으로 믿고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선물 1억원 중에 조금이라도 내가 기여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려고 하는 사람의 은혜입니다.

이런 일이 신문에 보도되면 모든 사람들은 100% 다 1억원이라는 큰 선물을 준 사람을 칭찬하지 손을 내밀어 그 선물을 받아들인 사람을 조금도 칭찬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손을 내밀어 선물을 받아들인 사람을 칭찬하는 기사나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사실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믿음을 가지고 자기 손을 내밀었을 뿐입니다. 이런 믿음은 결코 행위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