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12-23)

창세기 16장 7절 - 16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5. 19. 09:47

7 주의 천사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로 가는 길에 있는 샘 곁에서 그녀를 만나

주의 천사(Angel of the Lord)가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주의 천사는 불타는 가시덤불에서는 여호와로서 등장한다.(출3장 행7:30,32) 주의 천사는 야곱과 맞붙어 싸웠고(창32장)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데리고 나왔으며(출13장) 배교한 민족을 꾸짖었고(삿6장) 마노아와 그의 아내 에게 나타났고(삿13장) 엘리야를 도왔으며(왕상19장) 예수님과 바울을 도왔다.(눅22:43 행27장)

행7:30 사십 년이 다 되자 주의 천사가 시내 산 광야에서 가시덤불의 불길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행7:32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고 하시니, 모세가 무서워 감히 주목하지 못하더라.

눅22:43 그때 한 천사가 하늘에서 주께 나타나 힘을 돋우어 주더라.

그는 성경에서 200번 이상 언급되고 있으며 때로는 “An Angel of the Lord”로 어떤 때는 “The Angel of the Lord”로 나타난다. <뉴스코필드 관주성경>은 ‘THE’를 모조리 ‘A’ 혹은 ‘An’으로 고쳐버렸다. 이 수법은 오리겐이 <70인역>에서 신약에 인용된 구약성경과 똑같이 되도록 하기 위해 히브리 구약성경을 뜯어고친 것과 똑같다.

불행히도 행7:33의 헬라어 원문에는 정관사가 빠져있다. 그런데도 바울은 이 구절에서 자기가 이 천사에게 속해 있으며 그 천사를 섬기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천사가 THE Angel of the Lord, 즉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바울은 천사들을 숭배하는(골2:18) 배교한 우상숭배자기 된다.

행7:33 또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골2:18 아무도 자의적인 겸손과 천사들을 숭배함으로 너희의 상을 속여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는 보지 않은 것을 억지로 주장하고 자기 육신의 생각으로 헛되이 과장하며

갈4:14의 천사, 문맥상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 역시 정관사가 없다. 따라서 관사여부로 논쟁을 일삼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것을 따지는 사람들 역시 관사를 일관성 있게 번역한 적이 한번도 없다.

갈4:14 또 너희는 나의 육체 안에 있는 나의 시련을 무시하거나, 거절하지도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천사같이 곧 그리스도 예수같이 나를 영접하였도다.

하갈에게 나타난 주의 천사는 신적 칭호(출3장)과 신적 권위(행27장)와 신적 능력(삿13장)과 신적 위엄(삿2,6장)을 갖고 있으며 바울이 그에게 속해 있는(행7:23) 바울의 주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주의 천사는 육신의 현현( Theophany)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정관사가 있든 없든(계14:6 10:1-3) 주의 천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1:20)

행27:23 내가 속해 있고 또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간밤에 내 곁에 서서

계14:6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데 그가 땅에 사는 자들과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계10:1 내가 보니, 다른 힘센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구름으로 옷입고 머리에 무지개가 있으며, 얼굴은 해와 같고 그의 발은 불기둥 같더라.

계10:2 그의 손에는 작은 책이 펴 있고 오른쪽 발은 바다를, 왼쪽 발은 땅을 밟고서

계10:3 사자가 포효하는 것처럼 큰 음성으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 일곱 천둥이 소리를 발하더라.

계1:20 네가 본 것은 나의 오른손 위의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의 신비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요, 네가 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

샘물 곁이란 표현에서 나타나는 예표는 실로 아름답다. 주의 천사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함족의 비참한 죄인이다.(행8:30-38) 이 여인은 박해받는 여인으로(롬7:1-3) 이집트로 가는 나그네로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샘 가까이에 있었다.(요1:14)

이와 같은 핵심 메시지는 놓친 채 수많은 주석가들이 관사논쟁만 벌이고 있다. 나라면 그분(주의 천사)에 대해 논쟁을 일삼기보다 그분을 알기 원할 것이다.

행8:30 그러므로 빌립이 거기로 달려가니 그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는지라. 말하기를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하느뇨?" 하니

롬7:1 형제들아, 내가 율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율법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주관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롬7:2 남편이 있는 여인은 그 남편이 살아 있는 한 그에게 법으로 매여 있으나 그가 죽으면 그녀는 그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요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갈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녀는 이집트를 향해 하고 있다. 술(Shur)지방은 이집트 앞에 있다.(창25:18)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그곳에 이르기 전에 이를 막았다. 하나님께서는 함이 약속의 땅에서 셈을 섬기는 것(창9:26-27)이 파라오의 땅에서 셈을 지배하는 것(출1-12장)보다 낫다고 생각하셨다.

창25:18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시리아로 통하는 이집트 앞에 있는 술까지 거하였고, 그가 그의 모든 형제들 면전에서 죽으니라.

창9:26-27 또 그가 말하기를 "셈의 주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 카나안은 그의 종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야펫을 증대케 하시어 셈의 장막에서 거하게 하실 것이요, 카나안은 그의 종이 되리라." 하더라.

8 말하기를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니 그녀가 말하기를 "나는 내 여주인 사래의 면전에서 도망하나이다." 하더라.

9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녀의 손 아래서 복종하라." 하고

고전7:20-24 엡6:5-9을 보라.

고전7: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안에 거하라.

고전7:21 네가 종일 때 부르심을 받았느냐? 그로 인하여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스럽게 될 수 있거든 차라리 그것을 사용하라.

고전7:22 이는 종도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으면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마찬가지로 자유인도 부르심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라.

고전7:23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고전7:24 형제들아, 각자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엡6:5 종들아, 육신에 따른 주인들에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복종하되 순전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하고

엡6:6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엡6:7 선한 뜻으로 봉사하되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엡6: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을 불문하고 주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엡6:9 또 주인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동일하게 행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너희의 주인도 하늘에 계시며 그 분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심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라.

10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케 하리니,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되리라." 하더라.

이 예언은 다음 구절들에서 전개된다.

11 또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보라, 네가 아이를 가졌으니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주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라.

이 구절은 그라프-벨하우젠(Graf-Wellhausen) 이론을 비판할 수 있는 좋은 구절이다. 평범한 설교자들은 그라프-벨하우젠 이론의 자세한 내용을 알 필요가 없다. 다만 여기서 이것을 언급하는 것은 그들이 주석들을 읽을 때면 “이 구절들은 ‘J’에 속한다.” “J기자는 이렇게 삽입했다.” 등등과 같은 표현들과 맞추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G&W이론의 진정한 옹호자들은 ‘R’ ‘D’ ‘P’ ‘L’ 등도 포함시킨다.)

이와같은 이론은 신학교에서 학문이란 이름으로 옹호도고 있는데, B.C.800년부터 B.C.200년 사이에 2-5명의 사람이 창세기를 결합시켜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이 그 기본 내용이다. 이 이론은 1890년에 유행되었고 오늘날도 여러 배교한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 비평학파의 옹호자들은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사용되는 원문증명 방법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출6:2-3의 진실성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그들의 비평이론을 세우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출6:2-3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일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주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타났으나 여호와라는 나의 이름으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출애굽기 6장을 기록했다고 하는 ‘E’에 따르면 여호와라는 이름은 모세에게만 처음으로 제시되었다고 한다. ‘J’는 이 사실을 몰랐으므로 (왜냐하면 그는 ‘E’보다 먼저 창세기를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모세 이전에 여호와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 채 사용하였다. 후일 ‘E’는 ‘J’를 수정했고 창세기에 “Elohim”을 삽입했다.

물론 이 이론은 완전히 엉터리다. “Elohim”는 ‘J’문서(창3:1-5)에서 마귀에 의해 사용되었고 역시 ‘J’문서에서(창32:28-29) 야곱에 의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호와는 창22:11, 22:14과 같은 ‘E’문서에서 나타나며 또다른 여호와가 ‘E’문서 창28:17-22에 등장한다.

따라서 이 이론을 더 이상 설명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본문에 따르면(창16:7-13) 하늘에서 도움을 주신 분은 “주”(LORD Johovah)이며 13절에서는 하나님(Elohim에 해당하는 El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기록한 “J”기자가 13절에서 이르러 한 절을 건너뛰어 14절로 넘어갔다는 말인데 14절의 브엘라해로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근거가 13절에 나와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tjfaudd할 것인가? “E”기자가 13절로 되돌아가 그 구절을 삽입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E”기자는 왜 7절과 9절과 10절은 고치지 않았는가? 이 3구절에도 여오와라는 단어가 포데 어째서 고치지 않았는가?

13절의 “주의 이름”(the name of the Lord)에 여호와라는 단어가 있고 “주 하나님이 나를 보고”에서는 El이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J”가 문장을 시작했다가 El 앞의 쉼표에서 기록을 멈추었다가 100-400년 후 “E”가 등장해서 하갈의 나머지 말들을 첨가했단 말인가?

이쯤해서 여러분들은 고등학문 고등비평 과학적 해석 등이 성경을 변개시키려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채고도 남을 것이다.

히브리어로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들으시는 자’ ‘하나님이 들으실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름이 주어진 첫 번째 경우이다. 이삭은 그 다음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스마엘은 분명 베드윈족 혹은 아바리아족이다.(갈4장 창37:28 삿8:22,24 창25:18)

창37:28 그때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는데,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들어올려서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 이십 개에 파니, 그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려갔더라.

삿8:22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기를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 아들의 아들이 우리를 다스리소서. 이는 당신이 미디안의 손에서 우리를 구해 내셨음이라." 하니

삿8:24 기드온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청이 있으니 너희는 각자가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달라."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인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더라.

창25:18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시리아로 통하는 이집트 앞에 있는 술까지 거하였고, 그가 그의 모든 형제들 면전에서 죽으니라.

12 그가 거친 사람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대적할 것이요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대적할 것이라. 그가 그의 모든 형제들 면전에서 거할 것이라." 하니라.

창25:18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시리아로 통하는 이집트 앞에 있는 술까지 거하였고, 그가 그의 모든 형제들 면전에서 죽으니라.

이 말씀은 아랍사람들이 유대인과 나란히 살 것을 말하고 있으며 이 구절에서 3000년 이상을 끌고 있는 성전(holy war)이 시작된다. 인종에 관한 예언은 그 누구의 의견과 관계없이(창9:25) 항상 진실하다.

창9:25 말하기를 "카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니,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지어다.“

거친 사람(히브리어로 들나귀라는 뜻 욥39:5-8)은 육신을 따라 태어나는 거듭나지 않은 죄인의 예표가 되었다.(욥11:12 출13:13 마21:2,5)

욥39:5-8 누가 들나귀를 놓아 주어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들나귀의 줄을 풀어 주었느냐? 내가 광야를 그들의 집으로, 불모지를 그들의 처소로 마련했느니라. 들나귀는 성읍의 북적댐을 조소하며, 부리는 자의 지르는 소리도 무시하느니라. 산등성이가 그의 초장이니, 그가 푸른 것은 모두 찾아 다니느니라.

욥11:12 사람이 들나귀 새끼같이 태어나도 허망한 사람이 현명하게 되느니라.

출13:13 나귀의 모든 첫배 새끼는 네가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네가 그것을 대속하지 않으려면 너는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또 너의 자손 가운데서 사람의 모든 첫태생 된 남자를 대속할지니라.

마21:2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러면 곧 나귀 한 마리가 그 새끼와 함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서 내게로 끌고 오라.

마21:5 "너희는 시온의 딸에게 말하라. 보라, 너의 왕이 네게 오시나니 그는 온유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인 어린 수나귀 위에 타셨도다" 하였더라.

모하메드는 이스마엘의 70대손이라고 추정되고 있으며 비밀결사 그룹의 의상, 문장, 상징 등은 모두 이 민족에게서 나왔다.(말콤X, 모하메드 알리, Black Muslims 등) 칼라쉬는 이렇게 평했다. “베드윈족은 무법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약탈물은 합법적 소득으로 여겨지며 무모한 강도짓은 용감한 행동으로 칭송된다.” 이스마엘은 셈족 출신의 진정한 함족으로서 양 족속의 특징을 물려받았다.(창10:20,31)

창10:20 이들은 함의 아들들이라. 그들의 족속과 그들의 방언과 그들의 나라와 그들의 민족대로였더라.

창10:31 이들은 셈의 아들들이라. 그들의 족속들과 그들의 방언과 그들의 땅들과 그들의 민족대로였더라.

아무리 민족간의 평등이 이러쿵 저러쿵 해봐도 3000년이 넘는 과거사를 없앨 수는 없다. 베드윈족은 사막에서 말을 달리고 손에 창을 들고서도 도시 생활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싸우고 훔치고 부족하고 때론 더러운 여건 가운데서 무한히 자유롭게 살아가는 민족이다. 이들은 전쟁을 좋아하는 사나운 민족이다. 염소젖, 야자수, 대추야자, 무화과, 불고기가 이스마엘의 주식이며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주장하는 12지파를 낳았고 이들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땅을 자기 땅으로 간주한다.(창13:15) 요르단과 사우디 아라비아가 오늘날 이스마엘의 경계이다.

창13:15 이는 네가 보는 모든 땅을 내가 네게 줄 것이며 네 씨에게 영원히 주고

13 그녀가 자기에게 말씀하신 주의 이름을 부르기를 "주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나이다." 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서 나를 보고 계신 그 분을 뵈었는가?" 함이라.

14 그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헤로이라 불렀으니, 보라, 그것은 카데스와 베겟 사이에 있더라.

하갈은 천사를 “엘”(엘로힘-하나님)로 불렀으며 기록자는 그 천사가 주(여호와)라고 말한다. 이는 스테판이 주의 천사를 출3:14의 전능하신 창조주(I am)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행7:30,32)

출3: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나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같이 말할지니 '나이신 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시니라.

행7:30 사십 년이 다 되자 주의 천사가 시내 산 광야에서 가시덤불의 불길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행7:32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고 하시니, 모세가 무서워 감히 주목하지 못하더라.

“내가 여기서 나를 보고 계신 그분을 뵈었는가?”라는 말은 현대적으로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계셨던 그분을 내가 볼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혹은 “지금까지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는가?”가 될 것이다. 하갈은 그때까지 한번도 신적인 보호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창28:12,16,17)

창28:12 그가 꿈을 꾸었으니, 보라, 사다리가 땅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보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창28:16-17 야곱이 잠에서 깨어 말하기를 "진정으로 주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며 그가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이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의 전이니, 이곳은 하늘의 문이라." 하였더라.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녀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잠5:21) 샘의 이름을 지었다. 우리는 히브리어 의미(“본 후에 살아있는 자의 샘”)만으로는 삿13:22-23과 같은 해석을 할 수 없다. 창세기 16장은 그 어디에서도 하갈이 그 무엇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천사를 본 후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하갈이 기뻐했다는 해석은 전혀 성경근거가 없다.

잠5:21 사람의 길들은 주의 눈 앞에 있으니, 그가 사람의 모든 길들을 살펴보시느니라.

삿13:22-23 마노아가 그의 아내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라." 하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말하기를 "만일 주께서 우리를 죽이기를 기뻐하셨다면 우리의 손에서 번제와 음식제사도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보여 주지도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때에 그런 말씀을 이처럼 우리에게 말씀해 주지도 아니하셨으리라." 하더라.

천사는 하갈에게 말을 했다.(8,9,11절) 그러나 천사가 그녀에게 나타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히브리어 의미만을 근거해서 내린 해석은 성경적 해석이 되지 못한다. 이처럼 <킹제임스성경 1611>은 히브리어 성경보다 더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있다. 하갈의 고백은 자기가 천사를 본 후에도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를 지켜보았던 살아계신 분께서 아비 없는 자식과 이집트에서 죽을 자기를 살려주셨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물과 아이와 씨와 12지파나 되는 많은 자손들을 주셨다.

15 하갈이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불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아브람은 86세였더라.

아브람이 86세 때 이스마엘은 태어났고 이때 사라는 76세였다. 이 시기는 약 B.C.1910년 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