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12-23)

창세기 17장 15절 - 27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5. 21. 10:38

15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 사래의 이름을 사래라 부르지 말지니, 사라가 그녀의 이름이 되리라.

16 내가 그녀에게 복을 주어 그녀로부터 네게 한 아들을 주며, 내가 그녀에게 복을 주어 그녀로 민족들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백성의 왕들이 그녀에게서 나오리라." 하시더라.

사래(다툼쟁이)의 이름을 사라(공주)로 바꾼 것은 히브리 철자 ‘욧’(י)을 ‘헤’(ה 다섯 번째 글자)로 바꾼 것이다.

벌링거는 다섯이라는 숫자가 갖는 예표적 의미를 잘못 이해해서 하나님께서 다섯 번째 철자인 ‘헤’를 사용한 것이 곧 은혜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섯이 은혜를 의미하는 경우는 140,000,000,000 경우 중 오직 한번 뿐이다. 나머지 139,999,999,999번은 죽음을 의미한다.(창5:5)

창5:5 아담이 살았던 모든 날들이 구백삼십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그녀로 민족들의 어미가 되게 한다는 말은 아무리 하나님의 친구로 불릴 만큼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라도 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다. 롬4:20-21에서 ‘그는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라고 했지만 이것은 창15:4-5에 해당되는 것이고 창17:17에 와서는 그의 믿음은 산산조각나고 만다.

롬4:20-21 그는 믿음 없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느니라.

창15:4-5 보라,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너의 상속자가 되지 않을 것이니, 네 자신의 몸에서 나올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씀하시기를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다면 그 별들을 세어 보아라." 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시더라.

결국 구체적인 사항이 제시되지 않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받은 약속을 믿는 것과 90세가 된 당신의 부인이 아직도 아이 하나 없는데도 민족들의 어미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롬4장과 창17:18을 어떻게든 조화시켜 하나님을 도와 드리려는 학자님들께서는 아브라함의 웃음은 하나님의 터무니없는 제안에 어처구니 없어서 웃은 것이 아니라 너무도 기쁘고 놀라워서 웃는 웃음이었다고 주장한다.

창11:23-26에서 하나님을 도우려는 사람들을 보라. 크리소스톰, 칼빈, 제롬, 어거스틴, 마틴, 케일, 칼리쉬, 델리취, 온켈로스 등은 하나님의 말씀대신 자기들의 본문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저명한 주석가이신 아담 클라크 씨께서 라합은 창녀가 아니고 여관 주인이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물론 그는 그녀가 마태복음 1장에서 메시아의 혈통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선한 의도로 그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창녀에 해당되는 신약성경 어휘(헬라어-포르네 야고보서 2장)는 두 가지 해석이 불가능한 것처럼 수2:1(히브리어-자나) 역시 창녀 이외의 해석이 불가능하다.

수2: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팀에서 두 사람을 몰래 정탐하러 보내면서 말하기를 "가서 그 땅, 즉 여리코를 엿보라." 하니,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창녀 집에 들어가서 거기서 묵으니라.

아브라함이 속으로 물음들을 생각해 볼 때(창17:17) 이것이 기뻐하는 모습이라는 해석이 가능할까 의심스럽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회의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백세가 된 사람에게 아들어 태어날 수 있으리요?”

이에 대해 칼빈, 어거스틴, 제롬 등은 그가 의심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창15:1-4은 어떻게 되겠는가 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이란 늘 그 모양인데도 이것을 무조건적인 믿음의 눈으로만 보려는 태도는 칼빈과 제롬과 어거스틴이란 사람들이 성경을 강론하는 사람인 것을 생각하면 실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런 태도(성경이 인간본성을 철저히 부정적 시각에서 보는 것과 정반대임)는 인간의 죄성을 간과하고 언제든지 장밋빛 긍정적 사고방식을 갖고 성경을 대하는 데서 비롯된다.

창15:1 이런 일들 후에 주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이니라." 하시니라.

창15:2 아브람이 말씀드리기를 "나는 자식이 없사오며, 내 집의 청지기가 다마스커스의 엘리에셀이오니, 주 하나님이여,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하고

창15:3 아브람이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주께서 내게 씨를 주시지 않았으니, 보소서, 내 집에서 태어난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하니

창15:4 보라,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너의 상속자가 되지 않을 것이니, 네 자신의 몸에서 나올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죄를 간과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롬4:1-5) 이들 세 영적 거성들의 실력은 실로 대단한 셈이다. 성령님께서는 히11:11-12을 기록하면서 아브라함뿐 아니라 분명히 불신의 고소를 머금은 사라마저도 믿음의 사람으로 간주하셨다.

롬4:1-5 그러면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육신에 관하여 무엇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게 되었다면 그에게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 보수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빚으로 여기지만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히11:11-12 사라 자신도 수태할 나이가 지났지만 믿음으로 씨를 잉태하는 힘을 받아 아이를 출산하였으니, 이는 약속하신 분이 신실하신 줄로 여김이라. 그러므로 죽은 자와 같이 된 한 사람으로 인하여 하늘의 수많은 별과 해변의 헤아릴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은 사람이 생육하였느니라.

창18:13-15을 읽어본다면 전가된 의가 아니고서는 사라의 믿음을 설명할 수 없다. 모든 주석가들은 히11:11-12을 앞에 두고 사라는 믿음 없이 행동했다고 서로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는 왜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는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실패들을 간과해 준 사실을 뒤엎어 버리고 마치 그가 성공적 믿음을 가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남성주월주의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같이 지려는 것인가?

창18:13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며 말하기를 '늙은 내가 아이를 낳는다니 이 일이 확실한가?' 하느냐?

창18:14 주께 너무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정해진 기간에 네게 돌아오리니 사라가 아들을 가지리라." 하시니

창18:15 그때에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며 말하기를 "내가 웃지 않았나이다."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시더라.

17 아브라함이 주의 면전에 엎드린 채 웃으며 그의 마음 속으로 말하기를 '백 세가 된 사람에게 아들이 태어날 수 있으리요? 구십 살이 된 사라가 애를 낳을 수 있으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이스마엘이나 주 앞에서 살게 해 주소서!" 하더라.

이 말은 사라가 아이를 갖게 될 것을 기뻐해서 외침이 전혀 아니다. 하갈은 이스마엘의 어머니였다. 만약 우리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계속되는 대화는(18-21절)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바로 이 사실은 이제껏 우리가 계속해서 주장해 온 것 즉 원어에 대한 정확하고 온전한 지식은 그 지식을 갖춘 사람의 마음이 <킹제임스성경 1611>의 본문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데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해준다. 케일, 델리취, 칼리쉬, 게세니우스 등과 같은 학자들은 50년간의 어휘 연ㄱ에도 불구하고 창17:17-21의 건전한 해석을 못하고 말았다.

이스마엘이나 주 앞에서 살게 해 달라는 말은 갈4:29의 언어로 다시 표해보면 ‘오 저도 뭔가 인정받게 해주소서. 저로 그 일을 하게 하셔서 신임을 얻게 해주소서.’ ‘제 자신을 개발해서 제 자아를 찾게 해 주시고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이 모든 육신적인 표현들을 보라. 동시에 모든 육체는 흙과 같음을 잊지 말라.

갈4:29 그런데 그때에 육신을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하였던 것처럼 지금도 그러하도다.

19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 사라가 참으로 네게 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 너는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그의 씨에게 내 언약을 세우리니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렘17:10 나 주는 마음을 살피고 나는 속을 시험하며 그 사람의 행위와 행실의 결과대로 각인에게 주노라.

창21:6 사라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를 웃게 하셨으니 듣는 자가 모두 다 나와 함께 웃으리라." 하고

20 이스마엘에 대해서도 내가 너를 들었나니, 보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었으니 내가 그를 다산케 하며 크게 번성케 하리라. 그가 열두 통치자를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창25: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이것들이 그들의 부락과 성들에 따른 그들의 이름들이라. 그들의 민족들에 따라 열두 통치자가 있더라.

21 그러나 나는 나의 언약을 사라가 내년 이맘 때 네게 낳아 줄 이삭과 더불어 세우리라." 하시더라.

2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야기를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창21:10 그러므로 그녀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이 여종과 그녀의 아들을 내어쫓으소서. 이는 이 여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상속받지 못할 것임이니이다." 하니창21:11 그의 아들로 인하여 그 일이 아브라함의 눈에 큰 근심이 되었더라.창21: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인하여 네 눈에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말한 모든 것에 있어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이삭 안에서 난 자가 네 씨라 불리울 것이며

창12:7 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시니, 그가 그곳에다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께 제단을 쌓았더라.

창13:15 이는 네가 보는 모든 땅을 내가 네게 줄 것이며 네 씨에게 영원히 주고

창15:18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네 씨에게 주었으니

창17:8 내가 너와 네 씨에게 네가 타국인으로 있는 땅, 즉 카나안의 모든 땅을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시니라.

23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셨던 대로, 그 날에 그의 아들 이스마엘과 자기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들 중에서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들의 포피의 살을 베어내었더라.

24 아브라함이 자기 포피의 살을 베어낸 때는 그가 구십구 세였고

25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의 살을 베어낸 때는 그가 십삼 세였더라.

26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으며

27 그 집의 모든 남자들, 즉 그 집에서 태어난 자와 타국인들에게서 돈으로 산 자들도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막7:13 너희는 너희가 전수한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 또 이와 같은 많은 일을 자행하고 있도다.

롬6:5-9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의 모양으로 함께 심겨졌다면 또한 그의 부활하심의 모양과 같이 되리라. 우리가 이것을 아나니, 곧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더이상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이는 죽은 자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라.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셔서 다시는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더 이상 그를 주관하지 못하는 줄 우리가 아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