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12-23)

창세기 18장 9절 - 15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5. 22. 10:25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네 아내 사라는 어디 있느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보소서, 장막 안에 있나이다." 하더라.

1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명의 때를 따라 분명히 네게로 돌아오리니, 보라,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가질 것이니라." 하시니, 사라가 그의 뒤에 있는 장막 문에서 그 말을 들었더라.

9절에서는 3인칭 복수인 그들이 말하고 있는데 10절에서는 단수로 화자가 바꿔었음을 주목하라. 이때부터 주님만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13,17,26절)

창18:13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며 말하기를 '늙은 내가 아이를 낳는다니 이 일이 확실한가?' 하느냐?

창18:17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일을 내가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창18:26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소돔 성읍 안에서 오십 명의 의인을 찾는다면, 그들을 위하여 모든 곳을 남겨 두리라." 하시더라.

“생명의 때를 따라” 이 말은 여자의 임신 기간인 9개월을 가리킬 수도 있다. 주님의 약속은 생명의 때를 따라 임신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를 가질(태어난 아이를) 것이라는 약속이다.

장막 문은 장막의 덧문일 것이다.(민16:19) 사라는 과자를 구우면서 남편처럼(창17:17) 소리없는 웃음을 웃었고 그 웃음을 그 누군가가 알아차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민16:19 코라가 회중의 성막 문에서 그들을 거역하여 온 회중을 모아 놓으니 주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창17:17 아브라함이 주의 면전에 엎드린 채 웃으며 그의 마음 속으로 말하기를 '백 세가 된 사람에게 아들이 태어날 수 있으리요? 구십 살이 된 사라가 애를 낳을 수 있으리요?' 하고

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를 많이 먹어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인들의 관례도 끝났으므로

12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노쇠하였고 나의 주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즐거움이 있으리요?' 하더라.

“나의 주도 늙었으니”(my lord being old also. 히브리어 아돈 – 아도니) 바로 이 구절이 베드로가 벧전3:6에서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주인 lord)로 불렀다고 인용한 구절이다. 비록 신약성경에서는 창18:15의 사라처럼 그 어떤 놀라운 일에도 두려워 하지 말라(벧전3:6)고 했지만 사라는 두려워 입술이 파래진 것 같다.

벧전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복종했던 것과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어떤 놀라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그녀의 딸들이 되느니라.

우리는 주님께서 사람들을 다루실 때 어떤 통찰력을 갖고 계신가를 이 장면에서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다. 주님은 창17:19의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점잖게 대해주기도 하지만 (이삭은 히브리어로 웃음 즉 조롱이란 뜻이다. 이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심으로 아브라함이 웃었음을 알고 계심을 암시하고 계신다.) 이번처럼 직접적으로 꾸짖으시기도 한다. “내가 웃지 않았나이다”에 대해 즉각적인 반박이 뒤따랐다.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창17:19 네 아내 사라가 참으로 네게 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 너는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그의 씨에게 내 언약을 세우리니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13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며 말하기를 '늙은 내가 아이를 낳는다니 이 일이 확실한가?' 하느냐?

14 주께 너무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정해진 기간에 네게 돌아오리니 사라가 아들을 가지리라." 하시니

15 그때에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며 말하기를 "내가 웃지 않았나이다."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시더라.

“주께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 결코 없다.(렘33:3)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데 있지 않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구 누구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렘33:3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실 수 있지만 하실 의향이 있으신지에 있다. 성도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도일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의심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든가 심한 박해가 있다든가 혹은 생활이 궁핍하다든가 할 때는 주님의 계획이, 어떻게 행하실지, 의심갈 때가 있다.

일이 잘 풀릴 대는 롬8:28은 너무도 뚜렷하게 보인는데 반해 고통의 상황에서는 이 구절이 흐릿해지면서 잘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바위를 만드실 수 있는가?’ 따위의 궤변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과 그 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품이나 말씀에 어긋나는 그 어떤 것도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를 지옥에 보내는 일이 너무 어렵고 죄인을 그의 의지에 반해 억지로 구원하는 것도 너무 어렵다. 칼빈이여, 안심하라. 그분은 이를 위해 결코 절대주권을 사용하시지 않는다. “주께 너무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Is any thing too hard for the LORD?)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아니라, 그가 하시고자 하는 일은 못 하실 것이 없다도.”이다.

사람의 속웃음은 매우 낯익은 감이 없지 않다. 나는 대학이나 성경개정위원회이나 언론매체 등에서 이런 류의 웃음을 많이 들어본 것같다. 또한 근본주의 신학교에서도 자주 들어본 것 같다. 당신이 그 웃음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면 내가 보여 주겠다.

‘어던 사람들 보니까 <킹제임스성경>이 하늘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왔다고 그러더러구(하하 호호)’

‘바울에게 충분하다면 내게도 충분한 거지 뭐, 그렇지 않아?(하하 호호)’

‘저런 <킹제임스성경>이 이 단어를 그런 뜻으로 번역하다니 불행한 일이야(하하 호호)’

이와같은 웃음이 바로 내가 말하는 그 웃음이다. 이 휼륭하신 분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그들이 자기 몸으로 행한 일들을 직고할 때(고후5:10-11) 아마 이렇게 변명할 것이다.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말씀을 비웃지 않았어요.’ 그러나 주님의 답변은 명백하다.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고후5:10-11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가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권유하노라.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나타내어졌으며 나는 또 너희 양심에도 나타내어졌기를 바라노라.

그리고 백보좌 심판석에서는 홍해를 갈대 늪지대로, 놋을 구리로, 만나를 꿀로, 연기 기둥을 먼지 구름으로, 불타는 가시덤불을 열풍에 의한 신기루로, 예수 그리스도를 공산주의자로 변개시키고는 킬킬대었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책들이 열리고(계20장) 심판이 열릴 때 ‘우리는 웃지 않았어요’라고 변명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빛(딤전6:16)으로부터 많은 물소리들과 같은 목소리가 이렇게 들려올 것이다. “아니라, 너도 웃었느니라. 이 거짓말쟁이들아!”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가장 잘 웃는 법인줄 모르는가? 마지막 때 웃으시는 분은 하늘에 앉으신 주님이시다.(시2:4)

딤전6:16 오직 그 분만이 불멸하시며,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 분께 영원한 존귀와 능력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시2:4 하늘들에 앉으신 분이 웃으실 것이요, 주께서 그들을 조롱하시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