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4장 10절 - 28절
10 그리하여 그 종이 자기 주인의 낙타들 중에서 열 마리를 취하여 떠났으니, 이는 자기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이 그의 손에 있음이라. 그가 일어나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읍에 이르니라.
“낙타들 중에서 10마리”에서 10이란 숫자는 성령께서 부르심을 받고 나서는 이번 여행이 이방인을 신랑께 모셔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앞서가는 천사는 출33:15의 천사와 유사하다.
출33:15 모세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만일 주의 임재가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우리를 여기에서 올려보내지 마소서.
엘리에셀은 헤브론 혹은 브엘세바로부터 출발하여 북쪽으로 향했고, 그 다음 북동쪽으로 나아갔다. 이번 여행은 사해 서쪽에 있는 헤브론에서 시작하여 벧엘, 세켐, 이스르엘, 마돈, 하솔을 거쳐갔을 것이다.
갈릴리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하솔에 이르러 엘리에셀은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다마스커스, 탓몰, 하맛을 거쳐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나홀의 성읍 하란에 도착했을 것이다.
낙타들이 우물가에 무릎을 꿇는 모습에서 일부 주석가들은 낙타가 아니고 나귀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억지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우물(샘물)과 여인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보게 된다.(요4:4-5 창21:19) 목마른 여인은 우물로 오게 마련이고 그곳에는 구원이 기다리고 있다.
요4:4-5 그런데 주께서는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만 하였더라.요4:5 그리하여 주께서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수칼이라 하는 사마리아의 한 성읍에 오셨는데
창21:19 하나님께서 그녀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녀가 샘물을 보고 가서 물을 병에다 채워 아이에게 주어 마시게 하더라.
11 저녁 때에 그가 자기 낙타들을 성읍 밖 샘물 곁에서 무릎을 꿇렸으니, 그때는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12 그가 말하기를 "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주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오늘 내게 좋은 일이 있게 하시어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소서.
13 보소서, 내가 우물 곁에 서 있고 성읍 사람들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면
14 내가 그 소녀에게 말하기를 '부탁하노니, 너는 네 물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물을 마시게 하라.' 하여, 그녀가 말하기를 '마시소서. 내가 당신의 낙타들에게도 마시게 하리이다.' 하면 그녀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것이니, 그것으로 나는 주께서 내 주인에게 호의를 베푸심을 알겠나이다." 하더라.
탐구적인 성도라면 물을 길러 온 시각과 신부가 집으로 돌아온 시각이(11절과 63절) 모두 저녁 때임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에셀은 멈추고 속으로 기도를 드린다.(12절) 그는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응답을 받게 된다.(창24:45 사65:24) 그는 구약성경의 기도방식에 따라(창14:22) 서서 기도했다.(13절)
창24:45 내가 내 마음 속에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보소서, 리브카가 자기 물항아리를 자기 어깨에 메고 와서 우물로 내려가 물을 긷기에, 내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내가 부탁하노니, 나로 물을 마시게 하라.' 하니
사65:24 그때에는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대답할 것이요 그들이 말을 마치지 아니하였는데도 내가 들으리라.
창14: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말하기를 내가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곧 주께 내 손을 드니
15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인데, 보라 리브카가 물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녀는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카의 아들 브두엘에게서 태어났더라.
이 구절에서도 70인역은 하나님을 도와드리려고 ‘마음으로’라는 표현을 첨가시켰다. 이것은 45절에 나와 있는 표현에 맞추기 위함이요, 그렇게 함으로 성경의 모순을 제거하고자 했다.
뉴 스코필드 성경 역시 단3:25에서 “the Son of God”을 ‘one of the Sons the gods’ ‘like unto a son of gods’라고 주를 달아 성경을 변개시키고자 한다. 개역과 개정개역성경 역시 이들을 따라 성경을 변개했다.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단3:25 개역, 개정개역)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못 믿겠다는 것이다. 헬라어 학자들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성경도 보존할 수 없단 말인가?
단3:25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보라, 내가 보니 네 사람이 풀려서 불 가운데서 걸어다니고 있는데 그들이 다치지도 않았으며, 그 넷째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도다.(is like the Son of God)" 하더라.
16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름답고 아직 남자를 모르는 처녀더라. 그녀가 우물에 내려가서 자기 물항아리에 물을 채워서 올라오는데
성령께서는 리브카를 칭하면서 일반적으로 처녀를 뜻하는 ‘베틀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 단어는 ‘결혼한 여자’라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16절에 “아직 남자를 모르는” 이란 말씀을 덧붙였다. RSV가 사7:14를 왜곡 시킨 것을 보라.
(한글킹제임스성경)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한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KJV) a virgi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shall call his name Immanuel.
(RSV) a young woma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shall call his name Imman'u-el.
눅1:34에서 마리아가 천사에게 대답할 때 동일한 방식으로 말한 것을 주목하라. 따라서 마리아가 말한 처녀는 남자를 모르는 진짜 처녀를 의미한다. 일부 성서들은 ‘남자를 모르는데’ 표현을 ‘남편이 없는’으로 변개시켰고, 이로써 마리아가 순결한 처녀란 사실을 애써 감추려 했다. 남편이 없는 것은 그 여자가 순결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으려는 자들의 교묘한 술책이 아니고 무엇인가?
눅1:34 마리아가 그 천사에게 말하기를 "내가 남자를 모르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이까?"라고 하니
성경에서 젊은 여인에게 사용되는 처녀라는 단어는 남자와 아무런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은 여자를 뜻한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후까지는 처녀로 있었고, 이곳 창세기에서도 리브카는 이삭과 결혼하기까지 처녀로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롬7:1-4)
롬7:2-4 남편이 있는 여인은 그 남편이 살아 있는 한 그에게 법으로 매여 있으나 그가 죽으면 그녀는 그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다른 남자와 혼인하면 간음한 여인이라 불리지만 그녀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므로 다른 남자와 혼인하더라도 간음한 여인이 아니니라. 나의 형제들아, 이런 연유로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하여 율법에는 죽었나니, 이는 너희로 다른 사람, 즉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그와 혼인하게 하려는 것이요, 그리하여 우리로 하나님께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위해 순결한 처녀를 원하신다.(고후11:2) 모펫 어서 역시 16절의 “남자를 모르는”을 결혼하지 않은 것이라고 번역했다. 실로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다.
고후11:2 이는 내가 경건한 질투로 너희에게 질투를 느낌이라.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키나니, 이는 한 순결한 처녀로 너희를 그리스도께 바치려는 것이라.
리브카의 오빠는 라반으로 둘 다 나홀과 말카 사이의 자식들이다. 나홀은 아브라함의 형제이다.(창11:27) 이때 사용되던 연대기 체계에 따르면 이삭이 40세 리브카가 30세쯤이었을 것이다. 벌링거에 따르면 이삭은 35세쯤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다만 이삭은 33세쯤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자 한다.(창2:7,22)
창11:27 이것이 테라의 후대라. 테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창2:7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창2:22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했던 갈비뼈로 여자를 지으셔서 그녀를 그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
17 그 종이 달려가 그녀를 만나서 말하기를 "부탁하노니, 네 물항아리에서 물을 좀 마시게 하라." 하니
18 그녀가 말하기를 "내 주여 마시소서." 하고 서둘러 자기 물항아리를 손에 내려 그에게 마시게 하더라.
19 그녀가 그에게 물을 마시게 한 뒤 말하기를 "당신의 낙타들을 위해서도 내가 물을 길어 물을 다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20 그녀가 서둘러서 자기 물항아리를 구유에 붓고 다시 물을 길으러 우물로 달려가서 그의 모든 낙타들을 위하여 물을 긷더라.
우물은 움푹 패인 곳에 있었고 리브카는 그곳으로 내려가 한 물항아리에 물을 채워 올라오고 있었다.(16절) 엘리에셀은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여인에게 하셨듯이 물을 좀 마시게 하라고 요청했다.(요4:7) 엘리에셀은 예수님보다 더 나은 반응을 얻어냈다.
요4:7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는데,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하시더라.
우리는 이 시점에서 리브카는 다부진 일꾼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서둘러”(18절) “서둘러서”(20절) “달려가서”(20절) “달려가서”(28절). 리브카에게는 세련된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그녀는 프랑스의 패션 모델이라기보다는 독일의 주부 같았다. 화려한 의상이나 장신구들은 그녀의 쇼핑 목록에 들어 있을 것 같지 않다. 델리취, 카스킬, 칼빈, 블리크, 게시니우스 및 같은 부류의 주석가들은 리브카의 이런 특징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물을 길어다 주고 커다란 낙타 10 마리에게 물을 길어다 마시게 할 만큼 부지런하고 힘쓰는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1 그 사람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며 주께서 자기의 여행을 성공케 하셨는가 아닌가를 알고자 하더니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감탄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의 변덕스러움 혹은 믿음보다는 논리를 붙드는 습성을 우리는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다 엘리에셀은 그의 기도가 자기 눈 앞에서 응답되는 것을 보았지만 여전히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었다.
① 이 소녀는 과연 처녀인가?
② 그녀는 아브라함의 친족일까, 아닐까?(창24:4)
③ 이 두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그녀가 과연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카나안으로 가려고 할 것인가?
리브카는 열심히 일하는 여인이었을 뿐 아니라 보기에 심히 아름다웠다.(창24:16) 이 묘사는 솔로몬의 노래 6:10에 나오는 그리스도인의 신부에 대한 묘사와 일치한다.
창24:4 너는 내 고향 내 친족에게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얻으라." 하더라.
창24:16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름답고 아직 남자를 모르는 처녀더라. 그녀가 우물에 내려가서 자기 물항아리에 물을 채워서 올라오는데
아6:10 아침처럼 비추고 달처럼 고우며 해처럼 맑고 깃발들을 든 군대처럼 위엄이 있는 여자는 누구인가?
22 낙타들이 물을 다 마신 뒤에
낙타들이 물을 다 마신 뒤라면 리브카가 19절에서 “당신의 낙타들을 위해서도 내가 물을 길어 물을 다 마시게 하리이다.” 라고 말했음을 상기시켜 준다. 이처럼 리브카는 보기에 아름답고, 열심히 일했으며, 순결하고 젊은 처녀였을 뿐 아니라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엘리에셀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그가 오늘날의 새로운 도덕 대신 성경에 나오는 옛날식 윤리 기준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사람이 반 세켈의 금 귀고리 한 개와 그녀의 손에 맞는 열 세켈짜리 금 팔찌 두 개를 주며
반 세켈에 해당하는 단어는 “베카”로 출38:26에 나온다.
출38:26 계수를 받은 자는 이십 세 이상으로부터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인데 성소의 세켈에 따라 각 사람에게 한 베카 곧 반 세켈씩이라.
귀고리는 학자들의 소동을 또다시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거의 모든 학자동맹 참가자들은 딸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 주장을 지지하는 학자님들은 히브리어 네젬은 코에 거는 보석이지 귀고리가 아니라는데 모두들 동의하는 모양이다. 이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겠다고 작정을 하고 나선 사람들이다.
47절에 귀고리를 ‘얼굴에’(upon her face) 달았다는이유로 이들 주석가들은 귀에 거는 고리와 얼굴 전면에 거는 보석들을 제거해 버린다. 더멜로우는 아예 코걸이는 왼쪽 코에 끼웠다고 단정적으로 말함으로써 이미 코걸이가 사실인 것처럼 그의 주석에 써 놓았다.
그들이 보기에는 <킹제임스성경>에는 어휘 선택에 있어 오류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킹제임스성경>을 가지고 오히려 히브리어 본문, 70인역의 본문, ASV의 본문, RSV의 본문 들을 모두 고쳐 주신다.
출32:2에 보면 "너희 아내들과 너희 아들들과 너희 딸들의 귀에 있는 금 귀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고 되어 있는데 이때 금귀고리가 이곳 창세기와 동일한 히브리어 ‘네젬’이다. 출32:3에도 네젬은 금귀고리로 되어 있고 사3:20에도 ‘네젬’은 귀고리로 나오며 21절에서 코고리들은(nose jewels) 네젬 앞에 코에 해당하는 단어 ‘아프’를 써놓았다.
출32:3 모든 백성이 그들의 귀에 있는 금 귀고리를 빼어 아론에게 가져왔더라.
사3:20 모자들과 발목 장식들과 머리띠들과 허리띠들과 귀고리들과
사3:21 반지들과 코고리들과
이처럼 히브리어 학자들이 히브리어를 빙자해서 <킹제임스성경>을 뜯어고치려 할 때마다 그들은 스스로 올무에 걸려 넘어진다. 이제껏 경험으로 보아 히브리어 학자들의 견해와 <킹제임스성경>의 견해가 서로 틀리면 당연히 히브리어 학자들을 쓰레기통으로 내던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 ‘네젬’이란 단어는 귀고리 혹은 코고리를 의미한다고 둘러대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성경 3곳에서 이 단어는 두 가지를 다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23 말하기를 "네가 누구의 딸이냐? 내가 네게 부탁하노니 내게 말하라. 네 아버지 집에 우리가 묵어 갈 방이 있느냐?" 하니
24 그녀가 그에게 말하기를 "나는 밀카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하고
묵어 갈 방은 자기 집이 텅빈 광야임을 알고 있는 진지한 죄인이 생명의 주님을 필요로 함을 고백하는 올바른 반응이다.(요14:23 계3:20)
요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들을 지키리니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며, 또 우리도 그에게 와서 우리의 거처를 그와 함께 정하리라.
계3: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엘리에셀은 그의 증거에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리브카가 집으로 달려가 가족들에게 이 일을 알리는 동안(요4:28-30) 계속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요4:28-30 그러자 그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 두고 성읍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와서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을 나에게 말한 그 사람을 보라. 그 분이 그리스도가 아닌가라고 하니 그때 사람들이 성읍에서 나와 주께로 오더라.
25 그녀가 그에게 더 말하기를 "우리에게는 짚과 여물이 충분히 있으며 묵을 방도 있나이다." 하니
26 그 사람이 그의 머리를 숙여 주께 경배하고
27 그가 말하기를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주 하나님을 송축하오니, 이는 나의 주인에게 주의 자비와 주의 진리를 없애지 아니하셨음이니이다. 주께서는 길에서 나를 내 주인의 형제 집으로 인도하셨나이다." 하니라.
28 그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들을 자기 어미 집에다 말하였더라.
“묵을 방도 있나이다.” 이 말은 아름다운 예표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그분을 위해 순결을 보존할 뿐 아니라 그녀의 마음에 그분을 위한 방을 마련한다.(골3:16 엡3:17)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지혜로 너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되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
엡3:17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며 너희가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닦아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당시의 장막절에는 예수님을 위한 여관방이 없었다. 그때나 오늘이나 그리스도께서 묵을 바은 더 이상 없다. 오늘날 크리스마스에 예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줄 아는가?
미 복동부에 있는 유명한 대학교에서 한 심리학 교수가 앙케이트 조사를 했는데,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써보라고 했다고 한다. 약 40여 장의 응답자 중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징글벨, 루돌프, 선물,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 장난감, 1년에 한번,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 트리 등을 써 놓았다. 그러나 40여 장의 설문지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온갖 선물과 야단법석만이 여관을 가득 채울 뿐 예수님은 마구간에 여전히 내팽개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