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24-36)

창세기 24장 50절 - 60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6. 3. 09:57

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 일이 주로부터 진행되었으니 우리가 당신께 나쁘거나 좋다고 이야기 할 수 없도다.

51 보라, 리브카가 그대 앞에 있으니 그녀를 데리고 가서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녀가 당신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하니

52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나서 땅에 엎드리어 주께 경배하더라.

‘그 일이 주로부터 진행되었으니’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 그 누구도 자기가 예의 바르다고 인정받고 싶다는 이유로 예라고 대답하거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 라반은 창31:29에서도 동일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해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창31:29 너를 해칠 수 있는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어젯밤 내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는 선이든 악이든 간에 야곱에게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느니라.

동양의 아버지나 오빠는 딸이나 여동생의 혼인에 관해서 전권을 행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은 허락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전7:36-38) 그럼에도 이 혼인에는 너무도 초자연적인 요소가 많은 고로 혼인이 완전히 성립되기 전에 리브카에게도 선택권이 주어졌다.

고전7:36-38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처녀 딸이 꽃다운 시기도 지나고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어서, 그녀에 대해 합당치 아니하게 처신하고 있다 생각한다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해도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혼인하게 하라. 그러나 그가 마음을 굳게 정하고 아무런 필요성도 느끼지 아니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장할 수 있어서 자기 처녀 딸을 그대로 남겨 두기로 작정했어도 잘하는 일이라. 그러므로 시집보내는 자도 잘하는 것이지만,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53 그 종이 은 장신구들과 금 장신구들과 의복을 꺼내서 리브카에게 주고 그녀의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귀한 것들을 주니라.

장신구는 히브리어 ‘켈라’로 “끝내다”라는 뜻을 지닌 ‘칼라’에서 나왔다. 따라서 이 단어는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장신구, 즉 “완성된” 장신구란 뜻이다. 그런데도 성경 변개자들은 이 단어를 그릇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렇게 되면 사61:10에 쓰인 동일한 단어 역시 ‘그릇’이 되어 ‘신부가 그릇으로 자신을 단장한다.’는 우스개소리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그토록 실력있는 학자님들의 실력이다.

사61: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겠으며 내 혼이 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의복으로 나를 입혀 주셨고 그가 나를 의의 겉옷으로 덮어 주시어, 마치 신랑이 장식물로 자신을 꾸민 것같이, 신부가 보석으로 자신을 단장함같이 하셨음이라.

겔16:11-13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여인에게 팔찌, 사슬, 보석, 귀고리 금, 은 등을 주셨다. 이 구절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이마의 보석과 귀고리, 코고리는 서로 다르며 12절의 보석들은 17절에서 금과 은으로 된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보석 혹은 장신구를 그릇으로 번역하겠다고 나서는 학자들과 성령님 즉 누구의 권위를 인정해야 마땅하겠는지 생각해 보라.

겔16:11-13 또한 내가 너를 장식으로 단장시켰고 손에는 팔찌를, 목에는 사슬을 둘러 주었으며 이마에는 보석을, 귀에는 귀고리를, 머리 위에는 아름다운 관을 씌워 주었노라. 너는 금과 은으로 이같이 단장하였고 네 옷은 세마포와 비단과 수놓은 것으로 만들었으며, 너는 고운 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었으며, 너는 몹시 아름다우며, 너는 왕국에서 번영을 이룩하였도다.

본문 내용은 성령께서 믿는 자에게 유업의 보증을 주시는 장면이다. 이 유업의 보증은 “값주고 사신 그 소유를” 구속하기까지 준다.(엡1:14) 즉 몸에서 떠나 주와 함께 있게 될 그때까지(고후5:8) 유업을 보증을 준다.

엡1:14 이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를 구속하기까지 우리의 유업의 보증이 되사 그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5:8 우리가 자신에 차 있고 정녕 몸에서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것이라.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이 그가 개신교도이건, 카톨릭이건, 유대인이건, 힌두교인이건, 불교인이건, 도교인이건, 이슬람인이건, 선도인이건, 유교인이건 아니면 불가지론자이건 미리 지옥을 맛보는 것과 같이, 그래서 그런지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 땅이 지옥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에 대해 미리 맛볼 수 있다.(계21:1-4)

계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이상 있지 아니하더라. 나 요한은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같이 예비되었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그 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그 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내시며 다시는 사망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 없고 고통 또한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음이라."고 하더라.

54 그들이 즉 그와 그의 일행들이 먹고 마시며 온 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말하기를 "나를 나의 주인에게로 보내소서." 하니

55 그녀의 오라비와 어미가 말하기를 "소녀로 며칠,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고, 그 후에 그녀가 갈 것이라." 하더라.

56 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를 지체시키지 마소서. 주께서 내 길을 번성케 하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하더라.

라반은 열흘을 머물다 가라고 요구하였다. 이는 이방인들의 계산 방법에 따른 것이다.(창10:10 참고) 그러나 성령을 예표하고 있는 엘리에셀은 그의 주인에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57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리라." 하고

58 그들이 리브카를 불러서 그녀에게 말하기를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겠느냐?" 하니 그녀가 말하기를 "내가 가겠나이다." 하더라.

리브카의 가족들은 그녀에게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겠느냐?”는 질문을 했고 리브카는 이에 "내가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오늘날까지도 서양에서는 결혼식에서 이 질문을 약간 변형해서 “go” 대신 “have”를 사용한다. 이 질문은 거친 인생의 풍파를 함께 헤쳐나가기로 할 것인지 묻기 위해 혼인 서약을 할 때 사용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예와 아니오 둘 중 하나이다.

운명은 성품에 의해 결정되고 성품은 결단에 의해 그리고 결단은 마음과 야망에 의해 결정된다. 어쨌던 모든 운명은 예와 아니오 두 단어에 달려 있다. 마25:30-44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운명은 ‘너희 축복받은 자들이여, 오라.’ 혹은 ‘너의 저주받은 자들아, 떠나라.’로 결론이 난다.

마25:34 왕이 그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라,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그 왕국을 이어받으라.

마25:41 그때에 왕이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말하기를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만약 리브카가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면 그녀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녀의 친구들과 친적들과 함께 죽을 때까지 살 것이요 만약 그녀가 예라고 대답한다면 짐을 싸로 일어나 평생 동안 장작에서 순례자와 나그네로 살도록(히11:9,13) 운명 지워진 남자와 생을 함께 하기 위해 떠나야만 한다.

히11:9 믿음으로 그는 타국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기거하여 그와 함께 그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들인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느니라.

히11:13 이들은 모두 믿음 안에서 죽었으나 모두가 그 약속들을 받은 것은 아니로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았고 확신하여 소중히 간직하였으며, 또 이 땅 위에서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느니라.

‘리브카, 자, 어떻게 하려느냐? 이 사람과 함께 떠나겠느냐?’

‘글세요, 가고는 싶지만, 만약 거기 가면 이곳 바빌론 제일교회 사람들이 저보고 미쳤다고 하지 않을까요? 요즘은 사람을 잘못 만나면 먹고 살리고 힘들다던데...’

‘이 사람과 함께 떠나겠느냐?’

‘그러고는 싶은데요, 제가 견뎌낼까 모르겠어요. 여행길이 900km나 되는 데다 뜨겁고 더러운 모래 길에다 저 낙타들을 타고 간다고 생각하니 친구들이 그러는데 도중에는 강도와 도적들이 많다던데.’

‘그러니까 이 사람과 함께 떠나겠느냐?’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럴 기분이 나질 않는군요. 어떤 친구들이 그러는데 구원받을 때는 불도 받았고, 신비한 체험도 했다던데 저는 왜 그런지 느낌이 없거든요.’

‘깔꺼냐 말꺼냐?’

‘아시다시피, 당신은 당신의 종교를 갖고 있고 저는 제 종교를 갖고 있지요. 제안은 고맙습니다만 우리는 다른 종교로의 개종을 믿지 않아요. 저는 저의 사제도 모시고 있고.’

‘마지막으로 묻겠다. 리브카! 예냐 아니오냐?’

‘내가 가겠나이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이 경우 핵심 요소는 의지이다.(요5:40)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몰라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체험이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는 그 축복을 받지 않으려고 거역하는 그 마음 때문에 믿지 못한다.(롬2:4-5)

요5:40 너희는 생명을 얻으려고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롬2:4-5 아니면 네가 그 분의 선하심이 너를 회개하도록 인도하심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관용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무시하는 것이냐? 다만 너의 완고함과 회개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계시될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을 뿐이로다.

무디가 한번은 무신론자 클럽에서 30명을 회심시킨 적이 있었다. 무디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다고 하는 한 사람을 그의 친구들 앞에 일으켜 세워 주님을 영접하도록 했다.

이 사람은 약 300여 명 앞에 서 있는 동안 무디는 ‘자, 이 사람이 여러분의 영웅입니다. 누가 일어나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겠다. 나는 그분과 아무런 관계를 갖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때 한 사람이 일어섰다.

무디는 ‘자, 여러분 앞에는 이제 두사람의 영웅이 서 있습니다. 어떤 영웅을 따를 것인지 결정하십시오.’ 30명이 일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 사람을 따르겠다고 일어섰다. 그러나 두 번째 영웅을 따르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후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훌륭한 아버지요, 남편으로서 빛을 얻기 위해 매일 기도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두 번째 영웅은 형편없는 도박가였을이 드러났다. 이 영적인 전쟁은 의지에 달려 있다. 원하는 자는 얻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59 그들이 그들의 누이 리브카와 그녀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의 일행들을 보내며

60 리브카에게 축복하며 말하기를 "너는 우리의 누이며 너는 수백만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들로 그들을 미워했던 자들의 성문을 소유케 할지어다." 하더라.

이제 리브카는 유모와 함께 가족의 전송을 받으며 여행길을 떠난다. 60절에 나오는 축복은 창22:17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과 유사하다. 자손의 촉복과 물질적 축복에 관한 것으로 승리가 예언되어 있다. 리브카는 실로 수백만의 어미가 되었다.(출12:37 민1-5장 삼하24:9) 오늘날에도 그녀의 후손 1,400만이 이땅에 남아 있다.

창22:17 복으로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번성으로 내가 너의 씨를 하늘의 별들처럼, 또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케 하리니 네 씨가 그의 원수들의 문을 차지하리라.

출12:37 이스라엘 자손들이 라메세스에서 숙콧으로 여행을 하니 아이들 외에 보행하는 남자가 약 60만이며

삼하24:9 요압이 왕에게 백성의 총 인구수를 올렸으니, 이스라엘에서 칼을 뺄 수 있는 용사가 80만이요, 유다의 사람이 50만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