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1장 1절 -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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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의 말을 들었는데 말하기를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것을 모두 빼앗아 갔으며 우리 아버지의 것으로 그가 이 모든 영광을 차지했나이다." 하더라.
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보았더니, 보라, 자기에게 대함이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3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조상들의 땅 네 친족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돈과 권력은 실로 질투를 유발시키는 것이기에 야곱은 서서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단6:3-4) 이 순간까지는 야곱의 아들들은 전혀 언급된 적이 없었다. 1절에서 우리는 11명의 자식과 4명의 아내 그리고 장모를 제외하고도 야곱은 라반의 첫 번째 외손자가 태어날때부터(창29:32) 적어도 2명의 사촌들로부터 눈총을 사고 있었거나 감시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6:3-4 이 다니엘은 탁월한 영이 있으므로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보다 뛰어나니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도록 구상하였더라. 그러므로 총리들과 고관들이 왕국에 관하여 다니엘을 반대할 구실을 찾고자 하였으나, 그들은 어떤 구실이나 잘못도 찾아낼 수 없었으니, 이는 그가 너무 신실하여 아무런 실책이나 잘못도 그에게서 발견되지 않았음이더라.
창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르우벤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녀가 말하기를 "참으로 주께서 나의 고뇌를 살펴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라반의 아들들은 드디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불평하기에 이르렀다. 라반 역시 야곱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고향ㅇ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네 조상들의 땅 네 친족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4 야곱이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떼가 있는 들로 불러서
5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보니 나를 대함이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내 아버지의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셨도다.
4-13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야곱은 하나님께서 원래 주신 그 명령과 약속과는 약간 다르게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수많은 주석가들이 당황하다 못해 아예 주석을 포기해 버린다.(커츠, 고스만, 델리츠쉬, 랑게, 나크마니즈, 부쉬, 워즈워드, 로젠뮬러, 머피, 캔들리쉬, 케일, 안인즈위스, 워즈워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야곱의 수태조건(창30:37-43)을 두고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계시해 주신 것으로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원수를 갚은 것이며 도와주신 것이라고 한다. 다른 주석가들은 창31:11-13의 환상은 야곱이 이미 자기 임금을 지불받은 이후에 나타난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니까 야곱이 거짓말했다는 생각은 그 어떤 주석가도 갖지 못한 것 같다. 야곱은 이 때쯤이면 능란한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었다.(창27:19,20,24 창30:31 창33:14)
창27:19 야곱이 그의 아비에게 말하기를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청하셨던 대로 행하였나이다. 내가 간구하오니, 일어나 앉으셔서 나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혼이 나를 축복하소서." 하더라.
창27:20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그처럼 빨리 잡았더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주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 주셨나이다." 하더라.
창27:24 이삭이 말하기를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그러하니이다." 하더라.
창30:31 그가 말하기를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하더라. 야곱이 말하기를 "외삼촌께서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되나니, 만일 외삼촌께서 내게 이것을 해 주신다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떼를 치고 지키리이다.
창33:14 내가 간구하노니 내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앞서 가소서. 나는 내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이 견딜 수 있는 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로 가리이다." 하더라.
따라서 커츠, 고스만 등과 같은 학자들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야곱은 이미 창31:3의 말씀을 창31:9-13의 말씀으로 꾸며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터툴로도 상당히 뛰어난 사람이었다.(행24:2-6) 물론 이 거짓말 대회에서 아카데미 주연상은 아렉인 후새에게 돌아갈 것이다.(삼하17:7-14) 물론 야곱이 레아와 라헬에게 말한 내용 중에는 진실인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내 아버지의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셨도다.”(5절) “하나님께서 그가 나를 해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도다.”(7절) “지금 일어나 이 땅을 떠나서 네 친족의 땅으로 돌아가라.”(13절) 등이 그것이다.
행24:2-6 바울이 불려 나오니, 터툴로가 고소하기 시작하여 말하기를 "당신의 덕으로 우리가 큰 화평을 누리며, 당신의 선견으로 이 민족에게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졌음으로 우리가 모든 곳에서 항상 이것을 감사하며 환영하나이다, 펠릭스 각하. 내가 이제 당신께 더이상 폐가 되지 않으려 하오니 간략하게 우리의 말을 들어 주시는 관용을 바라나이다. 우리가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자가 되어 세상에 있는 온 유대인 사이에 소요를 일으킨 자로서 나사렛 이단의 두목이며 그가 또한 성전을 더럽히려고 하기에 우리가 그를 잡아 우리의 율법에 따라 재판하고자 했는데
삼하17:14 압살롬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아렉인 후새의 계략이 아히도펠의 계략보다 더 낫다."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압살롬에게 재앙을 가져오실 의도로 아히도펠의 좋은 계략이 실패하도록 정하셨음이라.
그러나 전체 9구절을 염두에 둔다면 이것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발람이 민22:12의 말씀을 개정한 것을 주목하라. 발람은 원문을 복원한답시고 했는지 몰라도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 중 3분의 1만 전달했을 뿐이었다.(민22:13) 발람은 알렉산드리아의 서기관처럼 히스키야 타입의 본문 즉 삭제된 짧은 본문을 선호한 반면 야곱은 첨가에 관한 한 서방계열 D 본문을 선호했던 로마의 서기관들을 휠씬 능가하고 있었다.
민22:12 하나님께서 발라암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았느니라." 하시더라.
민22:13 발라암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고관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땅으로 돌아가라. 이는 주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라." 하니
6 그대들도 아는 대로 내가 내 모든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으나
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이며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시켰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가 나를 해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도다.
8 만일 그가 이같이 말하기를 '얼룩얼룩한 것이 네 품삯이 되리라.' 하면 모든 양들이 얼룩얼룩한 것을 낳고, 만일 그가 이같이 말하기를 '아롱아롱한 것이 네 값이라.' 하면 모든 양들이 아롱아롱한 것을 낳으니라.
9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야곱이 있는 힘을 다해 라반을 섬긴 것은 사실이었다. 야곱은 최선을 다해 일했다.(전9:10) 그러나 문제는 야곱의 행위는(예후의 행위처럼) 자신에게는 충실된 일인지는 몰라도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아니었다.(골3:23)
전9:10 네 손이 찾은 할 일은 무엇이든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이는 네가 가는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라.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라반이 야곱을 속인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10번이나 품삯을 속였을지도 모른다. 또한 야곱이 마지막으로 가축을 몰고 집으로 돌아올 때(창30:36) 라반이 야곱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도 또한 사실이다.
창30:36 자신과 야곱 사이에 삼 일 길을 두었으며 야곱은 라반의 양떼 중 나머지를 먹이더라.
그러나 이 사실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고 해석하는 것은 은행을 털고 난 후에 욥12:4을 인용하는 것과 같다.
욥12:4 나는 자기 이웃에게 조롱당하는 자와 같아 하나님을 부르나 이웃이 답변을 하니, 정직한 의인이 조소를 당하는도다.
칼빈은 어쩌면 요15:5을 근거로 그렇게 해석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존 칼빈과 동행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는 신학자였는지 몰라도 성경 주석가는 결코 될 수 없었다. 신학자로서 칼빈은 그리 훌륭하지 못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들이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칼빈은 행7:15-16 마27:9 슥11:12-13이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인했다. 종교개혁 당시 하나님께서 영적인 어린아이들의 글과 말을 사용하실 당시는 칼빈이 어느 정도 유용한 도구였을지 모르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칼빈은 시프리안, 파피아스, 터툴리안, 어거스틴, 유세비우스, 이그나티우스 만큼이나 우리에게 영적 양식을 제공해 줄 수 없다.
행7:15-16 그리하여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갔으며 그곳에서 그와 우리 조상들이 죽으니 세켐으로 옮기워 아브라함이 세켐의 아비 함몰의 아들들로부터 돈을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마27:9 그리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으니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은 삼십 개로 정한 자의 가격,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이 정한 그 가격을 가지고
슥11:12-13 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좋게 생각한다면 내 값을 내게 쳐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하였더니, 그들이 내 값으로 은 삼십 개를 달았느니라.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그것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그들이 나를 매긴 좋은 값이라." 하시기에 내가 은 삼십 개를 취하여 주의 집에 있는 토기장이에게 던졌더라.
야곱은 그의 아내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일을 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보자면 그리스도를 거부한 바리새인들 역시 십자가 처형사건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둘러댈 수 있을 것이다.(행2:23) 그러니까 이런 짓은 인간이 자신들이 해 놓은 짓을 두고 때로 하나님과 마귀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행2:23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을 따라 내어주신 그를 너희가 붙잡아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10 그 가축이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았더니, 보라, 가축 위에 올라탄 숫양들이 아롱아롱한 것과 얼룩얼룩한 것과 회색 무늬 있는 것들이더라.
11 하나님의 천사가 꿈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시기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했더니
12 그가 말씀하시기를 '이제 눈을 들어 보라. 가축 위에 올라탄 모든 숫양은 아롱아롱한 것과 얼룩얼룩한 것과 회색 무늬 있는 것이니라. 이는 내가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보았음이니라.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에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네가 거기서 나에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땅을 떠나서 네 친족의 땅으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하니
가축이 새끼를 밸 때에는 이미 야곱은 나뭇가지를 벗겨 개천에 설치해 놓은 이후였다. 그가 말한 것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이미 행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후에 승인해 주었다.
만약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다른 성경65권의 빛에 비추어 인간의 본성의 빛에 비추어 구절을 구절로 비교하는 방법으로 본문을 있는 그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해석해 본다면 야곱은 3절에서 그가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에다 5-12절의 내용을 첨가시켰고 13절에 주어진 메시지만 삭제도 첨가도 없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직접적인 메시지였음이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8-22장의 서원을 야곱에게 상기시켰고 그를 약속의 땅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부르고 계신다. 예표로 볼 때 본문의 교훈은 분명하다. 창29-30장의 야곱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고통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 즉 축복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유대인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망명사가 여기에 기록된 셈이다. 물론 창세기 39-50장, 출1-12장, 단1-12장, 에스더 역시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니엘과 출애굽기는 주로 대환란 기간 동안에 광야에서 지내게 될 유대인을 보여준다. 라반과 함께 기거하고 있는 야곱은 징계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보존되었으며 부자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A.D.70-1948년 사이의 유대 민족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