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시편 1권(1-41)

시41편 1절 - 13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1. 11. 11:04

이 시편은 첫 번째 책의 마지막 시이다. 이 책의 주요한 주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 시편을 시작하는 구절들에서 이러한 신뢰를 드러내는 엄청난 말들을 주목하라. 이 시편 기록자는 자기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다음의 일들이 생길 것임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① 그분은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사람을 구하실 것이다.

② 그분은 그런 사람을 보호하시고 살게 하실 것이다.

③ 그분은 그를 복 주시고 그를 그의 원수들에게 맡기지 않으실 것이다.

④ 그분은 그가 병든 때에 그를 돌보실 것이다.

⑤ 그분은 그가 그 병을 견뎌내도록 그를 실제적으로 도우실 것이다.

1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자는 복이 있으니, 주께서 고난의 때에 그를 구하시리이다.

구약에서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가난한 자를 배려해야 한다. 신약에서는 고후9:9에서 바울이 이것에 대해 말한 것을 주목하라. 그들에게 부족한 것들과 그들이 받는 시험과 그들의 필요와 그들의 슬픔과 그들의 성경적 위치(욥기, 잠언, 야고보서)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고후9:9 기록되기를 "그가 멀리 흩뜨리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주셨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남음이라."함과 같으니 - 시112:9

2 주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살게 하시리니 그가 땅에서 복을 받을 것이며, 주께서 그를 그의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아니하시리이다.

우리 앞에 놓인 본문에서는 오래 살기 위한 조건이 이기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잠3:1-2와 엡6:1-3 그리고 벧전3:10을 보라.

잠3:1-2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지 말고 나의 계명들을 네 마음에 간직하라. 그리하면 그것들이 네 날들을 길게 하고 장수하는 것과 화평을 네게 더하리라.

엡6: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째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또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니라.

벧전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들 보기를 바라는 사람은 혀를 악으로부터 지키며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않게 하라.

3 주께서는 병상에서 그에게 힘을 돋우시며, 그의 병든 때에 그의 모든 침상을 고치시리이다.

못이 촘촘히 박힌 침대나 뜨거운 숯불 침대 위에 누운 순교자에게도 이 구절이 약속의 말씀이 될 수 있겠는가? <팍스의 순교사 Faxe's Book of Martyrs>에는 고문들과 석쇠로부터 나오는 대답을 볼 때 누군가가 계셔서 그 사람에게 초인적으로 힘을 돋우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몇 가지 경우들이 등장한다.

‘자네는 이제 나를 뒤집어도 될 걸세 이쪽 면은 다 익었거든!’ ‘네가 내 몸의 모든 뼈를 부러뜨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내게서 단 한마디도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미사에 참석하도록 하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거기서 가지각색의 마귀와 마주치는 것뿐이니까!’ ‘너희 교황 신봉자들아, 봐라! 나는 아무 고통도 없고, 이 불이 나한테는 장미꽃 침상처럼 달콤하다!’

4 내가 말하였으니, 주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내 혼을 고치소서. 내가 주를 대적하여 죄를 지었나이다.

이 구절에서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영혼의 병이 나오는 것을 관찰하라. 그 혼은 고쳐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윌리엄 제임스의 유명한 정신신체의학적인 문제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그의 문제를 결코 해결하거나 고치지 못했다. 칼 메닝거, 프로이드, 융도 하지 못했다.

오직 “내가 주를 대적하여 죄를 지었나이다.”하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51:1-4와 눅15:18-19에 기록되어 있는 참된 복음주의적 회개이다. 죄는 하나님을 대적한다.

시51:1-4 오 하나님이여, 주의 자애하심을 따라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의 풍성한 자비를 따라 내 죄과들을 완전히 지우소서. 나의 죄악으로부터 나를 철저히 씻으시고, 나의 죄로부터 나를 깨끗하게 하소서. 내가 내 죄과들을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주, 주만을 거역하여 내가 죄를 지었으며 주의 목전에서 이 악한 행실을 행하였으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고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리이다.

눅15:18-19 이제 내가 일어나서 내 아버지께로 가리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리니 아버지여, 내가 하늘을 거역하여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나이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만한 자격이 없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소서 하리라.' 하고

5 내 원수들이 내게 악담하기를 "그가 언제 죽어서 그의 이름이 멸망할까?" 하나이다.

이름은 목숨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그들은 단지 그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기억이 지워져 버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은, 만약 하나님이 죽으시고 사탄이 회심하게 되면(결코 그럴 수 없다) 그때에야 멸망하게 될 것이다.

6 그가 나를 보러 와서 거짓을 말하고, 그의 마음에는 간악함을 쌓으며, 밖으로 나가서는 그것을 말하나이다.

“그가 나를 보러 와서” 다윗의 경우와 그리스도의 경우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다면 대적자는 여러분에 대해 거짓을 말할 것이다.

7 나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이 나에 대하여 함께 수군거리며, 나를 대적하여 나를 상하게 하려고 꾀하여

8 말하기를 "나쁜 병이 그에게 단단히 달라붙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니

그 험담은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시38:7을 보라.

시38:7 내 허리는 지긋지긋한 병으로 가득 차 있고, 내 육신에는 성한 곳이 없나이다.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는 일어났다. 주님께서 “그의 병든 때에 그의 모든 침상을 고치”(3절)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베갯잇을 매만지시고 침대 시트를 새로 갈아놓으시고 점심을 쟁반에 담아 오시고 얼음주머니로 그의 뜨거운 이마를 식혀주시어 그의 몸에서 병원균들을 몰아내셨다.

다윗의 원수들은 그가 얼마나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가졌었는지 잊어버렸다.(삼하9:7) 그들은 이전의 그처럼(삼하11장) 비참한 죄인은 분명히 즉시 죽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보로 만드셨다.

삼하9:7 그러자 다윗이 그에게 말하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네 아버지 요나단을 인하여 너에게 반드시 은총을 베풀 것이며,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모든 땅을 네게 돌려줄 것이니라. 또 네가 계속해서 내 식탁에서 먹을지니라." 하니

9 정녕, 내가 믿었던, 내 빵을 먹었던 나의 친한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자기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아히도펠과 압살롬(삼하17:1-23)으로부터 본문은 유다에게로 갑작스레 이동한다.

“나를 대적하여 자기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발꿈치를 든 것은 누군가를 짓밟기 위해서다.(창3:15) 야곱은 에서가 그러지 못하도록 그의 발꿈치를 잡았다. 또 하나의 광경이 제시되는데, 말이 자기 발굽으로 뒤에 있는 주인을 향해 발로 차는 것이다.(행9:5)

창3: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행9:5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주여, 당신은 누구시니이까?"라고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가시 채를 걷어차는 것이 네게 고통이라."고 하시더라.

10 그러나, 오 주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복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경우처럼 단지 침상에서 일어나신 것이 아니라 음부에서 일으켜지셨다.

11 이로써 나는 주께서 나를 기뻐하신 줄을 아오니, 이는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니이다.

지옥의 문들(마16:18)이 결코 로마 카톨릭을 이기지 못했으며, 그렇기에 로마 카톨릭 교회가 유일하게 참되고 거룩하고 시도적인 교회였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로마 카톨릭이 사용하는 증명구절이다.

마16:18 나도 너에게 말하노니,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그 교회의 원수들은 그 교회를 제거하는데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러나 결국에 쓰레기와 배설물이 교황들이나 카톨릭교회보다 더 오래 있었고, 아무도 그것들을 제거하지 못했다. 사탄은 그것들 모두보다 더 오래 있었다. 장수하는 것은 경건함의 증거가 결코 아니다. 로마가 생존하는 아유는 극히 간단하다. 로마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성경과 아무상관 없으며, 심지어 종교와도 아무상관이 없다. 로마가 생존하는 것은, 생존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려 하기 때문이다. 18세기 동안 그 교회의 생존은 다음의 요소들에 의존한 것이었다.

① 성경에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지 않은 책들을 덧붙이는 것

② 회심하지 않은 이교도들을 기쁘게 하려고 예배에 이교적 전통들을 덧붙이는 것

③ 교회가 번영하기 위해서라면 그 지도자들이 저지르는 고문, 전쟁, 살상, 거짓말, 맹세, 속임수, 살인, 도둑질이 아무리 많더라도 너그럽게 봐주는 것

④ 나치즘이 상승할 때 아돌프 히틀러의 편에 선 것. 자본주의가 상승할 때 아이젠하워 편에 선 것. 공산주의가 성공하고 있을 때 흐루시초프의 편에 선 것. 그리고 이제는 국제사회주의 편에 서는 것.

⑤ 유대인들을 제거하도록 모슬렘 교도들에게 제안하는 것

⑥ 미국 근본주의자들을 망쳐놓도록 은사주의자들에게 제안하는 것

⑦ 모든 기적적인 환상들과 기적적인 현상들에 대해 실제로 부인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채 그것들을 이용해 먹는 것.

그런 종교적 형태를 갖추고서 누가 생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2 나로 말하면, 주께서 나를 나의 성실함 가운데 붙드시고 나를 주의 면전에 영원히 세우시나이다.

13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아멘, 아멘.

12절에 있는 행위에 대한 언급을 주목하라. 이것은 문자적으로 그리스도께 적용될 수 있으며, 또한 구약의 체제 속에 놓인 다윗에게 적용될 수 있다.

“아멘, 아멘” 이것으로 시편의 첫 번째 책은 마치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참으로”, “진리요, 진리입니다”, “예, 예”, “맞아요,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