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욥기(1-10)

욥기 8장 1절 - 15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7. 14. 09:42

1 그러자 수하인 빌닷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2 네가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말하려느냐? 네 입의 말이 언제까지 강한 바람같이 되겠느냐?

3 하나님께서 심판을 왜곡하시겠느냐? 아니면 전능하신 분이 정의를 왜곡하시겠느냐?

이제 수하인 빌닷이 등장한다. 몇몇 주석가들에 따르면 빌닷은 정통주의자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뉴스코필드 참조 성경>에는 빌닷의 경건한 상투어와 금언에 대해 말하면서 이런 주장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니 욥이나 엘리후의 말에서처럼 빌닷의 말에도 진부한 상투어나 금언은 없다. 죽은 정통 보수주의자들이 욥기를 옛날 알렉산드리아의 구호 아래로 끄집어 내려서 그것을 조직화된 구조 속으로 정형화시켜서 자신들의 틀 속에 넣으려는 시도일 뿐이다.

빌닷의 접근방법은 매우 명백하다. ‘너의 고난들에 대해 청산유수로 말하는 것은 그만하라.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는다. 너의 자녀들이 죄를 범한 것이라면 그들은 죽어 마땅한 것이며, 네가 올바로 되어서 하나님께 구하고 너의 생을 좋게 해 달라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너를 번성하게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정말로 그렇게 하신다. 빌닷이 한 말은 사실이며 그가 한 말은 최소한 경건한 상투어로 분류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심판이나 정의를 왜곡하지 않는다.(3절) 욥의 말은 욥 자신이 인정한 바와 같이(욥6:26) 강한 바람 같으며(2절) 욥의 『나중 끝』은(7절) 크게 증대된다.(욥42:6-14)

욥42:6-14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주께서 욥의 사로잡힘을 돌이키셨고, 또 주께서는 욥에게 전에 소유했던 것의 두 배를 주시니라. 그때 그의 모든 형제들과 그의 모든 자매들과 전에 알았던 모든 자가 그에게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었으며 그들은 주께서 그에게 내리셨던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애도하고 위로하더라. 각자가 욥에게 돈 한 닢과 금 귀고리 한 개씩을 주더라. 그리하여 주께서는 욥의 후반을 그의 처음보다 더 복 주셨으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가졌더라. 그는 또한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니 그가 첫째 딸의 이름을 여미마라 하였고, 둘째의 이름을 크시야, 셋째의 이름은 케렌합푹이라 하더라.

4 만일 네 자식이 그 분을 거역하여 죄를 지어서 그들의 허물로 인하여 그 분께서 그들을 내버리셨을 때

5 만일 네가 때마침 하나님을 찾아 전능하신 분에게 네 간구를 드린다면,

6 만일 네가 순수하고 정직하다면, 그 분께서는 반드시 지금 너를 위해 일어나사 네 의의 처소를 번성케 하시리라.

빌닷이 실수한 점은 유일하게 시기를 잘못 잡은 것이다.(욥1:21 2:13) 이것은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하는 실수이다. 빌닷이 말한다. “네가 만일 순수하고 정직하다면, 그분께서는 반드시 지금 너를 위해 일어나사 네 의의 처소를 번서케 하시리라.” 우리는 하나님을 무리하게 재촉해서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은접시에 아침 식사를 담아 당신의 침대에까지 날라다 주는 칭찬받는 벨 보이가 아니다.

‘기도를 부탁해서 받아들여주는’ 이런 개념은 경계해야 한다. 생동감이 넘치며 즐겁고 승리에 찬 응답된 기도에 관한 글이 모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책 중 일부는 자신들이 미워하는 사람들의 설교를 대중에게 알리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쓴 것이다. 이떤 이들은 그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선전함으로써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지름길을 택하고, 어떤 이들은 성경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하고, 어떤 이들은 KJV를 더 높이는 광고를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성경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구령이 진짜 이슈라며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온갖 영화를 누리는 바리새인이 있다. “만일 이 분이 선지자라면 ... 알았으리라.”(눅7:39) 누가 순수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았으리라. 겉으로는 달콤한 냄새가 나며 겉으로는 하얗게 씻겨졌으며 감자 한 봉지나 시멘트 한 부대를 들기 위해 자신의 새끼손가락 하나 들려고 하지 않는(마23:1-3) 이 바리새인들은 순수해지기 위해 이방인의 건물 바깥에 머무르고자 한다.(요18:28) 그렇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으며(행7:52) 할 수만 있었다면 그분의 친구들도 죽였을 것이다.(행12:1-6 행23:12) 이들이 정말로 순수하고 정직한 자들인가?

요18:28 그 후 그들은 예수를 카야파에게서 재판정으로 끌고가니 때가 새벽이더라. 그 사람들이 재판정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은 자기들이 더럽혀지지 않아야 유월절 양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더라.

행7:52 선지자들 가운데서 너희 조상이 박해하지 아니한 사람이 어디 있었느냐? 또 그들은 의로우신 이의 오심에 관하여 미리 말한 그들을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로우신 분을 배반한 자요 살인한 자가 되었으니

행12:1-6 그가 베드로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행23:12 날이 밝자 유대인 중 몇 사람이 작당하고 저주로 맹세하여 선언하기를 바울을 죽일 때까지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할 것이라.

우리가 42:8을 믿을 수만 있다면 욥은 그의 친구들보다 더 깨끗했다. 욥이 피부병을 앓았던 반면 그들은 마음과 입의 병을 앓고 있었다. 청구서가 지불되지 않거나 출석률이 떨어지거나, 자신의 간증을 잃거나, 헌금이 줄거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잃게 되거나, 교사진을 잃을까봐 지독한 공포 속에서 사는 현대의 유명한 기독교 인사가 있다. 뭔가를 결정할 때는 마음에 주님이나 성경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결정한다. 마음의 문제다. 깨끗한 손에 더러운 마음이다. 욥은 더러운 손을 가졌지만 마음은 깨끗했다.

욥42:8 그러므로 너희는 지금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 자신을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그리하면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리라. 그를 내가 기뻐 받으리니, 너희가 내 종 욥이 한 것같이 내게 옳은 것을 말하지 아니한 것으로 인해 내가 너희의 우둔함대로 너희를 다루지 않겠노라.

8 내가 바라노니 너는 이전 시대 사람들에게 묻고 그들의 조상들이 탐구한 바를 들을 준비를 하라.

이 부분에서 첫 번째 욥기를 B.C14C나 15C로 밀어붙이는 학자들을 아주 훌륭하게 바로잡아준다. 이전 시대가 출애굽기나 바벨탑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전 시대는 다음 구절들에 정의되어 있다.

욥11:16 이는 네가 네 불행을 잊을 것이며 흘러가는 물처럼 그것을 기억할 것임이라.

욥12:15 보라, 그가 물들을 거두시니 물이 마르고, 그가 또 물들을 보내시어 땅을 뒤집는도다.

욥9:5-6 산들을 옮기셔도 그것들은 모르며, 그의 진노로 그것들을 무너뜨리시는도다. 그가 땅을 그 자리에서 흔드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거리며

욥21:14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가소서. 우리가 주의 길의 지식을 기뻐하지 아니하나이다.

욥22:15-16 너는 악인들이 밟던 옛 길을 지켜 보았느냐? 그들은 갑자기 끊어졌고 그들의 기초는 홍수로 휩쓸려 버렸도다.

욥31:33 만일 내가 내 죄악을 나의 품에 숨김으로써 아담처럼 내 허물을 덮었다면

욥4:18 보라, 하나님은 자기 종들에게도 신뢰를 두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들도 우둔하다 책망하시나니

여기에는 ‘우둔하다고 책망받는 천사들’(창6:1-4), ‘홍수로 뒤덮인 기초’(창8-9장), ‘아담의 죄’, 셈과 함과 야펫이 출현하기 전에 있었던 ‘많은 물들이 말라버린 것’이 포함된다. 이런 것들이 빌닷, 엘리파스, 엘리후, 욥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주석가들이 이전시대를 출애굽기나 여호수아를 지칭하는 것으로 만들려고 왜곡시키는 것보다 더 우스꽝스럽고 가엾은 일은 없다.

이전 시대의 조상들은 셈과 함과 야펫이다. 셈과 함과 야펫이 그들의 아버지를 도와 방주를 만드는 동안 배운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뒤이어 나올 13-22절이다.

9 (우리는 겨우 어제부터 살았기에 아무것도 모르니 이는 땅 위에서 우리의 날들이 그림자임이라.)

10 그들이 너를 가르쳐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마음에서 나온 말을 발설하지 아니하겠느냐?

모세는 누군가가 배울 만한 것을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와 대조적으로 교수 매체는(10) 그들의 마음에서 나온 말들을 발설한 그들이다.(조상들)

11 골풀이 진창이 아니고서도 자라날 수 있으며 창포가 물 없이도 자라나겠느냐?

12 그것이 아직 푸르러 베지 않았어도 다른 채소보다 먼저 마르느니라.

13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모든 길도 그러하며 위선자의 소망도 사라지리니

14 그의 소망이 끊어질 것이요 그의 의지함이 거미줄같이 되리라.

뒤이어 위선자의 소망은 사라질 것이라는 진술이 나온다. 위선자를 자랄 진흙이 없는 골풀처럼 사막에서 자라고자 있는 갈대처럼 시들어 버리는 채소처럼 막대기나 빗자루만으로 완전히 제거되는 거미줄처럼 사라질 것이다.

14절은 바로 욥을 겨냥하고 있으며 7:6에서 욥이 한 말과 대조를 보이기 위해 일부러 한 말이다. 18절은 고난받는 성도에게 함부로 쏘아대는 또 다른 말이며 이것은 욥이 7:10에서 했던 말을 부인하기 일부러 한 말이다. 빌닷은 사정거리에 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유해동물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행해 근접사격을 하고 있다. 13-18절은 적그리스도와 겔28:14에 있는 돌들의 장소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겔28: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웠더니 네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위에 있었고 네가 불의 돌들 가운데를 위아래로 걸었도다.

현 세대(욥의 세대)가 그들의 인생이 겨우 어제부터 산 것이며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9) 한 것을 주의하라. 이런 고백이 조상들이 탐구한 바 바로 뒤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전 시대의 조상들은 족히 900살이 넘도록 살았는데 반해 욥의 시대의 조상들은 운이 좋으면 250살 정도까지 살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창6-10장의 끔찍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 테만인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욥기의 연대가 모세와 파라오의 때라는 주장은 숙고할 가치가 전혀 없다.

15 그가 자기 집을 의지할 것이나 그 집이 서 있지 아니할 것이요, 그가 그것을 굳게 붙잡아도 그것은 견뎌 내지 못하리라.

위선자는 자기 집을 의지하는데 그 집은 거미줄이 그를 지탱해 주는 정도밖에 그를 지지하지 못함이 결국 드러날 것이다. 위선자는 자신의 집을 꽉 붙잡을 수 있다. - 자기 가솔들을 돌본다는 의미에서(행16:31 히11:7) - 그의 계승자는 그의 조카까지도(욥18:19) 멸망할 것이다.

욥18:19 그는 자기 백성 가운데 아들이나 조카도 없을 것이며 그의 거처에는 아무도 남은 자가 없으리라.

행16:31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성령님이 직접 문맥으로 육체로 나타난 사탄이(사14:9-15) 나오는 사14:22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것으로 볼 때 이 구절의 교리적 내용은 명백히 대환란에 해당된다.

사14:9 아래로부터 지옥이 너로 인하여 움직여서 네가 올 때 너를 맞이하려 하는도다. 그것이 너로 인하여 죽은 자들을 움직이니, 곧 땅의 모든 지도자들이라. 또 그것이 민족들의 모든 왕들을 그들의 보좌에서 일어서게 하였도다. 그들 모두가 네게 일러 말하기를 "너도 우리처럼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와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네 화려함과 네 비올들의 소리가 음부까지 끌어내려졌으니, 벌레가 네 밑에 깔려 있고 벌레들이 너를 덮는도다.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으로 끊어져 내렸느냐! 이는 네가 네 마음속에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내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일 것이요, 내가 또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 하였음이라. 그러나 너는 지옥까지 끌어내려질 것이요, 구렁의 사면에까지 끌어내려지리라.

사14:22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내가 그들을 대적하여 일어나서 바빌론으로부터 그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조카를 끊어 버리리라. 주가 말하노라.

성경 자체나 성경의 저자에게 의지하는 대신 히브리어나 헬라어 단어 속을 이리저리 달리고, 정통적인 해석을 행해 이리저리 뛰고 유명한 기독인사들의 주의를 맴돌다가 매번 신학적인 참사로 끝을 맺는 자들에게, 두 개의 믿을 만한 번역본을 추천함으로써 자신의 협회가 그 둘 사이에 최종 중재인으로 나서는 협의회 선전꾼과 광고 이사에게, 프로테스탄트 개혁에 쓰인 영어 본문보다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싶다는 이유로 자신이 전능하신 하나님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챤들에게 화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