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반드시 암송해 두어야 할 위대한 구절이다. 당신을 구원에 이르게 했던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들을 위해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으켜지셨다는 데에 있다. 구원받은 당신에게 있어서 이것은 곧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성령이 아니라 복음이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가튼 하우스와 막스, 그리고 리버만을 위시한 일부 유대인 출신 복음 전도자들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활동 지원에 앞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활동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 구절을 증거 구절로 내세운다.
이 주장은 잘못된 적용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복음이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해졌다가 후에 유대인들에게 거부되고 이방인들에게로 옮겨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런 과정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행2장에서 복음을 들었고, 3장에서도 들었으며, 4장에서도 들었으되 박해했고, 5장에서도 발해했으며, 6장에서도 박해하더니 7장에 이르러서는 스테판이 죽임을 당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고, 8-12장을 거처 13장에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을 전파하던 바울의 설교를 듣고 난 뒤 그를 반반하고 모독함으로 성령을 모독하기에 이르렀고, 14-18장에서는 끝내 박차버렸으며, 19-28장에 와서는 그들이 어찌 되었는지 아는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대신 복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이방인들이 자리잡게 되었는데, 8장에서는 에디오피아 내시가 구원받았고, 10장에서는 코넬료가 구원받았고, 11-13장에서 바울의 복음 전파활동이 시작되었으며, 15장부터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하여 28장까지 진행되는 동안 어느새 이방인들이 전명에 나서 있고, 유대인들은 뒤처지고 만다. 이런 사태 추이가 바로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는 말씀의 바른 뜻이다.
그럼 마지막 때를 향해 치닫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어찌되었는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위아래가 완전히 역전되고 말았다. 롬11:25-27에서 우리는 이런 말씀을 읽는다.
롬11:25-27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와 같이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 이는 내가 그들의 죄들을 없앨 때 그들에 대한 나의 언약이 이것임이니라.
지금 이 시대는 이방인들이 꼭대기 올라앉아 있고 유대인들은 바닥을 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1918년이 되자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왔고 1948년에 국가로 재건되었으며, 이 마지막 시대를 거쳐 대환란 기간을 통과한 뒤 천년 왕국에서 가서는 다시 꼭대기에 올라앉게 될 것이다.
17 이 복음 안에는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으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는 복음 안에 계시되었다. 하나님의 의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복음 안에 계시되었다. 먼저 구약에서 구약적 믿음으로 계시되었고, 신약에 신약적 믿음으로 계시되었다.
구약에 기록된 이 말씀은 합2:4를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보면 “그러나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되어있다. 단순히 “믿음으로 말미암아”가 아니라 “자기 믿음으로 말미암아”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기”라는 말을 옮겨놓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구약의 믿음과 신약의 믿음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어떻게 다른가?
신약의 구원에 필요한 믿음은 복음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구약에서는 율법에 순종만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게 아니다. 구약의 구원에 필요한 “행위와 믿음”이라는 틀은 행위 속에 믿음이 뒷받침되고 믿음이 행위에 반영되어 있기를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자기 것이요, 행위 역시 자기의 믿음이 반영된 행위이므로 자기 행위이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요, 구원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것은 구원에 관한 한 그 누구도 자기의 행위를 자랑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엡2:9)
엡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루터는 능동적인 의라 생각하여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몸에 고통을 가하면서 이 의를 이루려고 몸부림을 쳤다. 성 베드로 사원을 무릎으로 기어올라가기까지 했지만 이 의를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그가 로마서를 연구하다가, 하나님의 의는 능동적인 의가 아니라 수동적인 의임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을 발견했다.
믿음에 있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 믿음만은 당신 자신에게서 나온 믿음이 아니냐고 의아해 할지 모르지만,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갖추고 태어났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롬10:8-9) 롬10장을 보라. 그리고 복음을 믿는 믿음을 당신도 과연 갖추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
롬10:8-9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노라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혀끝에 믿음의 말씀을 달고 있다. 당신은 이제 그 혀를 움직여서 거기에 달려 있는 믿음의 말씀을 입 밖으로 발설하기만 하면 된다. 믿음의 말씀을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변명하지 말라.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거니와
바로 위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의가 언급되었다. 그리고 또 바로 앞 16절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여기 18절에 와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언급된다. 로마서는 이처럼 도처에 이처럼 "하나님의 무엇”인가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계시”되고 있다고 말씀한다. 무엇에 대한 진노인가?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주목하라.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거니와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해여 계시되고 있다고 말씀한다.
1884년 이래로 나온 그 어떤 변개된 역본들도 이 구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역본은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런지 아는가? 모든 변개된 역본들은 한결같이 “진리를 붙잡는 사람들”에 의해 번역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진리를 붙잡되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자들이 성경을 함부로 뜯어고쳤던 것이다.
성경의 어느 구절에서나 성령께서 자기네들을 겨냥해서 말씀하는 곳이면 그들은 예외없이 반대로 뜯어고쳐 놓았다. 당장 이 18절이 그 한 예이다. 어느 현대판 역본들에서나 그들은 이 구절을 “진리를 막는”, 또는 “진리를 방해하는”으로 고쳐 놓았다. 개역성경에도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로 고쳐 놓았다.
한글킹제임스 -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개역 - 불의로 진리를 막는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사람들”이란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진리를 붙잡기는 하되 불의 가운데서, 즉 옳지 못한 악의를 품고 그 진리를 붙잡는 자들을 말한다. 현대판 역본을 만들어 성경을 뜯어고치는 모든 성경 변개자들이 진리를 붙잡는 이유는 그 진리를 붙잡아야만 그것을 억누르고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를 붙잡은 다음에 그것을 진리가 아닌 것으로 변개해 놓는다. 그래서 그들은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자들인 것이다. 만약 그들이 불의가 아니라 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자들이었다면 감히 성경 구절들을 뜯어고쳐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진리를 바꾸어 놓은 다음 늘어놓는 변명이 ‘우리는 진리를 억누르거나 방해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는 퍼부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사람들에게 퍼부어질 것을 계시하고 있다고 말씀한다. 성경변개자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퍼부어질 말씀인 것이다.
롬1장은 하나님의 진노를 모면할 수 없는 4가지 경우를 예시한다.
첫째, 당신이 만약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그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진노를 퍼부을 것이다.
그 다음 21절에서 당신이 만약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는 자들 축에 끼여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 다음 25절에서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말로 바꾸는 자들 가운데 하나이거나 그런 자들을 추종하고 그런 자들이 바꾸어 놓는 거짓말에 호응한다면,
넷째 당신이 자신의 “지식 가운데”, “마음 가운데”가 아니라 당신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면 이 역시 하나님의 진로를 각오해야 한다.
개역성경은 28절에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로 옮겨 원래 의미를 변질시켜 놓았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음이라.
하나님께서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고 또 사람의 내면에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나타나 있다는 말씀은 이것을 뜻한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들을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도 본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당신이 이해하게 될 때,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 무엇인가를 당신의 마음은 읽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이셨다.’
그것이 무엇인가? 20절에서 이것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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