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로마서(1-8)

로마서 6장 1절 - 4절

달팽이 Joban 2026. 9. 22. 10:13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앞서 롬5:20에서 “죄가 많아진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말씀했다. 이것을 곡해하여 ‘옳지, 죄를 많이 지었더니 은혜가 넘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죄 가운데 그냥 머물러 있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짓이 또 없다. 롬5:17에서 “은혜의 풍성함과 의의 선물을 넘치도록 받는 사람들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생명 안에서 군림할 것이니라.”고 말씀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가를 금방 깨달을 것이다.

성경은 죄가 군림하는 곳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께로 와 그분만을 붙잡고 있어야만 “은혜의 풍성함과 의의 선문을 넘치도록” 받을 수 있고 사망이 군림하는 곳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께로 와야만 그분을 통하여 “생명 안에서 군림할 수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 그래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생명 안에서 군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의 선물을 넘치도록 받고 풍성한 은혜 가운데 들어와 살게 되었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이토록 과분한 대우를 받으면서 지난날 구원받지 못했던 시절처럼 마귀에게 붙어 살아갈 수야 없지 않은가? 당신이 구원받아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러고 싶어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째서 그런지 아는가? 다음을 보라.

2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

결코 그럴 수야 없다고 말씀한다. 이것을 KJV은 “하나님께서 금하신다”라는 뜻으로 “God forbid."라고 표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금하시니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뜻인데, 즉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왔으면, 죄에거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성경의 입장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미 죄에게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죄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은 사람이다. 어떤 목사가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설교하면서 ‘우리는 죄 가운데 산다.’고 말하는 것을 이따금씩 듣는다만, 이것은 옳지 않은 서술이다. 여기 2절에서 우리는 “죄에게 죽은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기 때문이다. “죄에게 죽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죄 가운데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죄에게 죽은 사람”은 무슨 짓을 한다 해도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는 것이지 결코 죄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에게 죽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죽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7절에서도 우리가 죽은 자라고 말씀한다. 8절에서도 우리가 죽었다고 말씀한다. 11절에서도 우리가 정녕 죄에게 죽은 자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죄 가운데 산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다.

물론 당신은 여전히 죄를 짓고 범죄할 수 있다. 그러나 죄 가운데 살지는 못한다. 당신은 죄에 대해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죽은 사람이 어떻게 거기에 여전히 산단 말인가? 당신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살고 있다.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 죄에게 죽은 사람은 죄 가운데 살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찌 그 가둔데 살려고 마음먹을 수 있겠느냐고 이 구절을 말씀하고 있다.

만일에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사실인즉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그리스도인인 척 했거나 아니면 그리스도인일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자기가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있다고 마귀에게 속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마귀는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을 속이기도 한다. 왜 그런지 아는가? 당신으로 하여금 구원을 의심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어떤 선한 행위로 그 불안을 떨쳐버리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서 뒤에 더 설명하겠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받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대부분의 침례교 사람들은 이 구절이 물침레를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여기 3절뿐만 아니라 4-5절이 다 그런 것으로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기뿐만 아니라 로마서 전체를 통틀러 나는 물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은 우리라고 읽으면서 나는 결코 누구를 물 속에 집어넣는 장면을 연상하기 않는다. 왜냐하면 여깅 물 이야기는 전혀 지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켐벨주의자나 로마카톨릭에서는 이 구절을 자신들의 교리인 물침례 구원설을 뒷받침하는 데 이용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아무리 다시 읽어 봐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 받았다고 말씀하지, 물 안에도 침례 받았다고는 말씀하지 않는다. 그들은 침례 의식이 물로 행해진다는 것을 이유로 침례라는 단어만 나오면 무조건 물을 연상하고 물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아주 못된 습관을 갖고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 받는다는 말을 놓고 어떻게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푹 잠긴다는 말이냐고 어리둥절해 한다. 저들에게는 이만한 영적 이해력조차도 없다. 그들 말대로 물로 침례 받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이 옳다면 우리는 너도나도 시청 수도과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할 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받은 다음에 여기 6장에서 뒤를 잇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죄에 대한 승리에 대한 언급이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롬6장과 7장을 거치는 동안 승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진리들을 계속해서 실제 삶에 적용하기만 하면 당신은 계속해서 승리를 얻는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 진리들을 계속 삶에 적용하는가가 관건이다.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와 함께 받은 침례에 의하여 죽음 안으로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구원받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있게 된 당신은 3가지 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음이 이 부분의 문단에서 천명되고 있다. 어떤 입장들인가?

무엇보다 첫째로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이것은 다음 6절에서도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이라는 말씀으로 확실하게 천명되고 있다.

둘째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 받음으로서 “그분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 받았다. 이것은 3절에서 분명하게 천명되고 있는 사실이고, 여기 4절에서도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라는 말씀으로 재확인되고 있다. 이것이 당신이 처한 두 번째 입장이다.

그 다음 세 번째로 당신은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되었다. 이것이 당신이 처하게 된 세 번째 입장이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정말 수수께끼 같은 존재요, 대단히 기묘한 입장에 놓여 있는 존재다. 알고 보면 그리스도인은 네 가지, 다섯 가지 상이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 그는 죽었으되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왔다갔다 걸어 다니는 몸을 갖고 있다.

* 그러나 이게 그 사람 자신이냐 하면 결코 그런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또 다른 사람 하나를 이 몸 안에 갖고 있는데, 이것은 내면적인 새 사람으로 이른바 속사람이다.

* 그런가 하면 또 장사되어 땅에 묻혔으되 여전히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그에게는 또 있다. 이 사람은 매달려 십자가에 처형되었으되 아직 생명이 붙어 있어 고통을 겪고 있는 존재다.

도대체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 이유는 이렇다.

현재 실제 몸으로 표면상 나타나고 있는 당신의 육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당신의 몸은 현재 질질 끄는 죽음을 고통 가운데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육신으로 나타나 있는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기에는 이미 죽어서 장사되어 땅에 묻혀 있다. 당신의 눈에는 이 사람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육신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당신은 그 육신이 이미 죽었고 장사지내졌으며 땅에 묻혀 썩어 없어졌고 그것으로 이미 끝났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현재 육신적으로 활동하면서 현실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시간들은 순전히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의 육신은 하나님께는 이미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 육신으로 행하는 여하한 것도, 육신이 소비하고 있는 여하한 시간도, 하나님께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따라서 당신이 육신으로 행하는 그 어떤 내용들도 하나님의 컴퓨터에는 전혀 입력될 리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육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걸어다닌 당신의 죽은 몸 안에는 새사람이 또 떡 하니 들어와 있다. 이 사람과 이 사람의 삶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언급한다.(갈2:20)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으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여기까지만 해도 당신은 벌써 3가지 상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할 때, 당신은 그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고, 그분의 생명은 열린 무덤에서 나와 십자가로 되돌아가 매달린다. 이것은 엄청난 바꿔치기가 아닐 수 없지만 당신이 구원받는 순간 실제로 일어나는 놀라운 영적 교류이다.

요즘 구원받는 사람들은 좀처럼 이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신비스런 이야기를 듣고 의아해한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요즘 선교 방송을 틀기만 하면 그들의 귀에 밤낮 들여오는 소리는 ‘그리스도께서 내 삶 가운데 들어오셨던 그날을 내 어찌 잊으리요!’ 같은 말뿐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 가운데 들어와 계신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그거야말로 한푼 어치의 가지도 없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지옥에 가야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생활) 속에 들어와 계신다면 그분께서는 최소한 일주일 걸러 한번 씩은 들랑날랑 하실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활 속에 들어와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몸 안에 들어와 계신다. 그분께서 당신 몸 안에 들어와 계셔야만 그분께서는 당신에게 영광의 소망이 되신다.(골1:27)

몸을 삶(또는 생활)이라는 단어로 대체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 속에 들어와 계신다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누가 당신더러 주님을 당신의 삶 속에 맞아들이시오 어쩌고 하더라도 당신은 콧방귀도 뀔 필요가 없다.

당신이 구원받으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신다. 몸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나 삶 가운데 들어오는 것이나 다 마찬가지 아니냐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 이것은 전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그분께서 당신의 삶 가운데 들어오셨다면 당신이 할 일은 지옥에 가는 것뿐이기 때문에 달라도 아주 다르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셔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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