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로마서(1-8)

로마서 6장 5절 - 11절

달팽이 Joban 2026. 9. 23. 12:26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의 모양으로 함께 심겨졌다면 또한 그의 부활하심의 모양과 같이 되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모양으로 함께 심겨졌다.” 그런즉, 이제 장차 그의 부활하심의 모양과 같이 되는 일만 남았다.

이것은 사실 그대로 물리적, 신체적으로 이루어질 미래의 실제 사건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되었고 그분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 받아 그분과 함께 장사되었기 때문에 그 죽음의 모양이 그분의 죽으심의 모양 그대로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활 또한 그 모양의 그분의 부활하심의 모양과 똑같을 것이다. 심기를 똑같이 심었으니 살아 나오는 것 또한 똑같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모양 그대로 심겼다. 이것은 과거의 일이다. 이것이 확실한 일이었다면, 이제 우리가 장차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의 모양으로 부활하게 될 것 역시 확실하다.

6 우리가 이것을 아나니, 곧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더 이상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것, 이것이 우리에게 일어났던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되었다.

어째서 그런가? “죄의 몸이 멸하여”졌으니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죄의 몸이 멸하며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계속해서 죄에게 종노릇 할 수 있겠는가? 다음 7절을 보라.

7 이는 죽은 자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라.

죽은 사람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지으려고 해도 지을 수가 없다. 죽어서 공동묘지에 묻힌 사람이 해가 가고 세월이 지나도 죄를 짓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아무리 극악한 죄인이라도 일단 죽고 땅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얼마든지 보아왔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죄의 몸은 죄로부터 완전 해방된다.

8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으며

우리야말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이 아니라 정말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믿으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물리적으로, 신체적으로, 현실적으로 정말 살아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의 모양 그대로 말이다.(5절)

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셔서 다시는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더 이상 그를 주관하지 못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장차 뒤따르게 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의 모양이다. 그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 일으켜지셨고, 사망이 더 이상 그분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그분께서는 다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신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장차 그렇게 되리라는 것 또한 분명하게 알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성경이 여기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으며”(8절), “그의 부활하심의 모양과 같이 되리라”(5절)고 성경은 확실히 약속한다.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게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사심은 하나님께 사심이라.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바 되셨고 또 죽으셨다.(고후5:21) 따라서 그분의 죽으심은 “죄에게 단번에 죽으심”이 되는 죽으심이었다고 이 구절은 말씀한다. 몸소 죄 그 자체가 되셨고 또 죽으셨기 때문에 이것으로 죄와의 관계를 일시에 모두 버리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죄의 문제가 단번에 해소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분의 “사심”은 죄와는 전혀 무관한 “사심”이요, 죄와 무관한 “사심”이기에 그것은 “하나님께 사심”이 된다.

고후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중요한 사실은 그분의 죽으심과 사심이 그러하듯이 그분의 죽으심의 모양대로 죽었던 우리 또한 “죄의 몸을 멸하여”(6절) “죄로부터 자유롭게”(7절) 되었기에 죄에 대해서는 죽은 것이요, 하나님께는 영원히 산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음 11절은 이 점을 역설하고 있다.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

“이와 같이”란 무엇과 같이 말인가? 앞서 9절과 10절과 같이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셨으며 사망이 더 이상 그분을 주관하지 못하게 됨으로서 다시는 죽지 아나한다는 사실, 즉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단번에 청산해버리셨고 따라서 다시 사신 그분의 사심은 죄가 주관하지 못하는 사심이기에 하나님께 사시는 것이 되었다는 사실, 이것이 9절과 10절의 말씀이었다.

이와 같이, 즉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것처럼 구원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들도 이와 같이, 죄에게 죽은 자기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당신은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다.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죄가 당신을 주관하지 못한다. 당신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이다. 그 대신에 당신은 하나님께는 산 자로 선포되었다.

이 선포가 당신에게 실질적인 것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실감하면서 현실적인 삶에 적용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된다. 그렇다고 “여겨라” 이것이 성경의 명령이다. “여기다”(reckon)는 것은 그렇다고 “계산한다.”는 뜻이다.

당신은 죄에게 죽은 자이다. 그러므로 죄에 관한 한 당신은 죽은 사람으로 계산하면 된다. 죄에게 죽은 당신을 계산 장부에서 아예 지워 버려라. 당신은 그 대신 하나님께는 산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관한 한 당신은 산 사람으로 계산하면 된다. 당신의 치부책에 이 산자를 올려놓아라.

당신에게는 두 사람이 있다. 하나는 죄에게는 죽은 사람이요 시체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산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죽었으되 살아 있는 “좀비"(zombie)들이다. 당신의 죽은 자는 시체이다. 그 시체 속에 당신의 산자가 들어 있다. 현대 교육에서 인간에 대해 아주 엉터리로 가르쳐 놓는 바람에 인간은 엉터리가 되고 말았다. 현대 교육에서는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몸이 당신 자신이라고 줄곧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에 따르면 당신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 진짜 당신이다. 당신의 몸은 이미 죽은 시체일 뿐이다. 각급학교에서는 소위 “recreation"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recreation”이 무엇인가? 흔히들 기분전환을 위한 오락이나 유양 정도로 이해하지만, 이것은 원래 “재창조”, 즉 “새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recreation”이란 몸을 위한 것이다. 시체 말이다. 당신은 그 시체가 아니라 그 시체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 진짜 당신이다. 그러므로 “recreation"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시체를 갖고 노는 우스꽝스런 시체 놀음이다. 이것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시행함으로 어렸을 적부터 몸이 곧 자시 자신인양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자나 깨나 죽은 시체만 만지작거리기를 좋아한다.

당신이 거듭난 후 점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 가면서 무엇보다도 두드러지게 달라지는 점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자신도 모르게 육신적 욕구와 만족의 추구가 계속 줄어들어 간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을 원한다. 나는 저것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가져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나는 저렇게 하고 싶다. 나는 아직 더 가져야 한다. 나는 이것으로는 안 된다. 나는 최소한 저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런 너절한 욕망이 하나씩 둘씩 사라지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다.

그의 육신은 이미 죽어서 땅에 묻혔고, 살아 있으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걸려 있는지라, 육신의 탐욕은 당연히 사라져야만 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당신이 만약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면서 아직도 이것저것 갖고 싶은 게 많고 그것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면 당신은 형편없는 갓난아기거나 아니면 가짜로 거듭난 사람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마귀에게 속고 있어 아주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무엇인가를 갖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그 육신이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인즉, 육신이 그렇게 팔팔 살아 있고서야 어찌 거듭났다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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