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로마서(1-8)

로마서 8장 18절 - 20절

달팽이 Joban 2026. 10. 5. 11:17

18 이는 현재의 고난들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영광에 감히 비교되지 못한다고 내가 여기기 때문이라.

이 구절은 당신이 큰 문제에 봉착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었을 때 항상 마음에 떠올려야 할 위대한 말씀이다. 코고 작은 고난을 당할 때마다 장차 내가 받게 될 상에 비하면 이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것은 믿음이 신실한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실로 위대한 말이다. “내가 지금은 비참한 처지에 빠져 있지만, 나는 장차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인즉, 그 영광에 비하면 지금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외쳐 보라. 힘이 솟을 것이다.

이 말씀은 고후4:16-17과도 짝을 이루거니와, 이 두 곳의 말씀들이 모두 롬8장의 이 부분 말씀들과 함께 현재의 고난과 싸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힘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신약에서도 가장 위대한 구절들로 손꼽히게 되었다.

고후4:16-17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라. 오히려 우리의 겉사람이 썩어질지라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나니 이는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이 우리를 위하여 훨씬 뛰어난 영원한 영광의 비중을 이루어 가기 때문이라.

19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나니

19절부터 23절까지에 걸친 이 부분 문단에서 언급되는 피조물(creature)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여기 19절에서의 피조물은 당신의 옛 성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이다. 20절에서의 피조물 역시 마찬가지다. 21절에서의 피조물도 당신의 옛 본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22절에서의 피조물은 다르다. 그리고 23절에서의 피조물 역시 당신의 옛 본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22절과 23절에서 언급하는 창조물 또는 그들은 산과 들과 강과 숲과 나무와 개와 고양이와 사자 같은 자연계의 모든 피조물들을 일컫는다.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다. 사도 요한은 요일3:2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

그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비단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들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개나 고양이는 후천년주의자나 무천년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명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환란을 기다라고 있는 게 아니라 그에 앞서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기다라고 있다. 대환란은 그리스도인이 통과할 수 있는 환란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 대환란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리는 실질적 징표가 될 수 없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조짐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대환란을 기다라고 있다. 그들이 대환란을 통과할 각오가 돼 있는 것을 보면 자기 분수만은 아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자기네가 구원받지 못했음을 스스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들에 비하면 땅 속 두저지가 훨씬 더 센스가 있다. 두더지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 22-23절을 보라.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롬8:22)

우리가 짐작하는 것도 아니고 예상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아노니”라고 언급함으로써 그 확실성을 확실하게 천명하는 서술로 돼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성경의 서술 방식에 대해 독단적이라고 비난도 하지만, 아닌게아니라 성경은 그들이 느끼는 것 이상으로 독단적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성령의 첫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롬8:23)

모든 짐승들이나 우리 사람의 몸은 지금 저주 아래에 있다. 우리는 지금 죽어 버린 송장에 늘어붙어 있다. 이 몸은 구속받아야만 온전해질 수 있다. 그러려면 그분께서 오셔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애타게 기디라고 있다.

그러나 도한 그분의 오심이 결코 머지않았음을 우리는 또한 안다.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먼저 공중 재림하시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죽어 땅에 묻혀 있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들려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서는 7년 동안의 대환란 기간이 있고 끝 무렵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 재림하면 모든 것을 평정하고 새 시대를 열 것이다.

그때까지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은 저주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다.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22절) 라는 바울의 말은 이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는 진술이다. 언제까지 신음하고 있는가? 몸의 구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그들뿐만 아니라 성령의 첫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23절)

대환란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재림하고 천년왕국을 세우실 때 비로소 우리 몸의 구속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비록 구원은 받았지만, 우리의 몸은 아직 저주 아래 놓여 있다. 현재의 우리 몸은 죽은 송장에 불과하다. 앞서 7:24에서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누가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낼 것인가?” 하고 바울이 탄식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신음하고 고통받으면서 속으로 신음하며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는 까닭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와야만 이 땅과 그 위이 모든 피조물들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11장을 보라.

“또한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요,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하며 어린 아이가 그들을 이끌리라.”(사11:6)

이것은 다시 오신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천년왕국을 묘사하는 말씀이다.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 이리가 양과 함께 뛰놀고 표범과 새끼 염소가 함께 한가하게 누워있으며, 어린아이가 늑대와 표범과 사자 같은 맹수들을 이끌고 있단 말인가? 이 세상이 저주 아래에 놓여 있는 동안에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이것은 주님께서 재림하고 천년왕국을 세울 때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이 저주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해질 일이다.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울 것이요,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리라.”(사11:7)

천년왕국에서 피조물들이 저주에서 빗어나 그 몸이 구속되면 사자나 아리나 표범이나 치타 같은 맹수들이 모두 소처럼 풀이나 짚을 먹는 채식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이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언제 한번 시간을 내 동물원에 가서 사자나 호랑이 우리 안에 손을 내밀고 맹수들이 당신의 팔뚝을 물어뜯는지 않는지 실험해 보라.

“또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으리라.”(사11:8)

주님께서 다시 오면, 이 당은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의 창조 상태로 복귀하게 된다.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다시 온 주님께서는 이 지구를 구원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은 모든 저주에서 자유롭게 될 것이다. 그때의 광경이 과연 어떠할는지, 사실 나로서는 이루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때는 아마 나무들이 보통 60m, 100m까지 자랄 것이고, 포도 알의 크기가 오렌지만큼 크게 열릴 것이다.

하기야 세상은 지금도 아름답다. 세상은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처럼 아름답다고 밥 존스 1세는 늘 말하곤 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신랑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삭막한 상태인 것이다. 장차 신랑이 나타나면 세상은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고 활기를 찾게 될 것이다. 신랑이 나타나기까지 세상은 아름답되 여전히 간절한 그리움으로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

나는 연기를 내뿜는 화산을 볼 때마다 그 장관이 눈에는 아름답기는 하되, 지구가 끙끙 병을 앓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이 지구는 모든 병을 회복하고 원상태로 복구될 것이다. 환경주의자들이 아무리 떠들어대고 환경보호운동을 벌려도 병든 지구를 고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셔야만 해결될 문제다.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나니.”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구원받은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1:12) 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받는다.

당신이 거듭난 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받는다는 것은 천사들이 갖고 있다가 타락할 때 빼앗겼던 권세를 당신이 대신 양도받고, 그들의 위치를 당신이 점유하게 된다는 뜻이다. 성경 변개자들도 이것을 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마22:30에서 “부활 때에는 그들은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요일3:2 또한 이것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

거듭난 당신은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이미 지금 “하나님의 아들들” 하나임이 분명한즉, 그리스도께서 나타나면 당신도 그분과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면 한 점의 죄도 없이 순결한 33세의 남자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장차 주님께서 오시면 반드시 나타나게 될 일이다. 모든 피조물이 이것을 알고 있기에 지금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20 이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의가 아니요, 오직 소망 가운데 그것들을 굴복케 하시는 그 분 때문이니라.

당신은 지금 지니고 있는 몸을 당신이 요구해서 받은 것인가? 개는 자신의 몸을 가지고 갖고 싶어서 원했던 것인가? 모든 피조물들은 문제 덩어리의 육신을 제가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니다. 당신은 그냥 태어난 것이다.((욥5:7) 당신은 태어나기 전 이렇게 문제가 많은 몸을 갖게 될 줄은 전혀 모르고 태어났다.

욥5:7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과 같이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

그러나 고생하려고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자의가 아니요, 당신이 삶에서 고생하는 것 역시 당신이 자의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자의로 선택해서 고생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고생이 아니다. 고통은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분께서 당신에게 보낸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통의 의미를 잘 아신다. 그분은 “사람들에게서 멸시받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질고에 익숙한 사람”(사53:3)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지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께서 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당한 줄로 잘못 행각한다고 성경은 지적한다.(사53:4) 그분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그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 우리의 화평을 이루기 위해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다.(사53:5)

적어도 인간의 고통에 관한한 이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나 그렇지 못한 죄인들이나 다 마찬가지다. 바울을 보라. 인간의 고난에 대한 이런 성경적 가르침에 대하여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고 고개를 내저으며 못마땅해 하지만,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성경만큼 합리적인 책이 어디 있단 말인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전혀 자의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과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요, 하나님께서 부여한 일이다. 그래서 여기 20절은 “오직 소망 가운데 그것들을 굴복케 하시는 그분 때문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문제가 많은 몸속에 넣어 둔 것은 장차 그 문제가 해소될 것을 소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몸이 갖고 있는 골치 아픈 문제들로부터 당신을 구해 내고 문제를 해소해 줄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한 데에는 마음속으로 의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지 않으면,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을 창조할 때 세우셨던 이 목적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거부하고 그분께서 기뻐할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조 가운데 인간의 최대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 그분의 영원한 임재를 즐거워하는 일이란 문구가 들어 있다. 이 문구는 아주 훌륭한 말이다.

 

'강 해 > 로마서(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8장 28절 - 34절  (0) 2026.10.07
로마서 8장 21절 - 27절  (0) 2026.10.06
로마서 8장 14절 - 17절  (0) 2026.10.04
로마서 8장 5절 - 13절  (0) 2026.10.03
로마서 8장 1절 - 4절  (0) 2026.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