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리

구원의 방법 - 대속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27. 14:45

행16:17 그녀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면서 외쳐 말하기를 "이 분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이라. 우리에게 구원의 길(the way, 방법)을 전하신다."라고 하더라.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는 방법, 길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출13:11-13을 주의 깊게 읽겠습니다.

출13:11 주께서 너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셨던 대로 카나안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그것을 너에게 주시리니

출13:12 너는 태를 여는 모든 것과 네가 소유하고 있는 짐승에게서 나온 첫배 새끼를 주께 따로 떼어 놓을지니 그 수컷들은 주의 것이니라.

출13:13 나귀의 모든 첫배 새끼는 네가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네가 그것을 대속하지 않으려면 너는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또 너의 자손 가운데서 사람의 모든 첫태생 된 남자를 대속할지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저와 함께 약 3,500년 전에 있었던 일로 가 봅시다. 하나님의 제사장과 가난하기 짝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그들 곁에 서있는 어린 나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이 말합니다.

‘사정 말씀을 드리려고 왔는데요. 제사장님, 제발 이번만 긍휼을 베풀어 주실 수 없을까요? 이 약하고 어린 것이 제 나귀의 첫 새끼입니다. 저도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양으로 대속하는 율법을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것을 대신해서 내어 줄 어린양이 없습니다. 이 나귀 새끼의 생명을 살려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제발 부탁합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이 나귀 새끼 한 마리뿐인데 이것마저 잃어버릴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딱 잘라 거절합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안 됩니다. 엄연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속할 어린양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어린양이 죽든지 아니면 반드시 나귀 새끼의 목을 꺾든지 들 중에 하나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젠 다 틀렸군요. 마지막 한 가닥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군요.’

그때 옆에서 딱한 사정을 듣고 있던 그의 친구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내가 해결해 보겠네. 언덕 너머 우리 집에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양 한 마리가 있는데 아주 말을 잘 들어서 귀염을 독차지하고 있다네. 내가 가서 그것을 끌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게나.’

마침내 나귀새끼를 대신해서 그가 데리고 온 점도 없고 흠 없는 어린양이 죽어서 그 피가 제단 아래 뿌려지고 그 몸은 불살라졌습니다.

그러자 제사장은 가난한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이젠 당신의 나귀 새끼를 데리고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목을 꺾지 않아도 되었으니 참 기쁘겠소. 어린양이 대신 죽었으니 나귀는 털끝만큼도 다칠 필요가 없소. 당신의 친구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시군요.’

위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는 방법을 깨닫게 됩니다. 제사장이 나귀 새끼의 목을 꺾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듯이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당신의 죄로 인해 당신의 목을 꺾을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요구하는 공정한 판단입니다. 이 같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을 위해 그의 친구가 주었던 어린양 같은 대신 속죄(대속, 구속)의 희생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비참한 상태를 보시고 자신이 직접 예비하신 어린양 즉 죄 없으신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침례자 요한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예수님을 바라보고는 자기 제자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요1:29 그 다음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갈보리 십자가로 가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는 의로운 분이셨지만 불의한 자를 대신해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과연 우리 주 예수님을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십자가 형벌을 받도록 넘겨졌으며 죄있는 우리를 의로운 자로 만들기 위하여 다시 부활하셨습니다.(롬4:25)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 즉 경건치 않으나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은 자들을 의롭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을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롬3:26은 오히려 그렇게 하심을 통해 그분의 의와 거룩함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롬4:25 예수께서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드려지셨고, 우리의 의롭게 하심을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

롬3: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경륜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구원자로 주신 그분의 은혜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원자로 믿고 신뢰하십니까?

만일 당신이 ‘예! 저는 비참한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서 제가 받을 심판을 이미 다 받았다는 귀한 복음을 확실히 믿습니다.’라고 마음으로 고백한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이미 완전한 희생물로 죽었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이미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받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죄가 없는 자로 인정하십니다. 이렇게 당신은 확실히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입니다.

이 얼마나 고맙고도 놀라운 구원의 길입니까! 또한 이 구원의 섭리야 말로 얼마나 위대합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영광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다니 이 얼마나 큰 은혜요 긍휼입니까!

자신의 사랑하는 독생자가 이 모든 구속사업을 완수하고 모든 찬양을 받도록 만드심으로 말미암아 죄에 빠져 어쩔 수 없이 지옥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모든 복을 누리게 하시고 영원무궁토록 행복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시34:3 오, 나와 함께 주를 찬미하라. 다 함께 그의 이름을 드높일지라.

이렇게 엄청난 구원을 믿음으로 거저 받는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주저하며 받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림으로 그 대가로 구원을 받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족을 누리십니다. 그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죄를 담당하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시고 누구든지 그분을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심판을 걷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어 영원토록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1:12 누구든지 그를 받아들인 자(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그렇지만 당신은 아직도 의문을 가친 채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물론 저는 저의 행실이나 능력 또는 율법을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영원히 이루어 놓은 구속의 공로만을 신뢰합니다. 그런데 제게는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이 어찌된 일일까요? 어떤 때는 구원받았다고 장담하다가도 얼마 못 가서 모든 소망이 사라져 버립니다. 마치 제 마음은 폭풍 속에서 닻을 내리지 못한 채 파도에 따라 출렁이는 배와도 같은데 어찌해야 좋을까요?’

파도에 일렁거리고 출렁이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닻을 배 안에 매어 놓고 배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잘 아시겠지만 배를 안정시키려면 배의 밖에 탄탄한 곳을 골라 닻을 내리는 것이 상식이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기분이나 감정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변덕을 부리는 느낌, 감정, 기분을 통해 확신을 얻으려 하니 이것이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은 사실을 믿는 믿음만이 우리의 안전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정을 통해 확신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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