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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에서가 말하기를 "우리가 길을 떠나 가자. 내가 네 앞서 가리라." 하니
13 야곱이 그에게 말하기를 "내 주께서 아시거니와, 내 자식들은 허약하고 내게 있는 양떼들과 소떼들은 새끼를 배었으니, 만일 사람이 하루만 그들을 과도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라.
14 내가 간구하노니 내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앞서 가소서. 나는 내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이 견딜 수 있는 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로 가리이다." 하더라.
에서는 야곱과 여정에 동행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야곱이 사해를 돌아 브엘세바와 헤브론 쪽으로 여행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야곱은 400명의 무장군인 속도를 맞출 수 없다는 이유로 천천히 가게 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에서는 세일 산으로 떠나게 되고 반면 선하고 신뢰할 만한 야곱은 재빨리 기수를 돌려 얍복강 북쪽의 숙콧으로 이동한다. 숙콧은 칸막방이란 뜻으로 성경에서 최초로 족장 중 한 사람이 집을 짓고 살았다는 기록이 나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장막절을 바로 야곱의 이 임시 거처와 관련된 것으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안전하게 거하게 될 것을 예표하고 있다.(왕상4:25의 천년왕국의 예표임, 겔34:25,27,28에 나오는 천년왕국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 슥14:11)
왕상4:25 유다와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평생 동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각자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전하게 거하였더라.
겔34:25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들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라. 그리하면 그들이 광야에서 안전하게 거하며 수림 가운데서 잠자리라.
겔34:27 들의 나무들은 열매를 맺고 땅은 그 소산을 내리라. 그들은 그들의 땅에서 안전할 것이니라. 내가 그들의 멍엣줄을 꺾고 그들로 섬기게 했던 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해 낼 때 그들은 내가 주인 줄 알리라.
겔34:28 그들이 다시는 이방에게 약탈물이 되지 아니할 것이며 그 땅의 짐승도 그들을 삼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들은 안전하게 거하리니 아무도 그들을 두렵게 하지 아니 하리라.
슥14:11 그 안에 사람들이 거하리니, 더이상의 파멸은 결코 없을 것이며 예루살렘에는 안전하게 사람이 살리라.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14절). 이말은 아첨일 뿐만 아니라 완전한 속임수였다. 야곱은 결코 세일로 가지 않았다. 그는 숙콧으로 갔고 요단강을 건너 살렘으로 갔다.
이 주석을 놓고 강단주석과 클레리쿠스, 칼리쉬, 케일, 머피, 부쉬, 잉글리스, 클라크 등은 모두 믿을 수 없는 가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20,000페이지에 달하는 동양의 인사방식, 예법, 풍습 등을 늘어놓는 주석가들은 4-15절에 관해서는 동양적 예법과 풍습은 싹 잊어버린 채 전혀 언급이 없다.
10-15절을 놓고 야곱과 같은 사람이 임시 변통으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해 본 말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왜 불가능하여 믿을 수 없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처럼 주석가들은 인간 야곱에 대해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동양적 관습과 동양 언어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데 무용지물이 되고 만 셈이다. 야곱은 결코 세일로 갈 의도가 없었으며 그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동양학의 대가들께서는 핵심을 놓쳐 버렸다. 야곱은 에서와의 만남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간증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서 벧엘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사실도 감추었다. 다만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는 표현에서만 간접적인 언급이 나오지만 에서는 창32:30의 사건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인지 몰랐다. 야곱은 자기의 회심의 체험을 부끄러워 말도 못 꺼냈다.
창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지만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비록 야곱이 천사와 더불어 겨루긴 했어도 야곱은 결코 천사가 되지 못했다. 만약 그가 형 에서와 입맞추지 못한 채로 카나안으로 갈 수만 있었다면 야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그렇게 행동할 사람이었다.
15 에서가 말하기를 "내가 이제 내게 딸린 사람들 중 몇 명을 네게 남겨 두리라." 하니 그가 말하기를 "무슨 필요가 있나이까? 나로 내 주의 면전에서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더라.
야곱은 에서의 호의를 거절했다. 이 사실 역시 그가 남쪽으로 여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들 호위병과 함께하면 세켐과 브엘세바를 거쳐 에돔땅까지 여행해야 하지만 혼자 가면 헤쉬본과 모암의 알 지방을 거쳐 거리를 반으로 줄여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 그러므로 에서는 그날 세일을 향하여 그의 길을 돌이키더라.
17 야곱은 숙콧으로 여행하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만들더라. 그러므로 그곳의 이름을 숙콧이라 부르니라.
18 야곱이 파단아람으로부터 와서 카나안 땅에 있는 세켐 성읍, 살렘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다 장막을 쳤더라.
권위역본의 본문을 용납할 수 없는 이들 학자들은 이번에는 살렘을 ‘평한히’(in peace)로 변개시켜 야곱이 평안히 세켐 성읍에 이르러라고 번역했다. 벌링거 역시 본문을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대적자들이 학문의 이름으로 변개시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보존되어 오늘날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살렘”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베트(ב)와 라멕(ל)이 붙어 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 단어를 ‘평안히’로 추정하는 것은 권위역본을 거부하기 위해 히브리어 본문을 변개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
‘리샬롬’(라멕이 첨가됨)이란 표현은 삼15:27에서 “평한히”라는 뜻으로 쓰였다. 삼하19:24에서도 베트(ב)가 첨사된 ‘비샬롬’이 “평안히”라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본문에 나온 살렘(베트 혹은 라멕이 붙어 있지 않음)을 ‘평안히’로 해석하는 짓은 히브리어 본문을 변개시키려는 것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권위역본에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보존해 놓았으니 안심하고 성경 비평가들을 물리쳐 버려라.
삼하15: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말하기를 "너는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와 함께한 네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으로 돌아가라.
삼하19:24 그때 사울의 손자 므피보셋이 왕을 맞이하러 내려오는데,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발도 다듬지 아니하고 수염도 깎지 아니하고 옷도 빨지 아니하였더라.
본문을 보자면 학자들이란 작자들은 자신들과 성경이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서는 성경을 과감히 변개시켜 버리는 무모한 자들이요 동시에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본문은 자의적으로 고쳐버리는 자임이 분명해진다.
즉 창33:18에 관한 혼돈은 학자들이 세켐을 성읍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수20:7 삿9:1,2,3,6 등) 그들은 세켐이 성읍일 뿐 지역 혹은 지방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한 것 같다.
수20:7 사람들이 납탈리의 산지의 갈리리에 있는 케데스와 에프라임 산지의 세켐과 유다 산지의 헤브론인 키럇아르바를 지정하였더라.
삿9:1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켐으로 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과 그의 외조부 집안의 온 가족에게 이야기하여 말하기를
삿9:2 "내가 청하노니 세켐의 모든 사람들 귀에 말하기를 '칠십 명이나 되는 여룹바알의 모든 아들이 너희를 다스리는 것이 너희에게 더 좋으냐 아니면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더 좋으냐? 또한 내가 너희의 뼈와 살임도 기억하라.'고 전하라." 하니라.
삿9:3 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이 이 모든 말을 모든 세켐 사람들의 귀에 전하니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을 따르고자 하더라.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그는 우리의 형제라." 함이더라.
삿9:6 세켐의 모든 사람과 밀로의 온 집안이 함께 모여 가서 세켐에 있는 돌기둥의 평지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이와같은 추정은 학자들이 창33:19과 34:2에서 세켐이 사람 이름이라는 사실을 보고 구상해 낸 것이다. 그러나 세켐은 살렘 성읍이 세워져 있던 지방이요 세켐은 여러 성읍들이 있었던 지방의 통치자였으며 그 성읍들 가운데 하나가 살렘이었다. 늘 권위역본이 옳고 학자들은 틀렸다.
창34:2 히위인 하몰의 아들, 그 지방의 통치자인 세켐이 그녀를 보고 그녀를 끌어들여서 그녀와 동침하여 그녀를 더럽히니라.
19 그가 자기가 장막을 친 들의 일부를 세켐의 아비 하몰의 자식들의 손에서 돈 일백 개로 샀으며
20 거기다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
창23:9 그가 그의 들 끝에 갖고 있는 막펠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그 값나가는 대로 돈을 받고, 그가 당신들 가운데서 내게 주어 매장지로 소유하게 하소서.
창23:17 마므레 앞 막펠라에 있는 에프론의 들, 곧 들과 거기 있는 굴, 들 사면의 모든 지경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그의 후손들의 역사에도 볼 수 있듯이 야곱은 벧엘 시절부터 살렘에 이르기까지 제단을 쌓은 적이 없었다.(호3:4에서 ‘희생제사도 없었다’를 주목하라)
호3:4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들 동안 왕도 없고, 통치자도 없고, 희생제도 없고, 형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트라빔도 없이 거하다가
예루살렘의 제단은 A.D.70년 이래로 하나님께서 대환란 때까지 지정하신 예배 장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스라엘로 그들의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놓아두셨다. 야곱이 요단을 건너 장막을 친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제단을 쌓은 것이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이것은 야곱이 창28:21에서 하나님께 한 약속을 나름대로 지키려는 행위였다. 그러나 불완전한 불순종으로 인해 비극은 발생했으니(창34:1-4)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명령하신 것은 살렘이 아닌 벧엘로 돌아가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창31:13 하나님의 집) 물론 구체적인 지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벧엘임이 분명한 것은 창35:1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입증된다.
창28:21 나로 평안히 내 아버지 집에 다시 오게 하신다면, 그 때에는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에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네가 거기서 나에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땅을 떠나서 네 친족의 땅으로 돌아가라.
창34:1-2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는데 히위인 하몰의 아들, 그 지방의 통치자인 세켐이 그녀를 보고 그녀를 끌어들여서 그녀와 동침하여 그녀를 더럽히니라.
창35:1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에 거하며, 거기에서 네가 네 형 에서의 얼굴을 피하여 도주하던 때에 너에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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