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37-50)

창세기 48장 1절 - 14절

달팽이 Joban 2025. 7. 1. 09:46

1 이 일들 후에 누군가가 요셉에게 말하기를 "보라, 네 아버지가 아프시다." 하니 그가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프라임을 자기와 함께 데리고 가더라.

2 누군가가 야곱에게 말하기를 "보소서, 당신의 아들 요셉이 당신에게 왔나이다." 하니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더라.

우리는 이제 창세기의 끝부분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장에 걸쳐서 1611년 권위역본은 일점일획도 손댈 필요가 없이 완전히 신뢰할 수 있음을 여러번 지적했다.

47장에 걸쳐 권위역본 본문의 수정은 그 어떤 추가 조명을 주거나 의미를 분명하게 해주거나, 진리의 지식을 늘려 주거나 성도를 세워주거나 성경말씀을 존귀히 여기도록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입증한 바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란 사람들이 앞장서서 <킹제임스성경>을 무너뜨리고 그리스도인들을 옛 로마 카톨릭의 노예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내로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해 나갈 것이다.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자. 그리고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히12:1-2)

이제 야곱은 병이 들었고 49장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 병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노약증세이다. 그래서 야곱은 지팡이를 써서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았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히11:21의 문맥이다.

히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두 아들 하나 하나에게 축복하였으며 그의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드렸느니라.

문맥을 보면(12절) 야곱이 경배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을 두고 히브리서 기자는 11:21에서 야곱이 경배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분명하고도 정확한 관련 구절들을 숨기기 위해 칠십인역의 저자는 경배한다는 동사의 인칭을 3인칭 단수에서 3인칭 복수로 바꾸어 버렸다.

3 야곱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카나안 땅 루스에서 내게 나타나시어 나에게 복 주시며

4 내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를 다산하고 번성케 하여 내가 네게서 많은 백성을 이루게 하여, 이 땅을 네 뒤의 네 씨에게 주어서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5 이제 내가 이집트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이집트 땅에서 네게 태어난 너의 두 아들 에프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이라.

6 그들 후에 네가 낳을 너의 후손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업은 그들의 형제의 이름을 따라 부르리라.

7 나로 말하면, 내가 파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도중에 카나안 땅에서 죽었으며 에프랏에 오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아서 내가 그녀를 거기 에프랏 길에다 장사했는데 그곳은 베들레헴이라." 하더라.

야곱은 전능하신(엘샤다이)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약속의 주변을 맴도는 대신 하나님의 약속 위애 굳게 서 있다. 야곱은 에프라임과 므낫세를 자기 것으로 간주한다. 이 두 손자는 르우벤과 시므온을 대신한다.(창34:25 35:22) 이것은 장자권 즉 “두 몫”(double portion)으로 대상5:1-2에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야곱은 에프라임과 므낫세가 유업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창34:25 삼일째 되어 그들이 아플 때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자 자기 칼을 가지고 담대히 그 성으로 가서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창35: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할 때에 르우벤이 자기 아비의 첩 빌하에게 들어가 동침하니 이스라엘이 그것을 들었더라. 그때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대상5:1-2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의 아들들이라. 그가 맏아들이었으나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그의 장자권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아들들에게 주어졌더라. 그러므로 그 계보가 장자권을 따라 계수될 것이 아니니 이는 유다가 그의 형제들보다 뛰어났으며 그에게서 최고 치리자가 나왔으나 장자권은 요셉에게 있었음이더라.

야곱은 갑자기 요셉의 어머니를 회상한다. 그는 자손과 유업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랑하는 아름다운 아내 라헬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곱은 요셉을 바라보며 “라헬이 도중에 카나안 땅에서 죽었으며 에프랏에 오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아서”(7절) 하며 아이를 낳다가 죽은 아내를 가진 이의 마음을 드러내며 옛 아내를 회상했다.

바로 이 순간 에프라임과 므낫세가 들어 왔다.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말하기를 "이들은 누구냐?" 하니

9 요셉이 그의 아비에게 말하기를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하니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네게 청하노니 그들을 내게로 데려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해 주리라." 하더라.

10 이제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지므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을 야곱에게로 가까이 데려오니 야곱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아주며

1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는데, 보라, 하나님께서 네 씨까지도 내게 보이셨도다.

에프라임과 므낫세는 25-26쯤 되었을 것이다. 야곱은 이들에 대해서 여러 번 들은 바 있었지만 눈이 어두웠으므로 그들이 누군인지를 물었다. 요셉이 설명하고 이에 야곱은 그들을 축복할 테니 데려오라고 했다.

야곱은 손자들에게 입을 맞추고 안아 주었다. 이것은 이삭이 야곱에게 입맞추고 안아 주었던 그대로였다.(창27:22,27)

창27:22 야곱이 자기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그를 만지며 말하기를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창27:27 그가 가까이 와서 그에게 입맞추니 이삭이 그의 옷 냄새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며 말하기를 "보라, 내 아들의 냄새는 주께서 복 주셨던 들의 냄새와 같도다.

12 요셉이 그(야곱)의 무릎 사이에서 그들을 데리고 나오자, 그가 자기의 얼굴을 땅에다 대고 절하더라.

13 요셉이 그들 둘을 데려가서 에프라임은 그의 오른손으로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므낫세는 그의 왼손으로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그에게 가까이 데리고 가니

14 이스라엘이 그의 오른손을 펴서 둘째인 에프라임의 머리 위에 얹고 그의 왼손은 므낫세의 머리 위에 얹으며 의식적으로 그의 손을 가게 하더라. 이는 므낫세가 맏아들임이더라.

야곱은 에프라임과 므낫세를 만지며 창세기 27장의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 자기 주장을 납득시키려는 완고한 고집이 아니라면 야곱의 행동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야곱은 이삭처럼 눈이 어두웠고 이삭처럼 참된 축복이 누구에게로 갈지 알고 있었다. 야곱은 지금 창25:23을 순종하고 있다. 그가 지금하고 있는 행동은 그가 창세기 27장의 거래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잘못 흘러 갈까봐 그때 자신이 그렇게 속임수를 사용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창25:23 주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두 민족이 네 태에 있으니 두 백성이 네 배에서 나눠지리라.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며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 하시더라.

요셉은 아들들을 야곱에게로 데려왔다. 야곱은 침상에 앉아 있었다. 야곱은 그들을 안아 주었고 그들은 야곱의 무릎 사이에서 뒤로 물러섰다. 이때 야곱은 그의 지팡이를 의지해서 얼굴을 땅 쪽으로 향하고 경배를 드렸다.(히11:21, 12절)

이때 야곱이 무슨 기도를 드렸을까는 11절을 보면 분명해진다. 그는 요셉의 씨를 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제 요셉은 아이들을 물러나게 한 후 야곱의 기도가 끝나자 야곱의 발 밑에 두 아들을 무릎꿇게 하였다.

그들은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에 이스라엘의 오른손이 가고 둘째인 에프라임의 머리에 야곱의 왼손이 가도록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야곱은 손을 어긋나게 하여 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둘째인 에프라임 위에 놓고 왼손을 첫째인 므낫세 위에 올려놓았다.

야곱의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태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물론 하나님께서 야곱을 인도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둘째에게 족장에게 주신 축복을 내리라고 그 누구를 인도한 흔적이 없다. 창25:23에서 야곱마저도 이 족장의 축복을 받지는 못했다 그 당시의 축복의 내용은 야곱이 형을 지배한다는 것일 뿐 ‘어떻게’나 ‘왜’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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