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시편 2권(42-72)

시63편 1절 - 11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1. 20. 11:20

1 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내가 일찍 주를 찾으리이다. 내 혼이 주를 갈망하오며 내 육신이 건조하고 메마른 물 없는 땅에서 주를 사모하오니

첫 번째 구절에서 우리는 3가지 간단한 진리들을 배울 수 있다.

① 모든 사람은 자기가 부를 신을 가지고 있다.

② 그 신은 자기가 개인적으로 섬기는 신이다.

③ 이 신은 자의로 선택하게 된다.

때대로 이 신은 교육이고, 때로는 성이며, 또 때로는 돈이고, 또 어떤 경우는 자기 자신의 자부심이거나 숭배하는 어떤 사람이다. 현대의 신들은 보통 우리가 뉴스 미디어 신들이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좋은 언론기관이 만들어내는 신들이다.

그 신들 가운데는 제시 잭슨,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달리 파튼, 다윈, 마이클 잭슨, 아인슈타인, 마카일 고르바초프, 넬슨 만델라, 잭 케네디, 간디, 에이브러험 링컨, 마더 테레사, 마돈나, 요한 바오르 2세가 있다.

삼하23:15는 1절이 문자적으로 재현된 한 예가 되기는 하지만, 완전한 것은 못된다. 왜냐하면 다윗이 자기 어린 시절에 있던 우물의 물을 마시고 싶어 한 것은 그가 주문한 곳에 먹을 수 있는 물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감성적인 소망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삼하23:15 다윗이 갈망하여 말하기를 "아, 나로 성문 곁에 있는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마시게 할 자가 누구인가?" 하니

“내가 일찍 주를 찾으리이다.”

하루 중 이른 시간뿐 아니라, 인생에서 이른 시기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잠8:17)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내가 사랑하노니, 일찍 나를 찾는 자들은 나를 만나리라.

1800년이나 1700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30세 이후에 구원받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오늘날 50세 이후에 구원받은 경우는 실제로 거의 전무하다. 1900년까지만 해도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사람은 일찍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하루든 평생이든 간에 얼마만큼 살 것이라는 보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라도 오늘 여기 있다가 오늘 가버릴 수 있다. 사람은 일찍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어떤 다른 노력보다도 그분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윗의 갈망함이 보여주는 진리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공기 다음으로 여러분의 육체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음식보다도 더 필요한 것인데 바로 물이다. 우리의 혼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만큼 우리의 육체도 그분을 필요로 한다

2 이는 내가 성소에서 주를 보았던 것처럼 주의 권능과 주의 영광을 보기 위함이니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보고 그 앞에서 춤을 추기도 했건만, 성소에서 하나님을 보았다는 말씀에 비평가들은 문제를 일으킨다. 크롤(리버티 대학)은 그 문장의 시제를 고쳐서 다윗이 미래의 언젠가 성소에서 하나님을 보기 원하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다윗은 분명히 성소에서 주님을 보았을 것이다.

다음 구절들을 주목하라. “그러자 다윗 왕이 들어가 주 앞에 앉아서”(삼하7:18), “이에 히스키야가 사자들의 손에서 그 편지를 받아 읽고 주의 전으로 올라가 그것을 주 앞에 펴 놓고”(왕하19:14).

이스라엘의 왕들은 히9:1에서 말하는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다윗이 왕이었을 때는 다만 성소가 성전 안이 아니라 성막 안에 있었을 뿐이다.(삼하6:17)

히9:1 그런즉 첫 언약에도 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와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도다.

삼하6:17 그들이 주의 궤를 들여와 그 자리, 즉 다윗이 궤를 위하여 친 장막 한가운데 두니, 다윗이 주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니라.

다윗은 레위지파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했고(이것은 사울이 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고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삼하6:12-13을 읽어보라. 이것은 어째서 성전 부지를 선정하는 일에 다윗이 선택받았는지를 설명해준다.(삼하24:25) 그는 단지 선지자와 왕이었을 뿐 아니라 제사장이기도 했다.

삼하6:12-13 그러자 누군가가 다윗 왕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주께서 오벳에돔의 집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에 복을 주셨나이다." 하므로, 다윗이 가서 기쁨으로 하나님의 궤를 오벳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읍으로 가져오는데 그들이 주의 궤를 메고 여섯 걸음을 가자, 다윗이 소들과 살진 것들로 제사를 드리더라.

삼하24:25 다윗이 그 곳에서 주께 제단을 세우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그 땅을 위한 간구를 들으셨으니, 재앙이 이스라엘로부터 그쳤더라.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이다. 다윗은 분명히 성소에서도 주의 천사를 보았을 것이다. 성소 밖에서는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다.(삼하24:17)

삼하24: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주께 고하여 말하기를 "보소서, 내가 죄를 지었고 내가 악하게 행했나이다. 그러나 이 양들이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청하오니,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더라.

3 주의 자애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주의 자애가 생명보다 낫다. 어째서 그런가? 주의 자애는 첫째로 더 오래 계속되고, 둘째로 초자연적이고, 셋째로 행복한 영원을 보장해주고 넷째로 지금 이 땅에서 더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다음 3자기 항목은 바랄만한 것들이며, 다윗은 그것들을 보고 싶어한다.

*하나님의 권능(2절) *하나님의 영광(2절) *하나님의 자애(3절)

다윗은 위 3가지를 보기 위해서 6가지 일을 하고자 한다.

① 그는 하나님을 찾으려 한다.(1절)

②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려 한다.(3절)

③ 그는 하나님을 송축하려 한다.(4절)

④ 그는 하나님께 자기 손을 들어 올리려 한다.(4절)

⑤ 그는 밤에 하나님을 묵상하려 한다.(6절)

⑥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뻐한다.(7절)

반면 현대의 가짜 종교는 다음과 같다.

① 나는 우주와 내 동료 인간과의 연합을 추구하겠다.

② 나는 인본주의자들과 만물의 척도인 인간을 찬양하겠다.

③ 나는 법안들을 통과시켜서 이 땅을 한 독재자의 지배하에 두려는 자들을 송축하겠다.

④ 나는 구호품을 받기 위해 연방정부에게 내 손을 들어 올리겠다.

⑤ 나는 나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크리슈나 신, 시바 신 그리고 스스로 창조된 영적인 대상들을 묵상하겠다.

⑥ 나는 나의 생활방식 속에서 내 육신의 원하는 바와 정욕을 채움으로써 자아실현에 도달할 때 기뻐하겠다.

4 그러므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내 손을 들어올리리이다.

사람들은 온갖 것들에 손을 들어올렸다. 나치의 경례로 로마 카톨릭 신자인 아돌프 히틀러에게, 파시스트의 경례로 로마 카톨릭 신자인 뭇솔리니에게, 두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경례로 로마 카톨릭 교황에게, 주먹을 단단히 쥐는 경계로 그리스 카톨릭 신자인 레인에게 손을 들어 올렸으며, 오른쪽 손을 펴서 들어 올림으로써 맹세를 하고 손바닥을 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교육받은 멍청이들이 미식축구 시합에서 소리 지르며 들어 올렸던 손들을 모두 합하면 오순절 이래로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려고 들어 올린 손들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을 것이다.

5 내 혼이 골수와 기름진 것으로 배부르며 내 입이 즐거운 입술로 주를 찬양하기를,

6 내가 침상 위에서 주를 기억할 때와 밤 경비 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리이다.

여러분이 불면증으로 깨어 있다면 하나님께 노래하고 찬양을 드려 보라.(시22:2)

시22:2 나의 하나님, 내가 낮 동안에 부르짖으나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며, 밤 동안에도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나이다.

7 주께서 나의 도움이 되셨으므로 내가 주의 날개 그늘 안에서 기뻐하리이다

시61:4 91:4와 비교해 보라.

시61:4 내가 주의 장막에 영원히 거하며, 주의 날개깃에 피하리이다. 셀라.

시91:4 그가 너를 자기 깃털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리가 너희 방패와 손 방패가 되리니

8 내 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오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떠받치나이다.

“주를 가까이 따르오니” 크롤은 이것은 ‘주께 달라붙어 있으니’라고 되어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람이 험한 지대를 지날 때 등산 안내원을 따르듯이 다윗이 가까운 거리에서 하나님을 뒤따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르오니” 그 히브리어 단어는 단지 “달라붙다”라는 의미만 있은 것이 아니라, “추적하여 붙잡다. 뒤를 가까지 따르다. 열심히 뒤쫓다”라는 의미도 있다. 성경 개정자들의 부족함을 보충해주기 위해서 바울은 빌3:12에서 본문을 해석해준 다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그 일을 하라고 권고한다.(고전4:16 엡5:1)

빌3:12 내가 이미 이르렀다 함도 아니요, 이미 온전해졌다 함도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 예수에 의하여 붙잡힌 그것을 나도 붙잡으려고 좇아갈 뿐이라.

고전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

엡5:1 그러므로 너희는 사랑받는 자녀들로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라.

9 그러나 나의 혼을 찾아 그것을 멸하려 하는 자들은 땅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 가리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가신 곳이다.(벧전3:18-20) 이것은 다윗에 대한 언급일 뿐 아니라 메시야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시18:5 55:15 116:3 잠9:18)

벧전3:18-20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그가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으니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 때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몇 명뿐이니 곧 여덟 혼들이라.

시18:5 지옥의 고통이 나를 에워싸고 사망의 덫이 나를 막았나이다.

시55:15 사망으로 그들을 덮치게 하고, 그들을 급히 지옥으로 내려가게 할지라. 이는 사악함이 그들의 처소에, 또 그들 가운데 있음이라.

잠9:18 그러나 그는 죽은 자가 거기 있고, 그녀의 객들이 지옥의 깊은 곳들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9절은 시71:20 시86:13과 비교해 보라.

시71:20 나에게 크고 쓰라린 고난을 보여 주신 주께서 나를 다시 살리시며 땅의 깊은 곳에서 나를 다시 끌어올리시리이다.

시86:13 이는 나를 향하신 주의 자비가 크시며, 주께서 내 혼을 가장 낮은 지옥으로부터 구하셨음이니이다.

10 그들이 칼에 쓰러지며 여우들의 몫이 되리이다.

“여우들의 몫” 여우들이 그들의 시체에 접근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집과 땅도 황폐하게 할 것이며(애5:18) 여우들이 하는 일이란 참포도나무가 열매맺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아2:15 겔13:4)

애5:18 시온 산이 황폐하여졌으므로 여우들이 그 위로 다니나이다.

아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들, 포도 넝쿨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우리의 포도 넝쿨에는 부드러운 포도가 있음이라.

겔13:4 오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사막에 있는 여우들 같으니라.

칼은 단지 다윗의 용사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19:15에 대해 언급한다.

계19:15 그의 입에서는 예리한 칼이 나와서 그것으로 민족들을 칠 것이요 또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틀을 밟으실 것이라.

11 그러나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로 맹세한 자마다 자랑하나 거짓말하는 자들의 입은 막히리이다.

다윗은 3인칭으로 말함으로써 단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시2:6 5:2 10:16 20:9 21:7 45:1)

시2:6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내 왕을 세웠도다.

시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10:16 주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며, 이방이 그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시20:9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우리를 들으소서.

시21:7 왕이 주를 신뢰하오니,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비로 인하여 그가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시45:1 내 마음이 좋은 일을 시로 읊나니, 내가 왕을 위하여 쓴 것들을 말하리이다. 내 혀는 능숙한 작가의 펜이니이다.

“주로 맹세한”은 두 가지 방식으로 볼 수 있음을 관찰하라. 하나님으로 맹세하는 것 또는 왕으로 맹세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왕은 삼하24:3의 왕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영광의 왕”이시다.(시24:7)

삼하24:3 요압이 왕에게 말하기를 "이 백성이 얼마가 되든지 주 왕의 하나님께서 일백 배나 그들을 더하시기를 원하며, 또 내 주 왕의 눈이 그것을 보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는 이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나

시24:7 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 영원한 문들아, 너희는 들어 올려질지라. 그리하면 영광의 왕께서 들어오시리라.

이런 이중적인 역할과 관련해서 삼상20:12에 나오는 깜짝 놀랄만한 문장 구조를 주목하라.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여” 다윗은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두 번째로 훌륭한 모형이다. 첫 번째는 요셉이다.

삼상20:12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여, 내가 내일 아무 때나 또는 셋째 날에 내 아버지를 살핀 후, 보라, 만일 다윗에 대하여 좋은 일이 있는데 내가 네게 보내어 그것을 네게 알리지 아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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