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1-11)

창세기 4장 1절 - 2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3. 10:35

1 아담이 자기 아내 이브를 알았더니 그녀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말하기를 "내가 주로부터 남자를 얻었다." 하니라.

본문을 보면 기록된 사건들이 연대기 순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구절에는 묘사되어 있지는 않지만 카인과 관련해서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본문에 따르면 아담은 그의 아내와 관계를 가졌고 그녀는 처음으로 임신해서 처음으로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이 구절 주위에는 어떤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싸고 있다. 첫째 이브는 그녀의 첫아들이 창3:15 약속의 성취인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카인은 전혀 여자의 씨가 아니었다. 둘째 카인은 악한 자로부터 나온 자(요일3:12)이며 그의 생애와 성품의 모든 요소가 마지막 때의 죄의 사람(살후2장) 및 짐승(계13장)과 일치하고 있다.

창3: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요일3:12 카인같이 되지 말라. 그는 악한 자로부터 나왔으며 자기 아우를 살해하였으니 무슨 연고로 그를 죽였겠느뇨? 이는 그 자신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이라.

① 카인과 적그리스도는 둘 다 뱀의 씨이다.

② 카인과 적그리스도는 둘 다 표를 갖고 있어서 그들을 식별해 낼 수 있다.(계13:13-18)

③ 카인과 적그리스도는 둘 다 살인자이며 거짓말쟁이다.(요8:44)

④ 카인과 적그리스도는 둘 다 저주를 받았다.(시119:21)

계13:13-18 또 큰 이적들을 행하는데 심지어는 사람들 앞에서 불을 하늘에서 땅 위로 내려오게 하더라. 그가 짐승 앞에서 행할 권세를 받아 그같은 기적들을 통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하여 형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라. 또 그가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주는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형상으로 말도 하게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죽이도록 하니라. 그가 모든 자, 즉 작은 자나 큰 자, 부자나 가난한 자, 자유자나 종이나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지닌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거나 팔 수 없게 하더라. 지혜가 여기에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숫자를 헤아려 보라. 그것은 한 사람의 숫자이니, 그의 숫자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시119:21 주께서는 저주받은 교만한 자를 꾸짖으셨으니, 그는 주의 계명들에서 떠난 자니이다.

카인과 아벨은 성령께서 선과 악 사이의 차이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두 쌍의 요소를 대조시킨 여러 가지 예들 중 하나이다. 차별은 영적인 문제들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세워 주기 위해 여러 쌍을 대조시킴으로 무엇과 무엇을 차별해야 할지 분명히 보여주신다.

이스마엘 대 이삭, 카인 대 아벨, 에서 대 야곱, 베드로 대 바울, 사울 대 다윗, 아론 대 모세 등 때로 이런 쌍 중에는 도덕적 영적인 차이가 거의 없을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엘리야와 엘리사, 유다와 요셉, 야펫과 셈 등의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각 사람의 특징들은 자기와 짝을 이루는 사람들의 성격과 대조시켜 볼 때 더욱 뚜렷해진다.

이와같은 대조적인 짝짓기는 창세기 2-3장에서 보편적인 법칙으로 수립된다. 인간은 짝을 이루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일을 수행한다.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쌍(에서와 야곱)의 경우에서조차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진노로 주를 찬양하게 하시며(시76:10) 막대기는 지팡이만큼이나 양에게 위로가 된다.(욥9:34 사10:5)

시76:10 진실로 사람의 진노가 주를 찬양할 것이요, 진노의 나머지는 주께서 억제하시리이다.

욥9:34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가져가시고 그의 두려움으로 나를 무섭게 하지 않으시기를 원하노라.

사10:5 나의 진노의 막대기인, 오 앗시리아인아, 그들의 손에 있는 몽둥이는 나의 분노라.

카인이라는 어휘는 히브리어 어근을 추적해 보면 ‘창’ ‘획득’ ‘애가’ ‘탄식’ 그리고 ‘쇠를 벼리다’는 말들과 연관이 있다.

히브리어는 두 가지 면에서 독특하다. *기술적으로 볼 때 히브리어의 동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제를 갖고 있지 않다. 이는 영원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사야 53장을 보면 미래적 사건을 다루고 있으면서 시제는 과거시제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히브리어의 어근은 그것이 동사, 형용사, 명사, 전치사 그리고 부사로 전개되면서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의미들을 연관시켜 보면 겉보기에는 전혀 연관이 없는 것같은 구절들이 서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욥기 41장의 리비야단은 “꼬부라진 맴”(사27:1)이고 용일 뿐만 아니라(계12장) 히브리어 어근을 추적하여 보면 ‘꼬여진’ ‘감겨진’ ‘연기’ ‘달라붙다’ ‘빌다’ 바람불다‘ ’쇳소리를 내다‘ ’속삭이다‘ ’마술이나 요술을 행하다‘ ’구리’ ‘놋’ ‘빛나다’ ‘노끈’ 등과 관련되어 있다.

더 자세한 분석은 할 필요없이 이미 열거된 단어들만 보더라도 민수기 21장의 놋뱀은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자리를 취하는 것이며, 이브는 창3:1-6에서 뱀에게 최면을 당했었고 사기꾼들은 대상을 물색할 때 그이 목소리를 낮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27:1 그 날에 주께서 그의 격심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쌘 뱀 리비야단을 벌하시리니, 즉 꼬부라진 뱀 리비야단이라. 또 주께서는 바다에 있는 그 용을 살해하시리라.

카인은 철로 된 창이다. 이 철창은 골리앗이 가지고 다녔고(삼상17:7) 철은 늘 액운을 몰고 다니기 때문에 성경독자라면 이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삼상23:7 신3:11 4:20 창4:22 민35:16 렘15:12 단2:33-43) 하나하나 찾아 확인을 해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데도 오늘날의 보수주의자나 근본주의자들은 이 작업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삼상17:7 그의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그의 창날은 철 육백 세켈의 무게이며, 방패 든 자가 그의 앞에 가더라.

삼상23:7 다윗이 크일라에 간 것을 사울이 전해 듣고, 사울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를 내 손에 넘겨 주셨도다. 이는 그가 성문과 빗장이 있는 고을로 들어감으로 갇혔음이라." 하더라.

신3:11 거인들 중에 남은 자로는 바산 왕 옥만 남았으니, 보라, 그의 침상은 철로 만든 침상이라. 그것이 암몬 자손의 랍바스에 있지 않느냐? 그것은 사람의 큐빗으로 재면 그 길이가 아홉 큐빗이고 그 너비는 네 큐빗이라.

신4:20 그러나 주께서 너희를 택하셨고 너희를 철 용광로, 즉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어 오늘날의 너희와 같이 그분께 유업의 백성이 되게 하셨느니라.

창4:22 실라 역시 투발카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과 철로 모든 것을 만드는 자들의 선생이라. 투발카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민35:16 만일 누가 철로 된 기구로 사람을 쳐서 그가 죽으면 그는 살인자이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렘15:12 철이 북방의 철과 강철을 꺽으리요?

단2:33-35 그의 다리는 철이요, 그의 발의 일부는 철이며 일부는 진흙이었나이다. 왕께서 보셨는데, 손으로 다듬지 아니한 돌이 철과 진흙으로 된 그 형상의 발을 쳐서 산산조각을 내니 그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모두 부서져서 여름 타작마당의 쭉정이같이 되어 바람에 날려 사라져 간 곳이 없어졌으며 그 형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서 온 세상을 가득 채웠나이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마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위대한 일들과 기념비적인 사업을 수행하느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장엄하며 권위 있는가에 대한 영광스러운 감각을 성실해 버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일을 추진하기 위한 교재로서 간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여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시119:140)

시119:140 주의 말씀이 매우 순수함으로 주의 종이 그것을 사랑하나이다.

성경에는 쓸데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카인은 철창이다. 그리고 이 첫 번째 언급은 향후 성경해석의 근간이 된다. 철창을 지닌 자가 골리앗이 되었건 우리의 구세주의 옆구리를 찔렀던 로마군인이 되었건 간에 하나님께서는 시작부터 선악이라는 이원론적 절대가치를 수립해 놓았다.

철창은 어떤 경우도 선과는 관계가 없다. 철창은 진화해서 오늘날에는 총탄이 되기도 했고 또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철 대신 은이나 납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철창이 무엇에 쓰이는 가는 다 알고 있다. 이것을 변형시켜 미사일이나 로켓으로 사용하건 대장장이가 두르리는 철을 언급하건 마술과 마귀론 백과사전에서 사탄의 생식능력이라고 설명하건 간에 철은 KJV에 정의된 그대로 그 의미는 그대로 남는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틀을 세우시고 이에 입각해서 모든 모형(예표)들과 기준들을 설정하며 인생사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이것들을 통하여 판단하신다. 구약성경에서는 늘 부정적인 내용을 갖고 있는 진리들(negative truths)이 긍정적인 내용의 진리들(positive truths)보다 앞서 언급된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입증되어 있다.

① 철창인 카인이 선한 목자인 아벨보다 먼저 나온다.

② 털로 덮인 붉은 로마카톨릭 에서가 이스라엘의 통치자 야곱보다 먼저 나온다.

③ 땅에 속한 노예 이스마엘이 선택받은 씨 이삭을 앞서 있다

④ 불안정한 르우벤이 지파들의 사자격인 유다보다 앞서 나온다.

그런데도 현대의 주석가들은 신약성경에서는 모든 부정적인 요수들이 전부 제거되었다고 하는 이상한 이론을 들고 나온다. 이들의 주장은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에게 왔기 때문에(요1:17)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철저히 진화론적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일 뿐이다. 이들은 신약성경에 나와있는 모든 말씀들을 무시해 버린다.(마23장, 롬8장, 행20장, 벧후2장, 유1장, 계13,20장 등) 이들은 선한 행위를 하는 자들과 함께 등장해서 사탕발림 같은 성경구절들만 들고 나온다.

요1: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

그러나 부정 없는 긍정은 없다. 선불교에 대한 스즈키의 가르침이나 니르바나, 사마디 등과 같은 동양의 가르침이 아무리 그런 주장을 펼지라도 그것은 그렇지 않다. 이들 구루(Guru)나 불자들이 육체 역시 부정과 긍정이라는 법칙하에 움직이고 있으며 (-)극이 없는 밧데리는 죽은 배터리다. 이 우주에 있는 가장 작은 전자 하나에도 양극과 음극이 있으며 이 근본적이고 기본적이며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절대 개념을 무시한다는 것은 가지 자신을 왜곡된 철학과 비생산적인 종교, 거짓 가치 그리고 비과학적인 학문에 내던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인은 분명히 잘못된 사람의 완벽한 예표고서 제시되어 있다. 반면 그의 짝인 아벨은 올바른 사람의 예표로서 제시되어 있다.

2 그녀가 또 카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으나 카인은 땅을 경작하는 자였더라.

아벨은 양치는 자였다. 성경의 첫 번째 언급의 원칙에 입각해 목자(양치는 자)에 관한 관련 구절들을 추적해 보면 우상목자(슥11:16-17)와 그의 친구들(슥11:8)을 제외하고는 목자라는 단어는 항상 좋은 것과 연관되어 있다.

슥11:16-17 보라, 이는 내가 그 땅에 한 목자를 일으키리니 그가 멸망한 자를 찾아보지 아니하고, 어린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치유하지 아니하고, 조용히 서 있는 자를 먹이지 아니할 것이며, 오히려 그는 살진 자의 살을 먹고 그들의 굽을 산산이 찢으리라. 양떼를 버려 둔 우상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칼이 그의 팔과 그의 오른 눈에 임하리니, 그의 팔은 바싹 마르고 그의 오른 눈은 완전히 어둡게 되리라.

슥11:8 또 내가 한 달 동안에 세 목자를 끊었으니, 내 혼이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혼도 나를 몹시 싫어하였도다.

아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벨’은 ‘지키는 자’ 혹은 ‘먹이는 자’와 관련되며 어근을 추적해 보면 일시적인, 자나가는, 안개, 수증기, 숨쉬기 등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아벨의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였다.(약4:4) 아벨은 또한 아버지의 양떼를 지키는 자였으며(겔34장) 양을 먹이는 자였다.(요10:1-4)

약4:14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

요10:1-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양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넘어들어 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라.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그에게 문지기가 문을 열면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러면 그는 자기 자신의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이끌어 내느니라. 그가 자기 양들을 이끌어 낸 후 양떼 앞에서 걸어가면 양들이 그를 따라가나니 이는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알기 때문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눅11:51과 마23:35에서 아벨이 역사의 실존 인물이었음을 확실히 하셨다. 만약 바르트와 브루너가 옳다면 우리는 예수께서 영성고양의 목적을 위해 우화를 실제 역사처럼 적용하셨을 뿐이라고 믿어야만 할 것이다.

눅11:51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은 사카랴의 피까지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피는 이 세대에서 찾아내야 하리라.

마23:35 그리하여 땅에 쏟아진 의로운 모든 피가 너희 위로 돌아오리니,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너희들이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인 바라키아의 아들 사카랴의 피까지니라.

“카인은 땅을 경작하는 자였더라.” 사태는 처음부터 잘못되어 가고 있다. 왜냐하면 카인은 저주받은 땅을 경작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주 하나님께서는 5절에서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다. 반면 아벨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체를 돌보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4절에서 아벨의 제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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