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 주여, 의로운 자를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시고, 나의 기도에 귀기울이소서. 이는 거짓된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이다.
다윗이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 개인적인 의로움에 호소하는 사실을 주목하라.(1절의 ‘의로운 자’라는 표현, 3-4절)
“의로운 자에게 들으소서.” 이 문맥에서 이 말은 내가 의로우니 또는 의인의 편에 있으니 나에게 들으소서라는 뜻이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곧 어떤 것들은 옳고 어떤 것들은 그르다. 한 예를 든다면, 가장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거짓된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이다.”는 ‘나는 이것을 지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니이다. 그것은 마음에서 나오고 있나이다.’라는 뜻이다.
2 나의 변호가 주의 임재로부터 나오게 하시고, 주의 눈은 공평한 것들을 보소서.
기도에 있어서 다윗은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선고를 내릴 수 있는 재판장 앞에 나오고 있다.(2절) 그리고 그는 이 재판장께 요청하기를 증거를 보고 자신을 두둔하는 결정을 해 주시라고 하고 있다.
마귀는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에 있다.(욥1:6 계12:10)
욥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왔더라.
계12:10 또 내가 들으니, 한 큰 음성이 하늘에서 말하기를 "이제 구원과 능력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권세가 임하는도다. 이는 우리 형제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고소하던 그 고소자가 쫓겨났기 때문이니라.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셨고 주께서 밤에 나를 찾아 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리니, 나는 내 입이 범죄하지 아니할 것을 작정하였나이다.
4 인간의 행실에 관하여 말한다면, 내가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멸망시키는 자의 길에서 나를 지켰나이다.
다윗은 자기의 마음이 의롭다는 것을 확신하여(3절, 그의 마음은 시험받았다) 발걸음을 들여놓는데,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밤에 감찰받았으나 자기 입으로 범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귀의 길에서 자신을 지켰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사용했다.(시119:105)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모든 것이 훌륭하며 잘 정돈되어 있으나, 여러분은 다윗이 밧세바를 취했을 때와 그 아기가 죽기까지 그 사이에 이 기도를 드렸다면 이 기도가 어떻게 보였을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가? 다윗이 감찰받았다면 그는 아브라함처럼(창22:1-2) 자신이 사랑한 것에 대해 시험받은 것이다. 이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한 것에 대해 시험받을 때까지는 실제로 전혀 시험받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창22:1-2 이 일들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 이삭을 이제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산들 중에서 내가 네게 알려 줄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시더라.
5 내 발걸음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나의 걸음을 주의 길들 안에 세우소서.
다윗은 길바닥에 잘 붙는 신발바닥 한 켤레를 얻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것들은 그가 뒤로 미끄러지지(타락하지) 않게 지켜줄 것이다.
6 오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이는 주께서 나를 들으실 것임이니이다.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시어 내 말을 들으소서.
7 주를 의뢰하는 자들을 대항하여 일어선 자들로부터 주의 오른손으로 그들을 구원하시는, 오 주여, 주의 놀라운 자애를 나타내소서.
7절은 시1-41편의 주제(신뢰)로 돌아간다.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오 주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오른손과 하나님의 팔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된다.(사62:8 41:10 시20:6 48:10 60:5 사53:1)
사62:8 주께서 그의 오른손과 그의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기를 "실로 내가 네 곡식을 다시는 네 원수들의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으며, 타국인의 아들들이 네가 수고하여 얻은 네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니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임이라. 내가 너를 강건하게 하리라. 정녕, 내가 너를 도우리라. 정녕, 내가 내 의의 오른 손으로 너를 높이리라.
시20:6 이제 나는 주께서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구원하심을 아노니, 그는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시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의 말을 들으시리라.
시48:10 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을 따라 주의 찬양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은 의로 충만하나이다.
시60:5 주의 사랑하시는 자가 구제되도록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며, 나를 들으소서.
사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이 문맥에서 거론되는 문제는 영적인 구원이 아니라 무기들을 갖추고 여러분을 죽일 틈을 노리는 사람들로부터의 구출이다.
8 나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시며
9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싸 죽이려 하는 원수들로부터 지켜 주소서
10 그들은 자신들의 기름에 갇혔으며 그들의 입으로는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다시한번 마귀들과 그 마귀(사탄)가 갖는 특별한 관계를 주목하라. 그리고 어리석은 자들과 어리석은 자(시14편) 용들과 그 용이 갖는 관계도 주목해 보라. 성령님께서는 몇 번이고 단수 선행사를 가진 복수형들을 배치해 놓으셨다. 시14편에서 어리석은 자는 갑자기 시14:1,3에서 “그들은”, “그들이”가 되어버린다. 여기서는 사람들(14절)과 나를 죽이려 하는 원수들(9절)이 갑자기 단지 “그”라고 되거나 한 젊은 사자가가 된다.(12절) 욥40:15에서 이런 이상한 혼합이 나오는 것을 주목하라. 거기서는 하나의 동물이 동물들(비히못)이라고 불린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자기 마음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며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시14:3 그들은 모두 다 곁길로 갔으며 그들이 모두 함께 더럽게 되어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욥40:15 이제 내가 너와 함께 만든 비히못을 보라. 그가 소처럼 풀을 먹는도다
멸망의 아들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 혼, 영을 가지시고 또 하나님의 몸, 혼, 영을 가지신 것과 똑같이,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의 천사로, 주의 천사들로, 또 도살당하였던 것같은 한 어린 양(계5:6)으로, 일곱 등불(계4:5)로, 또 한 책을 가지시고 보좌 위에 앉으셔서 그 책을 취하러 다가오는 이에게 그것을 주시는 분으로(계5:7) 나타나시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계5:6 이에 내가 보니, 보라, 보좌와 네 생물의 한가운데와 장로들의 한가운데 도살당하였던 것같은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졌더라.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계4:5 그 보좌에서는 번개들과 천둥들과 음성들이 나오고,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불타고 있었으니, 그것들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계5:7 그가 와서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서 그 책을 취하더라.
눈동자는 히브리어로 “눈의 작은 사람” 또는 “눈의 딸”이라고 불린다. 사람은 자기의 눈을 돌본다. 눈은 사람이 가진 가장 귀중한 것이다. 몸의 빛은 눈(마6:22)이지 귀나 손이나 발이나 다리나 코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6:22 몸의 빛은 눈이라. 그러므로 네 눈이 순전하면 네 온 몸이 빛으로 가득 찰 것이요
주의 날개 그늘(8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23:37에서 말씀하신 것같이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돌보시는 것을 언급한 말이다. 다윗에게는 그를 죽이려 하는 원수들이 있고 그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다.(삼상23:26) 다윗은 하나님의 날개에 둘러싸여 있고, 반면에 그의 원수들은 자신들의 기름에 둘러싸여 있다.
마23:37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며 너에게 보낸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야, 마치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함께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삼상23:26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갔으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포위하고 잡으려 하였기 때문이더라.
또 다시 적그리스도에 대한 이 독특한 언급을 주목하라.(신32:15 욥15:27) 다윗은 환란 때의 이스라엘에 대해 말하므로 이 원수들이 단지 나를 에워쌌다고만 하지 않고, 그들은 이제 우리의 걸음을 에워싼다(11절)고 말한다. 환란의 끝에 이스라엘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북남중앙 아메리카, 그리고 영국과 근동 지역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8절의 기도는 응답될 것이다.(슥2:8)
신32:15 그러나 여수룬이 살찌자 걷어찼도다. 네가 살찌고 네가 굵어지고 네가 기름으로 덮이니, 그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렸고 자기 구원의 반석을 가볍게 여겼도다.
욥15:27 이는 그의 얼굴은 살지고 옆구리는 기름기로 겹살이 되었음이라.
슥2:8 이는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함이라. 그 영광 후에 그가 너희를 약탈한 민족들에게 나를 보내셨나니, 이는 너희를 손대는 자가 그의 눈동자를 손대는 것이기 때문이라.
11 그들은 이제 우리의 걸음을 에워싸고 자기들의 눈을 땅에 내리깔았나이다
12 그들은 자기 먹이를 탐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숨어 기다리는 젊은 사자 같나이다.
13 오 주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시며 그들을 꺾으소서. 악인으로부터 나의 혼을 구하소서. 그는 주의 칼이니이다.
11절은 자기 머리를 숙이고 땅의 냄새를 맡으면서 길을 따라 빨리 걸으며, 직접 땅을 살피다가 이따금 먹이가 시야에 나타나면 힐끗 보는 사자(12절)를 보여준다.
이 사자는 자기 먹이를 향하는 사자이다.(이 사자는 벧전5:8처럼 두루 다닌다.) 둘째 사자는 덤불 가운데나 바위 뒤에 엎드려서 길을 따라 내려오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사자이다.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의 칼이 아니라, 악인이 하나님의 칼이다.(13절) 적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그리스도를 거부한 이스라엘에게 가져오시는 형벌을 실행하는 도구이다.(계13:7-8) 이번에는 하나님의 손(14절)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다.(시10:18)
벧전5:8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의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
계13:7-8 그가 성도들과 싸워 그들을 이기는 권세를 받았으며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더라.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죽임당한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땅에 사는 모든 자는 그에게 경배할 것이라.
시10:18 아비 없는 자와 압제당하는 자에게 공의를 행하셔서 땅의 사람이 다시는 압제하지 못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칼로서의 악인은 그리스도인을 위협하여 올바로 행하게 하고 반격하는데 쓸 칼을 발견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 칼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으로 돌아가면 그를 상처 내거나 죽이기 위한 것이며, 악인들에게 심판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사용하여 필리스티아인들을 멸하셨고 바빌론을 사용하여 유대인을, 페르시아를 사용하여 바빌론을, 그리고 그리스를 사용하여 페르시아를 멸하였으며 계속 그런 식으로 하였다. 이 시편에서 하나님의 칼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벌하기 위한 것이며, 이 시편에서 하나님의 손은 예언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14 오 주여, 주의 손인 사람들과 이생에서 자기들의 몫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나의 혼을 구하소서. 주께서 주의 감추어진 보화로 그들의 배를 채우셨으니 그들은 자녀들로 가득하고 그들의 남은 재산을 자기들의 아기들에게 남겨 주나이다.
15 나, 나는 의 가운데서 주의 얼굴을 보리니, 내가 깨면 주의 모습으로 만족하리이다.
이 시편은 세상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을 비교하는 것으로 끝난다. 세상 사람을 특징 지워 주는 것은 그가 단지 동물처럼 살고 죽는다는 것이다. 모든 동물은 세 가지 동물적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보호, 가지 번식, 자기만족이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먼저 너는 나중에, 섹스, 긴장을 푸는 취미활동 그리고 좋은 음식이다.
세상 사람은 보통 부유하여 많은 유산을 남기지만 모든 영원한 보상과 복들을 놓쳐버린다. 눅12:17-21의 사람은 그것의 완벽한 실예이다. 세상 사람은 음식과 옷과 집과 쾌락과 보호수단을 얻는 일을 성공적으로 하며, 자기가 먹거나 해치울 수 없는 것은 자기 자손들에게 남겨준다. 그는 가문과 시대를 일으켜 세운다. 그는 동물처럼 번식하는 것과 죄를 즐기면서 몇 사람의 입을 먹여 살리는 것 외에는 계획이나 목표가 없다.
눅12:17-21 그가 속으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할까?' 하고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창고들을 헐고 더 큰 것으로 지어서 거기에 나의 모든 곡물과 물건들을 쌓아두리라. 그리고 나서 내 혼에게 말하기를, 내 혼아,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물건들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편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가리니 그러면 네가 장만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므로 자신을 위하여는 보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 앞에 부요하지 못한 자는 다 이러하니라."고 하시더라.
반면에 경건한 사람(15절)은 두 가지 것에 관심이 있는데, 그 둘 중 어느 것도 자기 보호, 자기 번식, 자기만족과는 상관이 없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과 하나님의 모습에 관심이 있다. 그밖에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유일한 것은 의이다.
교리적으로 말한다면, 이러한 관심은 오직 새로운 출생에서만 유래될 수 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오감(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가지고 있으며, 오감뿐이기에 영원히 그리스도처럼 되기 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그것이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며 하는 것이라고는 기계적으로 하는 여러 종류의 성사들이나 판에 박힌 종교적 의무들을 거행하는 것 밖에는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얼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얼굴은 고후4:5-6에서 나타난다.
고후4:5-6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가 주이신 것과 우리 자신이 예수를 위하여 너희의 종인 것을 전파하노라. 이는 어두움 속에서 빛이 비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마음에 비추셨기 때문이라.
15절의 사람은 여기 땅 위에서는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는 의롭게 행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 가운데 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한다. 그는 영원한 가치에 목표를 두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며(고후4:18) 죄 없는 완전함 이 외에는 땅 위나 하늘에 있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은 아무도 그런 목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없다.
고후4:18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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