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1-11)

창세기 4장 8절 - 12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6. 14:40

8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과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이니라.

 

변개된 70인역(오리겐, 심마쿠스, 테오도티안이 주후 150-200년에 만들어 낸 위조성경)에는 ‘우리 들로 나가자’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이 변개된 부분이 1952년 RSV에 그대로 보존되었다. RSV는 때로는 70인역이 첨가해 놓은 부분을 삭제하기도 한다. 이것은 번역자 마음대로다. KJV은 8절 중간에 “들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과 이야기하더라.”

대화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피의 속죄를 믿는 사람들과 자기 의를 내세우는 교회 회원들 사이가 어떠한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했으리라고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벨 : 형도 구원받을 수 있다니까!

카인 : 이봐, 멍청아, 잘 들어보라구! 쓸데없는 짓 말고 너는 너의 종교나 갖고 꺼져. 나는 내 종교를 고수할테니.

아벨 : 맞아! 나는 하나님께서 내 종교는 인정하셨지만 형의 종교는 거부하신 것을 봤어!

카인 : 이 자식이 까불어!

그때 카인은 괭이로 동생을 내리쳤다. 아벨은 막대기를 집어들었으나 카인은 힘센 장사였다. 아벨은 땅에 나가 떨어졌다. 그는 일어나려 했다. 그때 카인이 그의 머리, 어깨, 팔, 등, 얼굴에 괭이로 거듭거듭 내리쳤다. 5분이 채 되기도 전에 이 땅을 영화롭게 하였던 그 첫 인간의 시체는 피를 흘린 채 땅바닥에 눕고 말았다.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피를 흘리고 죽어갔던 것은 양이었고(창3:21) 최초로 죽어 간 사람은 목동이었다.(히13:20)

히13:20 이제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께서 영원한 언약의 피를 통하여

참된 믿는 자의 종교를 그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것은 그의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증거를 없애려면 그를 죽이는 수밖에 없다.(계17:1-6) 왜냐하면 염주, 초, 건물, 책, 옷, 집, 심지어 그의 목숨마저도 그 안에 내주하시는 구세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종교를 빼앗거나 태워 버릴 수 있다면 그 종교는 카인의 유물일 수밖에 없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자기 마음안에 말씀을 가지고 있고, 찬송을 암기하고 있으며, 질그릇 안에 보배를 담고 있다. 카인의 길을 따라 그를 좇지 않는 한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를 없앨 수는 없다.

계17:6 또 내가 보니,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더라.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보고 크게 의아해 하며 놀랐노라.

9 주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이 구절은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 설교자들이 좋아하는 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마귀가 인용하는 대부분의 성경구절이 성경에 대한 의문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창4:9이나 말2:10 등이 그 문맥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인간은 모두 형제이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의 아버지요 우리는 우리 형제를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은 그리 이상할 게 못된다.

말2:10 우리 모두가 한 아버지를 모시지 아니하였느냐?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를 거스르고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모독함으로써 반역하여 행하느냐?

이 구절을 볼 때면 우리는 창37:4 마28:10 요1:11로 건너 뛰어 아벨이 예표하고 있는 그분께서 그의 형제들에게 거절당하고 살해되었음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행7:52)

창37:4 그의 형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모든 형제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는 말도 온순하게 하지 않았더라.

마28:10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하시더라.

요1:11 그가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더라.

행7:52 선지자들 가운데서 너희 조상이 박해하지 아니한 사람이 어디 있었느냐? 또 그들은 의로우신 이의 오심에 관하여 미리 말한 그들을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로우신 분을 배반한 자요 살인한 자가 되었으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모르나이다

완벽한 불가지론자의 답변이다. 그는 어디에 동생의 시체가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땅에서 살았던 살인자 치고 경찰을 데리고 자기가 죽인 자의 시체로 갈 수 있었던 자는 아무도 없었다. 혹은 죽은 시체가 묻혀 있거나 덮혀 있는 곳으로. 물론 그가 한 사람을 죽일 때 멀쩡한 정신으로 논쟁을 하다가 죽였을 경우 말이다. 카인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는 그의 아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니

자기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의 이 지독한 분노를 보라. 그는 동생을 지키는 것은 자기 의무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동생을 죽이는 것은 자기 의무로 생각했다.

그런데 흑인향상협회 회원은 이 구절을 붙들고 늘어진다. 그러나 이 구절은 거짓말쟁이와 살인자의 발언일 뿐이다. 카인이 행한 답변은 기독교 진리에 대한 교리적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살인자가 하나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던진 질문이다.

이 구절과 마태복음 25장, 야고보서 2장, 요일2:9 3:17 등을 붙들어 매어 흑인향상협회 종교지도자들은 희한한 기독교 교리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적십자, 사회복지, 유엔, 평화봉사단 등이 기독교 활동이라고 사람들에게 믿게 해주는 괴물같은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사업들에 함께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몰아붙인다. 자신들과 함께 바벨탑을 쌓지 않는 자는 참된 그리스도인도 인류의 동포도 아니란 것이다.

요일2:9 그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도 어두움 가운데 있느니라.

요일3:17 누가 세상의 재물을 가졌는데 자기 형제의 궁핍한 것을 알면서도 그를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하겠느뇨?

위에 언급한 모든 구절들은 문맥과는 상관없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되었다. 바울은 기독교 교리를 정의함에 있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세상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점에서 형제를 지키는 자이다.(요일5:1-3)

요일5:1-3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으며, 낳으신 그 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분께로부터 태어나신 이도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면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함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니라.

물론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이웃들(롬9:1-3)에 대해 동정심을 갖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고 기도도 한다.(행20:24 딤전2:1-2,6-7) 사회주의자들과 카톨릭이 추천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선사업들은 성경 그 어디에도 그리스도인의 행동강령으로 나와 있지 않다. 가난한 성도들이 아닌 그저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단 한번도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은 요한복음 12장으로 그 자선사업의 후원자는 다름 아닌 유다 이스카리옷이었다.

롬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노니, 나의 양심이 성령안에서 나를 증거함이라. 내 마음에는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슬픔이 있노라. 육신에 따른 내 형제들,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랐노라.

행20:24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온전히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리라.

딤전2:1-2 그러므로 내가 무엇보다도 먼저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하되 왕들과 권세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청렴함 가운데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딤전2:6-7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값으로 내어 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되리라. 이를 인하여 내가 전도자와 사도로 지명을 받았으며,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노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들의 선생이 되었노라.

10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 말은 3:13의 반복이다. 주님은 헤롯의 질문에도 그러한 것같이(눅23:9) 카인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답변도 하지 않을 그런 질문을 듣고 성경적 도덕적 답변을 찾으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회의론자의 시간 낭비일 뿐이다.

눅23:9 그가 많은 말로 주께 묻되, 주께서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더라.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부르짖느니라.

이 표현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면 문자적이다. 하지만 카인의 관점에서 보면 비유적이다. 피는 “말한다.”(히12:24) 피는 사람이 죽은 후 말하며(히11:4) 복수를 요구하기도 한다.(계6:10) 이 피는 그 피를 흘리게 한 사람의 피가 아니고는 땅에서 깨끗해질 수 없다.(민35:33 마27:25 행5:28)

히12: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에게와, 아벨의 피보다 더욱 좋은 것을 말하는 뿌리는 피에게니라.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의로운 자라고 증거를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인정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아직 말하고 있느니라.

계6:10 그들이 큰 음성으로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여,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을 심판하시어 우리의 피를 갚아 주실 날이 얼마나 남았나이까?" 하더라.

민35:33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가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이는 피로 인해 그 보복이 그 땅을 더럽힘이니, 그 땅은 피를 흘린 사람의 피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그곳에 흘려진 피에 대해 깨끗해질 수 없느니라.

마27:25 모든 백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더라.

행5:28 말하기를 "이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너희에게 엄하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보라, 너희가 예루살렘을 너희의 교리로 가득 채워서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려 하는도다"라고 하니라.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로 이 진리에 입각해서 다른 모든 의견은 판단받아야 한다. 따라서 이에 대해 이제껏 행해진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많은 역사가 피의 역사이며 피로 해결될 역사이다. 이스라엘은 신명기 21장과 렘33:8까지는 피를 흘린 죄로부터 깨끗하게 될 수 없다.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으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으니, 이제 너는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으리라.

이 장면은 인간으로서 최초로 저주받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 창3:17에서는 땅이 저주를 받았으나 이제는 이 땅을 경작할 사람도(창4:2) 저주를 받았다.

계속되는 구절에서 우리는 차별이라고 하는 주제를 접하게 된다. 이 단어는 현대인들이 극구 거부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에게는 이 단어가 그토록 거부감을 주는 것같다.

저주(Anathema)는 트렌트공회(1546)에서 선포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교황의 추종자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께서 이 지상의 모든 남녀를 모조리 저주한 것처럼 보인다. 이 공회에서 내려진 교황의 교리칙서는 ‘만약 어떤 사람이든 이것을 믿지 않으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선포하고 있다.

이 같은 선언은 자기들의 능력에 대해 서로 논쟁을 했던 주교와 의사를 생각나게 한다. 주교는 자기가 자기의 적들을 저주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의사는 말하기를 ‘그러나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저주를 받으라고 말할 때 그것은 추정에 불과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을 두고 그는 죽었다고 선언하면 그는 정말 죽은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유없는” 저주는 오지 않는다.(잠26:2)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지 않는 그 어떤 저주도 신경쓸 것이 하나도 없다.(신27장,29장 레24장 렘44장 갈3;10,13 벧후2:14 마25:41) 또한 구약성경 39권(3X13)의 마지막 단어는 “저주”(curse)이다.

잠26:2 새가 떠돌아다니고 제비가 날아다님같이, 까닭없는 저주도 임하지 않으리라.

갈3:10 율법의 행위로 난 자들은 누구든지 저주 아래 있느니라. 기록되기를 "행하도록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해서 행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저주를 받느니라."고 하였음이라.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셔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되기를 "나무에 매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은 자라."고 하였도다.

벧후2:14 음욕이 가득 찬 눈을 가지며 죄로부터 단절될 수 없고, 견고하지 못한 혼들을 유혹하며 그들은 마음이 탐욕으로 단련되었으니 저주받은 자식들이니라.

마25:41 그때에 왕이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말하기를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현대의 과학자들과 교육자들은 이 저주라는 단어를 쓴웃음을 지으며 바로본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잘못 적용되어 왔고 어떻게 잘못 사용되다가 이제는 사라지게 되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자신들은 그런 언어를 쓰지 않는 착한 사람들인 것처럼 행세한다. 결국 이들은 거듭나지 못한 채 그들에게 정해진 곳으로 가버리게 된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25:41)

왜냐하면 이들은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어(갈3:13) 우리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고후5:21) 해주신 하나님의 예비하신 자,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저주라는 단어가 쓰인 곳은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된다(잠20:20 창27:29 9:25 시119:21 말3:9 렘24:9)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셔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되기를 "나무에 매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은 자라."고 하였도다.

고후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잠20:20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자기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의 등불은 깊은 흑암 중에 꺼지리라.

창27:29 백성이 너를 섬기고 민족들이 네게 절하며, 네 형제들 위에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절하며 너를 저주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모든 자는 복을 받을지어다." 하더라.

창9:25 카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니,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지어다.

시119:21 주께서는 저주받은 교만한 자를 꾸짖으셨으니, 그는 주의 계명들에서 떠난 자니이다.

말3:9 너희가 저주로 저주를 받았으니, 이는 너희와 이 온 민족이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음이라.

렘24:9 또 내가 그들을 학대받도록 세상의 모든 왕국들에게 넘겨주어 내가 그들을 몰아낼 모든 곳에서 비난과 속담과 조롱과 저주가 되게 하리라

“이제 너는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으리라.”

이 말씀은 창9:25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여기 저주를 받은 두 사람이 있다.

창9:25 카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니,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지어다.

히브리어, 헬라어의 “저주받은”(cursed)이란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면 사람들이 옛 어휘들을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하나님은 외모를 존중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문자적일 리가 없다.’와 같은 상투 어구들을 들먹거리는 사람들의 모든 편견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에게 저주를 내렸다는 사실은 변치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하나님의 권위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넣으신 그 말씀들은, 성경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역사적 사실들로 확고하게 입증되어 있다. 두 인종의 운명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면 이들과 창조주와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극명하게, 본질적으로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이 두인종들은 하나님에 의해 너무도 크게 저주를 받아서 이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든가 혹은 축복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구원에 관한한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존중하지 않으신다.(엡6:9 골3:25 롬2:11 벧전1:17)

엡6:9 또 주인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동일하게 행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너희의 주인도 하늘에 계시며 그 분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심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라.

골3:25 그러나 악을 행하는 자는 자기가 행한 악에 대하여 받으리니, 거기에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롬2:11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라.

벧전1:17 또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판단하시는 분을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다면 나그네 시절을 두려움 속에서 지내라.

그러나 족속들과 민족들과 인종들의 죄에 대해 심판에 관해서는(출20:5 민14:22-24 렘44:27 습3:8 렘30:11) 성경은 현대적 사고를 지닌 분들에게는 상당한 분노를 자아내게 만드는 그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출20:5 너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지니라. 이는 나 주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임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의 삼사 대까지 그 아비들의 죄악을 자식들에게 미치게 하고

민14:22-24 이집트에서와 광야에서 내가 행했던 나의 영광과 기적들을 보았던 그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처럼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였으며 내 음성을 청종치 않았으므로 그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했던 그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며, 또 나를 진노케 했던 그들 중의 누구도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 종 칼렙은 그에게 다른 영이 있어 나를 온전히 따랐으니, 그가 갔던 그 땅으로 내가 그를 데려가서 그의 씨가 그 땅을 소유하게 하리라.

렘44:27 보라, 내가 복이 아니라 재앙을 주려고 그들을 살펴보겠으며, 이집트 땅에 있는 유다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끝이 오기까지 칼과 기근으로 진멸되리라.

습3:8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일어나서 먹이로 삼는 날까지 나를 기다리라. 이는 내 결심이 민족들을 모으는 것임이니 내가 왕국들을 모아서 그들 위에 내 분노, 곧 나의 모든 격노를 쏟으리라. 이는 온 땅이 내 질투의 불로 삼켜질 것임이라.

렘30:11 주가 말하노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요 내가 너를 흩어 버렸던 모든 민족들의 결말은 있게 할지라도, 내가 너의 결말은 있게 하지 않겠노라. 그러나 내가 너를 공의로 바로잡으리니, 처벌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지는 아니하리라.

우리의 눈을 감고 하버드 대학교수들이 추천하는 산더미처럼 많은 고전들이 주장하는 피상적인 추측들에 눈을 돌리는 대신 우리의 눈을 부릅뜨고서(시119:18) 분명한 사실들을 성경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이제 너는 저주를 받으리라.”

시119:18 내 눈을 열어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의 경이로운 것들을 보리이다.

① 카인은 표를 가지고 있다.(창4:15) 적그리스도 역시 표를 가지고 있다.(계13:1-18) 이 표는 표범의 표이다.(렘13:23)

창4:15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라도 앙갚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주께서 카인에게 표를 하여 그를 만나는 어떤 사람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시니라.

렘13:23 에디오피아인이 그의 피부를 바꿀 수 있으며, 표범이 그의 점들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악을 행하는데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② 카인의 그 표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알아볼 수 있다.(창4:14-15)

③ 카인은 도피자와 유랑자이므로(창4:14) 농사를 짓고는 살 수 없다.(창4:12)

창4:14 보소서, 주께서 오늘 이 지면으로부터 나를 쫓아내시오니, 내가 주의 낯으로부터 감추어지리이다. 그리하여 내가 땅에서 도피자와 유랑자가 되리니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창4:12 네가 땅을 경작하여도 이제부터는 네게 그 효력을 내지 않을 것이요, 너는 땅에서 도피자와 유랑자가 되리라.

④ 카인은 도시 사람이며(창4:17) 하나님께서는 그가 끊임없이 불평함에도(창4:13) 불구하고 그를 보호해 주신다.(창4:15)

창4:17 카인이 그의 아내를 알았더니, 그녀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카인이 도성을 세우고 그 도성의 이름을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이라 하였더라.

창4:13 카인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내 벌이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크니이다.

이제 답해 보라. 당신은 표범의 표나 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전쟁시 보호를 받았으며 세계대전에서도 제일 적은 사상자를 낸 그를 찾아낼 수 있는가?

다시 한번 이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① 카인은 아벨을 죽였다.(창4:8)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요15:25) 아벨은 자기 형제에게 죽임을 당했다.

② 카인은 아벨을 죽이기 전 농사꾼이었다.(창4:12) 그 후 도시 사람이 됐다.(창4:17)

③ 카인은 순례자이며 타국인이 아니라(벧전2:11) 도피자와 유랑자였다.(창4:14)

④ 카인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고 그를 괴롭히는 사람에게는 복수가 약속되었다.(창4:15)

⑤ 그의 형제의 피를 복수를 요구하였다.(히11:4 창4:10 마27:25)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의로운 자라고 증거를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인정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아직 말하고 있느니라.

창4:10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부르짖느니라.

마27:25 모든 백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더라.

그 종족이 농사꾼과 유목민이었다가 현재는 도시의 상인들이며 이유없이 자기친족을 죽였으며 그 이후로 도피자와 유랑자가 되었으며 비록 구원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 보호받고 있으며 과거에 저지른 살인행위에 대한 죄값을 치루고 있는 이 모든 특징을 지니고 있는 자를 찾아낼 수 있는가?

12 네가 땅을 경작하여도 이제부터는 네게 그 효력을 내지 않을 것이요, 너는 땅에서 도피자와 유랑자가 되리라." 하시니라.

카인은 21세기의 그의 동료들처럼 결코 농사꾼으로서는 성공할 수 없다. 지주나 임차인으로는 성공할 수 있으며 소작인 혹은 종들의 종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땅을 갈고 쟁기질하고 경작하는 때는 땅이 효력을 내지 않게 된다.

도피자와 유랑자는 타국인과 순례자와 대조되는 표현이다.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범죄자나 법으로부터의 도피자가 되지 않고서도 타국인 혹은 외국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카인은 도피자(도망자)였다. 순례자는 목적없이 떠돌아 다니는 자가 아니라 마음속에 묵적지를 갖고서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다. 반면 유랑자는 아무런 목적지 없이 그냥 떠돌아 다니는 자로 바로 카인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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