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망시키리니, 즉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이라.
오늘날의 최고의 석학들과 주석가들은 노아의 세계와 문명을 최대한 축소시켜 중동지역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범람시키는 정도로 해석해 버린다. 주(LORD)를 이스라엘의 민족 신으로 격하시켜 야훼(Yaweh)라고 부르고 범세계적 홍수도 지역적 홍수로 축소시켜버리는 이 가증한 행위는 타락한 학문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나 리엘의 지질학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축소작업이 꼭 필요하다. 이들 학자님들의 견해에 따르면 전세계적인 홍수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범세계적 홍수는 진화론에 맞지 않는다.
* 범세계적 홍수는 지질학 이론에 맞지 않는다.
우리의 평가를 두고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 아니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위의 두 이론을 검토해 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다윈과 리엘은 산의 생성기원, 화석증거의 결여, 극관(polar caps), 빙하속의 마스토몬(맘모스류), 자극(magnetic pole), 지구의 기울어진 축, 쥐돌고래와 고래들의 기원, 동물의 성의 기원 및 그밖의 30가지가 넘는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 전혀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다.
지역적 홍수 이론은 다윈과 리엘을 합리적인 과학자라고 믿는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이 두사람과 이들의 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전에는 이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망시키리니“ 이것은 아담에 대한 언급이 아니다. 이것은 다음 구절을 보면 분명해진다.
”모든 육체의 종말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창6:13)
”내가 땅 위에 물들로 홍수를 일으켜 생명의 호흡이 있는 모든 육체를 멸망시키리니, 무릇 하늘 아래로부터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죽으리라.“(창6:17)
”이제 칠 일이 되면 내가 사십 일 낮과 사십 일 밤 동안 땅 위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창7:4)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육체가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짐승과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들과 모든 사람이라. 마른 땅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코로 생명의 호흡을 하던 모든 것은 죽었더라. 지면에 있는 모든 생물이 멸망하였으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이라. 이들은 땅에서 멸절되었으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이 살아 남았더라.“(창7:21-23)
버나드 램과 신복음주의에 따르면 위의 구절들이 뜻하는 것은 노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라고 한다. 즉 당시의 제한된 지식과 과학적 지식 및 정보의 결여로 인해 노아가 바라보았던 모든 곳이 홍수로 뒤덮였으므로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 실제는 전세계적인 홍수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위에 인용된 구절들은 노아가 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말씀한 것인 줄 모르는가? 어떤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냐?(창3:1)고 물을지 모르지만 대답은 절대적으로 ”그렇다“이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과학적 정보가 결여되고 지식이 제한되어서 모세에게 정확한 사실을 가르쳐 주실 수 없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이는 내가 그들을 지었음을 후회함이라." 하시니라.
사랑의 수고로 지음받은 피조물이 부패하고(창6:12) 폭력으로 가득하고(창6:11) 계속해서 악할 뿐(창6:5)이라면 당연히 그것을 만든 분은 그것을 만든 것은 후회할 것이다. 만약 내가 노아, 아브라함, 이삭, 룻 등이 교황이나 히틀러나 비틀즈나 마돈나같이 되어버린 것을 본다면 나도 당연히 이를 비통해 할 것이다.
창6:12 하나님께서 땅을 보셨는데, 보라, 그것이 부패되었으니, 이는 모든 육체가 땅 위에서 그 행위를 부패시켰음이라.
창6:11 땅도 하나님 앞에 부패하였으니 땅이 폭력으로 가득하였더라.
창6:5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구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8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서 은혜를 찾았더라.
여기에서 최초로 성경에 은혜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우리는 늘 하는 대로 처음으로 언급된 것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이 은혜는 분명하고도, 신비스럽게, 공개적이면서도, 수수께끼처럼 등장하고 있다. 이 은혜는 성경의 마지막 구절인 계22:21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되고 있다.
계22: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에 등장하는 은혜는 너희가 은혜로 구원받았다라고 하는 은혜시대의 교리와는 같지 않지만(창3:21) 적어도 노아의 의로움의 정도를 인정하고 이를 존중해 준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창6:9)라는 말씀은 그의 증조부 에녹의 모습을 꼭 닮았다.
창3:21 또 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 아내에게 가죽으로 옷들을 만들어 그들에게 입히시니라.
”주의 눈에서“. 이 표현은 렘5:3 사1:15 시34:5 대하16:9 등에서도 볼 수 있는 신인동형적(Anthropomorphism) 표현이다.
렘5:3 오 주여, 주의 눈이 진실에 있지 않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슬퍼하지 아니하였으며, 주께서 그들을 소멸시켰을지라도 그들이 바로잡히기를 거부했나이다. 그들은 그들의 얼굴들을 바위보다도 더 굳게하여 돌아오기를 거부했나이다.
사1:15 너희가 너희 손을 내밀 때면 나는 너희에게서 내 눈을 가리우리라. 정녕, 너희가 기도를 많이 할 때에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 손은 피로 가득하도다.
시34:5 그들이 주를 바라보고 광채가 났으니, 그들의 얼굴이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도다.
대하16:9 이는 주의 눈은 온 땅을 두루 살피시어 자신을 향하여 마음이 온전한 자들을 위하여 자신이 강함을 보이심이니이다. 왕이 이 일을 어리석게 행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왕에게 전쟁들이 있으리이다.
9 이것이 노아의 내력이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노아는 당대에 온전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의인이요 그 당대에 완전한 사람“. 완전한 사람이란 흠이 없다는 뜻이다. 욥1:1,8의 온전함과 연관된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처럼 구약에서도 결코 죄없는 완전함 혹은 죄없다는 뜻이 아니다.
욥1:1 우스 땅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욥이더라.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피하는 사람이더라.
욥1:8 주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종 욥을 유의해 보았느냐? 세상에 그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그는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피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온전하시다고 묘사한 구절에서도 그렇다.(마5:48) 이 단어가 쓰인 곳은 그 어느 곳이든지 이 단어의 의미는 어떤 사람(혹은 사물)이 논의되고 있는 바로 그 주제에 관련하여 의롭다는 것을 뜻한다.
마태복음 5장은 공정성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눅13:32는 사역이 다 끝날 것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 주님께서 점점 죄없이 되어 가신다는 뜻은 아니다.
마5: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눅13:32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그 여우에게 말하라. 보라, 오늘과 내일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려니와 셋째 날에는 온전하게 되리라.
엡4:12은 실행과 교리에 있어서의 성숙을 다루고 있으며 고전2:6은 진리를 아는 성도들에 관해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자신은 아직 온전하지 못하다고(빌3:12) 고백했던 바울에 의해 언급된 것이다.
엡4:12 이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고전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도 아니요, 무로 돌아갈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니라.
빌3:12 내가 이미 이르렀다 함도 아니요, 이미 온전해졌다 함도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 예수에 의하여 붙잡힌 그것을 나도 붙잡으려고 좇아갈 뿐이라.
미국의 성결(Holiness)그룹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죄없이 온전해질 수 있다는 파괴적 가르침을 퍼뜨렸다. 그러나 요한은 이에 대해 반대의 지적을 하고 있다.(요일1:7-10)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랐던 가장 위대한 사람이 거듭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도(롬7장) 죄가 여전히 자기와 함께 있음을 고백했다. 심지어는 그는 죽기 2년 전 쯤에 쓰인 딤전1:15에서는 자기가 죄인의 우두머리라고 고백하였다.
요일1:7-10 그러나 그 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나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는 그 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요, 그 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
딤전1: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
성경이 노아는 완전한 사람, 욥처럼, 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 당시의 온갖 죄악들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오늘날로 치면 댄스장, 사창가, 도박, 술집 등) 벌링거는 ‘노아와 노아의 가족만이 당시 타락한 천사들이 가져온 온갖 타락한 풍속들로부터 순수성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만이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였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10 노아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펫이라.
여기서 다시 한 번 세 명의 사람이 함께 등장한다. 이 들 세사람은 함께 등장할 때 늘 이 순서대로 등장한다.(창5:32 6:10 10:1) 출생순서에 관해서는 창5:32에서 이미 다루었다. 홍수 이후 발생한 문제점들을 감안할 때 함은 유색인 아내를 갖고 있었거나 아니면 노아가 유색인 아내를 갖고 있었을 것 같다. 우선은 그 어떤 과학적 연구도 성경이 인종에 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성경은 인류가 코카서스 인종이 출발하게 된 지역은 원래 에덴이 있었던 곳으로 마지막 때에 오늘날의 미국보다 훨씬 더 인종분류를 극명히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다.
창5:32 노아는 오백 세가 되어서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더라.
창10:1 이것이 노아의 아들들 셈과 함과 야펫의 후대라. 홍수 후에 그들에게 아들들이 태어났으니
창9:25 말하기를 "카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니,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지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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