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시편 1권(1-41)

시27편 1절 - 14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1. 6. 09:45

1 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주는 나의 빛이요” 그분은 사람의 빛이시고 생명의 빛이시며 세상의 빛이시다.(요1:5) 밥 존스 시니어는 그분이 사회적인 세상의 빛이셨고 예술적인 세상의 빛이셨으며 종교적인 세상의 빛이셨다고 말했다. 만약 여러분이 그분을 따르고 “그 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요일1:7) 여러분은 “어두움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요8:12) 얻을 것이다.

요1:5 그 빛이 어두움 속에 비치어도 어두움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빛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빛이시오”(요일1:5) 어떤 히브리어 학자든지 자기 손에 축자적으로 영감 받은 원본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조명을 주지 않으면 아무 조명도 얻지 못한다.

내 뒤에 빛을 주시고 (그래서 나는 그분이 내게 이루어주신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내 앞에 빛을 주시며 (그래서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볼 수 있다) 내 주위에 빛을 주시고 (그래서 나는 사람들 앞에 나의 빛이 비치게 할 수 있다) 내 위에 빛을 주신다. (그래서 나는 내 손에 든 것을 읽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내 생명의 능력”이시지 내 음식과 운동 프로그램이 나의 능력이 아니다.

2 악한 자들, 곧 내 원수들과 대적자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 왔다가 걸려 넘어졌도다.

이 구절은 환란 때 있게 될 문자적인 식인 풍습(시16:4 사6:13 계6:11)을 다루는 환란 구절이다.

시16:4 다른 신을 급히 좇는 자들의 슬픔이 커지리니, 나는 그들이 바치는 피의 술제물을 바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름들도 내 입술에 두지 아니하리라

사6:13 그러나 그 안에 아직도 십분의 일이 있을 것이요 그것이 돌아와서 먹힐 것이니, 잎이 떨어져 줄기가 남아 있는 보리수나무와 상수리나무처럼 거룩한 씨도 그 줄기가 되리라.

계6:11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긴 흰 옷을 주시면서, 그들의 동료 종과 형제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가득 채워질 때까지 잠시만 더 쉬라고 말씀하시더라.

일부 성경 해석가들은 2절을 겟세마네에다 적용하지만(요18:6) 그것은 좀 확대 해석한 것이다.

요18:6 주께서 "내가 그니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뒤로 물러서서 땅에 엎드리더라.

3 군대가 나를 대항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은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전쟁이 나를 대항하여 일어날지라도 나는 담대하리라.

이 구절은 히스키야 당시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왕하19:35) 요압은 그런 상황을 삼하10:13-14에서, 다윗은 삼하18:6-8에서 기드온은 삿7:1-25에서 마주쳤다.

왕하19:35 그 날 밤에 주의 천사가 나가서 앗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더라.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니, 보라, 모두가 시체가 되었더라.

삼하10:13-14 요압과 그와 함께한 백성들이 시리아인들을 대항하여 전장으로 다가가니, 그들이 요압 앞에서 도망하더라. 시리아인들이 도망하는 것을 보자 암몬 자손 또한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가더라. 그리하여 요압이 암몬 자손에게서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가더라.

삼하18:6-8 그리하여 백성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들로 나갔더라. 그때 싸움이 에프라임 숲에서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신하들 앞에서 죽임을 당한 그 곳에서 그 날 이만 명의 대살륙이 있었더라. 전쟁이 나라의 온 지면에 퍼졌으니, 그 날 숲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더 많더라.

4 내가 주께 바라던 한 가지 일, 그것을 내가 구하리니, 곧 내 생애의 모든 날 동안 주의 집에 거하며 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과 그의 성전에서 아뢰는 것이라.

“그의 아름다움 속에 있는 왕”은 “모든 것이 사랑”스러우니(사33:17 아5:16) 어떻게 우리가 “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과 그의 성전에서 아뢰는 것”을 원하지 않겠는가?

사33:17 너의 눈은 그의 아름다움 속에 있는 왕을 볼 것이요, 그들은 매우 멀리 떨어진 땅을 볼 것이라.

아5:16 그의 입은 지극히 달콤하니, 참으로 그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도다. 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의 사랑하는 이는 이러하고 나의 친구는 이러하도다

그분의 성전은 천년왕국 기간동안 땅위에 있다.(겔40-48장) 사람들은 그곳으로 물으려고 올 것이다.(사2:3) 이 부분은 천년왕국에서는 문자적이고 영원에서는 영적이다.(“주의 집에 거하며”)

사2:3 많은 백성이 가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우리가 주의 산에,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자. 그리하면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며 우리는 그의 길에서 행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의 말씀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임이라." 하리라.

5 그가 고난의 때에 나를 그의 처소에 숨기시리니, 그가 그의 장막의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나를 반석 위에 두시리라.

교리적으로 모든 것이 명확하다. 고난의 때는 렘30:7에서 언급된 그 유명한 기간이다. 그때 환란성도는 휴거되어(사26:19-21 시50:3-6) 그 분노가 지나갈 때까지 숨겨진다.(사26:20)

렘30:7 슬프도다! 그 날이 크므로 어떤 때도 그와 같지 않나니, 그 날은 야곱의 고난의 때라. 그러나 그는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라.

사26:19-20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리니, 그들이 나의 죽은 몸과 함께 일어나리이다. 흙에 거하는 너희는 깨어서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수풀의 이슬 같으니, 땅이 죽은 자들을 던져 버릴 것임이니이다.

사26:20 내 백성아, 오라, 네 방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그 분노가 지나갈 때까지 잠깐 동안 숨으라.

시50:5 내 성도들을 내게로 다 모으라. 그들은 희생제로 나와 언약을 맺은 자들이라.

이 문맥에서 그의 성막은 저 시온 산 위에 있는 하늘의 예루살렘이다.(히12:22 계14:1)

히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들과,

계14:1 또 내가 쳐다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 위에 서 있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더라

5절의 반석은 모세가 반석을 보았을 때 그가 서있던 곳인 바위로 예표된다.(출33:22)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고전3:11) 집은 반석 위에 지어져야 한다.(마7:24-25)

출33:22 내 영광이 지날 동안 내가 너를 그 바위틈에 넣어서 내가 지날 동안 내 손으로 너를 덮으리니

고전3:11 이 닦아 놓은 기초 외에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시라.

마7:24-25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현명한 사람과 같아서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며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쳐도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집이 반석 위에 세워졌음이요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에워싼 내 원수들 위로 들리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의 성막에서 기쁨의 희생제를 드릴 것이요, 내가 노래하리니, 정녕, 내가 주를 찬송하리로다.

6절에서는 땅으로 다시 내려오지만 휴거의 그 느낌을 유지하고 있다.(“이제 내 머리가 내 원수들 위로 들리리라”)

다윗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언급하고 있으며, 이번에 성막은 그가 가서 기쁨의 희생제를 드릴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시편들에서 계속되는 이중적인 적용을 눈여겨 보라. 때때로 다윗은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가, 한 구절 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나 유대인 남은 자를 대변하고 있다. 때때로 표현들이 비유적이기도 하고 영적인 승리와 군사적인 승리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때에는 한 민족의 보존이나 야곱의 고난의 때에 남은 자를 다루고 있다.

7 오 주여, 내가 내 음성으로 부르짖을 때 들으시고 또 나에게 베푸셔서 내게 응답하소서.

이 구절은 어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든지 다시, 다시, 또 다시 필요한 실질적인 요청이다. “내게 응답하소서.”

8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셨을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8절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찾은 명령에 순종하면 그의 마음에 그 명령을 주신 분을 뵙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심으로 버리지 마소서. 주께서 나의 도움이 되셨으니, 오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나를 떠나지 마시고 나를 버리지 마소서.

우리는 신약에서(히13:5) 9절의 마지막 부분 “나를 떠나지 마시고 나를 버리지 마소서(forsake).”은 해결하신다는 약속을 가지고 있지만, 두 번째 부분 “주의 종을 노하심으로 버리지 마소서(put away)"에 대해서는 여전히 위험하다.(고전9:27 고전11:30)

히13:5 너희의 생활방식에 탐욕이 없도록 하고 현재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이는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음이라.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고전11:30 이 때문에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약하고 병들었으며 상당수가 잠들었느니라.

10 내아버지와 내어머니가 나를 버릴 때에도 주께서는 나를 받아 주시리이다

10절은 성경에서 고아, 버려진 아이, 또는 구원받았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에 대한 장례식을 치러버린 회심자(이런 일은 유대 가정들에서 때때로 일어난다)들을 위한 가장 위대한 약속들 중의 하나이다.

썬다 씽의 가족은 그가 주 예수님을 영접했노라고 고백한 다음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를 독살하려 했다. 존 카레라는 그가 13살이었을 때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헌신적인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었던)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실제로 그를 방 속에 가두어 굶어 죽게 하려 했었다. 미시간 주 홀랜드에 사는 한 가족이 있는데, 그들은 십대였던 딸이 한 침례교에서 구원받았을 때 그 딸의 방을 비우고 딸의 물건들을 현관 밖으로 내버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버릴 수 있겠는가? 확실히 그들은 할 수 있다.(사49:15-16) 그런 일은 이전에도 일어났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지만, 하나님은 아비 없는 자들(시68:5)과 어미 없는 자들의 하나님이시다.(사66:13) 주님은 부모님처럼 좋으신 분이며(시103:13)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보다 더욱 신실하다.

사49:15-16 여인이 자기의 젖먹는 아이를 잊을 수 있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에게 연민을 갖지 않겠느냐? 정녕, 그들은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으니, 너의 성벽이 계속해서 내 앞에 있느니라.

시68: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아비 없는 자들의 아버지시며 과부들의 재판관이시라.

사66:13 자기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그렇게 너희를 위로하리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시103:13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주께서도 자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

11 오 주여, 내게 주의 길을 가르치소서. 내 원수들로 인하여 나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12 나를 내 원수들의 뜻에 넘겨주지 마소서. 이는 거짓 증거자들이 잔인함을 내뿜는 자들처럼 나를 대항하여 일어섰기 때문이니이다.

거짓 증거자들이 나를 대항하여 일어섰다는 것은 마26:60에서 보듯이 메시야께 해당하는 것일 수 있다.

마26:60 아무것도 찾지 못하였으며, 정녕 많은 거짓 증인이 왔으나 역시 아무것도 찾지 못하더라. 마지막으로 두 명의 거짓 증인이 와서

사무엘상이나 사무엘하에는 그리스도나 나봇(왕상21:10-13)의 경우와 같이 실제적인 의미에서 거짓 증인들이 다윗을 대항하여 일어선 것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의 원수들이 그의 주의에 흩어져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평생에 한 번이라도 누가 사법소송 자리에 나타나 그를 대적하여 증언한 적은 없다.

왕상21:10-13 벨리알의 아들 두 사람을 그의 앞에 앉히고 '네가 하나님과 왕을 모독하였다.' 하며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하라. 그런 후에 그를 끌고 나가 돌로 쳐서 죽이라." 하니라. 이에 나봇의 성읍 사람들, 즉 그의 성읍의 거민들인 장로들과 귀족들이 이세벨이 그들에게 보낸 대로 하였으니, 즉 그녀가 그들에게 보낸 편지에 기록된 대로 하였더라. 그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서 높은 곳에 앉히니 벨리알의 자식 둘이 와서 그의 앞에 앉더라. 그리고 벨리알의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즉 나봇에 대하여 백성 앞에서 말하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모독하였도다." 하자 사람들이 그를 성읍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치니 그가 죽으니라.

13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주의 선하심을 보리라고 믿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쇠잔해졌으리이다.

이 구절은 히12:5,12-15가 기록된 이유를 보여준다.

히12:5 또 마치 자식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으니, 곧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경시하지 말고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12:12-15 그러므로 맥없이 처진 손과 쇠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절뚝거리는 다리로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고침을 받게 하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추구하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은혜에 미치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열심히 돌아보고 또 쓴 뿌리가 나와서 너희를 괴롭게 하거나 혹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라.

14 너는 주를 바라라. 담대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마음에 힘을 주시리라. 내가 말하노니, 주를 바라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려야 할 용무가 없으시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그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분은 서두르지 않으신다. 우리가 기다릴만한 더 좋은 분은 전혀 없다. 달리고 걸어 다니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기다리는(앙망하는) 것이 더 여러분을 강건하게 해 줄 것이다.(사40:31)

사40:31 오직 주를 앙망하는 자는 자기의 힘을 새롭게 하리니, 마치 독수리가 날개로 치솟는 것 같을 것이요, 그들이 달려도 피곤치 않으며 걸어도 곤비치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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