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다가가서 말씀드리기를 "주께서 의인들을 악인들과 더불어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혹시 그 성읍 안에 오십 명의 의인이 있다면, 주께서는 멸하시고 거기에 있는 오십 명의 의인들을 위하여 그곳을 남겨 두지 않으려 하시나이까?
이곳에서 아브라함은 일종의 게임을 하고 있다. 그가 원하는 바는 주님께 다음과 같은 간구를 드리는 것이었다. ‘주여, 롯에게 자비를 베푸사 그를 멸하지 않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직접적인 질문 대신에 상당히 긴 대화를 접하게 된다. 이 대화는 어떻게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에 대한 일종의 비난을 담고 있다.(23절)
어째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에 의문을 제기하는 걸까?(고전3:8 갈6:7 애3:33-34) 하나님께서 의로운 노아를 악인들과 함께 멸하셨는가?(욥22:16) 욥은 그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 말하기를 그분은 온전한 자와 악한 자를 멸망시키신다고 했다.(욥9:22) 오늘날 현실주의자, 회의론자 및 염세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는 나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주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전8:14 9:2)
고전3:8 이제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하나이니라. 그러나 각 사람은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니라.
갈6:7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
애3:33,35 이는 그가 사람들의 자손에게 고의로 고통을 주거나 슬픔을 주지 아니하심이니 지극히 높으신 분의 면전에서 사람의 정도를 제쳐 놓는 일을 주께서 인정하지 아니하시는도다.
욥22:16 그들은 갑자기 끊어졌고 그들의 기초는 홍수로 휩쓸려 버렸도다.
욥9:22 일이 다 한 가지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 분은 온전한 자와 악한 자를 멸망시키신다.' 하였도다.
전8:14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것이 있나니, 곧 악인의 행위에 따라 당하는 의인들도 있고 또 의인의 행위에 따라 당하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말하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9:2 모든 것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임하나니 의인과 악인에게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불결한 자에게며, 희생제를 드리는 자와 희생제를 드리지 않는 자에게 한 가지 일이 있으니, 선인과 죄인이 마찬가지이며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두려워하는 자가 마찬가지라.
인류의 역사 역시 이 주장을 거의 입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 역시 이 세상에서 헤롯이나 빌라도보다 더 나은 대우는커녕 비슷한 대우조차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딤후3:12) 요한 후스는 화형에 처해졌고 바울은 목이 잘렸으며,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고, 요한 노블은 시베리아에서 노예생활을 했고, 리챠드 움브란트는 감옥에서 고문을 당했고, 성 나트(Nate)는 인디안들의 창에 찔렸다는 사실들은 하나님께서 나쁜 사람들뿐 아니라 좋은 사람도 멸망시키심을 보여주는 것같다.
딤후3:12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
따라서 아브라함은 이 순간 걱정이 생긴 것이다. 롯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소돔에 대한 심판이 사람의 외모와 행위에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완전한 심판이 될 것같아 애가 탔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기도는 정직한 기도는 되지 못한다. 마음을 살피시고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는(롬8:27) 분께서 아브라함의 요구를 간접적으로 들어주시는 했지만 아브라함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지는 않았다. 소돔은 멸망 받았다.(벧후2:6)
롬8:27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 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
후2:6 또 소돔과 고모라 성읍들을 무너뜨림으로 정죄하여 재가 되게 하셔서 후세에 경건치 않게 살 자들에게 본으로 삼으셨으며
아브라함의 질문은 영원한 질문인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한 이교도는 어떻게 되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옥으로 보낼 것인가?’와 유사한 질문이다. 로마서 1,2장은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갈 만한 짓을 하지 않고, 지옥에 갈려고 애를 쓰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보내시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의기양양하여 마음 속으로 ‘좋아! 나는 지옥에 갈 만한 짓을 하지 않았고 지옥에 가려고 애쓴 적도 없어, 따라서 나는 안전할거야.’라고 말하는 문명화된 이교도들에게는 이 사실은 너무도 희미한 소망이다. 로마서 3장은 바로 그런 심리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창4:3-6)
아브라함은 50명에서 시작해서 10명으로 내려갔다. 만약 그가 렘5:1을 읽었더라면 그는 10명에서 멈추지 않았을 것이며 심지어는 두 명에서 멈추지도 않았을 것이다.
창4:3-6 시간이 흐른 후에 카인은 땅에서 나는 열매를 가져와서 주께 제물로 드렸고 아벨도 자기 양떼 가운데서 첫배 새끼들과 그 살진 것을 가져왔더니, 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더라. 그러므로 카인이 몹시 격노하고 안색이 변하더라. 주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찌하여 격노하느냐? 어찌하여 네 안색이 변하느냐?
렘5:1 너희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여기저기 달려서, 이제 보고, 알며, 거기 넓은 곳에서 찾으라. 만일 너희가 한 사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그 성읍을 용서하리라.
25 이런 방식을 따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는 것을 주께서 멀리하시며, 의인을 악인과 같이 여기는 것도 주께서 멀리하옵소서. 온 땅의 심판자께서 의를 행치 않으시려나이까?" 하니
26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소돔 성읍 안에서 오십 명의 의인을 찾는다면, 그들을 위하여 모든 곳을 남겨 두리라." 하시더라.
“온 땅의 심판자께서 의를 행치 않으시려나이까?” 그렇다. 그분께서는 의를 행하실 것이며 또 행하셨다. 그는 의로운 롯을 구해냈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이교도들은 영원한 불로 심판하셨다.(유7)
유1:7 소돔과 고모라와 또 그같은 방식을 따르는 그 주위의 성읍들까지도 자신들을 음행에 내어 주어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한 본보기가 되었느니라.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이제 티끌과 재 같은 내가 주께 감히 말씀드리나이다.
28 혹시 오십 명의 의인 중에서 다섯 명이 부족하다면, 그 부족한 다섯 명으로 인하여 모든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사십오 명을 찾으면 그곳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9 그가 다시 주께 고하여 말씀드리기를 "혹시 거기에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십 명을 위하여 내가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아브라함이 말씀드리기를 "오, 주께서는 노하지 마소서. 내가 말씀드리리이다. 혹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만일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1 그가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이제 내가 감히 주께 말씀드리나이다. 혹시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십 명을 위하여 내가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더라.
32 그가 말씀드리기를 "오, 주께서는 노하지 마소서. 내가 한 번만 더 말씀드리리이다. 혹시 거기서 열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열 명을 위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더라.
33 주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자 곧 자기 길을 가시고, 아브라함도 자기 처소로 돌아갔더라.
27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주님을 3인칭(주께)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14절에서는 주님께서 자신을 3인칭(주께)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유의하라.
이런 현상은 성경에서 흔히 있는 일로 요3:16-18에서 예수께서 말씀하고 계시면서도 자신을 3인칭으로 묘사하고 있음도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요3:16-18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하여 세상이 구원받게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믿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아니하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라. 이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
아브라함은 자신을 낮추고 있다. “티끌과 재 같은 내가... 혹시... 주께서는 노하지 마소서 내가 한 번만 더 말씀드리리이다.” 아브라함은 몹시 애를 쓰고 있다. 그는 자신이 혹시 주를 시험하는 것이 아닌가(출17:2,7) 하는 생각도 했다.
출17:2 그러므로 백성이 모세와 다투며 말하기를 "우리에게 마실 물을 달라."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가 나와 다투느냐? 어찌하여 너희가 주를 시험하느냐?" 하더라.
출17:7 그가 그 곳의 이름을 맛사와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기 때문이요, 이는 그들이 주를 시험하여 말하기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계신가?" 하였기 때문이라.
너무 과한 간구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주여, 주님께서 소돔을 심판해야 한다면 롯을 살펴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간구드렸더라면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롯이 과연 의로운 사람인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50-45-40-20-10까지 내려갔다.
10명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20년 이상 소돔에 살고 있었던 롯이 10명 정도는 회심자를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브라함이 염두에 둔 사람은 다음과 같다. ①롯 ②그의 아내 ③롯의 처녀 딸 ④ 또 다른 처녀 딸 ⑤ 결혼한 딸 ⑥ 그녀의 남편 ⑦ 롯의 또 다른 결혼 한 딸 ⑧ 그녀의 남편(창19:8,12,14) 8명의 구원받은 사람(노아처럼 벧전3:20) 외에 최소한 2명 정도는 접촉했었을 것으로 아브라함은 생각했던 것 같다.
창19:8 보라, 내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도다. 내가 간청하노니, 그들을 너희에게로 데려가서,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나의 지붕 그늘 아래 들어왔으니 그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하니
창19: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말하기를 "여기에 너 외에 누가 더 있느냐? 사위와 네 아들들과 딸들과 누구든지 이 성읍에서 네게 속한 자는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라.
창19:14 롯이 나가서 그의 딸들과 혼인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일어나서, 이곳에서 나가라. 주께서 이 성읍을 멸하시리라." 하였으나, 그 사위들에게는 그가 농담하는 사람같이 보였더라.
벧전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 때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몇 명뿐이니 곧 여덟 혼들이라.
그러나 20년 동안 롯은, 한국이나 미국에 사는 90%의 그리스도인들처럼, 한 명의 혼도 구원하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10명 가지고도 불안했다. 사실 롯의 가족 8명 중 5명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다.(창19:12,14,26)
창19: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말하기를 "여기에 너 외에 누가 더 있느냐? 사위와 네 아들들과 딸들과 누구든지 이 성읍에서 네게 속한 자는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라.
창19:14 롯이 나가서 그의 딸들과 혼인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일어나서, 이곳에서 나가라. 주께서 이 성읍을 멸하시리라." 하였으나, 그 사위들에게는 그가 농담하는 사람같이 보였더라.
창19:26 그러나 롯의 아내는 그의 뒤에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소금기둥이 되었더라.
롯은 영향력은 있었지만 능력은 없었다. 그는 개인적인 접촉은 가졌지만 하날나라를 증거하지는 못했다. 그는 영적인 삶은 없이 재산만 모았고 성별없이 사회적 지위를 누렸고( 다니엘처럼) 24시간 만에 재가 되어버릴 땅을 자기의 보금자리인 양 갖고 있었다. 롯은 실로 고전3:15에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고전3:15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불에 의해서 그렇게 되리라.
강단주석(The Pulpit Commentary)은 기도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면서 이 구절의 의미를 85% 이상이나 놓쳐버렸다. 두 쪽에 걸쳐 기가 막힌 기도라고 정황설을 늘어놓고서는 롯, 소돔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없이 주석을 끝내고 말았다.
티끌 같다는 표현은 인간이 무엇인지 잘 정의내려 주고 있다. 인간은 티끌에서 나왔고(창2장) 재로 돌아간다.(욥2:8 렘31:40)
욥2:8 욥이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자기 몸을 긁고 재 가운데 앉아 있더라.
렘31:40 시체들과 재들의 온 계곡과, 키드론 시내와 동쪽을 향한 말 문 모퉁이까지 이르는 모든 들이 주께 거룩하게 되리니, 그것이 뽑히거나 영원히 쓰러지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시기 전에(창18:33) 간구를 끝마쳤다. 나는 우리의 기도 역시 이런 식으로 하지 않나 걱정이 된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추상적인 기도에도 응답은 해주셨지만 아브라함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응답해 주셨다. 주님은 소돔을 치신 대신에 롯과 소알을 구했다.(창19:21)
창18:33 주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자 곧 자기 길을 가시고, 아브라함도 자기 처소로 돌아갔더라.
창19:21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이 일에 관하여 너를 받아들였으니 네가 말한 이 성읍을 무너뜨리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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