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녁 때 두 천사가 소돔에 오니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더라. 롯이 그들을 보고 일어나 맞이하고 그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2 말하기를 "보소서, 내 주들이여, 간구하오니 종의 집으로 돌이켜 하룻밤을 묵고, 발을 씻고,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나소서."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거리에서 밤을 지내리라." 하더라.
3 롯이 강권하니 그들이 그에게로 돌이켜서 그의 집으로 들어가고, 롯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누룩 없는 빵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롯이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나 식사대접 등은 그가 아브라함의 영적인 형제임을 시사해 준다. 그는 아브라함처럼(창18:2) 얼굴을 땅에 대고 절했으며, 아브라함처럼(창18:4) 손님이 발을 씻도록 했고, 아브라함처럼(창18:8) 식사를 대접하였다.
창18:2 눈을 들어 보았더니, 보라, 세 사람이 자기 곁에 서 있더라. 그가 그들을 보자, 장막 문에서 뛰어나가 그들을 맞으며 몸을 땅에 굽혀 절하고
창18:4 내가 간구하오니,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창18:8 아브라함이 버터와 우유와 그 사람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서 그들 곁에 서니 그들이 먹으니라.
성경에는 롯의 육적인 삶과 영적 생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롯이 여전히 구약적 의미에서의 성도임을 분명히 하고자 이렇게 기록하였다. 벧후2:7에 따르면 롯은 사악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고통당하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벧후2:7 또 사악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져내셨으니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더라.”
이 말로 미루어 롯은 분명 소돔 시의 시의회 의원이거나 어쩌면 유언을 검인하는 판사였을지도 모른다.(잠31:23 롯4:1,10 에2:19-20 신25:7)
잠31:23 그녀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 사이에 앉을 때, 성문 안에서 알려진 사람이 되고
룻4:1 그 후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는데, 보라, 보아스가 말한 그 친척이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말하기를 "어이 아무개여! 돌이켜서 이리 앉으라." 하니 그가 돌이켜서 앉더라.
룻4: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도 내가 내 아내로 샀으니, 죽은 자의 이름을 그의 유업 위에 일으켜 죽은 자의 이름이 그의 형제 가운데서와 그의 처소의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한 일에도 너희가 오늘 증인들이라.
에2:19-20 처녀들이 두 번째 함께 모였을 때에 모르드캐가 왕의 성문에 앉았더라. 모르드캐가 에스더에게 명한 대로 그녀가 자기 동족과 자기 백성을 알리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에스더가 모르드캐와 함께 있어 양육받던 때와 같이 그의 명령을 행하였음이더라.
신25:7 만일 그 사람이 자기 형제의 아내를 얻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면, 그의 형제의 아내는 성문 장로들에게 올라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이스라엘에서 자기 형제에게 이름을 세워 주기를 싫어하여 그가 내 남편의 형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나이다." 할 것이요
9절에서 소돔 사람들이 롯에게 악하게 응답할 때 ‘재판관이 되려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염두에 두라. 롯도 요나처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적인 음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두 개의 세상과 두 개의 사랑과 두 마음과 두 주인 사이에서 사는 사람이다.(마6:24 눅16:13 왕하18:21)
마6: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존중하고 다른 쪽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
눅16:13 어떤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그가 한 편은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은 존경하고 다른 편을 경시하게 됨이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
왕하18:21 이제 보라, 네가 이 상한 갈대 지팡이 이집트를 의지하는도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것에 의지하면 그것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찌르리니, 이집트의 파라오왕이 자기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와 같이 하리라.
그는 결코 완전히 주님 편도 아니고 완전히 마귀 편도 아니다. 그 결과 롯은 소돔 사람에 의해 일종의 필요악으로서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 그들은 롯을 죽이려고 했다.(9절) 롯은 미국의 대도시 한복판에 있는 침례교, 정로교, 감리교의 회원들인 30,000여 명의기독교 실업인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그들의 부와 영향력을 가지고 미국이 경험한 바 가장 커다란 부흥에 불을 붙일 수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위해 그 어떤 영적인 일을 체 해 보기도 전에 세상이 그들을 칭찬하고 키워서 결국은 무너뜨리고 말았다. 사도 바울은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지리니, 이는 사람들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라고 했다.
실로 많은 기독 실업인들이 그들의 지역 사회에서 하나님을 위해 능력 있는 일군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의 신 맘몬을 따라가다가 이웃사랑, 자연보호, 지역발전 회원들의 회장 노릇이나 하고 만다.
사회적 이미지와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 온갖 클럽들이 등장했다.(사교댄스클럽, 가든 클럽, 보이스카웃, 키와니스 클럽, 컨츄리 클럽, 라이온즈 클럽 등등) 이 모든 봉사활동들은 요한이 경고한 바로 그것이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6-17)
데마, 롯, 마가 요한, 요나단과 오바댜 등은 세상을 향해 장막을 쳤던 사람들이다. 데마는 로마의 음악, 미술, 문학 및 종교 등에 매료되었다. 롯은 사업에 크게 성공하고 싶었으며, 마가 요한은 선교생활의 궁핍을 견딜 수가 없었다. 요나단은 다윗보다 그의 아버지를 더 사랑했고, 오바댜는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에큐메니칼 공회에 남아있다가 박해받는 선지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 들 중 그 누구도 그와 동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가 없었다. 데마와 바울, 롯과 아브라함, 마가와 바나바, 요나단과 다윗, 그리고 오바댜와 엘리야는 육신적인 성도와 영적인 성도를 잘 대조해 준다.
롯이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창14:15-16) 그를 알던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그에게 물었을 것이다. ‘롯, 사람이 총 맞는 거 봤어요? 총검이 어떻던가요? 그걸로 사람을 죽여 봤어요?’
창14:15-16 그와 그의 종들을 나누어 밤에 그들을 치고 다마스커스 왼편에 있는 호바까지 추격하여 모든 재물을 다시 찾아오고 자기 형제 롯과 그의 재물과 여자들과 백성들도 다시 찾아왔더라.
아마 어쩌면 몇 년 동안 롯은 자기 마을의 영웅 대접을 받았을 것이고 이런 저런 포상과 훈장도 받았을 것이다. 그의 딸들에 대해서는 ‘오, 그대들이여, 다시 돌아와서 기쁘오. 혹시 당신들의 아저씨 아브라함이란 사람하고 광야에 머물고 오지 않을 줄 알았지 뭐야. 금년에 멋진 남성으로 뽑힌 10명의 남자들이 당신들을 파티에 초대하고 싶어한다오.’와 같은 찬사가 오갔을 것이다.
롯은 수차례에 걸쳐 전쟁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그때마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이야기를 덧붙이고 했을 것이다. 변치 않고 반복되는 이야기라고는 아브라함이 멜키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이야기였을 테지만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말을 듣는 청중은 항상 그의 말을 받아 주었겠지만 그들 역시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롯을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했을 것이고, 여러 개의 위원직을 맡겼을 것이며, 그를 올해의 소돔인으로 선정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융숭한 대접을 10여년 받은 후에는 애쓴 보람도 없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간증에 관한 한 완전히 제로 상태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두 딸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을 것이고, 나머지 어린 두 딸은 풍선껌을 씹으려 만화 영화나 보면서 비틀즈의 곡이나 듣고 있었을 터이고, 성경에 관한 한 완전무지 상태였을 것이다.
롯은 두 명의 천사가 그를 방문했을 때 여전히 구약성도들의 외적인 관습을 갖고 있었다. 즉 친절하고, 존경심이 많고, 명예를 존중하고, 음식에 있어서도 누룩없는 과자로 아무런 흠이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전개되는 내용으로 보아 롯의 내적인 영적 삶은 완전히 바닥을 헤메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4 그러나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읍의 사람들, 곧 소돔의 남자들이 늙고 젊고 간에 그 집을 에워쌌으니 사방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더라.
5 그들이 롯을 불러 말하기를 "오늘밤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려오라. 우리가 그들을 알고자 함이라." 하니
본문(4절-11절)은 특별한 강해나 주석이 필요없다. 너무도 상황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롯은 천사들을 강권했고(눅24:29) 그들은 머물렀다.
눅24:29 그러자 그들이 그에게 강권하여 말하기를 "저녁이 되고 날이 저물었으니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라고 하니, 그들과 함께 묵으러 들어가시니라.
그들이 눕기 전에 사방에서 모든 사람들이 몰려왔다.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몰려든 것이었다. 첫째는 그들을 성폭행해서(동성연애) 모욕을 주고 소돔인들에게 굴복시키려는 것이 하나요, 둘째는 이들로 소돔인들의 풍습을 배워 소돔인들 모두가 즐기는 그 동성연애를 퍼뜨리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남성동성연애(Sodomy)와 여성동성연애(Lezibian)는 모세의 율법에서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이며(레20:13) 이 죄를 저지르는 민족들은 그에 합당한 보상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다.(롬1:27,33) 그런데도 이 죄는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레20:13 어떤 남자가 여자와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그들은 가증한 짓을 행한 것이니 그들을 반드시 죽일 것이며 그들의 피가 그들 위에 있으리라.
롬1:27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여자들을 순리대로 쓰는 것에서 벗어나 서로 음욕이 불일듯하니, 남자들이 남자들과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자기 자신들에게 받았느니라.
롬1:32 그들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이 마땅히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면서도 이같은 일을 행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좋게 여기느니라.
성경은 동성연애를 죄로 취급한다. 동성애는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병, 실수, 잘못된 행동, 빗나간 성행위, 비정상적인 성행위 혹은 그 밖의 그 어떤 용어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범죄를 덮어 주려고 만들어 낸 단어일 뿐이다.(창9:22-24)
창9:22-24 카나안의 아비 함이 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가 그의 두 형제에게 말하였더니 셈과 야펫이 옷을 집어서 자기들의 어깨에다 걸치고 뒷걸음질로 들어가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덮은지라. 그들의 얼굴이 뒤로 향해 있었기에 그들은 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포도주에서 깨어나서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서
6 롯이 문 밖에 있는 그들에게로 나가 뒤로 문을 닫고
롯은 그의 손님들이 그의 이웃들의 모습을 볼까봐 부끄러워하면서 문을 받아 버린다. 물론 그의 이웃들은 롯의 간증에 흠을 낼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7 말하기를 "부탁하노니, 형제들아, 그처럼 악하게 행하지 말라.
그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른 것은 대단한 잘못이다. 여호사밧도 이와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대하18:3 19:2)
대하18:3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유다의 여호사밧왕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나와 함께 라못길르앗에 가시겠나이까?" 하니 그가 아합에게 대답하기를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으니, 우리가 당신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리이다." 하더라.
대하19:2 그 때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그를 맞이하러 나가 여호사밧왕에게 말하기를 "왕께서 불경건한 자들을 도와 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함이 마땅하나이까? 그러므로 진노가 주로부터 왕에게 임하나이다.
롯은 오늘날 교회연합회 사람들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시며 모든 사람은 – 소도미, 레즈비언, 히피, 마약중독자, 살인자 등을 포함해서 – 다 형제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구약성도가 동성연애자(소도미)를 형제라고 부를 이유가 어디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번이라도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른 것을 본 일이 있는가?(고후6:14-16)
고후6:14-16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임이라.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 것이며, 그들 가운데서 다닐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8 보라, 내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도다. 내가 간청하노니, 그들을 너희에게로 데려가서,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말은 원한다면 내 딸들을 욕보여도 좋다. 혹시 내 딸들이 죽을 지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의심하는 분이 있드면 삿19:25-28을 읽어 보라.
삿19:25-28 그러나 그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데리고 나와 그녀를 그들에게 주었더니 그들이 그녀와 관계를 갖고 아침이 될 때까지 밤새도록 그녀를 욕보이다가 날이 새자 그녀를 놓아 주더라. 날이 샐 때에 그 여인이 와서 그녀의 주인이 들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 앞에 쓰러져서 날이 밝을 때까지 거기 있더라. 그녀의 주인이 아침에 일어나 집 문들을 열고 길을 떠나려 하는데, 보라, 자기 첩인 여인이 그 집 문 앞에 쓰러져 있고 그녀의 손이 문지방에 있기에 그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일어나서 가자." 하나 아무 대답도 없더라. 그러자 그가 그녀를 나귀에 싣고 일어나서 자기 처소로 갔더라.
롯의 제안은 21세기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것이어서 롯이 제정신이 아니었다라고 밖에는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이보다 휠씬 더 깊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 21세기를 사는 부호들은 그들의 처녀 딸들을 사회와 상업과 교육에 맡기고 ‘너희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라고’고 방치하고 있다. 둘째, 소돔 사람처럼 이미 동성연애 성도착이 되어 버린 그들은 여자와 정상적인 성행위는 안할지도 모른다고(롬1:27) 롯은 나름대로 판단했을 것이다. 동시에 어차피 벌어질 사태라면 두 가지 악 중에서 작은 악을 택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을지도 모른다.
롬1:27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여자들을 순리대로 쓰는 것에서 벗어나 서로 음욕이 불일듯하니, 남자들이 남자들과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자기 자신들에게 받았느니라.
이 사람들은 나의 지붕 그늘아래 들어왔으니 그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하니
이런 비유법을 대체용법(metalepsis)라고 부르는데, 지붕 그늘이란 말은 롯의 보호와 대접을 받을 사람들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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