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12-23)

창세기 21장 14절 - 22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5. 27. 10:37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병을 취하여 하갈에게 주어 그녀의 어깨에 메어 주고 아이와 그녀를 떠나 보내니라. 그녀가 떠나서 브엘세바의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아브라함은 항상 일찍 일어났다.(창19:27 22:3) 물병은 하갈이 메고 갔다. 하갈은 다시 남서쪽을 향하여 떠났다. 이집트에 도착할 희망을 품고 갔을 것이다.(창16:7-8과 비교하라)

창19:27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기가 주 앞에 섰던 곳에서

창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그와 함께 있는 청년들 중 두 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갔더라.

창16:7-8 주의 천사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로 가는 길에 있는 샘 곁에서 그녀를 만나 말하기를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니

그녀가 말하기를 "나는 내 여주인 사래의 면전에서 도망하나이다." 하더라.

15 병의 물이 떨어지니 그 아이를 한 덤불 아래에다 놓아 두더라.

하갈은 황랑한 네겜 지역을 방황하고 있었다. 하루 25km 정도로 이틀 간을 방황하다가 하갈과 이스마엘은 길을 잃고 말았다. 아마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남부 사이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야수와 도둑은 피했지만 더 큰 위험이 발생했다. 사막의 태양 아래서 이틀을 지내다보니 48시간 만에 다 소비하고 말았다.

지친 아이를 이끌고 가다 하갈은 이스마엘을 한 덤불 아래에다 놓고, 80m 쯤에서 떨어져 아이를 쳐다보며 울고 있었을 것이다. “cast the child”란 “lay down”이란 뜻이라고 마15:30에 해석한다. 따라서 1611년 AV의 cast는 ‘던지다’(throw something)란 뜻뿐만 아니라 ‘놓는다’(lay)란 뜻도 있음을 알 수 있다.(애3:53 출25:12 창39:7)

마15:30 큰 무리가 절름발이와 소경과 벙어리와 불구자들과 또다른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니 주께서 그들을 고쳐 주시더라.

애3:53 그들이 구덩이에서 나의 생명을 끊고 나에게 돌을 던지나이다.

출25:12 금고리 네 개를 부어 만들어 네 모서리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 저편에 두 고리를 달지니라.

창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길을 보내며 말하기를 "나와 동침하자." 하니

16 그녀가 가서 화살이 미치는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 마주앉아 말하기를 "내가 자식의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 하며 그녀가 아이 쪽을 보고 앉아 그녀의 목청을 높여 울더라.

70인역에는 “and the child lifted up voice and wept”(아이가 그의 목청을 높여 울더라)라고 변개되어 있다. 이것은 애매한 본문을 명쾌하게 만든답시고 배교한 알렉산드리아 필사가들이 만들어낸 본문일 뿐이다. 변개된 본문들이 대부분 다 이런 핑계를 댄다. 이 구절을 변개시킨 서기관은 아마 말시온, 유세비우스 혹은 발렌티우스였을 것이다.

17절을 읽고 나서 성령께서 아이의 음성을 빼먹은 것으로 추정하여 하갈의 통곡을 아이의 울음소리로 변개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변개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17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으니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갈을 불러 그녀에게 말하기를 "하갈아, 무엇이 너를 괴롭히느냐? 두려워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아이가 있는 곳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으셨음이라.

하갈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는 눅24장, 단9장, 계1장에서와 똑같다.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그를 붙들라. 이는 내가 그로 큰 민족을 이룰 것임이라." 하더라.

18절은 창17:20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창17:20 이스마엘에 대해서도 내가 너를 들었나니, 보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었으니 내가 그를 다산케 하며 크게 번성케 하리라. 그가 열두 통치자를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우리는 사라와 하갈이 둘 아 아이를 갖기 전에 아이들에 대한 약속을 받았고, 이런 약속들은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하갈은 집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이번뿐 아니라 지난 번에도 동일한 약속을 받은 바 있다.(창17:20)

19 하나님께서 그녀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녀가 샘물을 보고 가서 물을 병에다 채워 아이에게 주어 마시게 하더라.

하갈은 물을 병에다 채워가서 아이에게 먹인 후 일으켜 세웠다. 물병(요4:28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물동이를 볼 것)은 영원한 생명수의 샘물(요4:14)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명의 물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눈을 여셨다.(눅24:31,45)

요4:28 그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 두고 성읍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그에게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시니라.

눅24:31 그때 그들의 눈이 열려서 주를 알아 보자 주께서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시더라.

눅24:45 그때 그들의 지각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니라.

물은 바로 하갈 옆에 있었는데도 그녀는 마시고 병에 채우고 목욕을 할만한 충분한 물을 바로 옆에 두고도 멸망할 뻔하였다.(롬10:6-8) 마찬가지로 수십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 영생을 두고서도 매년 멸망당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 과학, 교육이라는 불모지 같은 광야에서 바로 옆에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물을 두고 질식해 죽어간다.

롬10:6-8 그러나 믿음에서 난 의는 이같이 말하기를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인가?' 하지 말라."하였으니,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로부터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또한 "'누가 깊은 곳으로 내려갈 것인가?' 하지 말라."하였으니,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노라."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예수께서는 “너희는 생명을 얻으려고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요5:40)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바로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인간들이 생명수를 찾아 마시려 오지를 않는다(사55:1 계22;17)

사55:1 아, 너희 목마른 자들은 누구든지 물들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으라. 정녕, 와서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계22:17 또 성령과 신부가 말하기를 "오라."하더라. 듣는 자도 "오라."말하게 하고 또 목마른 자도 오게 하며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게 할지어다.

아이에게 주어 마시게 했다. 그들은 물병에 물을 채워 벌컥벌컥 마셨다. 그들의 위장에다 그 물을 다 쏟아 붓고 나서는 다시 병을 채웠고 머리 위에 몸 위에 부었다. 다시 물을 채워 씻고 나서 그들은 여행을 계속하였다.

파란 광야를(브엘세바에서 8km 가량 떨어져 있다) 향해가다가 그들은 스바와 하월라(창10:7) 후손들을 만나게 되었다. 피부색깔을 통해 서로가 친족임을 알아보았을 것이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환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그의 어머니의 출신 종족의 여자에게 장가들었을 것이다.(창21:21)

창10:7 쿠스의 아들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타와 라아마와 삽테카이며, 라아마의 아들들은 시바와 드단이며

창21:21 그가 파란 광야에 거했는데 그의 어미가 그에게 이집트 땅에서 아내를 취해 주었더라.

20 하나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계시니 그가 자라서 광야에서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라.

계6:2과 창10:9을 참조

계6:2 내가 보니, 보라, 흰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졌더라. 그에게 한 면류관이 주어졌고 그는 나가서 정복하고 정복하려 하더라.

창10:9 그가 주 앞에서 힘센 사냥꾼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 앞에 님롯 같은 힘센 사냥꾼이라." 하더라.

21 그가 파란 광야에 거했는데 그의 어미가 그에게 이집트 땅에서 아내를 취해 주었더라.

22 그 무렵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 대장 비콜이 아브라함에게 일러 말하기를 "네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비콜은 ‘모든 자의 힘’ 혹은 ‘뛰어난’이란 뜻을 갖고 있다.

“네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이 판단은 구약성경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분명하다. 왜냐하면 사람의 재산은 하나님과 그 사람과의 관계에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욥도 바로 이런 기준에 의해 자기에게 시험이 닥칠 때 판단받았다.(욥4:7 8:6 11:14-20 22:1-7 22:23-30) 12제자들도 갈보리 전에는 이런 시각을 갖고 있었다.

욥4:7 내가 네게 청하노니 기억해 보라. 무죄한데 망한 자가 누구이며, 의인으로 끊어진 자가 어디 있느냐?

욥8:6 만일 네가 순수하고 정직하다면, 그 분께서는 반드시 지금 너를 위해 일어나사 네 의의 처소를 번성케 하시리라.

욥11:14-20 죄악이 네 손 안에 있다면, 멀리 버려서 사악함이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면 그때에는 네가 점없는 네 얼굴을 들어, 정녕, 네가 굳게 서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네 불행을 잊을 것이며 흘러가는 물처럼 그것을 기억할 것임이라. 네 사는 날이 정오보다 더 맑으리니, 네가 비칠 것이요 네가 아침같이 되리라. 네게 소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요, 정녕, 네가 네 주위를 파서 네가 평안함 속에서 쉼을 가지리라. 네가 누울지라도 너를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자문을 청하리라. 그러나 악인의 눈은 보지 못하여 도망하지 못하리니, 그들의 소망은 숨을 거두는 것과 같으리라.

욥22:1-7 그러자 테만인 엘리파스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현명한 사람이 자신에게 유익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이 하나님께 유익할 수 있겠느냐? 네가 의롭다는 것이 전능하신 분께 무슨 기쁨이 되겠느냐? 네가 네 행위를 온전하게 한다고 해서 그 분께 어떤 이익이 되겠느냐? 그 분이 네가 두려워 너를 책망하시겠느냐? 그 분이 너와 함께 심판에 들어가시겠느냐? 네 사악함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지 아니하냐? 이는 네가 까닭없이 네 형제의 저당물을 취하고 헐벗은 자의 옷을 벗겼음이니 네가 곤비한 자에게 마실 물을 주지 않았고 배고픈 자에게 빵을 주지 않았도다.

욥22:23-30 만일 네가 전능하신 분께 돌아가면 너는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 장막에서 죄악을 멀리 제거하게 되리라. 그러면 너는 금을 먼지처럼, 오필의 금을 시내의 돌처럼 쌓으리라. 실로 전능하신 분께서 네 방어자가 되실 것이요, 너는 풍부한 은을 가지리라. 그 때에는 네가 전능하신 분 안에서 네 기쁨을 갖게 될 것이며 네 얼굴을 하나님께 들게 되리라. 너는 그 분께 네 기도를 하리니, 그 분께서 네 기도를 들으시리라. 그리하면 그 분께서 네 서원을 갚아 주시리라. 네가 어떤 일을 명하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질 것이요 빛이 네 길 위에 비치리라. 사람들이 내던져지면 너는 '일으킴이 있으리라.'고 말할지니라. 그 분은 겸손한 사람을 구원하시리라. 그 분은 무죄한 자의 섬을 구해 내시리니 그것이 네 손의 깨끗함에 의하여 구해냄을 받으리라." 하니라.

모든 것이 장밋빛이고 경제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며, 몸도 건강하고 아무도 당신을 괴롭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지극히 당연하다. 반대로 몸이 아프고 외롭고 슬프고 파산했으며 박해를 받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대적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전혀 다른 시각을 우리에게 계시해 준다. 자신이 부유하다고 생각했던 교회는 가난했고(계3:17-18) 가난하다고 여겼던 교회는 부유했다.(계2:9)

계3:17-18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이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네가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에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며, 또 안약을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2:9 내가 너의 행위와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 (오히려 네가 부요한 자로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

오는날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관점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게 되면 ‘누가 죄를 지은 것이니이까? 이 사람이니이까 아니면 부모님이니이까?’ 라고 묻는다. 그리고 창고가 가득 차 있으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한다. 아비멜렉괴 비콜의 생각은 오늘날 일반적인 교회들의 집사들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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