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24-36)

창세기 25장 11절 - 28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6. 5. 10:31

11 아브라함의 죽음 후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 주셨고 이삭은 라해로이 우물 곁에 거하였더라.

12 다음 사람들은 사라의 여종 이집트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대라.

13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들의 후대에 따라 이름대로 보면 이러하니라. 이스마엘의 맏아들인 느바욧과 케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14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15 하달과 테마와 여툴과 나피스와 케드마니라.

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이것들이 그들의 부락과 성들에 따른 그들의 이름들이라. 그들의 민족들에 따라 열두 통치자가 있더라.

17 이스마엘의 생명의 연수가 이러하니, 그가 일백삼십칠 년을 살고 숨을 거두고 죽으니 그의 백성에게로 합해지니라.

18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시리아로 통하는 이집트 앞에 있는 술까지 거하였고, 그가 그의 모든 형제들 면전에서 죽으니라.

창16:14 그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니, 보라, 그것은 카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하나님께서는 창12:1-4에 따른 무조건적인 약속에 의거해서 이삭을 축복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자식이 없었다. 결국 이삭과 리브카는 쌍둥이로 축복을 받기까지 20년간 기도하게 된다.(창25:20,26)

창25:20 이삭이 40세에 시리아인 라반의 누이, 즉 파단아람의 시리아인 브두엘의 딸 리브카를 아내로 얻으니라.

창25:26 그 후에 그의 아우가 나왔는데, 그의 손이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아서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불렀더라. 리브카가 그들을 낳았을 때 이삭이 60세였더라.

우리는 이스라엘의 조상과 후손에 대해 이미 언급했다. 이들은 그들 민족의 12지파의 족장들이다.(16절)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약 50년 일찍 죽었다.(17절) 그는 예언에 따라(창16:12) 그의 모든 형제들 면전에서 죽게 된다. 그이 후손들은 이삭과 야곱의 면전에서 살았고 주요 거주지는 아라비아의 서쪽 부분으로 시나이 반도로부터 예멘과 아덴에 이르는 지역이다. 일부는 좀더 북쪽 앗시리아 쪽으로 이주해 오늘날의 요르단과 이라크 쪽에 거주했다.

창16:12 그가 거친 사람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대적할 것이요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대적할 것이라. 그가 그의 모든 형제들 면전에서 거할 것이라.

19 다음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대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20 이삭이 40세에 시리아인 라반의 누이, 즉 파단아람의 시리아인 브두엘의 딸 리브카를 아내로 얻으니라.

21 이삭은 그녀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의 아내를 위하여 주께 간구하였는데, 주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심으로 그의 아내 리브카가 임신하였더라.

이삭은 그의 어머니의 사후 3년이 지나 결혼했고 때는 B.C.1856년 경이었다. 이삭은 아이를 낫지 못하는아내를 위해 기도했다. 20년간의 기도 끝에 주님은 응답하셨다.

22 아이들이 그녀 안에서 서로 싸우니 그녀가 말하기를 "이와 같으면 내가 어찌하여야 할까?" 하고 주께 물으러 갔더라.

23 주께서 그녀에게 "두 민족이 네 태에 있으니 두 백성이 네 배에서 나눠지리라.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며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 하시더라.

리브카가 “주께 물으러 갔더라.”는 표현은 기도를 뜻하든가 아니면 선지자에게 물으러 갔다는 것이다.(삼상9:9) 루터는 이 선지자는 셈이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셈은 B.C.1846년 즉 리브카가 임신하기 10년 전에 이미 죽었기 때문에 잘못된 추측이다.

삼상9:9 옛날 이스라엘에는 사람이 하나님께 물으러 갈 때면 그가 말하기를 "오라, 선견자에게 가자." 하였으니 이는 지금 선지자라 불리는 자가 전에는 선견자라 불렸음이더라.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야곱과 에서가 태어난 후 15년 가량을 더 살았다. 어쩌면 리브카는 시아버지께 물으러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3절을 보면 하나님께 직접 말씀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그 어떤 인간과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있어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시다.(창20:3 21:13 17:1,19 18:13,26 22:1)

창20:3 그러나 그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가 취한 여인으로 인하여 네가 죽은 사람이 되리니, 이는 그녀가 다른 사람의 아내임이라." 하시더라.

창21:13 여종의 아들로도 내가 한 민족을 이루리니 이는 그도 너의 씨임이라.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였을 때 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내 앞에서 행하라. 그리고 너는 완전하라.

창17:19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 사라가 참으로 네게 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 너는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그의 씨에게 내 언약을 세우리니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18:13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며 말하기를 '늙은 내가 아이를 낳는다니 이 일이 확실한가?' 하느냐?

창18:26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소돔 성읍 안에서 오십 명의 의인을 찾는다면, 그들을 위하여 모든 곳을 남겨 두리라." 하시더라.

창22:1 이 일들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리브카에게 주어진 계시는 노아에게 주어진 인종들에 관한 예언들과 유사하다. 23절 말씀은 분명히 두 민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인종통합주의자들도 이 예언이 야곱과 에서 두 사람에게만 적용된다고 억지를 부릴 수는 없다.

“두 민족이 네 태에 있으니”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에서가 한 민족을 대표하고 야곱이 한 민족을 대표하는 것은 명백하다.(창9:25-28)

창9:25-27 말하기를 "카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니,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지어다." 하고 또 그가 말하기를 "셈의 주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 카나안은 그의 종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야펫을 증대케 하시어 셈의 장막에서 거하게 하실 것이요, 카나안은 그의 종이 되리라.

로마서9:12에서 인용된 이 예언은 잉태된 후에 주어진 것이며 이 사실은 칼빈주의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그들의 선택도 영원한 선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조건적 선택이란 용어는 비성경적인 용어이며 핑크, 칼빈, 카이퍼, 댑니, 핫지, 스트롱, 쉘톤, 헉스, 길핀 등는 잉태한 후에 선택이 있었다는 사실을(롬9:10-11) 간과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혼란 속으로 이끌었다.

롬9:10 그뿐 아니라 리브카도 한 사람, 곧 우리 조상 이삭에 의하여 잉태하였는데

롬9:11 아직 자식들이 나지도 아니하였고 또한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였을 때에, 택하심을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부르심에 있게 하시려고

롬9:12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고 하셨으니

영원한 선택은 엡1:4을 잘못 읽음으로써 나온 인간의 철학으로 그 두 구절 모두 선택에 관한 문맥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구원을 받기까지는(갈4:7-8) 하나님께 알려지지 않으며 택함받은 사람이란 단어는 창1:1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어떤 사람을 언급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눅10:42 행1:24 13:17 요15:16 행22:14-15)

엡1:4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이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분 앞에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어

갈4:7 그러므로 너는 더이상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상속자니라.갈4:8 그러나 그때에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신들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눅10:42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그녀에게서 그것을 빼앗지 못하리라.

행1:24 그들이 기도하며 말하기를 주여,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께서 이 둘 중에 주께서 선택하신 사람을 보여 주시어

행13: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상을 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산 그 백성을 높이시어 그 곳에서 높으신 팔로 그들을 이끌어 내셨느니라.

요15:16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임명하였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너희 열매가 남아 있어 너희가 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니라.

행22:14 그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너를 택하여 그 분의 뜻을 알게 하시고 의로운 분을 보게 하시며, 또 그 분의 입에서 나온 음성을 듣게 하셨느니라.

칼빈주의에 따르면 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전에 택함을 받았다가 다시 떨어져 나와 아담 안에 있다가 다시 그리스도 안으로 되돌아간다는 말이 된다.(롬5:12-18)

롬5:12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

리브카에게 주어진 예언대로 야곱은 에서보다 더 강력했다. 또한 에서는 야곱을 섬기게 된다.(창27:30)

창27: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고 야곱이 그의 아비 이삭의 면전에서 떠나자 곧 그의 형 에서가 그의 사냥에서 돌아와서

24 그녀의 해산할 날들이 찼는데, 보라, 그녀의 태에 쌍둥이가 있더라.

25 첫째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그의 이름을 에서라 불렀고

26 그 후에 그의 아우가 나왔는데, 그의 손이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아서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불렀더라. 리브카가 그들을 낳았을 때 이삭이 60세였더라.

에서와 야곱은 카인과 아벨처럼 쌍둥이었다. 에서는 붉은 털이 많았다. 에서라는 이름은 히브리 어원으로 ‘털이 많은 자’ 혹은 ‘거친’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에서에 대해 가장 많은 조명을 주는 구절은 다니엘서 8장으로 그곳에는 ‘거친 숫염소’(단8:21)가 등장하며 다니엘서 4장에는 ‘털이 많은 자’(단4:33)가 등장한다.

이 두사람은 알렉산더 대왕과 느부캇네살로 성령에 의해 앞으로 나타날 전세계의 통치자인 적그리스도의 예표로 제시되었다.(Mark of The Beast)

단8:21 그 거친 숫염소는 그리스의 왕이며, 그의 양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그 첫째 왕이라.

단4:33 그 시간에 그 일이 느부캇넷살에게 이루어졌으니, 그가 사람들에게서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고 그의 몸이 하늘의 이슬로 젖었으며, 그의 머리털은 독수리의 그것같이 자랐고 그의 손톱은 새들의 발톱과 같이 되었느니라.

에서의 또 다른 이름은 ‘에돔’으로 ‘붉은 자’ 혹은 ‘붉은 갈색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에 히브리어 ‘holem’을 더하면(‘o’에다 덧붙임) Edom은 히브리어로 ‘Rome’이 된다.

에서는 ‘이 세상의 사람’(신약에서 세상을 의미하는 ‘밭’이란 단어와 같다. 마13:38)으로 님롯과 마찬가지로 사냥꾼이다.(창10:8-9) 이 모든 특징을 다 포함하는 단어는 바알로 그 뜻은 ‘주’ 혹은 ‘선생님’이며 그 히브리어 어원은 계시록 6장에 등장하는 흰 말 탄자를 묘사하는 세 단어와 관계가 있다.

마13:38 밭은 세상이며 좋은 씨는 왕국의 자녀들이니라. 그러나 독보리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요

창10:8-9 쿠스가 또 님롯을 낳았으니, 그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힘센 자가 되었더라. 그가 주 앞에서 힘센 사냥꾼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 앞에 님롯 같은 힘센 사냥꾼이라." 하더라.

그 세 단어는 ‘활쏘는 사람’ ‘털이 많은’ ‘말 타 자’이다. 바알이란 단어는 그 속에 ‘그것에게 드려진 자들’이란 숨은 뜻을 갖고 있다.(Mark of The Beast) 에서의 출생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이 세상의 사람’은 ‘가슴에 털이 난’ 사람으로 생각되어져 왔으며 그의 사내다움을 증명하기 위해 수염이나 콧수염을 기르는 것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에서는 첫째 아들이었다. 그는 야곱의 후손이 그의 발꿈치를 잡았을 때는 이미 엄마 배속에서 나온 후였다. 만약 리브카가 창3:15의 이야기를 들었었다면 그녀는 야곱의 행동에서 뭔가 의미있는 무엇을 감지했을 것이다.

창3: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야곱은 발꿈치를 잡는 자이다 그의 이름은 밀렵꾼, 침입자, 찬탈자라는 뜻이다. 야곱은 믿음으로가 아닌 보는 것으로 사는 성도를 예표하며 잠3;5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과 하나님에게는 힘있게 대항했지만 자기 자신의 죄를 다스릴 수는 없었다.(창47:9)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고(롬9:13) 말씀하셨다.

잠3:5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창47:9 야곱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내 순례길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생애의 세월이 짧고 험악하였으나 내 조상들의 순례의 날들, 곧 그들의 생애의 세월에는 미치지 못하였나이다." 하고

롬9:13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

야곱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아버지가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대신 야곱을 사용했다. 야곱에게 주어진 새 이름 이스라엘은 다만 교리적인 목적에서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창32:28) 옛사람 야곱은 그리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셨다.

창32:28 그 사람이 말하기를 "네 이름이 더이상 야곱이라 불리지 아니할 것이요, 이스라엘이라 불리리라. 이는 네가 통치자로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하니

100년 전에 살았던 한 설교자에게 주어졌던 동일한 평가를 야곱에게도 내랠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강단에서 내려오고 나면 그의 생활은 너무도 평편 없어서 그가 강단에서 설교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일단 강단에 서면 그의 설교는 너무도 뛰어나서 그가 강단에서 내려오는 것이 부끄러운 일처럼 보였다.’ 야곱은 눈이 멀었을 때와 다리를 절었을 때에는 위대한 믿음의 용사였지만 깨어서 정신이 말짱할 때와 건강할 때는 젯트 엔진을 장착하나 여우같았다.

27 그 아이들이 자라니 에서는 솜씨 좋은 사냥꾼이며 들사람이었고, 야곱은 평범한 사람이라 장막에 거하더라.

이 구절에서 보듯이 두 아이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카인과 아벨에 대한 묘사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간은 동등하게 때어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건국 공신들이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말을 한 것은 모든 인간은 다 동등하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형식주의와 종교의식에 기초한 국가종교로부터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에서와 야곱, 이스마엘과 이삭, 카인과 아벨, 셈과 함은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보여준다.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인간은 동일한 기회와 권리를 갖는다고 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외모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출생은 결코 동등한 것이 아니다.

28 이삭이 에서를 사랑했는데 이는 그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라. 그러나 리브카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리브카는 하나님처럼 야곱을 사랑했다.(말1:2 창25:28) 반대로 이삭은 하나님께서 미워한 에서를 사랑했다.(롬9:13 창25:28) 이삭의 편애의 동기는 그의 배를 위한 것이었다.(창25:28 27:4,7)

말1:2 주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주가 말하노니, 에서는 야곱의 형제가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롬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 함과 같으니라.

창27:4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혼이 너를 축복하게 하라." 하니

창27:7 '내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다가 나를 위하여 별미를 만들어 먹게 하라. 그리하여 내가 죽기 전에 주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느니라.

리브카는 야곱을 사랑했다. 이는 야곱이 집안 일을 도와주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23절에 주어진 예언 때문이었다. “평범한”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순수한’ 혹은 ‘정직한’과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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