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삭이 늙으니 그의 눈이 침침하므로 그가 볼 수 없더라. 그가 맏아들 에서를 불러 그에게 말하기를 "내 아들아." 하니 "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이 순간 성령께서는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계신다. 이번 사건은 고전적인 성경적 예화의 근간이 되었으며 일반 문학에서조차 고전이 된 이야기이다.
이삭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 장님이 된 최초의 사람이다. 이때쯤이면(B.C. 1759년) 그는 137세였고 아직도 43년을 더 살아야 했다.(창35:28)
창35:28 이삭의 날들이 180년이더라.
2 그가 말하기를 "보라, 이제 내가 늙어 나의 죽을 날을 모르노라.
이삭이 137세에 나의 죽을 날을 모른다고 말한다. 이 말에 대해 온갖 해석이 난무했다
드라이버는 이삭이 이때 병들어 거의 80년간을 병들어 지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삭은 당시 100세쯤 되었을 터이고 그렇다면 창세기의 연대기와는 일치하지 않는다.(창25:26 창31:41 창41:46 창47:9)
창25:26 그 후에 그의 아우가 나왔는데, 그의 손이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아서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불렀더라. 리브카가 그들을 낳았을 때 이삭이 60세였더라.
창31:41 이같이 내가 외삼촌의 집에서 20년을 지냈으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는 14년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는 6년을 봉사하였으나, 외삼촌은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나이다.
창41:46 요셉이 이집트 왕 파라오 앞에 설 때에 30세더라. 요셉이 파라오의 면전에서 떠나서 이집트의 온 땅을 시찰하니라.
창47:9 야곱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내 순례길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생애의 세월이 짧고 험악하였으나 내 조상들의 순례의 날들, 곧 그들의 생애의 세월에는 미치지 못하였나이다." 하고
이삭은 아프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더 나아가 자기가 죽고 있다고 말한 적도 없다. 다만 죽을 날을 모른다고 말했을 뿐이다. 물론 내가 죽기 전에 내혼이 너를 축복하게 하라는 말을 따르면 자지가 죽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리브카는 이 말을 듣고 즉시 행동을 개시한다.
이 구절을 가지로 학자들이 성경의 모순을 논하고 가장 권위있는 해석을 꾸며내는 동안 우리는 사무엘상으로 가서 성령께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무오한 해석을 내려는가 살펴보도록 하자.
삼상20:3을 보면 다윗은 겨우 24세 때에 "진실로 주께서 살아 계시며 네 혼이 살아 있거니와(실로 강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죽음과 한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도다." 라고 말했으니 다윗은 무려 46년을 간과한 셈이 아닌가?
그렇다면 43년을 잘못 계산한 이삭을 비난할 이유가 무엇인가? 요한 웨슬 리가 51세 때 자기가 죽을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비문을 직접 썼다. “여기 조나단 웨슬 리가 잠들다. 그는 무익한 종으로 51년간을 살다가 5파운드도 채 남기지 못하고 주여 나 같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하고 죽었노라.”
그러나 그는 32년 동안 그 비문을 간직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83세까지 살았다.
따라서 이삭의 경우는 간단하다. 그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고 늙었으며(137세는 청춘이 아니다) 언제 죽을지 몰랐다. 게다가 그의 이복형 이스마엘을 그해에 장사지냈다.(창25:17) 그는 아마 이스마엘보다 몇 년 정도 더 살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윗도 그랬고, 웨슬리도 그랬고,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이 자신이 죽을 날을 수없이 잘못 계산하고 있다.
창25:17 이스마엘의 생명의 연수가 이러하니, 그가 137년을 살고 숨을 거두고 죽으니 그의 백성에게로 합해지니라.
3 그러므로 이제 바라노니 무기들, 즉 네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로 가서 내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다가
4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혼이 너를 축복하게 하라." 하니
이 구절에 따르면 리브카에게 주어진 약속에도 불구하고(창25:23) 이삭은 여전히 에서가 아브라함의 축복을 상속받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에는 두 가지 논리적인 이유와 한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1) 창25:23의 약속은 리브카에게 주어졌고 이삭은 간접적으로 들었다.
2) 창25:23에는 아브라함의 축복은 언급되지 않았고 다만 두 아이의 정치적 권력에 대한 언급만이 있었다.
3) 에서는 그가 사냥한 고기로 인해 사랑받는 아들의 지위를 확보했다.(창25:28)
창25:23 주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두 민족이 네 태에 있으니 두 백성이 네 배에서 나눠지리라.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며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 하시더라.
창25:28 이삭이 에서를 사랑했는데 이는 그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라. 그러나 리브카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시력의 약화에도 불구하고 이삭의 위장은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137세에 사슴 고기를 즐기다니. 성경 비평가들에 따르면 이 구절과 히11:20은 모순이 된다고 한다. 창27:18-30을 읽고 이것을 믿음의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히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들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고
사실 이삭은 5번이나 의심을 받았고 롬14:23에는 ‘그러나 의심하는 자는 그가 먹을지라도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나.’고 되어 있다. 창27:18-30 사이의 이삭의 식사는 결코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성경에는 믿음 대신 느낌을 따라 살았던 단 두 사람이 등장하는 데 바로 이삭과 삼손이었다.(창27:21 삿16:26)
창27:21 이삭이 야곱에게 말하기를 "내가 원하노니, 내 아들아 내게 좀 가까이 오너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를 만져 보리라." 하더라.
삿16:26 삼손이 자기 손을 잡은 소년에게 말하기를 "나로 이 집을 버티고 있는 기둥들을 만지게 하여 그 기둥에 기댈 수 있게 하라." 하니라.
느낌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속거나 죽게 된다. 벌링거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자 이삭은 에서는 축복하고자 했으나 결국에는 그으 믿음이 육신이 이기고 야곱을 축복했다고 억지 해석으로 히브리서와의 모순을 없애고자 애쓴다. 그렇다면 이삭은 야곱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서도(창27:22,24) 의도적으로 야곱을 축복했다는 말인데 어떻게 그런 해석이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다.
창27:22 야곱이 자기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그를 만지며 말하기를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창27:24 이삭이 말하기를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그러하니이다." 하더라.
이 경우 역시 성경을 존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경의 모순을 들춰내서 자신들의 학식을 자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에는 온갖 문제들이 들어 있는 법이다. 사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했고 히브리서 말대로 믿음으로 축복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창세기 27장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창28:1-4을 언급한다.
창28:1-4 이삭이 야곱을 불러서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여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카나안의 딸들에서 아내를 얻지 말지니 일어나서 파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서 네 어머니의 오라비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얻으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네게 복 주시고 너로 다산케 하시고 번성케 하시어 너로 수많은 백성을 이루게 하시며 아브라함의 복을 네게 주시되, 너에게와 너와 함께한 네 씨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땅, 곧 네가 타국인으로 있는 그 땅을 상속받기를 원하노라.
5 리브카가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 들었으며, 에서는 사냥해서 고기를 가져오려고 들로 나갔더라.
6 리브카가 그녀의 아들 야곱에게 일러 말하기를 "보라, 내가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신 것을 들었는데 이르시기를
7 '내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다가 나를 위하여 별미를 만들어 먹게 하라. 그리하여 내가 죽기 전에 주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느니라.
8 그러므로 이제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내 음성에 순종하라.
9 지금 염소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면 내가 그것들로 네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리니
10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갖다 드려 그가 그것을 드시고, 죽기 전에 너를 축복하게 하라." 하니라.
리브카는 아마 사라처럼 장막 뒤에 숨어서 들었던 것같다.(창18:10) 우리는 그녀를 남편과 아들의 말을 엿들었다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도청의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창18:1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명의 때를 따라 분명히 네게로 돌아오리니, 보라,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가질 것이니라." 하시니, 사라가 그의 뒤에 있는 장막 문에서 그 말을 들었더라.
① 그녀는 그의 아들에게 어떻게 거짓말을 하고 어떻게 속임수를 쓸 것인지를 가르치게 된다.(창27:9,16)
창27:9 지금 염소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면 내가 그것들로 네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리니
창27:16 또 염소 새끼들의 가죽으로 손과 목의 매끈한 곳에 붙이고
② 그녀는 창25:23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행동한다.
창25:23 주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두 민족이 네 태에 있으니 두 백성이 네 배에서 나눠지리라.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며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 하시더라.
③ 창28:5 이후 그녀는 아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다.
창28:5 이삭이 야곱을 보내더라. 그가 파단아람의 라반에게로 갔으니 라반은 시리아인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카의 오라비더라.
리브카는 차라리 살림에 전념하고 있었던 것이 더 나을 뻔 했다.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면 육신적 계획을 꾸밀 틈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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