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고 야곱이 그의 아비 이삭의 면전에서 떠나자 곧 그의 형 에서가 그의 사냥에서 돌아와서
31 그도 별미를 만들어 그의 아비에게로 가지고 와서 그의 아비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여, 일어나셔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드시고 아버지의 혼이 나를 축복하소서." 하니
야곱은 복을 받은 후 재빨리 물러 나온다. 곧이어 에서가 사냥에서 잡은 사슴 고기를 요리해서 들고 들어온다.
“내 아버지여, 일어나셔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드시고”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일어나 앉아 계셨다.(19절) 이삭은 이미 배불리 먹은 후에 만족한 마음으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창27:19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청하셨던 대로 행하였나이다. 내가 간구하오니, 일어나 앉으셔서 나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혼이 나를 축복하소서.
32 그의 아비 이삭이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누구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하더라.
“네가 누구냐?” 이삭은 깜짝 놀랐다. 그는 방금 에서를 축복해 주었는데 에서의 대답을 들은 이삭은 심하게 떨며 누구냐고 되묻는다. 이삭은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기셨음을 깨닫게 된다. 이삭의 양심은 죄책감으로 떨었다.(18, 20,21,24절을 볼 것)
창27:18 그리하여 야곱이 그의 아비에게로 가서 말하기를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하니
창27:20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그처럼 빨리 잡았더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주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 주셨나이다." 하더라.
창27:21 이삭이 야곱에게 말하기를 "내가 원하노니, 내 아들아 내게 좀 가까이 오너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를 만져 보리라." 하더라.
창27:24 이삭이 말하기를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그러하니이다." 하더라.
이삭은 이렇게 묻는다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왔던 그는 어디 있느냐?” 이삭은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면서 “내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내가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느니라. 그런즉 그가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축복은 돌이킬 수 없다. 일단 축복이 선언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에서는 ‘사냥에서 사슴을 못잡음’으로 인해 배가 고파 장자권을 잃어버렸는데 이번에는 사슴 고기를 요리하는 동안 그의 복을 잃어버리게 된다.
33 이삭이 아주 심하게 떨며 말하기를 "누구라고?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왔던 그는 어디 있느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내가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느니라. 그런즉 그가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하더라.
34 에서가 그의 아비의 말을 듣고 대성통곡하며 그의 아비에게 말하기를 "오 내 아버지여, 내게도, 내게도 축복하소서." 하니
35 이삭이 말하기를 "네 아우가 간교함으로 와서 네 복을 빼앗아 갔도다." 하니
34절은 히비리서 기자가 히12:17에서 언급한 것이다.(히12:17과 창25:33-34 비교) 34절과 35절은 따로 주석이 필요없을 만큼 분명하다. 간교하다는 단어는 매우 적합한 용어로 사탄에게 쓰였고(창3:1) 요나답(삼하13:3) 예후(왕하10:19) 및 바예수(행13:10)에게도 사용되었다. 리브카와 야곱의 전략에는 영적이라든가 믿음의 행위가 전혀 없었다. 그들의 전략은 순전히 교활한 술책에 불과했다.
히12: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 후 그가 축복을 유업으로 받으려고 했을 때 거절당하였으며, 눈물로 간절히 구하였지만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창25:33-34 야곱이 말하기를 "오늘 내게 맹세하라." 하니 그가 야곱에게 맹세하였더라. 그가 자기의 장자 상속권을 야곱에게 팔았더라. 야곱이 에서에게 빵과 팥죽을 주었더니, 그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자기 길을 갔더라. 이같이 에서가 자기의 장자 상속권을 경시하였더라.
창3:1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의 어떤 짐승들보다도 뱀은 더욱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왕하10:19 그러므로 이제 바알의 모든 선지자들과 그의 모든 종들과 그의 모든 제사장들을 내게로 부르고 한 사람도 빠지지 않게 하라. 이는 내가 바알에게 큰 희생제를 드리려 함이니, 빠지는 자는 누구라도 살지 못하리라." 하더라. 그러나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들을 멸하려는 의도에서 흉계로 그렇게 한 것이었더라.
삼하13:3 암논에게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나답이며,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로 심히 교활한 자더라.
행13:10 말하기를 "오 모든 궤계와 악행으로 가득 찬 너 마귀의 자식아, 너 모든 의의 원수야, 네가 주의 의로운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일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36 에서가 말하기를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옳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이렇게 두 번이나 나를 속였나이다. 그가 나의 장자 상속권을 빼앗더니, 보소서, 이제는 그가 나의 축복을 빼앗아 갔나이다." 하더라. 또 그가 말하기를 "아버지께서는 나를 위한 축복을 남겨 두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니
이 주장은 조금 주관적인 감이 없지 않다. 야곱은 장자 상속권을 빼앗지 않았으며 다만 죽과 교환했고, 축복 또한 창25:23의 경우에는 빼앗은 것이 아니었다.
창25:23 주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두 민족이 네 태에 있으니 두 백성이 네 배에서 나눠지리라.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며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 하시더라.
야곱은 창12:1-3의 아브라함의 복 또한 받았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영을 시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만약 에서가 장자권을 팔아버리지 않았더라면 사냥 10분 만에 사슴을 잡을 수 있게 할 수도 있었다. 계시와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또한 역사의 하나님이시오 사슴 사냥을 주관하는 하나님이시다.(슥4:10)
창12:1-3 그때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족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위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더라.
슥4:10 누가 작은 일들의 날을 멸시하였느냐? 이는 그들이 즐거워하고 또 그 일곱과 더불어 스룹바벨의 손에 있는 다림줄을 볼 것임이니, 그 일곱은 온 땅을 두루 다니는 주의 눈들이라.
우리는 에서와 야곱의 인생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결코 사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에게 우연은 없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은 오늘날의 사냥꾼들보다 이 사실을 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화살이 사슴을 꿰뚫어 사냥에 성공하면 ‘오, 위대하신 영이여, 당신께서 그 사슴을 맞추셨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땅에다 절을 한다. 흑인들은 오후 한 나절 동안만 낚시를 해도 백인들이 일주일 동안 낚시를 하는 것보다 더 잘 잡는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음식이 필요하고 누구는 음식이 필요하지 않은가를 알고 계신다. 만약 누가 배가 고팠을 때 하나님을 신뢰했더라면 그는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이기 전에 사냥에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에서는 진영 밖에서 주님의 수치를 짊어지는 고통을 당하는 대신 왕국을 건설한답시고 세상과 더불어 살면서 세끼를 다 챙겨 먹는 육신적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서는 자기가 팔아버린 그것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다. 32절을 보면 그는 “곧 맏아들 에서로소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맏아들의 권리를 포기했었다.(창25:32, 29:26)
창25:32 에서가 말하기를 "보라, 내가 죽을 지경인데 이 장자 상속권이 내게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 하니
창29:26 라반이 말하기를 "큰딸보다 작은딸을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느니라.
37 이삭이 대답하여 에서에게 말하기를 "보라,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웠고 그의 모든 형제들을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로 그를 떠받쳤나니, 내 아들아, 내가 이제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니
곡식과 포도주로 그를 떠받쳤다는 표현은 환유법으로 하나님의 명사로 다른 명사를 대신하여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 표현을 이렇게 다시 표현해 볼 수 있다. ‘내가 야곱을 너의 우두머리로 삼았으니 너의 모든 후손들은 그를 섬기게 될 것이라. 나는 그에게 매년 훌륭한 곡시 수확과 포도 수확을 보장하였으니 그는 크게 되리라’
이에 대해 38절에서 울부짖었다.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한 가지 축복 밖에는 없나이까? 오 내 아버지여, 내게도, 내게도 축복하소서."
38 에서가 그의 아비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한 가지 축복 밖에는 없나이까? 오 내 아버지여, 내게도, 내게도 축복하소서." 하며 에서가 소리 높여서 울더라.
39 그의 아비 이삭이 대답하여 그에게 말하기를 "보라, 너의 처소는 땅의 기름진 곳과 위로부터 하늘의 이슬이 내리는 기름진 곳이 되리라.
에서가 울부짖자 이에 이삭은 에서에게도 장차 있을 일들에 관하여 복을 빈다.(히11:20)
히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들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고
벌링거는 39절의 복은 잘못이여 에서는 그 구절에 언급된 것들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억측을 수용한 사람들은 케일, 칼리쉬, 머피, 코느멘, 쿠르츠, 델리취, 및 투크 같은 죽어 버린 정통 신학자들로 한결같이 <킹제임스성경>의 권위에 순복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다.
변개된 영어 성서들의 선두 주자에 해당되는 RV(Revised Version)은 ‘너의 처소는 땅의 기름진 곳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것이며.....’라고 번역했다. 이렇게 번역한 이유는 ① 그래야 28절과 모순이 되지 않으며 ② 현재의 에돔 땅의 상태가 그러하며(말1:3) ③ 이렇게 고치는 것은 수용할 만하며 권고할 만하다는 것이다.
말1: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과 그의 기업을 광야의 용들을 위하여 황폐하게 두었느니라.
그러나 이러한 학자들의 장난질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답한다.
① 28절의 복은 하나님께서 하실 복인 반면 39절은 하나님이 빠져 있으며 따라서 에서의 노력 여하에 그의 번영이 달려 있다.
창27:39 그의 아비 이삭이 대답하여 그에게 말하기를 "보라, 너의 처소는 땅의 기름진 곳과 위로부터 하늘의 이슬이 내리는 기름진 곳이 되리라.
② 곡식과 포도주는 39절에는 빠져 있으며 따라서 에서는 먹고는 살겠지만 부유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③ B.C.1000년 이 전에 에돕 땅이 황폐한 광야였다는 증거는 없다. 이와 같은 비교를 통해 본다면 야곱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B.C.400-A.D.1920까지의 이스라엘 땅은 달의 뒷면처럼 황혜해 보였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조금이라도 예술가의 피를 지닌 사람이라면 영광스럽고 풍요로운 성지에 대해 거룩한 전통이 묘사하고 있는 모습과 사진자들의 사진에 나오는 메마르고 바위투성이며, 황량하고 황폐한 실제의 땅과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④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 학자들이 성경을 변개시킨 것이 명백한 잘못이라는 증거는 학자들의 부정직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히브리어 학자들은 자기들이 세워놓은 기준과 원칙을 매순간 편리한 대로 뜯어고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히브리어 민은 창27:39에서는 ‘-로부터 떨어진’(1884년 판 RV)이라고 학자들에 의해 번역된 반면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가 28절에서는 ‘-으로부터(from)’를 뜨하는 ‘-의’(of)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이들 히브리어 학자들은 동일한 단어를 28절에서는 속격으로 번역한 반면 39절에서는 탈격으로 번역했다. 그 이유는 학자들은 성경이 이해되지 않을 때 합리적으로 해석한답시고 아무 짓이나 하기 때문이다.(고전2:1-12)
고전2: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와서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탁월함으로 하지 아니하였노라. 이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외에는 너희 가운데서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연약함과 두려움과 심한 떨림 가운데 있었노라. 또 내 말과 내 설교를 설득력 있는 인간의 지혜의 말로 하지 않고 성령과 능력을 나타냄으로 하였으니 이는 너희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있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함이라.
창27:39 역시 권위역본에 나와 있는 그대로가 옳으며 기타 모든 것들은 들린다. 39절의 복은 장자에게만 주어지는 배타적인 복이 아니기에 성경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만약 학자들이 창49:8,25 등을 부지런히 찾아 보았더라면 성경을 뜯어고치는 일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창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들이 찬양할 자라. 네 손이 네 원수들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서 절하리라.
창49:25 곧 네 아비의 하나님으로 말미암나니 그 분이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하신 분으로 말미암나니 그 분이 너를 하늘 위의 복과 아래에 놓여 있는 깊음의 복과 젖가슴의 복과 태의 복으로 너에게 복 주시리라.
40 너의 칼로 네가 살 것이며 네 아우를 섬기리라. 네가 다스릴 때에 네가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끊어 버릴 것이라." 하더라.
또한 이 구절을 만약 학자들이 39절을 다루었던 그런 식으로 다룬다면 창27:37과 정면으로 모순이 된다. 야곱이 그의 형제들의 ‘주’로 세움을 받았다면, 그런데 에서는 야곱의 형제이다, 그리고 야곱의 어머니의 아들들이 그에게 절하게 될 것이라면, 그런데 에서는 야곱의 어머니의 아들들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40절에서는 에서가 다스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네가 다스릴 때에”
39절과 40절 사이에서 헤매이는 히브리어 학자들은 그들의 모든 문법 실력을 총동원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지 결국은 이 구절의 정확한 의미는 불분명하다라든가 네가 다스릴 때를 네가 회개할 때로 고쳐야한다든가 하면서 그들의 불신만 드러내 보이고 있다.
결국 39절을 빛나는 원어 실력으로 용감하게 뜯어 고쳐버린 학자들은 (그들은 28절과의 모순을 없애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이번에는 40절에서 옴짝달짝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만약 학자들이 성경을 있는 그대로 놔두었더라면 그들은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주석가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결국은 탈무드와 타르굼 등을 붙들고 만다.
그러나 이들은 40절이 왕하8:20-22에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이삭은 성령에 의해 영감을 받아 40절을 예언했다. 이 때 에서가 다스리게 된다.(왕하8:20-22) 물론 29절의 복은 궁극적으로 아무런 변화없이 그대로 성취된다.(모세 역시 동일한 내용을 예언한 바 있다. 신30:16-19 31:16-21 31:28-30)
왕하8:20-22 여호람의 때에 에돔이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나 반역하여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우니라. 이에 요람이 모든 병거들을 거느리고 사일로 갔으니, 그가 밤에 일어나 그를 에워싼 에돔인들과 병거들의 대장들을 치자 백성들이 그들의 장막으로 도망하더라. 그러나 에돔이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나 반역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며, 그때 립나도 동시에 반역하였더라.
신30:16-19 그 안에서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길에서 행하고 그 분의 계명들과 그 분의 규례들과 그 분의 명령들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네가 살고 번성케 하려 함이라.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가 차지하러 가는 그 땅에서 너에게 복 주시리라. 그러나 만일 네가 마음을 돌이켜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을 경배하며 그들을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엄숙히 선언하노니, 너희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네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하는 그 땅에서 너희 날들이 길지 못하리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서 너희에 대하여 증거를 삼아 네 앞에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두었은즉, 그러므로 너와 네 자손이 살려면 생명을 택할지니라.
신31:16-21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그들이 가서 그들 가운데 거할 그 땅의 이방 신들을 좇아 음란한 짓을 하러 가리니,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었던 내 언약을 어길 것이니라. 그러면 그 날에 그들에 대한 내 분노가 일어나리니, 내가 그들을 버릴 것이며 그들에게서 내 얼굴을 감출 것이요 그들은 삼킴을 당하고 많은 재앙과 고난이 그들에게 미칠 것이며 그 날에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지 않으시기에 이러한 재앙이 우리에게 임한 것이 아니냐?' 하리라. 그들이 다른 신들에게로 돌이켜 행할 그 모든 악행들로 인하여 내가 그 날에 반드시 내 얼굴을 감추리라.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이 노래를 기록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그들의 입에 두어서 이 노래가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고 나서 그들이 먹고 배부르고 살찌면, 그때는 그들이 다른 신들에게로 돌이켜 그들을 섬기고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라. 많은 재앙과 고난이 그들에게 미칠 때면 이 노래가 그들에게 증인처럼 증거하리니, 이는 그 노래가 그들의 자손들의 입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임이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기 전인 지금에도 그들이 하려고 하는 그들의 의도를 아느니라." 하시니라.
신31:28-30 너희 지파의 모든 장로들과 너희의 관원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러면 내가 이 말씀들을 그들의 귀에 말하여 하늘과 땅을 불러서 그들에 대해 증거를 삼으리라. 내가 죽은 후에 너희는 스스로 완전히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에서 벗어날 것을 내가 아노니, 훗 날들에 재앙이 너희에게 미치리라. 이는 너희가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고 너희 손으로 하는 일을 통하여 그 분을 격노케 하였기 때문이라." 하며 모세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의 귀에 이 노래의 말씀들을 마칠 때까지 말하였더라.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후천년주의자 혹은 무천년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영원하고 무조건적인 복이 일시적으로 변경되거나 조건부로 연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가 없다. 히브리어 학자들은 이와 같은 수수께끼 앞에서 자기들이 보기에는 무순처럼 보이는 구절을 고칠 수밖에 없다.
문제는 39절을 고쳐서 28절과의 모순을 해결했다지만 40절의 내용은 37절 및 29절과 너무도 모순되기 때문에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영원한 숙제로 남는다. 이처럼 원어실력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께서 가르쳐 준 대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면(딤후2:15) 해결될 수 있다. 실로 하나님의 어러심음이 이 세상의 지혜보다 낫다(고전1:20-25)
딤후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고전1:20-25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학자가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전도의 어리석음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느니라.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노니,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것이 되고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헬라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또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함이 사람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니라.
아브라함의 씨에게 주어진 무조건적인 약속(이약속은 ㅁㄹ리적이고 무나적인 땅에 관한 것임)은 민족으로부터(창12-15장) 은혜로(계21-22장의 영원) 뻗어간다. 그러나 영원이 아닌 시간 안에서는 (출20-출19장) 이 무조건적인 약속들은 율법에서의 순종이라는 조건이 충족될 때에 한해서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러한 모순을 피하기 위해 율법하에서의 이스라엘은 개개인이 아닌 민족으로서 즉 정치 집단으로사 다루신다.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창12:1-3 13:15 15:5 22:17 27:28,40) 등과 같은 개인들을 다루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루심을 받는다.
창12:1-3 그때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족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위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더라.
창13:15 이는 네가 보는 모든 땅을 내가 네게 줄 것이며 네 씨에게 영원히 주고
창15:5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씀하시기를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다면 그 별들을 세어 보아라." 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시더라.
창22:17 복으로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번성으로 내가 너의 씨를 하늘의 별들처럼, 또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케 하리니 네 씨가 그의 원수들의 문을 차지하리라.
창27:2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며
창27:40 너의 칼로 네가 살 것이며 네 아우를 섬기리라. 네가 다스릴 때에 네가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끊어 버릴 것이라." 하더라.
이와 같은 세대적 구분 혹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분별을 모르는 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맞추어 성경 본문을 변개시킬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1850년 이래 이제껏 성경에 입각한 주석이 나오지 못한 이유이다.
그 이전에 쓰인 모든 주석은 후천년주의 혹은 무천년주의였으며 1850년 이래의 모든 주석가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본문을 뜯어고치는 것을 주 업으로 삼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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