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24-36)

창세기 35장 16절 - 29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6. 19. 08:19

16 그들이 벧엘에서 이동하여 길을 가는데, 에프랏에 조금 못미쳐서 라헬이 산고로 진통을 당하는데 산고가 심하였으니

17 그녀가 산고를 겪고 있을 때 산파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으리라." 하더라.

18 그녀의 혼이 떠나려 할 때 (이는 그녀가 죽었음이라.) 그녀가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니 베들레헴 곧 에프랏에 이르는 길에 장사하였으며

20 야곱이 그녀의 무덤에 한 기둥을 세웠으니 라헬의 무덤 기둥이 오늘도 있더라.

그들은 벧엘에서 이동할 때 매우 슬픈 일이 발생했다. 어쩌면 야곱의 생애에 있어 가장 절망적인 날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날이 닥치고 말았다. 그 날은 아담에게도, 아브라함에게도 닥쳤고 이번에는 야곱에게 닥쳤다.

야곱의 아름답고 사랑받는 아내가 아들을 낳다가 숨을 거두었다.(창50:5 겔37:13 렘8:1)

창50:5 '내 아버지께서 나로 맹세하게 하여 말하기를, 보라, 내가 죽거든 카나안 땅에 내가 파놓은 내 무덤에다 장사하라 하셨으므로, 간구하오니 이제 나로 올라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그리고 나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니

겔37:13 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의 무덤들을 열어서 너희의 무덤들로부터 너희를 나오게 할 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며

렘8:1 주가 말하노라. 그때에 그들은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고관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들의 뼈를 그들의 무덤에서 끌어내어

무덤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케벨”로 여호와의 증인의 지도자들은 러더포드와 럿셀이 성구사전에서 발견치 못한 단어이다.

우리는 18절에서 그녀의 혼이 떠나게 된 후 19절에서 라헬이 죽었고 그 다음에 장사되었음을 성경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만약 지옥이 무덤이라면 라헬은 지옥으로 가기 전에 그녀의 혼이 몸을 떠나 버린 셈이다. 어처구니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지옥은 지옥이고 무덤은 무덤이기 때문이다.

야곱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했던 여인을 묻고 있다. 그의 심정을 한 번 헤아려 보라. 비록 야곱 자신은 첫째 부인인 레아 옆에(창49:31) 묻혔지만 야곱의 마음은 그의 뼈가 세켐 근처에 묻히기 오래 전에 이미 베들레헴 근처 라헬의 묘에 묻혔을 것이다.

창49: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에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카도 거기에 장사되었으며, 내가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느니라.

에프랏은 베들레헴의 첫 번째 이름으로(룻1:1-2) 그 단어의 의미는 “다산”이다. 라헬의 무덤에는 기둥이 세워졌고 700년이 지난 후에도 지역 경계표로 남아 있게 된다.(삼상10:2)

룻1:1-2 재판관들이 다스리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들었더라. 베들레헴유다의 어떤 사람이 자기 아내와 두 아들과 더불어 모압 땅에 기거하러 갔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며, 베들레헴유다의 에프랏인들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킬리온이더라. 그들이 모압 땅으로 들어가 거기서 계속 거하였더라.

삼상10:2 네가 오늘 내게서 떠나가다가 셀사에 있는 베냐민의 경계 라헬의 묘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말하리니 '네가 찾으러 갔던 그 나귀들을 찾았으니, 보라, 네 아버지가 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어도 너희로 인하여 슬퍼하여 말하기를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라.

라헬은 B.C.1728년 경에 죽었다. 라헬의 슬픔의 아들은 “베노니”라고 불렀지만 야곱은 새 아들을 “베냐민”(나의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베냐민은 후일 유다의 사랑하는 형제가 되었다. 베냐민은 유다 지파에 함께 “유다의 집”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한 분파를 형성하게 된다.

오른손의 아들인 베냐민 지파에서는 700명의 왼손잡이 전사들이 나왔고 이들은 10미터 이상에 있는 머리털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명사수였다.(삿20:16)

삿20: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뽑힌 칠백 명은 왼손잡이인데 그들은 모두 돌을 던지되 머리털만큼도 빗나가는 법이 없더라.

또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나의 슬픔의 아들’의 후손이었다. 바울은 다름 아닌 베냐민 지파였다.(빌3:5) 야곱이 막내아들을 나의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가 얼마만큼 라헬을 사랑했는가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야곱은 라헬을 자기의 오른손이라고 부른 것이다. 동양적 사고로 보자면 여가에게 이와 같은 처우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빌3:5 나는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인이며,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의하면 바리새인이라.

21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에달 망대 저편에 자기의 장막을 쳤더라.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할 때에 르우벤이 자기 아비의 첩 빌하에게 들어가 동침하니 이스라엘이 그것을 들었더라. 그때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23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칼과 스불룬이요,

24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25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탈리요,

26 레아의 여종 실파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파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들이라.

21절은 ASV(1901)와 RSV(1952)의 원본의 저자들에 의해 삭제되었다. 비록이들 두 역본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만 소위 ‘70인역’(LXX)이라고 불리는 4세기의 필사본에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70인역의 저자들이 21절을 삭제시킨 것은 벌링거가 ‘살렘’(창33:18)을 ‘평안히’라고 변개시킨 이유와 동일하다. 그들은 에달 망대를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헬라어 학자들이 고고학, 생물학, 심리학, 지질학 및 산스크리트 어원 등을 동원해서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지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창33:18 야곱이 파단아람으로부터 와서 카나안 땅에 있는 세켐 성읍, 살렘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다 장막을 쳤더라.

야곱이 기거하던 당시에는 “에달의 망대”가 있었다. 가스당(혹은 슐리만, 페트리, 굴렉, 람세이, 세이스, 올레이)이 그 지명을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은 파괴적 비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려는 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당시 팔레스타인 일대에는 전역에 걸쳐 망대들이 있었다. 그것들 중 몇몇은 가축떼를 지키기 위해 목자들이 사용했으며(왕하18:8 대하26:10 대하27:4 합2:1 미4:8) 그중 몇몇은 포도즙을 짜는 틀로 사용되었다.(마21:33 막12:1 눅14:28)

왕하18:8 또 그가 필리스티아인들을 쳤으니 가자와 그 경계들까지며, 파수꾼의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읍까지 쳤더라.

대하26:10 또 외딴 들에도 망대들을 세우고 많은 우물들을 팠으니, 이는 그에게는 저지대와 평지에 많은 가축이 있었음이요, 산지와 칼멜에는 농부들과 포도원 가꾸는 자들이 있었으니 이는 그가 농사를 좋아하였음이라.

대하27:4 또 그가 유다의 산지에 성읍들을 건축하고, 산림 안에는 성곽들과 망대들을 건축하였더라.

합2: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망대에 서서 그가 내게 말씀하실 것과 책망받을 때에 내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를 지켜보리라.

미4:8 오 너 양떼의 망루야, 시온의 딸의 요새야, 첫 번째 통치권이 네게로 오리니 왕국이 예루살렘의 딸에게로 오리라.

마21:33 또 다른 비유를 들으라. 어떤 집주인이 있었는데, 그가 포도원을 만들어서 그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파고 또 망대를 세워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먼 나라로 떠났느니라.

막12:1 주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시더라.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서 울타리를 두르고 즙 짜는 통 놓을 곳을 파고 망대를 세워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먼 나라로 떠났는데

눅14:28 너희 가운데 누가 망루를 세우려고 하면 먼저 앉아서 자기가 가진 것으로 그것을 완공할 수 있는지 그 비용을 계산해 보지 아니하겠느냐?

갑자기 창3:15이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이번에는 장자가 자신의 씨를 부패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22절)

창3: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첩이 아내로서 여겨진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창25:1 49:4 30:4) 이 죄는 율법 아래에서 정죄되었으며(대상5:1) 은혜 아래에서도(고전5:1-4) 정죄되었다.

창25:1 그때에 아브라함이 다시 아내를 얻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크투라라.

창49:4 물처럼 불안정해서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이는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가서 그것을 더럽혔음이라. 그가 나의 침상에 올라갔었도다.

창30:4 그녀가 그에게 자기의 몸종 빌하를 아내로 주었더니 야곱이 그녀에게로 들어갔더라.

대상5:1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의 아들들이라. 그가 맏아들이었으나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그의 장자권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아들들에게 주어졌더라. 그러므로 그 계보가 장자권을 따라 계수될 것이 아니니

고전5:1-2 너희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바로되, 즉 어떤 자가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니 그러한 음행은 이방인들 가운데도 없는 일이라. 그런데도 너희가 통곡하기는 커녕 교만해져서 이런 행위를 한 자를 너희 가운데서 쫓아내지 아니하는도다.

70인역을 만든 헬라어 학자들은 22절에서 5단어를 첨가시켰다.(카이 포나론 에파나 에난티온 아우투)

이 사건에 뒤이어 성령께서는 출생 순서에 따른 야곱의 아들을 열거하신다. 르우벤은 이번 범죄로 장자권을 잃었고 시므온과 레위는 살인으로(창34:25) 인해 장자권을 잃었다면 그 다음 서열은 유다이다. 따라서 창3:15을 추적하고 있는 그 자는 유다를 대상으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유다 역시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창38:1-18의 다말 사건)

창34:25 삼일째 되어 그들이 아플 때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자 자기 칼을 가지고 담대히 그 성으로 가서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창38:6 유다가 그의 맏아들 엘을 위하여 아내를 얻으니 그녀의 이름은 타말이더라.

26절 끝부분에 보면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파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들이라.”고 되어 있다. 엄격히 말하자면 베냐민은 카나안 땅에서 태어났다. 그런데도 그는 명단에 들어 있다. 성경 비평가들이 이 모순은 왜 고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명단은 성령께서 어떤 진리를 제시하고자 할 때 흔히 사용하시는 요약문제(summary style)라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와있는 족보에도 삭제된 사람이 있으며 누가복음 3장에 나와 있는 이름 중 역대상 혹은 역대하에는 전혀 없는 것도 있다.

아들들의 출생 순서대로 족보를 기록하는데 있어(아내들의 순서도 역시정확히 나와 있다) 한 아이의 이름만을 빼내어 출생장소를 따로 기록하는 대신 성령께서는 요약문제를 사용하신 것 뿐이다.

디나는 파단아람에서 태어났지만 명단에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성령님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성령님의 관심은 족보 전체의 명단이며 구체적인 출생장소가 아니란 말이다.

27 야곱이 헤브론에 있는 아르바 성읍 마므레에 그의 아비 이삭에게로  왔으니 그곳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기거하던 곳이라.

28 이삭의 날들이 180년이더라.

29 이삭이 늙고 연수가 차서 숨을 거두고 죽어, 자기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우리는 이 때가 언제인지 모른다. 다만 히브리어 기자에 따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한 때 동거했음을 알수 있다.(히11:9)

아브라함은 야곱이 15살 때까지(B.C.1822) 살이 있었다. 야곱은 아마 이삭이 180세에 죽을 때까지(B.C.1716) 살았던 인물들 중 마지막 사람이었다.

히11:9 믿음으로 그는 타국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기거하여 그와 함께 그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들인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느니라.

아르바와 헤브론에 대해서는 창13:18에서 설명한 바 있다.

창13:18 그때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평지에서 거하며 그곳에서 주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에서와 야곱이 이삭을 장사지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세일 산으로의 여행에 대한 문제가(창33:14) 있었다면 야곱은 이에 대해서도 기가 막힌 전술을 동원해서 해결했을 것이다.

창33:14 내가 간구하노니 내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앞서 가소서. 나는 내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이 견딜 수 있는 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로 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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