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도다.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었더니 그가 내게 귀를 기울이셨도다.
시5:1 시17:1과 비교하라.
시5:1 오 주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묵상을 유념하소서.
시17:1 오 주여, 의로운 자를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시고, 나의 기도에 귀기울이소서. 이는 거짓된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이다.
2 내가 내 고난의 날에 주를 찾았도다. 밤에 내게 고통이 있어 멈추지 아니하였으니, 내 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밤에 흐르는 고통은 시38:7에서 말한 지긋지긋한 병 때문이다. 이 구절은 욕창과 고름이 흐르는 상처들로 인해 한 번에 수주씩 고통에 처하는 수천 명의 성도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본문은 피의 유출(레12:7)이나 마르지 않는 고름(레15:2)을 말한다. 그것은 팔다리에서 감염으로 인해 흘러나오는 것이며, 이 경우는 아마도 손에서 흘러나온다.
시38:7 내 허리는 지긋지긋한 병으로 가득 차 있고, 내 육신에는 성한 곳이 없나이다.
레12:7 제사장은 그것을 주 앞에 드려서 그녀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그녀는 그 피의 유출에서 깨끗하게 되리라. 이것이 남아나 여아를 낳은 여인을 위한 법이니라.
레15: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말하라. 누구든지 자기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의 유출병으로 인하여 그는 불결하니라.
“내가 주를 찾았도다”(2절)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3절), “내가 불평하였더니”(3절), “내 영이 슬픔으로 뒤덮였도다”(3절), “내가 고통스러워”(4절), “내가 생각하였나이다.”(5절), “내가 회상하고”(6절), “내 마음에 묵상하며”(6절), “내 영이 열심히 찾았나이다”.
사람이 고통에 처해있고 최소한 그에게 분별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가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찾아야 하는 분이시다. 그것은 그분이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요 유지시키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사람이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한 영(요4:24)이시고 육체적인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시므로 종종 잊히신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
욥도 불평하고(욥7:19), 모세도 불평하고(민11:15), 엘리야도 불평하고(왕상19:4), 히스키야도 불평하고(사38:12-14), 다윗도 불평한다.(삼상29:8) 불평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믿음의 근본사항인 듯하다.
욥7:19 언제까지 주께서는 내게서 떠나지 아니하시며 내 침을 삼킬 때까지 나를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나이까?
민11:15 주께서 나를 이처럼 대하신다면, 만일 내가 주의 목전에 은총을 얻었다면,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나를 즉시 죽이소서.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나의 비참함을 보지 않게 하소서.
왕상19:4 그러나 자신은 광야로 하룻길을 갔으니, 그가 향나무 아래로 가서 앉아, 죽기를 구하여 말하기를 "이것으로 족하오니, 오 주여,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내가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하더라.
사38:12-14 나의 연수는 목자의 장막처럼 내게서 떠나 옮겨졌으며, 내가 나의 생명을 베짜는 사람처럼 끊었나이다. 주께서 나를 파리한 질병으로 끊으시리니, 주께서 낮부터 밤 사이에 나를 끝내시리이다. 내가 아침까지 견뎠으나 주께서 사자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리니, 낮부터 밤 사이에 주께서 나를 끝내시리이다. 학이나 제비처럼 나도 그렇게 지저귀었으며, 비둘기처럼 슬피 울었고, 내 눈이 위를 쳐다보다가 지쳤나이다. 오 주여, 내가 억압을 당하오니 나를 맡아 주소서.
삼상29:8 다윗이 아키스에게 말하기를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오늘까지 왕과 함께 있는 동안 왕께서는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내 주 왕의 원수들과 싸우러 가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바울은 13번의 서신들에서 단 하나의 불평도 내놓지 않는 유일한 성도다. 그의 끊임없는 죄를 초월한 생활과 그의 지속적인 승리의 삶은 그 이야기를 읽는 현대 기독교인들을 신경과민이 되게 만든다. 그러나 불평을 내놓게 된 경우라면, 욥과 요나는 그것을 어디에 내놓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욥21:4 10:2 12:4 욘2:2) 바로 하나님이다.
욥21:4 나로 말하면, 나의 불평이 사람에게냐?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영이 불안하지 아니하겠느냐?
욥10:2 내가 하나님께 말씀드리오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주께서 나와 논쟁하시는지 내게 보여 주소서.
욥12:4 나는 자기 이웃에게 조롱당하는 자와 같아 하나님을 부르나 이웃이 답변을 하니, 정직한 의인이 조소를 당하는도다.
욘2:2 내가 나의 고통으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를 들으셨나이다. 내가 지옥의 뱃속으로부터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불평하였더니, 내 영이 슬픔으로 뒤덮였도다. 셀라.
슬픔으로 뒤덮인 영은 파선의 서막이다.(잠18:14) 환경의 지배를 벗어나라며 긍정적 사고방식을 권하는 현대의 감상적인 비전문가들은 경련을 일으키며 진찰실에 찾아오는 아이들이나 문둥병자 집단거주지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며 시간을 좀보내야 한다. 그 같은 자들이 욥과 함께 잿더미에 앉아서 승리의 삶을 사는 법에 대해 욥에게 조언해주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게 말이다.
잠18:14 사람의 영은 그의 병을 지탱할 것이나, 상처받은 영을 누가 견딜 수 있으랴?
4 주께서 내 눈을 깨어 있게 붙드시니,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 말을 할 수가 없나이다.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워 말을 할 수 없을 때 그는 진짜 고통에 처해있다. 기도는 점점 짧아져서 결국 신음소리들로 되어버린다. 이 시편 기록자는 잠을 잘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말도 하지 못한다. 시38:14의 상황이다.
시38:14 이렇게 내가 듣지 못하고 입에 책망이 없는 자같이 되었나이다.
5 내가 지난날들, 옛 시절의 여러 해를 생각하였나이다.
사람이 고통으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될 때는 회상을 하게 된다. 뒤 밖에는 바라볼 곳이 없다. 이것은 어째서 늙은 사람들이 곧잘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게 항상 생각하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걷도록 지정하신 길은 옛 길임을 주목하라.(렘6:16) 문제는 여러분이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현재에 대해 거짓된 상상을 하게 될 때 생기는 것이다.
렘6:16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길에 서서보고 옛 길, 그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 그곳으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하여 쉼을 얻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그곳으로 걸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 구절에서 시편 기록자는 신32:7과 욥8:8에 나오는 직접적인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 옛 시절, 곧 지난날들을 숙고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시대에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이야기해주지 못한다.(전1:9)
신32:7 옛날들을 기억하고 많은 세대의 연수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어 보면 그가 네게 보여 줄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어 보면 그들이 네게 말해 주리라.
욥8:8 내가 바라노니 너는 이전 시대 사람들에게 묻고 그들의 조상들이 탐구한 바를 들을 준비를 하라.
전1:9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
6 밤에 내가 내 노래를 회상하고, 내 마음에 묵상하며, 내 영이 열심히 찾았나이다.
“밤에 내 노래”에 대해서는 욥이 물었던 적이 있으며(욥35:10) 이 경우에는 노래를 함으로써 그가 정말로 곤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던 시절을 실제로 불러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욥35:10 그러나 나를 지으신 분 하나님, 즉 밤에 노래를 주시는 분은 어디 계시며
“밤에 내 노래”는 새 노래이며(시33:3 40:3) 나는 내 침상에 누워있는 동안에 그것을 큰 소리로 노래하라는 말씀을 듣는다.(시149:5)
시33:3 새 노래로 그 분께 노래하며, 큰 소리로 정교히 연주할지어다.
시40:3 또 그가 내 입에 새 노래를 두셨으니, 곧 우리 하나님께 드릴 찬양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며 주를 의지하리로다.
시149:5 성도들은 영광 가운데 즐거워하고 그들의 침상들 위에서 큰 소리로 노래할지어다.
이 구절은 마음을 살피는 자기 성찰을 묘사하고 있다. 느5:7에서 그 옛적 느헤미야가 그렇게 하는 것을 눈여겨보라.
느5:7 숙고한 후에 귀족들과 치리자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각자 자기 형제에게서 고리를 거두는도다." 하고
1-6절에 나오는 표현들은 모두 일반적인 것이다. 그 구절들은 이 시편 기록자가 정확히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7절에서 그가 속으로 생각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그는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에 대해 묵상하면서 자기의 경우에는 이러한 자비들이 끝나버렸는가 아니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도 이전에는 구해냄을 받았었다.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더 이상 은총을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의 자비가 영원히 그쳤는가? 그의 약속이 영구히 이루어지지 못할까?
9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그는 노하심으로 자비를 닫으셨는가? 셀라.
6가지 질문을 하고 있으며 그 6가지는 모두 서로 비슷하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그렇다. 몇 가지 경우에 그분은 그렇게 하실 것이다.(대상28:9)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셨고(대상28:8), 이는 렘33:26과 삼하7:15에서와 같다. 그분은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대상28:8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주의 회중인 온 이스라엘 앞에서와 우리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데서 너희 주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을 지키고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또 너희 뒤에 오는 너희 자손에게 그것을 영원한 유업으로 남기리라.
대상28:9 너,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라. 그리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그 분을 섬기라. 주께서는 모든 마음을 살피시고 생각의 모든 상상을 아시나니, 만일 네가 그 분을 찾으면 그가 너를 만나실 것이나, 만일 네가 그 분을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렘33:26 그때는 내가 야곱의 씨와 내 종 다윗을 버려서, 내가 그의 씨에서 아무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씨를 다스릴 치리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며 그들 위에 자비를 베풀 것임이라.
삼하7:15 그러나 내가 네 앞에서 제거한 사울로부터 나의 자비를 빼앗은 것과 같이, 그것이 그에게서 떠나지는 아니하리니
“더 이상 은총을 베풀지 아니하실까?” 우리는 단지 아름다운 시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다루는 말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것은 “그는 노하심으로 온유한 자비들을 닫으셨는가?” 뒤에 “셀라”가 나옴으로써 곧바로 확인된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 그때의 사건은 미래에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을 파괴하는 것을(계11장) 가장 훌륭하게 나타내는 예표 중 하나이다. - “자비들”이 제거되는 것을 눈여겨보라.(렘16:5)
렘16:5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상가에 들어가지도 말고 가서 울거나 애곡하지도 말라. 이는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화평을 제해 버렸음이니, 즉 자애와 자비니라. 주가 말하노라.
우리는 다시 애3:22로 돌아가는데, 시1편 이래로 10번도 넘게 그곳에 있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반드시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자비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에스라, 여호수아, 느헤미야가 그런 이야기를 계속 되풀이하여 말하는 것을 주목하라.(스9:7-13 수24:4-11 느9:7-26) 과거는 미래에 대한 충고자이다. 고로 “내가 주의 일들을 기억하리니”, “옛날의 주의 이적들을 기억하리이다.”라고 말씀한다.
애3:22 주의 자비하심으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였으니 그의 긍휼히 여기심이 사라지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영적으로 적용하자면 성도는 자기가 받은 수많은 복들을 세고 하나하나 지적해봐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하신 일로 인해 놀라게 될 것이다. 그분이 여러분을 어떤 것으로부터 구원하셨는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여러분이 겪지 않은 모든 질병과 재난에 대해 생각해보라. 또 그분이 여러분을 보호하셔서 뼈가 부러지는 것, 병원비 청구서, 치명적인 질병들, 파산, 기아, 전사하는 것, 비행기 추락, 태풍, 지진, 자동차 파괴, 폭풍우 등을 피하게 되었던 모든 연수들을 헤아려보라.
우리 중 많은 사람의 경우에 설사 그 여정의 나머지는 정말로 험난할지라도 확실히 과거에 수십 년씩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자비와 은혜로운 손길들이 있어왔다.
10 또 내가 말하기를 "이것이 나의 나약함이라." 하였으나, 나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오른손의 연수들을 기억하리이다.
11 내가 주의 일들을 기억하리니, 반드시 내가 옛날의 주의 이적들을 기억하리이다.
12 또 내가 주의 모든 역사를 묵상하고 주께서 하신 일들을 말하리이다.
나약함은 고후12:5 11:30에서처럼 약한 것이다.
고후12:5 내가 이런 사람에 관해서는 자랑하겠으나 나에 관해서는 약하다는 것 외에는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고후11:30 만일 내가 꼭 자랑해야 한다면 나는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이 시편 기록자에게는 약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그를 잠 못 이루게 하고 불평하게 만드는 육체의 병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자비와 그분의 약속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영적인 나약함이다.
예레미야가 완전한 실례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에 정해두신 운명과 하나님께서 자기를 대하시는 태도에 너무 화가 나서(렘20:7)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신다고 비난하려는 유혹을 받았다.(렘15:18)
렘20:7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니 내가 속았나이다. 주께서는 나보다 강하시며 이기셨나이다. 나는 매일 조롱 속에 있으니 모두가 나를 비웃나이다
렘15:18 어찌하여 나의 고통이 영속되며 나의 상처가 낫지 않고 치유되기를 거부하나이까? 주께서는 내게 전적으로 거짓말쟁이같이 되시며 끊기는 물같이 되시겠나이까?
나약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문자적으로는 질병이다. 문제는 하나님께 있지 않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나의”라고 강조가 되어있다. 나의 나약함은 내가 벌어낸 것이고, 마땅히 받을만한 것이므로, 하나님을 의심하거나(7-9절) 또는 나의 상황이 변했으니 그분도 변하신 것이라고 주장할만한 점은 전혀 없다.
그는 비록 자기가 나약하더라도(고후12:10 11:29) 계속해서 증거하기로 결심한다.(“내가 주께서 하신 일들을 말하리이다.”-12절)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경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때 곧 내가 강하기 때문이라.
고후11:29 누가 약하면 나는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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