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주의 이름 안에서 그들이 온종일 즐거워할 것이요, 주의 의 안에서 그들이 높아지리니
17 이는 주께서 그들의 힘의 영광이시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은총 가운데서 우리의 뿔이 높아지리이다.
이 본문에는 하나님에 대한 것들이 언급되어있다. - 그분의 이름(12절), 그분의 오른손(13절), 그분의 얼굴(14절), 그분의 얼굴빛(15절), 그분의 의(16절), 그분의 은총(17절), 그분의 거룩한 이(19절). 모든 속성이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될 수 있다.
17절에 나오는 “우리의 뿔”은 이스라엘로 정의되어있다.(18절 겔29:21)
겔29:21 그 날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뿔이 솟아나게 할 것이요, 또 내가 너로 그들 가운데서 입을 열게 하리니, 그러면 그들은 내가 주인 줄 알리라.
“그들의 힘”에서 “그들”은 즐거운 소리를 알고 그분의 얼굴빛을 보는 15절의 이스라엘인들을 언급한다.
18 주는 우리의 방패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우리의 왕이시니이다.
교회의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이시다.(마21:5 요19:19) 그분은 슥14:1-5에서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을 방어하신다.
마21:5 너희는 시온의 딸에게 말하라. 보라, 너의 왕이 네게 오시나니 그는 온유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인 어린 수나귀 위에 타셨도다.
요19:19 또 빌라도가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으니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쓰여 있더라.
슥14:1-5 보라, 주의 날이 오나니, 네 약탈물이 네 가운데서 나뉘리라. 내가 모든 민족들을 모아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싸우게 하리라. 성읍은 함락되고 집들은 강탈당하며 여자들이 욕을 당하고, 성읍의 절반이 사로잡혀 갈 것이나 백성의 나머지는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때에 주께서 나가 그 민족들을 대적하여 싸우시리니, 전쟁의 날에 싸우셨을 때처럼 하시리라. 그의 발이 그 날에 예루살렘 앞 동편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서시리니, 올리브 산은 그 중간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산의 절반은 북쪽으로, 산의 절반은 남쪽으로 옮겨지리라. 너희는 산들의 골짜기로 도망하리니, 이는 산들의 골짜기가 아살까지 미칠 것임이라. 정녕 너희가 도망하리니, 마치 유다의 웃시아왕의 시대에 너희가 지진 앞에서 도망했던 것과 같으리라. 주 나의 하나님께서 오시리니 모든 성도들이 주와 함께하리라.
19 그때 주께서 환상 가운데서 주의 거룩하신 분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능력있는 자 위에 도움을 더하였으며, 내가 백성 가운데서 택한 자를 높였도다.
“그때 주께서 환상 가운데서 주의 거룩하신 분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만약 그것이 역사상의 일이라면, 나단이 다윗에게 전한 환상을 말하는 것이다.(삼하7:14) 문제는 나단이 능력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더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윗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와 반대로 다윗에게 전한 나단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누군가를 찾아내셨다는 내용이었다.(삼하7:8,16)
삼하7: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만일 그가 죄악을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막대기로 그를 징책하고 사람의 자식의 채찍으로 징책하리라.
삼하7:8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내 종 다윗에게 말할지니라. '만군의 주께서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를 양 무리에서, 양을 따르는 데서 데려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았느니라.
삼하7:16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서리라. 네 보좌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또 다윗의 언약에는 다윗을 찾아내 그에게 기름 부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들어있지 않다. 이 말씀들은 다윗에게 이야기하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다윗에게 행하신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 이야기하시는 대상이 되는 이는 “주의 거룩한 이”라고 불린다.(시16:10)
시16:10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버려두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하신 이로 썩어짐을 보지 않게 하실
여러분이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나단에게 주신 메시지에는 그분이 다윗에게 주신 메시지보다 더 많은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뒤에 나오는 내용이 교리적으로 다윗에게 전혀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25절부터는 다윗이 계속 주 예수 그리스도다. 이 시편 중 19절에서 24절까지의 내용은 나단이 기록하고 나머지 부분은 에단이 기록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내 거룩한 기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부었도다.
21 내 손이 그와 더불어 견고히 세워질 것이며, 내 팔이 또한 그를 힘 있게 하리로다.
22 원수가 그에게 강요하지 못할 것이며, 악인의 아들이 그를 괴롭히지 못하리로다.
23 내가 그의 면전에서 그의 적들을 쳐부수며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재앙으로 치려니와
24 나의 신실함과 자비가 그와 함께하리니, 내 이름으로 인하여 그의 뿔이 높아지리로다.
20-24절은 다윗의 통치와 그가 치른 전쟁들로 볼 때 전부 사실이다. 그는 평생 동안 단 한 번의 전쟁에서도 패하지 않았으며, 이런 위업을 달성한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 올리버, 크롬웰, 샤를먀뉴 등으로 아주 드물다. 다윗의 뿔은 높아진다.(삼하8:5-6 10:17-19)
삼하8:5-6 그때 다마스커스의 시리아인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오니, 다윗이 그 시리아인들 가운데 이만 이천을 죽이니라. 그 후 다윗이 다마스커스의 시리아에 거점들을 두니, 시리아인들이 다윗에게 종이 되어 예물을 바치더라. 주께서 다윗이 가는 곳마다 그를 보호하시더라.
삼하10:17-19 그 일이 다윗에게 전해지니,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함께 모아 요단을 건너 헬람으로 가더라. 시리아인들이 다윗을 대적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그와 싸우더니 시리아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더라. 다윗이 시리아인들 중에서 병거 칠백과 기병 사만을 죽이고, 그들의 군대 대장 소박을 치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하달에셀에게 종이 되었던 모든 왕은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함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평을 맺고 그들을 섬기더라. 그리하여 시리아인들이 더 이상 암몬 자손을 돕는 것을 두려워하더라.
25 내가 또 그의 손을 바다에 세우며 그의 오른손을 강들에 세우리라.
26 그가 내게 부르짖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며, 내 구원의 반석이시라.' 하리라.
모든 것이 분명하다. 이 문맥(25-36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아들이시다.(마1:1 막10:47-48 12;35 눅20:41)
마1:1 다윗의 아들이요, 아브라함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관한 책이라.
막10:47-48 마침 그가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소리지르기 시작하여 말하기를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하니 많은 사람이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더라. 그러나 그는 더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아들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더라.
막12:35 그 후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하느냐?
눅20:41 그때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하느냐?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영토는(창15:18-21) 역사적으로 다윗의 영토가 되며(삼하8:3) 예언적으로 그리스도의 영토가 된다.(겔47-48장)
창15:18-21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네 씨에게 주었으니 켄인들과 크니스인들과 캇몬인들과 힛인들과 프리스인들과 르파인들과 아모리인들과 카나안인들과 기르가스인들과 여부스인들의 땅이니라." 하시니라.
삼하8:3 다윗이 또한 유프라테스 강변에 그의 경계를 회복하려고 갈 때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도 치니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는 다윗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나서 아담의 형상으로 살다가 아담의 형상으로 죽은(고전15:22) 구약에는 새로운 출생이 없다. “나의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마6:9)가 아니다. 후자는 이스라엘의 아버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고전15:22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옵시고
크롤은 26절이 삼하7:14에서 성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윗을 통해 성취된 것은 고사하고 그 말이 그를 겨냥한 것조차 아니다. 삼하7:4는 다윗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다윗의 아들은(마1:1) 예수 그리스도시다.
삼하7: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만일 그가 죄악을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막대기로 그를 징책하고 사람의 자식의 채찍으로 징책하리라.
마1:1 다윗의 아들이요, 아브라함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관한 책이라.
다윗의 아들은 역사적으로 솔로몬이겠으나, 솔로문은 기도할 때 결코 나의 아버지라고 기도한 적이 없었다. 솔로몬은 성경전체에서 가장 긴 기도 중 하나를 했으나(왕상8장 거의 50구절에 달한다!) 나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그 기도 가운데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전도서나 잠언에서도 하나님을 그렇게 표현하는 경우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구약 시대에는 그 누구도 새로운 출생 이후에 갖게 되는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요3:5-10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선생도 몰랐다.
요3: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일들도 모르느냐?
26절은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에 한 번도 성취된 적이 없었다. 26절에 나오는 두 가지 항목을 주목하라. 바로 그분의 신성 즉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해주는 “나의 아버지”와 그분의 인성 즉 인자이심을 말해주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이다. 이것이 바로 갈보리에서 부르짓으신 그 말씀이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가 아니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라고 기록되어 있는 이유이다.
마27:46 제 구시 경에 예수께서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하시니,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이라.
그리스도께서도 반석이라는 표현으로 상징되기는 하지만(고전10:4)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로 이스라엘의 구원의 반석이시다.
고전10:4 모두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랐던 그 영적 반석에서 나온 것을 마셨으며,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느니라.
27 내가 또 그를 나의 장자로 삼고 지상의 왕들보다 더 높게 하며
28 그를 위하여 나의 자비를 영원무궁토록 간직하고, 그와 더불어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리라.
나의 장자는 출4:22에서처럼 상징적인 말이 아니라 문자적인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첫 번째 사람이시며, 이것이 바로 그분이 “독생자”(요3:18)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비록 많은 아들들(히2:10)이 나중에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기는 하지만 말이다.(요일3:9 5:1)
출4:22 너는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요, 내 첫태생이니라.
요3: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아니하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라. 이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
히2:10 만물을 자신을 위하여 또 자신에 의하여 존재하게 하신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고난들을 통하여 그들의 구원의 대장을 온전하게 하신 것은 당연하도다.
요일3:9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함이요, 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라.
요일5:1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으며, 낳으신 그 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분께로부터 태어나신 이도 사랑하느니라.
“첫째로 난 자의 교회”(히12:23)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히12:23 하늘에 기록된 첫째로 난 자의 총회와 교회, 모든 것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에게와,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에게와
하나님의 자비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간직되며(시2,110편) 그분의 언약도 마찬가지다.(눅1:30-33) 이와 관련하여 34절과 사42:6 54:10 59:21 예레미야 31장 렘33:20-21을 보라.
눅1:30-33 그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마리아야, 두려워 말라. 이는 네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음이니라. 보라, 네가 너의 태 안에 임신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위대하게 될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또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며 그는 야곱의 집안을 영원히 통치할 것이요 그의 왕국은 무궁하리라."고 하니라.
시89:34 내 언약도 깨뜨리지 아니할 것이요,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경시키지 아니하리라.
사42:6 나 주가 의로 너를 불렀으니, 내가 네 손을 붙들고 너를 지킬 것이며, 백성의 약속과 이방인들의 빛으로 너에게 주리라.
사54:10 산들이 떠나고 작은 산들이 옮겨져도 나의 자애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내 화평의 언약은 제거되지 아니하리라. 네게 자비를 베푸는 주가 말하노라.
사59:21 나에게는, 이것이 그들과 함께한 나의 언약이라. 주가 말하노라.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내 말들이 네 입에서와, 네 씨의 입에서와, 네 씨의 씨의 입에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렘33:20-21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일 너희가 나의 낮의 언약과 나의 밤의 언약을 깰 수 있다면, 또 그들의 계절에 낮과 밤이 없게 된다면 그때에는 또한 나의 종 다윗과 맺은 나의 언약도 깨어질 수 있어서 그에게 그의 보좌를 다스릴 한 아들도 없을 것이며, 나의 사역자들인 레위 제사장들과 세운 언약도 깨어질 수 있으리라.
29 내가 또 그의 씨를 영원하게 할 것이며, 그의 보좌도 하늘의 날들과 같게 하리라.
이제 아주 유익한 부분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이야기하는 대상이 그분의 아들이라는 것만큼이나 분명하게 여기서 언급되는 씨는 시22:30의 씨이며,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선생들은 모두 그것을 놓쳐버렸다.
시22:30 한 씨가 그를 섬길 것이요, 그것이 주께 한 세대로 여겨지리라.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사53:10)는 그 관련 구절이며, 그것은 문자적인 다윗의 아들들과 손자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출생에 대한 예언을 직면하고 있다.
사53:10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였기에, 주께서 그를 고난에 두셨도다. 주께서 그의 혼을 속죄제물로 만드실 때,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 그가 자신의 날들을 늘릴 것이요, 주의 기쁨이 그의 손에서 번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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