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1-11)

창세기 3장 14절 - 16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3. 31. 11:00

14 주 하나님께서 그 뱀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사양반을 전에 다루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이것을 행하였으니 너는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저주를 받아 네 배로 다닐 것이며 네 평생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가축과 연관해서 이 예언은 사65:25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는데 그것의 문맥은 천년왕국이다.

사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요 사자가 송아지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흙이 뱀의 양식이 될 것이라. 그들이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지도 손상시키지도 않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빛의 천사와 기어다니는 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사탄이 실제의 뱀을 통하여 이브에게 말을 걸었거나 (이것은 그리 가능성이 높지 않다.) 아니면 뱀은 이브에게 말을 건넨 존재의 예표일 것이다. 후자의 경우가 가능성은 더 높지만 이 경우는 만약 하나님의 저주의 말씀이 빛의 천사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면 14절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14절은 실제적인 동물로서의 뱀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고 있지 뱀처럼 기어다니지 않으며 그의 활동영역도 이 지구상에서 흙을 먹는 것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보좌에도 나아갈 수 있다.(계12:9) 14절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흙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19절에서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며 흙이라고 불리고 있기 때문이며 네 배로 다닐 것이란 표현은 단지 천하게 타락한 상태를 의미한다.

창3장에서 말하는 뱀(serpent)은 오늘날 땅에서 기어다는 그런 뱀(snake)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뱀은 15절에서 볼 수 있듯이 동정녀에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해칠 수도 있으며 자기 자신의 아들인 가짜 메시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계12:9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나더라.

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적의는 원수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뱀을 여인의 원수로 만드시며 여인도 뱀의 원수가 되도록 하신다. 우리는 창3:14-15이 이브와 그녀의 대적을 휠씬 넘어서는 차원의 이야기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15절은 메시야 예언들 즉 오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로 알려진 일련의 성경구절들 중 첫 번째 것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창1:20(5번째 날에 나타나는 생명)이 최초의 메시야에 관한 구절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초림 시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 초림은 그분의 죽으심(창5:5)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있게 연구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머리로서 이런 수준의 계시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창3:15를 최초의 메시야 예언구절로 보고 있다.

창1:20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들은 생명이 있는 생물들을 풍성히 내고, 땅 위 하늘의 넓은 창공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며

창5:5 아담이 살았던 모든 날들이 구백삼십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창3:15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① 여자와 뱀은 잘 지내지 못할 것이다.

② 여자는 씨를 갖게 될텐데 그 씨는 ”it“로서 중성명사로 되어있다.(KJV에 그렇게 되어 있다)

③ 뱀은 여인의 씨와 적대관계를 갖게 될 씨를 갖게 될 것이다.

④ 뱀은 여자의 씨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다

⑤ 여자의 씨는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이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기회를 포착하자마자 (마귀는 이미 창3:4에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 로마카톨릭교회는 중성으로 되어있는 대명사 “it”를 여러 번역본에서 “she”로 바꾸어서 마리아를 성경의 수호신으로 삼아버렸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마리아는 뱀의 머리에 아무것도 행하지 못했다. 뱀은 죽음의 세력을 동원해(히2:14) 마리아를 정해진 때에 무덤으로 데려갔으며 그녀는 결코 무덤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히2:14 자녀들이 피와 살에 참여하는 자인 것같이 그 역시 같은 모양으로 동일한 것에 참여하신 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며

(1) 여자들과 뱀들은 – 적어도 여러 종류가 있음 –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1000명의 여자들 중 한명도 기어다니거나 슬슬 미끄러지듯 다니는 그 어떤 동물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독이 없는 얼룩뱀이나 작은 뱀의 모습일지라도 평범한 여자들에게는 맹독성 방울뱀이나 살무사가 사냥꾼에게 주는 만큼의 충격을 줄 것이다. 어떤 여자들은 애완용 뱀을 키운다고 하고 어떤 희한한 여인들은 뱀과 교제하면서 환상을 얻기도 한다고도 한다. 예를 들면 친절과 지혜로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매우 매혹적인 보아뱀과 함께 잠을 자는 환상 같은 것 말이다. 속이 뒤집어진 상태에서 잠을 자다보면 무슨 꿈을 못꾸겠는가?

(2) 이 구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성명사 “it”로 불리고 있다. 눅1:35에서도 예수께서는 “thing”으로 불린다.(이 두 구절은 롬8:16,26 두 구절에서 성령님을 it로 번역한 것에 대한 근본주의자들의 반반을 일소해 버린다.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는 우리말 어감상 대명사를 명사로 처리함) 성령님을 칭할 때 중성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합당하다. “pneumata”는 중성명사이다. 물론 이 경우는 성령님의 사역에 관해 언급될 때에 한한다. 성령님의 인격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에는 “he”가 적합하다.(요14:16 16:7-8)

눅1:35 그 천사가 대답하여 그녀에게 말하기를 성령께서 너에게 임하실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그러므로 너에게서 탄생하실 거룩한 이(holy thing)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우리라.

롬8:16 성령이 친히(The Spirit itself)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

롬8: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친히(the Spirit itself)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

요14:26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그가(he) 너희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6:7-8 그러나 내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유익하니라. 만일 내가 가지 아니하면 위로자가 너희에게 오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내가 떠나가면 내가 그 분(he)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라. 그 분(he)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러나 이 구절에서 충격적인 사실은 메시야가 “it”로 칭함을 받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창49장에서는 실로(Shiloh)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 명사 역시 중성이다.) 여자가 씨를 가질 수 있다고 암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의 어떤 여자도, 다른 원천으로부터 공급받지 않는 한, 자기 안에 생식이 가능한 남자의 씨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까 인공수정의 경우마저도 성경적인 의미에서 볼 때는 동정녀 탄생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씨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씨”라는 이 말 한 마디가 현대주의자들이 동정녀탄생 대신 발명해 낸 부풀린 용어 신적잉태(The Divine Conception)가 잘못된 것임을 입증해 준다. 이 용어는 신정통주의를 표방하는 불신자들이 동정녀 탄생이란 용어보다 세상 사람들을 덜 자극시킬 요령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신적 잉태란 하나님께서 요셉의 씨를 메시야가 되도록 간섭했다는 의미도 되는고로 결국은 그리스도의 탄생이 갖고 있는 기적의 요소를 부인할 수 있도록 피할 길을 내고 만 셈이다. 이처럼 그럴싸한 용어를 만들어내서 본질을 흐려버리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교양있는 양반들이 상투적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귀를 가렵게 해주는 따위의 신학의 입을 막기 위해 성령께서는 KJV에서 그녀의 씨(her seed)라는 말씀을 보존해 놓았다. 이 씨는 그 어떤 남자와도 관계가 없다. 성령님께서 갖고 있는 씨는 오직 말씀의 씨앗뿐이다.(벧전1:23)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처녀의 배에서 출생한 자손이란 표현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마리아는 이 땅의 먼지를 밟고 살았던 여인 중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수태과정 없이 아이를 낳은 여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아가 하늘의 여왕, 성령의 장막, 신들의 두려운 거처, 하나님의 어머니 혹은 이교도의 우상숭배자들이 붙여준 신성목독적인 칭호를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기원전 4000년경에 이브에게 주어진 약속이 40세기를 지나 마리아에게서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 약속의 일부는 후일 성취될 것이다.

(3) 뱀의 씨는 주석가들 사이에서 여자의 씨보다도 더 큰 혼돈을 일으켰다. 이 구절이 문자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일 첫 번째로 내세우는 것은 마귀는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거나 혹은 생식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조적인 오류는 출8:18이 마귀는 어떤 생명이라도 만들어 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믿는데서 나온 것이다. 출애굽기의 문맥은 마귀의 종들을 흙에서부터의 생명창조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주석가들은 계13:14은 속임수를 다루고 있을 뿐 그 형상이 실제로 살아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계16:14을 잊어버린 것같다. 유다 이스카리옷 역시 병든 자들을 고쳐주고 죽은 자들을 살리도록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마10:1-5)

출8:18 마법사들이 자기들의 마법으로 이를 만들어 내려고 그렇게 행하나 그들이 할 수 없었고, 이가 사람과 짐승 위에 있더라.

계13:14 그가 짐승 앞에서 행할 권세를 받아 그같은 기적들을 통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하여 형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라.

계16:14 그들은 기적들을 행하는 마귀들의 영들이라. 그 영들은 이 땅과 온 세상의 왕들에게로 가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날의 전쟁을 위하여 그 왕들을 모으더라.

마10:1-4 주께서 자기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허약함을 치유하는 권세를 주시더라. 그 열두 사도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즉 첫째,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요, 그의 형제 안드레이며,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요,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라는 별명을 가진 렙배오, 카나안인 시몬과 유다 이스카리옷이니, 그는 주를 배반한 자더라.

앞에서 신정통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신적 잉태는 적어도 사탄의 경우에 있어서는 적용이 가능할 것 같다. 왜냐하면 유다 이스카리옷은 시몬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마귀”(a devil)였기 때문이다. 카인은 악한 자에게 나온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요일3:12)

요일3:12 카인같이 되지 말라. 그는 악한 자로부터 나왔으며 자기 아우를 살해하였으니 무슨 연고로 그를 죽였겠느뇨? 이는 그 자신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이라.

그리고 그리스도 당시의 주요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 의해 뱀, 지옥의 자식들, 마귀의 자식들, 독사 등으로 불렸다. 이들은 용어들이 기독교적, 성경적 용어들임을 잊지 말라.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는 그리스도의 부드러운 영을 갖고 있으며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만 할 것이다.

결국 창3:15은 지난 20세기 동안 알렉산드리아 비평학파의 두 거두 오리겐이 제정한 해석 원칙에 입각하여 영적으로 해석되어 왔다. 물론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카인과 바리새인들은 사탄과 여자와의 관계에서 잉태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죄의 사람은 그 모습을 드러낼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씨였던 것처럼 뱀의 씨로서 등장한다.

이런 주장은 너무 충격적일지 모르지만 창3:15에서 말하는 “네 씨, 그녀의 씨” 등의 표현은 정확히 이 사실을 언급한다. 여자가 남자 없이 아이를 낳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사탄이 인간을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마리ㅣ아는 남자없이 아이를 낳았다. 따라서 사탄은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씨를 낳을 수 없다는 가정은 잘못된 교리요, 빗나간 결론에 불과하다.

(4) 뱀은 여자의 씨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다. 이 구절이 적용될 수 있는 유일한 사건은 갈보리 십자가이다. 마귀의 권세는 갈보리 이후 어느 정도 축소되었으며(요14:30 16:11 골2:14-15) 그리고 재림시에는 천년동안 지옥에 묶일 것이다. 그는 천년왕국이 끝날 무렴에 조차도 결코 완전히 권세를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

발꿈치를 부순다는 표현은 가장 경미한 손상을 입힌다는 의미로 적어도 머리를 부순다는 표현과 대조해 볼 때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머리를 부순다는 표현은 전혀 비유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전혀 관계가 없다.

요14:30 이후로는 내가 너희에게 많이 말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오나, 그는 내 안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아니함이라.

요16:11 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기 때문이라.

골2:14-15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한 손으로 쓴 법령을 지워 버리고, 또 그것을 그의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셨으며 정사와 권세를 벗겨내어 그것들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5)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이 구절은 보통 갈보리에서의 영적 승리를 의미한다고 잘못해석되어 왔다. 이런 해석은 갈보리 사건이 있은지 오래 후에 기록된 바울의 롬16:20을 고의적으로 무시함으로써 나오게 되었다. 롬16:20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미래에 부술 것이라고 한다.

롬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사탄을 속히 너희의 발 아래서 부수실 것이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구약성경에 사용된 분명한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영적 해석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의 구절들은 머리를 부순다는 표현이 그리스도의 재림시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탄의 화신인 짐승(계19장)이 그의 머리 위에 직접 날아오는 돌로 부셔져 버릴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줄 것이다.(삿5:26 9:53 삼상17:51 시7:16 68:21 110:6 140:9 합3:13) 손안에 금광을 들고 있으면서 철광에 눈길을 돌릴 필요는 전혀 없다.

삿5:26 그녀가 손에 못을 잡고 오른손에 일꾼의 큰 망치를 들고 그 망치로 시스라를 쳤으니 그의 머리를 쳐서 그의 관자놀이를 뚫었도다.

삿9:53 어떤 여인이 맷돌 한 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라.

삼상17:51 그러므로 다윗이 달려가 그 필리스티아인 위에 서서 그의 칼을 잡고 칼집에서 뽑아 그것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목을 베니, 필리스티아인들이 그들의 최고 투사가 죽은 것을 보고 도망치더라.

시7:16 그의 해악은 그의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그의 정수리 위에 내리리라.

시68:2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원수들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리니, 여전히 자기 죄과를 행하는 자의 정수리에 하시리라.

시110:6 그가 이방 가운데서 심판하실 것이요, 시체들로 그곳들을 가득 채우시며, 여러 나라의 머리들을 상하게 하시리라.

시140:9 나를 에워싼 자들의 머리에 관하여는, 그들 입술의 해악으로 그것들을 덮게 하소서.

합3:13 주께서는 주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곧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나가시어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심으로써 악인의 집에서 그 머리에 상처를 입히셨나이다. 셀라.

머리와 관련해서 우리는 또 하나의 보편적인 신비를 벗겨낼 수 있다. 소위 선사시대의 종교들은 해골을 숭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여리코 시는 말들의 시체 밑에 묻힌 채색된 해골들로 가득차 있다. 인디안들은 포로의 머리가죽을 벗겨 냈으며 인간 사냥군들은 해골을 수집하였다. 더군다나 예수께서는 해골의 장소라는 곳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지난 60세기 동안 전세계 모든 대륙의 모든 종교의식에 있어 우리가 보기에는 서로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이러한 사실들이 성경 안에서 씨줄과 날줄로 짜여서 진리라고 하는 수예작품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가장 똑똑한 사람들 마저도 설명해 낼 수 없는 현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서 단 몇 시간만에 만족스럽게 설명되고 있다. 아켈레스는 발꿈치가 약하다. 그런데 이 발꿈치는 야곱이 엄마 배속에서 형 에서를 붙잡은 부위였다. 발꿈치에 걸려 넘어진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성경에 붙어 있으라. 그리고 나서 과학과 교육이 성경을 뒤따라 오도록 하라. 이것이 순서이다.

16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고통과 너의 임신을 크게 늘리리니, 네가 고통 가운데서 자식들을 낳을 것이요, 너의 바람은 네 남편에게 있을 것이니, 남편이 너를 주관할 것이라." 하시더라.

아담과 이브를 다루심에 있어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브를 책망하셨다. 이 순서는 은혜 아래에서도 마찬가지다.(엡5:22,25 벧전3:1-5 딤전2:14) 여자들은 우리 여자들이 없다면 남자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묻지만 이에 대해 남자들은 저기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교제 가운데 있을 걸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엡5:22 아내들아, 너희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5:25 남편들아, 너희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

벧전3:1-5 이와 같이 너희 아내들아, 너희 남편들에게 복종하라. 이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일지라도 아내의 말없는 행실로 인하여 그들을 얻고자 함이니 이는 그들이 두려움 가운데 너희의 정숙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는 머리를 땋고 금으로 치장하거나 옷을 입는 외모로 단장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겨진 사람을 썩지 아니하는 것 곧 온유하고 고요한 영으로 단장할지니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값진 것이니라. 예전에 하나님을 신뢰했던 거룩한 여인들도 이와 같이 자기의 남편들에게 순종함으로써 자신들을 단장하였느니라.

딤전2:14 또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범죄하였음이라.

그런데 주님께서는 남자편을 들어주신 것 같다. 여자를 먼저 책망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런 반여성적 태도는 모든 동양서적들에 나타나있으며 성경 역시 동양문화의 소산으로 보려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누룩이 우리의 머릿속에 침투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성경이 물론 동양의 책이며 동양적 사고를 담고는 있이만 성경은 동양 사람이나 동양정신의 산물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책이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국가들은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여자들을 더 잘 대우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메들라인 머레이 같은 정신이 혼란한 여자는 바울 서신에 등장하는 남성우월에 대해 몹시 언짢아 하지만 그녀는 성경이 존중되지 않고 전파되지 않고 실행되지도 않는 그러한 나라들에서는 여자는 일하는 짐승보다 약간 낫게 취급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6000여 년에 걸친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기원전 1400년에 기록된 이 성경말씀(창3:16)이 진리라는 사실밖에는 더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말씀은 아인슈타인이 그 엉터리 같은 상대성 이론을 발명해내기 58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인류의 장래에 관해 선포하신 말씀이다.

아무리 과학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너뜨리려 해봐도 소용없다. 출산시의 고통(마취로 출산시는 출산 후 통증), 임신가간 중의 여러 가지 불편함과 제반문제점, 원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비참함,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한 좌절감,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몸매가 손상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이를 키우는데 대한 걱정, 근심, 가정에서의 남성 대 여성의 싸움, 이 모든 것들은 21세기 첨단 여성들 역시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이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면 그것은 절대로 사실이며, 그 누가 그 말씀을 하든, 그 말씀을 어떻게 대하든 간에 그 말씀은 전혀 오류가 없으며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민23:19 롬3:4) 과학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하겠지만 자연의 법칙들은 KJV에 기록된 창세기 3장에 따라 그대로 움직이고 있다. 만약 당신이 이 법칙들을 어기려고 한다면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그 법칙을 결코 변경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21세기의 거인 과학도 이 법칙들을 결코 변경시키지 못한다.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않으시며, 또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그 분이 말씀하신 것을 행하지 않으시랴? 또한 이르신 것을 이루지 않으시랴?

롬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기록된 바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고 함과 같으니라.

"너의 바람은 네 남편에게 있을 것이니“

이 선언에는 3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이나 그 중 오직 하나만이 교리적 진리에 해당될 것이다.

*여자는 자기 남편을 주관하기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여자는 자기 남편이 자기를 주관해 주기를 원할 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다른 사람이 추천해 주기보다는 스스로 택하려고 할 것이다.

영적으로 볼 때 두 번째와 세 번째 해석이 거의 모든 여인에게 적용될 수 있음도 분명하다. 평범한 여인이라면 남자에 의해 통제받기를 원할 것이다. 오늘날 현대 여성들이 갖고 있는 가장 커다란 불평 중 하나는 그들의 남편들이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하고, 비겁하고, 과감하지 못하고, 가족부양을 책임지지 않으며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남녀평등을 외친 여성들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위의 세가지 해석 중 오직 첫 번째와 두 번째만이 문맥에 들어맞는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볼 때 두 번째 해석이 적절한 해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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