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1-11)

창세기 5장 1절 - 4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12. 10:40

1 이것이 아담의 세대들에 관한 책이라.

“이것이 ... 세대들에 관한 책이라.”는 표현은 성경에 두 번 등장한다. 이는 실로 대단히 놀라운 우연의 일치인 것같다. 왜냐하면 이와유사한 표현을 사용한 성경 기자가 24명에 이르는 반면 정확히 같은 표현은 없기 때문이다.

계보를 다루는 성경의 20여 장은 물론 창세기에 등장하는 10번의 계보 기록에도 모두 책이라는 단어는 빠져 있다.(창2:4 창6:9 창10:1 창11:10,27 창25:12,19 창36:1,9 창37:2) 따라서 우리는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창2:4 하늘들과 땅이 창조되었을 때 그것들의 내력이 이러하니라. 그 날에 주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들을 지으셨으니

창6:9 이것이 노아의 내력이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창10:1 이것이 노아의 아들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대라. 홍수 후에 그들에게 아들들이 태어났으니

창11:10 이것이 셈의 후대라. 셈이 일백 세였을 때, 즉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창11:27 이것이 테라의 후대라. 테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창25:12 다음 사람들은 사라의 여종 이집트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대라.

창25:19 다음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대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창36:1 다음은 에서, 곧 에돔의 후대라.

창36:9 이것이 세일 산에 있는 에돔인의 조상인 에서의 후대이니

창37:2 이것이 야곱의 후대라. 요셉이 십칠 세 되어 그의 형들과 함께 양떼를 치고 있었더니, 그 소년이 그의 아비의 아내들인 빌하와 실파의 아들들과도 함께 있었는데 요셉이 그들의 비행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세대라는 말을 다룰 때 책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경우는 구약의 아담의 계보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뿐이다. 놀랍지 않은가? 신약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복음서 기록자인 마태는(마1:1) 이 계보를 기록할 때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아담(고전15장)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바울의 관점에 맞추어 복음서를 기록할 의도도 전혀 없었는데도 바울의 교리적 선언에 맞아떨어지는 계보를 작성했다는 것은 실로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1:1 다윗의 아들이요, 아브라함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관한 책이라.

사실 바울 서신들은 교리적인 면에서 보면 마태의 신학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바울 서신 대신 산상수훈을 더 좋아하고 카톨릭은 주기도문을 더 좋아한다. 산상설교도 주기도문도 죄인이 어떻게 구원받는가, 구원받은 사람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지 않다.

믿음이 없는 성경비평가들은 큰 백보좌 심판석에서 모세와 마태가 어떻게 해서 신구약의 계보를 작성할 대 서로 일치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고전15:45-49에서 어떻게 구약과 신약이 연결될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를 기록하가 위해 두 개의 계보를 책상 앞에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두 계보의 관계를 정확히 제시할 수 있었다. 역사책에 이러한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은 4백만 분의 일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성경책 이외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기현상이다. 따라서 그 어떤 특별한 해석도 필요없이 세대들에 관한 책이란 표현은 인류는 두 가지 기원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고전15:45 따라서 이와 같이 기록되었으니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느니라."고 하였노라.

고전15:46 그러나 영적인 몸이 먼저가 아니요 타고난 몸이며, 그 다음이 영적인 몸이라.

고전15:47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나서 흙으로 만들어졌으나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신 주시니라.

고전15:48 무릇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흙으로 지음받은 것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서 나신 이는 하늘에 있는 것들과 같으니

고전15:49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진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도 입으리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의 모습으로 그를 지으셨으니

아담은 그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고(창1:27) 예수 그리스도는 그 형상이다.(고후4:3-4 히1:2-3) 한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패배했고 또 한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마26:41-46) 사탄을 정복하셨다. 아담은 말씀을 부인하고 유혹에 넘어갔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에 충성하셨고 그 결과 유혹자를 이겼다.(눅4장) 한 사람은 땅에 속했고, 또 한분은 하늘에 속한 분이다.(고전15장)

창1:27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니라.

고후4:3-4 그러나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가려진 것이라.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

히1:2-3 이 마지막 날들에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를 통하여 그 분께서 세상들을 지으셨느니라.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위엄 있는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니

마26:41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참으로 영은 원하지만 육신이 연약하도다."라고 하시더라.

마26:42 다시 두 번째로 가셔서 기도하며 말씀하시기를 "오 나의 아버지시여,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시고

마26:43 돌아오셔서 다시 그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시니, 이는 그들의 눈이 무거움이라.

마26:44 주께서 그들을 떠나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말씀하시며 세 번째로 기도하시더라.

마26:45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자고 쉬어라. 보라, 그 시간이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타락한 아담은 이땅에 평화를 가져오고 사람들에게 호의를 가져오려고 애쓰는 모두가 형제들인 인류의 아버지가 되었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벧전1:3)에 의해 거듭난 죄인들의 맏형이 되셨다. 당신이 그 누구이든지 간에 당신은 아담 안에 있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든지 둘 중 하나에 해당된다. 그누구도 인간이 고안해 낸 종교에 의해 하나님께로 돌이킨 사람은 하나도 없다. 문제는 아담의 형상대로 잘못 태어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다시 태어나 올바른 출생을 얻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과학과 종교로는 얻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만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모든 종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제시한 해답들은 단지 카인이 시도했던 과일을 쌓아올려 드리는 제사를 벌인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모습으로 그를 지으셨으니

이 시제가 과거로 되어있음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바 된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과 형상으로 지어졌다.(was made) 창조하셨다(created)도 과거시제로, 지으셨다(made him)도 과거시제로, 복을 주셨다(blessed them)도 과거시제로, 그들의 이름을 부르셨다(called their name)도 과거시제로 되어있다.

다윈과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실로 충격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인간이 저급한 수준에서 현재의 고등동물 상태로 진화했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모습과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선언하신다. 다윈은 자기 형상대로 하나님을 재창조해서 20세기의 10대 청소년들에게 제시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그림에는 어머니-자연의 도움을 받아 아메바에서 신으로 까지 인간의 성숙에 가는 진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인간은 적자생존의 법칙과 불필요한 기관의 퇴화라는 법칙에 의해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다윈이 퇴화시켜 버린 첫 번째 것은 성경이었고 그는 이 성경을 이 지구상의 모든 남녀노소가 다 퇴화시켜 없앨 것을 바랬다. 왜냐하면 창4:2-3을 비롯해서 구약성경 전체에 걸쳐 무오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폐위당해 버린 왕이요, 탄핵당한 대통령이요, 정신착란에 빠진 학자요, 소경을 인도하는 소경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2 주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으며,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의 이름을 아담이라 부르셨느니라.

이 구절로 미루어 볼 때 이브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아니라 아담이 붙여 준 이름이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인고로(고전11:7) 모든 인류의 문명과 모든 남자들은 여자를 우상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영광은 서로 다르다. 모든 생명이 다 여성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다.(욥14:1 15:14)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지적했듯이 인류의 가장 큰 문제는 잘못된 출생이며 이 출생은 여자로부터의 출생이다.(시61:5 욥25:4)

고전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므로 마땅히 머리에 쓰면 아니되지만,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욥14:1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날 수가 적고 고통으로 가득 찼도다.

욥15:14 사람이 무엇이기에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태어난 자가 의로워질 수 있겠느냐?

시51:5 보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태어났고, 죄 중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배었나이다.

욥25:4 그렇다면 어찌 사람이 하나님과 더불어 의롭게 될 수 있겠으며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가 어찌 깨끗해질 수 있겠느냐?

아담이 자기 아내를 이브라고 불렸을 때 그는 타락한 인간이 생명에 관해 가질 수 있는 최초의 태도를 역력히 보여주었다. 즉 모든 생명은 육체적(물질적) 생명이라는 착각에서이다. 창3:20에서 아담의 선언부터 21세기 카톨릭 사제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자신들의 육체적 손가락에 물질적 물을 찍어 유아의 육체적 머리에 뿌려주고 거듭난 것으로 간주한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가려 버렸다. 물질적인 물은 결코 영적인 생명을 낳지 못한다. 이브란 이름은 그 모든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남자의 이름을 따서 아담부인이라고 불러야 했다.(창2:22-24)

창3:20 아담이 자기 아내의 이름을 이브라 부르니, 이는 그녀가 모든 산 자의 어미였음이라.

창2:22-24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했던 갈비뼈로 여자를 지으셔서 그녀를 그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말하기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니, 그녀를 여자라 부르리라. 이는 그녀가 남자에게서 취해졌음이라." 하니라.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결합하리니, 그들이 한 몸이 될 것임이니라.

3 아담이 130년을 살며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불렀더라.

4 아담이 셋을 낳은 후 800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3:6)는 말씀대로 3절의 아담의 형상대로 태어난 자들은 그 어떤 종교로도 그 출생을 바꿀수 없다. 인간은 그가 상실해 버린 그 형상을 되찾아야만 한다. 그래야 새롭게 영적으로 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인들이 즐겨 쓰는 사회적 이미지라든지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실추시켜서는 안되느니 하는 것들은 인간이 올바른 형상이신 그분을 거부하고 잘못된 형상(적그리스도)이 나타나면 받아들일 것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KJV에 따르면 셋은 아담이 130세에 태어났으며 에노스는 셋이 105세에 태어났다. 이에 따르면 아담은 셋, 에노스, 카이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및 므두셀라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라멕과도 약 55년을 함께 살았다. 이 사실은 성경인물들의 나이를 계시해 보지 않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상당히 놀라움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노아와 아담은 겨우 28년 차이로 만나지 못했을 뿐이요 노아는 아브라함의 아버지와 동시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학자들이 문제삼는 구절(oral tradition),의 문제는 우리가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성경을 그대로 믿는다면 하나도 문제가 될 게없다.

왜냐하면 천지창조 이야기는 최초의 인간에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겨우 6세대를 걸쳐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아담, 라멕, 노아, 아브라함, 야곱, 코핫, 암람(모세의 아버지)이 그들이다. 따라서 이 천자창조 이야기가 구전되었다손 치더라도 (실은 구절된 것이 아니었다) 그 내용이 변질될 가능성은 인생을 변화시킬 만한 최대의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직접 목격한 그 사건을 잊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의 학자들은 최초의 인간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30년 동안에 하나님께서 창조에 관해 아무런 말씀도 해주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창세기를 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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