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칼빈주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구절들
칼빈주의자들은 선택받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효력이 있으며 아무도 그것을 거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죽어 있는 죄인은 주권적으로 하나님의 의해 다시 태어나며 자동으로 ‘믿음의 선물’을 받는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의거하여 때를 따라 어떤 사람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을 갖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하나님의 모든 일은 그분께서 아시기 때문이다(행15:18; 엡1:11). 그분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마음은 아무리 단단하더라도 부드럽게 하시고자 하는 그분의 작정에 따라 결국은 믿음을 갖도록 굴복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을 자신의 심판을 통해 그들 자신의 완악함과 완고함에 남겨 두신다(도르트 종교 회의 문서에서 요약 발췌).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이 효과적 부르심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에서 나오며, 결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것을 하나님이 미리 보시고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 점에서 사람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성령님에 의해 소생하고 새롭게 된 이후에 사람은 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되며 또한 이 부르심 가운데 주어지며 전달된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선택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말씀의 사역에 의해 부르심을 받고 성령님의 어떤 일반적 효력을 체험할지라도, 결코 그리스도에게로 참되게 나아오지 아니하며 그러므로 구원받을 수 없다.
다음은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칼빈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증거 본문들이다.
① 요한복음 3장 8절: 바람이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불매 네가 그것의 소리는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나니 성령에게서 태어난 자도 다 이러하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결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며 주권적으로 선택받는 자들이 불가항력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교리에 대해서도 전혀 말하지 않는다. 이 말씀은 단순하게 하나님의 영은 바람과 같아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다시 태어난 사람들의 삶에서 그분의 영향은 볼 수 있다고 말한다.
② 요한복음 6장 37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만일 칼빈주의자들이 이 구절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를 가르친다면, 그런 은혜는 주권적으로 구원받도록 미리 선택된 특별한 소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몇 사람만 미리 선택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사람들은 이렇게 미리 선택된 그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하게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뒤에 나오는 다음의 말씀에 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이것이니 곧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모든 자가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것이니라.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요6:40).
물론 칼빈주의자들은 ‘아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앞뒤 문맥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이고 결코 내쫓지 않으신다.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느니라.
요6:65 내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자가 아니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다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는 자, 이끌어 주는 자, 허락하는 자가 있다. 이들이 누구인가?
그 대답은 성경(요6:45)이 스스로 말씀합니다. 바로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다. 아버지께로부터 듣고 배운 모든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구약시대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율법으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유대 왕을 통해, 가르쳐 듣고 배우게 했다. 이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다 예수님께로 나왔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로 이끌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들은 창세전에 구원 받기로 예정된 자들이 결코 아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잘 섬기던 자들이다. 이들은 성령에 이끌러 다 예수님께로 나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었다.
③ 요한복음 6장 39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그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니라.
이것은 이미 요한복음 6장 37절 부분에서 설명하였다. 또한 40절은 아버지께서 주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④ 요한복음 6장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내게 오는 그를 마지막 날에 내가 일으키리라.
이 구절은 중요한 진술을 담고 있으며 하나님의 이끄심을 떠나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가르친다. 죄인들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롬3:11). 성경이 오직 요한복음 6장 44절만 기록하고 있다면 이 구절에서 칼빈주의의 불가항력적 은혜를 끌어내는 것이 가능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로 이끌림을 받는다고 명백하게 가르치셨다.
내가 땅에서부터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리라, 하시니라(요12:32).
그뿐 아니라 그분께서는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빛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었느니라(요1:9).
또한 성령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기 위해’ 오셨다(요16:8).
⑤ 요한복음 17장 1-2, 6절: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해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왔으니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사 아버지의 아들도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그에게 모든 육체를 다스리는 권능을 주셨으니 이것은 그가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아버지께서 세상 가운데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아버지께서 그들을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어떤 사람들을 주셨는데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주권적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인가, 아니면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들인가? 요한복음 6장 40절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이것이니 곧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모든 자가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것이니라.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장 12절과 3장 14-16절 그리고 다른 많은 구절들 역시 동일한 것을 가르친다.
⑥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14절: 그러나 주께 사랑받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로 인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려야만 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과 진리를 믿는 것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이라. 이것을 위하여 그분께서 우리의 복음을 통해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처음부터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선택했다. 이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창세전의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아니다. “처음부터”는 창세전을 말하지 않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복음을 들은 그 처음을 말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믿자 그 처음부터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셨다.
요한복음 6장 40절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이것이니 곧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모든 자가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것이니라.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선택의 기준은 사람의 믿음이다.
이 구절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과 진리를 믿는 것을 통해’ 구원받았다고 말한다. 칼빈주의의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것이 곧 성령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 믿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끄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구절은 그렇게 해석될 수 없다.
죄인들에게 빛을 주시고(요1:9) 죄를 확증시켜 주시며(요16:8) 그들을 이끄시는(요12:32) 분은 성령님이시며 단순히 진리를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간단하고 성경적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14절은 또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이 부르심이 주권적이고 불가항력적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구절은 그들이 복음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마가복음 16장 15-16절에서 보는 것과 동일하다.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선포되어야 하고 이것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은 복음으로 사람을 부르시고 사람이 그 복음을 듣고 믿으면 그때부터(처음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그 사람을 선택한다. 어느 누구도 창세전에 선택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권적 선택과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칼빈주의 교리는 이 동일한 구절에 의해 이미 반박을 받았다. 바로 앞의 8-12절은 적그리스도를 멸망시키고 그를 믿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 뒤에 저 사악한 자가 드러날 터인데 주께서 자신의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시키시고 친히 오실 때의 광채로 그를멸 하시리라. 그가 오는 것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권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와 함께 멸망하는 자들에게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런 까닭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그들이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 이것은 진리를 믿지아니 하고 불의를 기뻐한 그들이 다 정죄를 받게 하려하심이라.
이 구절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여 구원받을 수 있지만 또한 그것을 거절한 결과 멸망받을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멸망받도록 주권적으로 선택을 받아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한다.
⑦ 사도행전 16장 14절: 두아디라 시 출신의 자주색 옷감 장수로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루디아라 하는 어떤 여자가 우리의 말을 들으매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시므로 그녀가 바울이 말하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니라.
주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 이것은 칼빈주의 교리가 아니라 모든 성경 신자들이 이해하고 믿는 교리이다. 루디아는 이 일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을 경배하던 자였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경배하던 자에게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내어 복음을 듣도록 은혜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루디아가 그리스도의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그녀의 마음을 여셨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죄인들만 구원을 받도록 예정하셨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구절은 또한 하나님께서 선택받지 않은 자들을 구원하려고 시도도 하지 않으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이 말씀은 루디아가 불가항력적으로 부름을 받았거나 주권적으로 다시 태어나서 믿음을 받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런 식으로 해석하려면 칼빈주의 교리의 틀을 슬그머니 이 구절 안에 집어넣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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