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므두셀라는 187년을 살고 라멕을 낳았고
26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은 후에 782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27 므두셀라의 모든 날들이 969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28 라멕은 182년을 살고 한 아들을 낳았으니
29 그의 이름을 노아라 부르고 말하기를 "이 아이는 주께서 저주하셨던 땅으로 인한 우리의 일과 우리의 손의 노고에 관하여 우리를 위로할 것이라." 하더라.
에녹은 위로 올라가 버렸다. 므두셀라가 테어나기 전에는 에녹은 족보에서 별볼 일 없는 자였다. 그는 첫째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첫째 아들의 이름 므두셀라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성경에서 가장 오래도록 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969살)
므두셀라는 히브리어로 굉장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름이다. “그가 죽으면 그것이 보내질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런 의심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므두셀라는 아담, 에노스, 카이난, 마할랄렐, 야렛 및 라멕(라멕은 므두셀라보다 5년 전에 죽었다) 등과 함께 묻혔고 바로 그때 하늘의 창문들이 열리고 폭포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녹이 므두셀라가 태어난 후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주님은 에녹에게 그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가르쳐 주셨을 것이다. 에녹은 그의 맏아들의 이름을 지은 후 기도실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그 이름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고 주님께서는 4000년을 앞질러(유1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계시를 주셨을 것이다.
이 계시는 오는 세대에게 노아의 날들은 현제의 모습일 것임을 보여준다. 가장 형편없는 학자들의 전통을 따르기 위해 에녹의 책이란 것이 유다서 14절의 요구를 충족시킬 목적으로 발명되었다. 이 책은 사해사본에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쓰실 대 잊어버린 책이 몇 권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들먹거리고 있는 바로 그 책이다. 그러나 KJV에 나와있는 것처럼 에녹은 예언을 했을 뿐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참된 성경학도라면 에녹의 책 따위는 신경쓸 것이 없다.
므두셀라는 B.C. 3317년경 태어나 B.C. 2347년경 죽었다. 라멕은(‘강력한’) B.C. 3130년경에 태어나 B.C. 2353년경에 죽었다. 라멕의 아들 노아는 따로 소개하거나 신임장을 만들 것도 없다. 사람들은 노아시대 이후 계속 헛다리를 집고 있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노아가 왜 방주 안에 파리와 모기를 들여보냈는지 의아해 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휴식(안식) 혹은 위안(위로)란 뜻이며 그는 B.C. 2948년경에 태어났다.
홍수는 오늘날 인구학적 견해에 따르면 꼭 필요했었다. 왜냐하면 인구증가의 법칙에 따르면 대재앙이 없었더라면 인구조사를 지난 2000년간의 아무 때에 실시했다 할지라도 그 어떤 인간도 B.C. 4000년 이전에 살 수 없었다. 정상적인 인구증가에 따르면 창세기 6-8장의 전세계적인 노아의 홍수가 사실이 아니라면 현재의 인구는 1600억 명이 된다. 현재 인구의 약50배. 따라서 노아의 홍수를 국부적인 중동지역만의 홍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현실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이 현실을 엄연하고 냉정한 수학적, 통계적 현실이다.
다윈의 추정대로 B.C. 2000년-B.C. 1000년 사이에 가족 평균 4명의 자녀를 두고 두명이 죽어 두명만 성장했다고 계산하더라도 노아의 홍수가 없었더라면 인구는 8,000억명 즉 현재의 250배가 된다. 성경에 따르면 당시는 질병도 없고 기후조건도 지금보다 휠씬 좋아 살기가 좋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서 창세기 6-8장의 홍수를 지역적인 것이며, 그로 인해 겨우 40만명 정도가 죽었다는 헛소리를 학자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만약 창세기 1-5장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현재 인구는 1600억명이 될 터이니 창세기 6-8장의 홍수가 없었더라면 시체를 좋아하는 까마귀는 몰라도 땅에 발을 내려놓을 자리를 발견하지 못했으리라.
대영박물관에 있는 아비도스(Abbydos) 석판에 따르면 노아는 이집트의 제20대 파라오였다고 한다. 이집트에 정착한 노아의 아들은 Cham(Chufu)(Khem)이라고 하는데 이들 자료에 의하면 아담이 최초의 파라오(Seti 1세)이고 그의 아들은 메나(Mena)와 세신(Sheshim), 즉 준비된 자와 죄지은 자라고 한다.
노아(안식, 위로)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사실로 보아 그들의 부모님들은 당시의 과학, 종교, 진보에 대해 매우 독특한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은 당시 모든 찬란한 문명을 모두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다
“주께서 저주하셨던 땅으로 인한 우리의 일과 우리의 손의 노고”(29절). 노아의 부모들은 당신의 세상 사람들처럼 돈과 교육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모든 해결책은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반대로 생각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비관론자는 사물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는 자이다. 현실을 직시하면 누구나 회의론자가 되기 마련이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낙관주의자는 어둠 속에서 있지도 않은 촛불을 보는 사람이고 비관론자는 그 촛불을 불어 꺼 버리는 자이다. 21세기에 이 참다운 비관론을 적용해보자.
① 인간 즉 자기 자신에 대해 낙관하는 사람은 자기가 성경의 불빛을 성공적으로 불어 꺼 버린 자로서 자신을 현실주의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는 환상주의자일 뿐이다.
②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인간에 관해 비관론자이지만(딤후3:1-13) 하나님의 약속들에 절대적 신뢰와 기쁨을 갖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구절들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확고한 낙관론을 갖고 앞당겨 즐기는 자들이다.
노아의 부모들은 저주의 영향을 감지하고 있었다. 오늘날 긍정적 사고방식주의자들이라면 이들 노아의 부모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하였을 것이고 어쩌면 그들이 자기 연민에 빠졌다거나, 창의력이 부족하다거나, 구태의연하다던가, 자기고집을 부린다고 야단을 칠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눈에는 노아의 부모들은 반동적이요, 발전을 저해하고, 즐거움을 파괴하려는 자들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베트남 전쟁이나 중동전쟁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시면 생각을 바꾸든지 아니면 빛을 계속거절하든지 할 것이다.
라멕은 현실주의자였다. 당시에 군림하던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를 미혹할 수 없었다. 축산의 발달, 음악과 금속공예의 발전 등도 그의 눈을 주님으로부터 빼앗지 못했으며 외설문학, 음란영화 및 당시에 풍미했던 호모섹스 등도 인간은 향상하고 있다는 생각을 그에게 넣어줄 수 없었다. 라멕은 냉정하고 객관적이고, 정직한 눈으로 사태를 직시하였다. 만약 그가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더라면 그의 기록은 바울의 딤전4:1-2, 딤후3:1-13이나 이사야의 이사야 13,19,21장 혹은 마태의 마태복음 23장, 요엘의 요엘 2장 혹은 요한의 계시록 6장과 예레미야의 예레미야 23장과 똑같은 내용을 담았을 것이다.
딤전4:1-2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으로 마비되어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
라멕은 노아가 태어나던 날 창3:15를 그의 아내에게 읽어 주었던 것같이 보인다. 그는 여자의 씨에 희망을 두고 지난 1500년간 기록된 성경없이 지내온 그 세상에 그 씨가 위로를 가져다 줄 것을 바랐던 것이다. 만약 창5:5-6의 상황이 홍수없이 계속되었더라면 무려 1600억 명의 인간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거부하며 자신의 의로 가득차 있을 것이요, 타락한 인간들이 천사들과 동거하고 있을 것 아닌가? 실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따라서 홍수는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축복 중의 하나인 셈이다.
창3: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30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595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31 라멕의 모든 날들이 777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32 노아는 500세가 되어서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더라.
“777”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심에 있어서 마지막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7로 다루신다.(레23,25장 계1,22장 행7장 롬7장 계7장 마7장) 스펙트럼에는 7가지 색이 있고 피아노에도 7개의 음계가 있으며, 사람의 머리에는 7개의 통로가 있고 모든 인간은 7개의 지체를 갖고 있다.
제5장에 기록된 마지막 이름은 야벳이다. 이 사람은 코카사스 인종의 조상으로 요즘에 와서는 WASP(White Anglo Saxon Protestant의 약자로 백인 신교도 계급. 미국의 중상류 계층을 형성하고 있음을 비꼬기 위해 만든 용어임)이라고 미움과 질시를 받고 있다. 야펫에 대해서는 창6:10과 10:2에서 더 언급한다.
창6:10 노아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펫이라.
창10:2 야펫의 아들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투발과 메섹과 티라스요
노아의 다른 아들들은 함[‘태워진’ 혹은 ‘뜨거운’으로 이 단어는 ‘함께 자람
과 ’장인‘과 관련이 있다]과 셈(’이름‘ ’명예‘ ’기억‘ 혹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다. 야펫은 창10:21에서 형(elder)으로 나와 있고 함은 창9:24에서 동생(younger)으로 나와있다. 막내동생(youngest)이란 단어가 쓰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어쩌면 세 아들의 순서는 야펫, 함, 셈일지 모르겠다.
창10:21 셈은 모든 에벨 자손의 조상이요, 형 야펫의 동생이라. 그에게서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창9:24 노아가 포도주에서 깨어나서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서
게세니우스라는 학자는 “younger”(작은 아들)이란 말을 ’younger than Ham‘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그러니까 야펫과 셈이 동시에 노아의 둘째 아들이 되는 셈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KJV을 제쳐두고 원문만 따지는 사람들은 이런 착란을 일으키고 만다. 나무들만 보다가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영어로 간단히 해결될 것이 콥트어, 아람어, 독어, 영어, 불어, 서반아어, 히브리어, 헬라어, 시라아어 및 갈대아어를 자유자제로 구사하는 학자의 손에 들어가면 엉망이 되어 나온다. 이 학자께서 KJV을 거부하지 주님께서는 그를 막으신다. 쌍둥이가 태어났더라도 형, 동생이 있는 법인데 이들 학자들은 셈과 야펫은 동시에 태어난 것으로 간주함으로서 함의 동생, 즉 노아의 둘째 아들들로 만들어 버리는 넌센스를 빚어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 가능성만 줄 뿐이다. 즉 야펫, 함, 셈의 순서이거나(younger가 younger than Japheth일 경우) 야펫, 셈, 함(younger가 younger than Japheth and Shem 혹은 younger than Shem)의 순서이다. 학자들의 주장대로 함, 셈, 야펫 혹은 함, 야펫, 셈이 절대 아니다. 이밖에 아예 창10:21을 변개시킨 성경들도 있다. 그래서 셈을 야펫의 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야펫은 노아가 500세 때 셈은 야펫보다 3년 후에 태어났다. 창5:32 7:11 11:10)
창5:32 노아는 500세가 되어서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더라.
창7:11 노아의 생이 600세 되던 해 둘째 달, 그 달 17일, 그 날에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으니
창11:10 이것이 셈의 후대라. 셈이 100세였을 때, 즉 홍수 후 2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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