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들이 지면에서 번성하기 시작하고 딸들이 그들에게서 태어났을 때
이제부터 성경은 인간의 구체적 역사를 다루기 시작한다. 이제까지는 창4:20-22에 나와 있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성령께서는 개인과 그 후손들의 계보만을 분석하셨다. 창세기 1장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주로 선사시대의 내용들이며 2,3,4,5장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하나님의 분석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을 다루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과학의 영역(창1장), 심리학의 영역(창2-4장), 통계적 영역(창5장)을 뒤로 하고 드디어 인류의 역사로 들어서게 된다.
창4:20-22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가 장막에 거하는 자들과 가축을 기르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인데, 그는 하프와 오르간을 만드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었으며 실라 역시 투발카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과 철로 모든 것을 만드는 자들의 선생이라. 투발카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창6:1의 시점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노아의 출생에 관한 구절들보다는 상당히 앞서 있었던 사건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에노스와 카이난(B.C 3700-3600) 시절에도 이미 아들들과 딸들로 번성하고 있었고 정상적인 출생률로 치더라도 노아가 B.C 2945년 지구상에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4백만의 인구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700년간이면 인구 증가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 미국에 건너온 모든 아프리카와 유럽인은 (약 1000만 명 이상이) 500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증가되었다. 어떤 이들은 수천 명의 이민 온 것이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내가 말한 1000만 명은 모두 1469년 이후에 출생한 자들이다. 창6:3의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들(창6:2)은 노아가 태어나기 100-800년 전 사이에 사람의 딸들과 동거하고 있었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들로 삼으니라.
이 구절은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근본주의자들 가운데서 가장 커다란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스코필드, 라킨 등을 위시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다양하게 해석했고 분명한 증거들을 이곳저곳에서 인용하거나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오늘날 이 논쟁에 대해서는 제발 그 문제는 접어둡시다. 그런 문제로 논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무가치합니다. 혹은 그들은 그들이 옳다하고 당신은 당신이 옳다 하니 그것으로 됐지 않소 등과 같이 논쟁을 그만두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은 어리석고 게으를 뿐아니라 진지하지도 않고 미온적인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창6:2와 이와 연관되는 모든 성경구절들은 너무도 중요해서 사탄은 이것들이 알려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 구절을 말씀하시더냐?
본문을 있는 그대로 관련 구절들을 찾아가며 해석하기 전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스코필드 관주성경>은 (뉴스코필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좋은 관주성경이다. 이 성경을 편집한 사람들은 경건한 분들로 그분들이 편집한 이 성경으로 인해 미국의 보수주의가 전천년 교리를 지난 반세기 동안 보존할 수 있었다. 이 성경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근본교리에 관한한 건전한 신앙을 갖출 수 있었다. 새로나온 뉴스코필드는 상당히 문제가 많다. 왜냐하면 그 관주성경은 행8:36-38의 각주에서 물침례가 성사(sacrament)라고 가르치고 있다. 편집위원장인 슐러 잉글리쉬가 로마 카톨릭 신자였다.
행8:36-38 그리하여 그들이 길을 따라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그 내시가 말하기를 "보라, 여기 물이 있도다. 내가 침례를 받는데 무슨 거침이 있느뇨?"라고 하니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 그리고 나서 그가 마차를 세우라고 명한 다음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로 내려가서 빌립이 그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에 관한 한 경건하고 헌신된 스코필드 관주성경 편집자들 역시 다음의 9가지 사항을 간과하고 말았다.
① 그들은 아담이 타락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구약성경에서 그 어떤 경건한 혈통의 사람일지라도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요1:12는 이 형상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창5:1-3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아담의 형상을 따라 태어나므로 거듭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요1:12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창5:1-3 이것이 아담의 세대들에 관한 책이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모습으로 그를 지으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으며,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의 이름을 아담이라 부르셨느니라. 아담이 일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불렀더라.
② 이들은 사43:6을 이 구절의 주석에 인용하는데 그러나 이사야의 아들들과 딸들이란 창세기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사야 43장의 아들들과 딸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요 홍수 이전의 셋의 자손들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경건한 셋의 자손이라고 한다. 셋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많은 자손을 갖고 있었다.(창11:22,26)
사43:6 내가 북쪽을 향하여 말하기를 "포기하라." 할 것이며, 남쪽을 향하여 말하기를 "감금하지 말라." 하리라. 내 아들들을 먼 곳으로부터, 내 딸들을 땅 끝들로부터 데려오라.
창11:22 스룩은 삼십 년을 살고 나홀을 낳았고
창11:26 테라는 칠십 년을 살고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③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라 한 대조적 표현은 셋의 아들들과 카인의 딸들이라는 부주의한 해석을 허락지 않는다. 이런 해석을 히브리학자들과 기독교 학자들의 공통된 해석이라는 핑계로 옳은 해석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어째서 본문이 말하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주장하면서 본문이 의도하지도 않은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가?
④ 만약 이들이 셋의 아들들과 카인의 딸들이었다면 어떻게 해서 홍수로 카인의 딸들이 다 죽고 난 이후, 창6:4에 ‘그 후에도’라는 말에 주목하라, 그런 일들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창6:4 그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고, 그 후에도 있었으니,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들어와서 그녀들이 그들에게 자식들을 낳았을 때이며, 그들은 옛날의 용사들로 유명한 사람들이 되었더라.
⑤ 만약 이들이 카인의 딸들과 셋의 아들들이었다면 어떻게 그들은 거인들을 낳을 수 있었는가? 거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들어왔을 때 생겨난 희귀종이다. 아무 때나 태어나는 사람들이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 결혼해서 거인들을 낳은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결국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면 이들 거인들은 모험담에 나오는 거인들이라고 상상해 보기 전에 거인이란 단어를 바꾸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가?
⑥ 셋의 경건한 가계란 말은 성경 66권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말인데 이들이 세상적인 여자들을 취했다는 가정을 어떤 근거로 한단 말인가? 성경에는 메시야의 탄생을 추적할 수 있는 메시야의 가게가 있는데 이 메시야의 계보는 결코 경건한 계보가 아니었다. 창38장에서 유다의 음행으로 파레스가 태어났고 라합은 창녀였으며, 밧세바는 간음을 했고, 다윗 역시 간음했다. 이들만으로도 메시야의 계보는 경건한 사람들의 계보가 아님이 분명하다.
사도적 계승이나 경건한 계보는 모두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다. 그런 계보도 없다. 따라서 스코필드 관주성경의 처음 3가지 기본전제는 100% 거짓임이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⑦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홍수 직후 쓰인 책인 욥기(1,2,38장)에 잘 정의되어 있다. 이들은 아담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역사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탄(욥1,2장)과 창조(욥38장)에 관련된 자들로 언급되어 있으며 용사들의 아들들(시89:6)은 분명 시82:1의 신들일 것이다. 그 문맥이 홍수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시89:6 하늘에서 누가 주께 비교될 수 있으리이까? 용사들의 아들들 중에 누가 주와 같이 될 수 있으리이까?
시82:1 하나님께서는 용사들의 회중 가운데 서 계시며, 그는 신들 가운데서 판단하시는도다.
창6:2가 이처럼 논란이 되는 이유는 만약 하나님의 아들들이 벧후2장과 유다서 6-7절의 천사들이라고 한다면 그때는 그들이 33세의 남성이며, 날개가 없고 여자들과 동침해서 생식이 가능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생식은 피를 얻느냐 못얻느냐에 달려 있다. 이들은 향후 10년 안에 이 지구상에 돌아와서 창세기 6장에서 있었던 그 장면을 재현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이때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로서 달이 아닌 목성(쥬피터)에서 내려올 것이다.(행14,19장 마24장 눅21장 계12:7)
계12:7 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을 대항하여 싸우고 용과 그의 천사들도 싸우나
⑧ 천사들은 생식을 할 수없다는 가르침은 마22:30에서 “하늘에 있는”이란 단어를 삭제함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내려온 천사는 생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가르침은 천사들은 성이 없다는 이단 가르침을 낳고 말았다.
마22:30 부활 때에는 그들은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으니라.
⑨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천사가 성이 없다든가 성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든가, 말했다든가, 행동했다는 기록이 없다.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걸쳐 등장하는 모든 천사는 날개가 없는 남성이다.(계21:17 갈4:14 행1:10 삿13:3-21 창19:1-15)
계21:17 또 그가 그 성벽을 측량하니 일백사십사 큐빗이라. 이는 사람의 척도, 곧 천사의 척도라.
갈4:14 또 너희는 나의 육체 안에 있는 나의 시련을 무시하거나, 거절하지도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천사같이 곧 그리스도 예수같이 나를 영접하였도다.
행1:10 주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주시하고 있는데, 보라,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삿13:3 주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지 못하여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나 이제 네가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라.
창19:1 저녁 때 두 천사가 소돔에 오니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더라. 롯이 그들을 보고 일어나 맞이하고 그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성이 없는 천사란 마리아의 무염시태, 영원한 처녀성, 크리스마스 트리 혹은 부활절 토끼처럼 100% 비성경적인 교리이다. 날개는 여자 마귀들(슥5:9)의 전유물로 이들이 천사들로 그려지는 이유는 천사가 아닌 그룹들 때문이요(그룹은 날개가 있다) 계14:6에 나와있는 구절 때문이다.
슥5:9 그때 내가 내 눈을 들어 보니, 보라, 두 여인이 나오고 그들의 날개들에는 바람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황새의 날개같은 날개들을 가졌음이라. 또 그들이 땅과 하늘 사이로 에바를 들어올리더라.
만약 천사가 이 땅에 내려오면 그는 구원받은 성도의 70%와 구원받지 못한 자들 100%를 속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카톨릭 성화들이 천사들을 잘못묘사하고 있고 스코필드 관주성경이 잘못된 해설을 재공함으로써 천사들은 보호받고 있고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천사가 지구상에 나타나면 노아의 때와 같이 그 어떤 거듭나지 못한 과학자도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이들 천사들은 반드시 곧 나타난다.
'강 해 > 창세기(1-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6장 4절 (2) | 2025.04.19 |
---|---|
창세기 6장 3절 (0) | 2025.04.18 |
창세기 5장 25절 - 32절 (2) | 2025.04.16 |
창세기 5장 12절 - 24절 (2) | 2025.04.15 |
창세기 5장 5절 - 11절 (1) | 2025.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