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때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족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 본문은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여러 가지 사실들 중에서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종을 분리시키고 인종들간에 차별을 두는 분리주의자란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 사실 앞에 깜짝 놀란다. 뿐만 아니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관심이 있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며 도덕문제에 있어서는 절대 적인 입장을 취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본문에 계시된 이런 진리들 중 그어느 것도 관용적임을 내세우는 현대인들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고 용납도지 않는다 “너는 떠나 ...로 가라.” 이 명령은 분명 분리(segerigation)를 명령한 것이지 통합(integation)을 명령한 것이 아니다. 이 명령은 몇몇 개인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그들로부터 분리되라는 말씀이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이 말씀 역시 인종차별을 보여주고 있다.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이 말씀 역시 중립노선은 없다. 검든지, 희든지 아래든지 위든지, 뜨겁든지 차든지. 구원을 받았든지 버림을 받았든지, 하늘 나라든지 지옥이든지, 저주든지 촉복인든지 둘의 하나를 택하란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현대인들이 이러한 종류의 증오문학에 접할 때 취하는 태도는 이 말씀들을 저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서 이 말씀들은 ‘한 민족의 민족으로서 신화적 이야기이며 환상적인 내용으로 미화된 것뿐이다.’라고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만약 본문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현대인들은 자존심을 크게 손상 당한 셈이다.
이들의 상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RSV는 기가 막힌 번역을 들고 나온다. 너를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들이 자신들을 축복할 것이다.(By you,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will bless themselves) 그러나 이 번역은 누가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 땅의 모든 족속들은 아브라함을 인해 자신들을 축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셈이다.(빌2:7-11) 우리는 때로 Marduk(바빌론의 주신), Bel(바빌론과 아시리아의 대지의 신), Nebo(느보산에서 섬기던 신) 그리고 Nippur(바빌론의 고대도시에서 섬기던 신) 등이 현대 번역본을 만들어 내는 자들의 신들보다 그리 향상된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식으로 위 구절을 번역하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번역은 해석의 차원도 넘어서는 것같다. 왜냐하면 너를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들이 자신들을 축복할 것이라는 문장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 문장이 어떻게 해석이 되던 간에 그 어느 곳에서도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RSV의 이런 희한한 번역은 100여전에 나온 쟈크(Jarch)와 클레리쿠스(Clericus)라는 옛저작으로부터 나왔다. 창12:3에 쓰인 히브리어 ‘니브레쿠’는 니팔 완료형 3인칭 복수로 ‘바라크’(축복하다)의 수동형으로서 와우 결과절로 사용된다. RSV에 나와있는 재귀형태는 ‘히트파엘’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창12:3이 RSV에 나와있는 희한한 번역이 되기 위해서는 ‘히트바라쿠’라는 단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단어는 이제껏 출판되었던 그 어떤 필사본들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더 나은 번역의 정체이다.
“그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메리카 인디안과 이방인들에게도 종종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일 신실한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나타난다.(행7:2 10:3 민12:6)
행7:2 스테판이 말하기를 "부형 여러분, 들으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하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행10:3 그가 그 날 제 구시 경에 환상 속에서 분명하게 보니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와서 말하기를 "코넬료야." 하더라.
민12:6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만일 너희 가운데 선지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 가운데서 그에게 나를 알게 할 것이요 꿈 가운데서 그에게 말할 것이니라.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족과 네 아비의 집을”
고향은 지역의 메소포타미아를 말하고 친족은 롯을 포함한 것이고 아비의 집이란 테라와 나홀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온전히 순종한 것이 못 된다. 그런데도 신약성경 히11장에서는 그에게 훌륭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바로 이것이 전가된 의(롬4:5)이다.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셨을 대 주님께서는 그 땅의 이름이나 위치를 말씀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브람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면서’ 떠났다. 이때 아브람의 마음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본향을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람에게 한 도성을 예비하셨다. 아브람은 카나안 땅에 도착하여 100년 동안이나 그 도성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카나안 땅에서 아브람은 타국인이요, 순례자였으며(히11:9,13 창4:14) 그가 장막을 치고 걷을 때마다 그는 마지막 안식처가 될 어떤 도성을 찾고 있었다.
히11:9 믿음으로 그는 타국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기거하여 그와 함께 그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들인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느니라.
히11:13 이들은 모두 믿음 안에서 죽었으나 모두가 그 약속들을 받은 것은 아니로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았고 확신하여 소중히 간직하였으며, 또 이 땅 위에서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느니라.
창4:14 보소서, 주께서 오늘 이 지면으로부터 나를 쫓아내시오니, 내가 주의 낯으로부터 감추어지리이다. 그리하여 내가 땅에서 도피자와 유랑자가 되리니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리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다윗도(히11:39) 그 도성을 찾지 못했다. 이 구약성도들든 언젠가 그들의 도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윗과 아브라함의 아들이신 분께서(마1:1-2)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보좌에 앉아 다스릴 때 이루어진다.(슥14:21 마25:30-31 겔48:35 사65:18-19)
히11:39 이 사람들이 모두 믿음을 통하여 좋은 평판을 얻었으나 그 약속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마1:1 다윗의 아들이요, 아브라함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관한 책이라.
슥14:21 정녕, 예루살렘과 유다에 있는 모든 솥이 만군의 주께 거룩함이 될 것이요, 희생제를 드리는 자들이 모두 와서 솥들을 가져다가 거기에 삶으리라. 또 그 날에는 만군의 주의 집에 카나안인이 더이상 있지 아니하리라.
마25:30-31 너희는 그 쓸모없는 종을 바깥 흑암에 내어던져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고 하더라. 인자가 그의 영광 중에 오고, 또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그와 함께 오면 그 때에 그가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겔48:35 그 사면에 일만 팔천이며 그 날로부터 그 성읍의 이름이 주께서 거기 계시다가 될 것이라.
사65:18-19 그러나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창조하고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노라. 내가 예루살렘에서 즐거워하며 내 백성 가운데서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더이상 들리지 아니하리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이 말씀을 한 의도에 대해 아무런 의심할 이유가 없다. 아브라함은 실로 큰 민족을 이루었다. 다윗의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80만명의 용사들이 있었다.(삼하24:9) 그의 아들 솔로몬 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은 바닷가의 모레처럼 많았다.(왕상4:20)
삼하24:9 요압이 왕에게 백성의 총 인구수를 올렸으니, 이스라엘에서 칼을 뺄 수 있는 용사가 팔십만이요, 유다의 사람이 오십만이더라.
왕상4:20 유다와 이스라엘이 많았으니, 바닷가에 있는 모래처럼 많아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더라.
“네게 복을 주고” 이 말씀은 창24:1,31,35에서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창24:1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주께서는 모든 일에 아브라함을 복 주셨더라.
창24:31 그가 말하기를 "주께 복을 받은 분이여, 들어오소서. 어찌하여 밖에 서 있나이까? 내가 방과, 낙타를 위한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 하더라.
창24:35 주께서 나의 주인을 크게 복 주셨기에 그는 위대하게 되었으며, 주께서 그에게 양떼와 소떼와 은과 금과 남종들과 여종들과 낙타들과 나귀들을 주셨으며
“너는 복이 되리라.”
아브라함은 그가 접하게 되는 사람들을 축복하게 된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찬송가의 핵심내용이다. ‘인생의 여정길, 많은 사람은 피곤하고 슬프다네, 어둠으로 가득찬 그곳에 햇빛을 비추시어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소서. 나로 복되 되게 하소서. 나로 복이 되게 하소서.’
이말씀의 의미는 유대인들의 기도문에 하나님의 이름 대신 아브라함의 이름이 쓰인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에게 복을 가져올 거란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롯을 구출해 냈을 때 그는 롯에 복이 되었다. 롯이 소돔을 떠나도록 기도했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롯에게 복이 되었고 아들 이삭이 창22:10의 사건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사자로서 강한 믿음을 지닌 아버지를 모시고 자랄 때 아브라함은 아들에게도 복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전 유대민족에게도 복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잠들었을 때(창15:12-21) 하나님께서 그에게 준 무조건적인 약속들이 없었다면 유대민족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결코 차지할 수 없었다. 모세와의 언약하에 주어진 약속들은 행위에 근거한 조건부 약속들이었다.(레26장) 너는 복이 되리란 말씀은 사실 그대로 이루어졌다.
창22:10 아브라함이 그의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이삭을 죽이려 하는데
창15:17-21 해가 져서 어두웠는데 연기 나는 가마가 보이며, 불타는 등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네 씨에게 주었으니 켄인들과 크니스인들과 캇몬인들과 힛인들과 프리스인들과 르파인들과 아모리인들과 카나안인들과 기르가스인들과 여부스인들의 땅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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