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아브라함이 그의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이삭을 죽이려 하는데
늙은 아브라함은 여전히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보는 것 없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순간순간을 믿음으로 사는 모습이다. 이런 믿음은 바울 혹은 욥마저도 갖고 있지 못했을 믿음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믿음 혹은 믿음의 아브라함이란 말이 그냥 하는 소기라 아님을 알 수 있다.(롬4:12,16)
롬4:12 또 할례자의 아비이니, 할례받은 자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비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지 아니하였을 때 가진 믿음의 발자취를 밟는 자들에게도니라.
롬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것이 은혜를 따라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되거니와 마침내 그 약속을 모든 씨에게 확고히 하려 함이며, 율법에 속한 자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에게도니라. 그는 우리 모두의 아비라.
아브라함은 바깥으로 드러난 상황에 관계없이, 증거도 없는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행동했다. 환경도 반대도, 느낌도, 사회적 압력도, 관습도, 혈연관계도 그의 믿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사람을 21세기에서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렘5:1-2) 아브라함은 큰 칼을 손에 들고 머리 위로 올리고서는 눈을 감고(고후4:18) 내리치려고 한다.
렘5:1-2 너희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여기저기 달려서, 이제 보고, 알며, 거기 넓은 곳에서 찾으라. 만일 너희가 한 사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그 성읍을 용서하리라.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살아계시거니와" 할지라도, 진실로 그들은 거짓되이 맹세하는도다.
고후4:18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
11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12 그가 말하기를 "네 손을 아이에게 대지 말고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 하더라.
바로 그 순간 아브라함은 몽둥이로 팔을 얻어맞는 것 같은 느김이 들었고 손에 있던 날카로운 칼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말하기를” 아차 하는 순간 이삭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주의 천사가 개입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했고 따라서 오직 하나님만이 그를 막을 수 있었다. 세상도, 육신도, 마귀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행20:22-24)
행20:22-24 이제 보라, 내가 영 안에 매인 바 되어 예루살렘으로 가노니, 거기에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지만 다만 성령께서 각 성읍에서 증거하여 말씀하시기를 결박과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니라.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온전히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리라.
11절과 12절의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제단에 기대어 무릎을 꿇고 있었을 것이다. 정신적 긴장과 감정의 고조로 지쳐 있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하고 이삭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구원의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그때 주의 천사가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렇고 말고 너의 아버지 같은 분을 아버지로 모시게 된 것에 감하해야 하고 말고.’ 이때 이삭은 ‘물론입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런 분을 아버지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았더니, 보라,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그 뒤에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숫양을 잡아와서 그의 아들 대신에 번제로 드렸더라.
대속제물이신 그분 대신 숫양이 대속제물이 되었다. 숫양이 걸린 수풀은 분명 가시나무 수풀이었을 것이다.(창3:18) 이 숫양은 이삭을 대신해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다.
창3:18 땅은 네게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낼 것이요 너는 들의 채소를 먹을 것이며
이리하여 하나님 자신이 죄인을 대신해서 자신을 제공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입증되었다. 여호와이레는 희생제에 관해 다음과 같은 진리를 확정해 준다.
① 하나님 자신이 제물이 되기까지는 속죄는 불완전하다.(히10:4)
히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
② 하나님께서는 자원하여 자신을 드리기까지는 하나님은 그 제물을 받을 수 없다.(히10:5-7 레1:3)
히10:5-7 그러므로 그가 세상에 오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희생제물과 예물을 바라지 아니하시고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주께서 죄로 인한 번제와 희생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때 내가 말씀드리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관하여 기록한 것과 같이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였노라." 하셨도다.
레1:3 그의 예물이 소떼의 번제희생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 것이며, 회중의 성막 문에서 주 앞에 자원함으로 드려야 할지니라.
③ 창세기 3장 ~ 마태복음 27장까지의 모든 희생제사는 속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임시적 제도였다.(히10:11)
히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④ 하나님께서는 희생제를 드리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 계급으로 마련하셨다.(대상15:14-16 출28:40-41 레9장)
대상15:14-16 그리하여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궤를 메어 가려고 스스로를 성결케 하였더라. 레위인들의 자손이 하나님의 궤를 채로 꿰어 자기들 어깨 위에 메었으니, 주의 말씀에 따라 모세가 명한 대로였더라. 다윗이 레위인들의 우두머리에게 말하여 그들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로 세워 악기들, 즉 솔터리와 하프와 심벌즈로 소리를 내며 기쁨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게 하니
출28:40-41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너는 옷들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허리띠를 만들고 그들을 위하여 영광과 아름다움을 위한 모자를 만들되 그것들을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붓고, 그들을 성결하게 하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게 할지니라.
⑤ 그러나 민수기 1-13장 이전이나 사도행전 2장 이후에는 제사장 계급이란 없다.(마27:51 히8:1 9:24 벧전2:9 계7:7)
마27:51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히8:1 지금까지 말한 것들의 요점은 그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계시다는 것이라. 그 분은 하늘들에 계신 위엄있는 분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으니
히9:24 이는 그리스도께서 실물의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 자체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지금 나타나 계시기 때문이라.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그에게 속한 친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너희로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계7:7 시므온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 인장으로 표시를 받았고, 레위 지파에서 일만 이천명이 인장으로 표시를 받았고, 잇사칼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 인장으로 표시를 받았고,
⑥ 멜키세덱은 실제적인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그는 단지 기념의식을 거행했다.(창14:18 고전10:16-17 11:25)
창14:18 살렘 왕 멜키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고전10:16-17 우리가 축복하는 이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의 교제가 아니며, 우리가 떼는 이 빵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가 아니냐? 이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빵이요, 한 몸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모두 그 한 빵에 참여하기 때문이라.
고전11:25 식후에도 이와 같이 잔을 가지고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나의 피로 된 새 언약이라. 이것을 행하여 너희가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느니라.
⑦ 신약에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 전부가 제사장들이며 이들은 결코 실제적인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창2:9 벧전2:5 히13:15-16 고전10:16-17)
창2:9 주 하나님께서 보기에 즐겁고 양식으로 좋은 모든 나무를 그 땅에서 자라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도 있더라.
벧전2:5 너희도 산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영적인 제물들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느니라.
히13:15-16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찬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드리자. 이것이 그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또한 선을 행함과 함께 나누는 것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제물들을 기뻐하시느니라.
고전10:16-17 우리가 축복하는 이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의 교제가 아니며, 우리가 떼는 이 빵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가 아니냐? 이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빵이요, 한 몸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모두 그 한 빵에 참여하기 때문이라.
⑧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충성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다.(롬10:4)
롬10:4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끝이 되셨느니라.
⑨ 따라서 사도행전 2장 이후에는 충성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한 번 그리고 영원토록 갈보리에서 이루신 그 예비하심을 신뢰할 것이다.
⑩ 출애굽기 20장에서 마태복음 27장까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그것을 신뢰하는 자가 충성된 자들이다.
⑪ 충성되지 못한 사람들은 마태복음 27장 이후에도 스스로 제사장제도를 만들어 자신들을 위해 희생제를 드릴 것이며, 이로써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것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갈5:4 롬10:1-3 3:28)
갈5:4 율법으로 의롭게 된 너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무용하게 되고 은혜로부터는 떨어져 나갔느니라.
롬10:1-3 형제들아, 내 마음의 소원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니, 즉 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니라. 내가 그들에 대해 증거하노니,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열성은 있으나 지식을 따라 된 것은 아니니라.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롬3:28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어떤 사람이 존 R. 라이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도 예수를 믿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무엇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나는 내가 그를 믿는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구원받지 못했다. 당신네 설교자들이 예수 믿으라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 좀 해 달라.’
라이스는 느헤이먀의 기도를 드린 후(느2:4) 답변을 했다.
‘자, 네가 설명해 드리지요. 그건 이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세주를 제공하지만 당신은 죄인을 제공하는 겁니다.’
느2:4 왕이 내게 말하기를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기에 내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서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분께서는 그분에 의해 하나님께로 나오는 자는 모두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부족한 쪽은 죄인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죄인들이 모조리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자신을 카톨릭, 프로테스탄트, 유대인, 공산주의자, 공화당원, 민주당원, 히피, 흑인운동가, 교인라고 부르는 사람은 있어도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죄인들은 과학, 종교, 교육(죄인의 3대 우상)을 통해 너무도 존경받는 인물로 둔갑해 버려서 아무도 더 이상 죄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14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불렀더니, 오늘까지도 말하여지기를 "주의 산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하더라.
주의 산은 시온산 혹은 갈보리산일 것이며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레”는 히브리어로 ‘두려워하다 혹은 경외’ 혹은 ‘마련되다 혹은 보실핌 받다’라는 뜻이다. 히브리어의 니팔 수동태로 <킹제임스성경>에 ‘보여지리라’로 정확히 번역되었다. 이 번역은 8절과 13절로 볼 때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분명히 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숫양, 제단, 혹은 그 장소를 가리킨다.
70인역은 ‘주의 산에서 나타날 것이라.’ 라틴 벌게이트는 ‘주의 산에서 볼 것이라.’
제센시우스, 로젤뮬러, 케일, 다테 등은 ‘주의 산에서 예비되리라.’ 개역, 개정개역은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로 성경을 변개시켰다.
모세가 혹은 여호수아가 창세기를 쓴 당시에는 숫양은 죽어 사라졌지만 제단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 14절의 “it”는 아브라함이 “여호와이레”라고 불렀던 장소일 수도 있다. 이것이 가장 논리적인 설명이 될 것이다. 이 해석은 <킹제임스성경>을 수정하지 않고도 모든 학자들의 요구에 다 부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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