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의 어떤 짐승들보다도 뱀은 더욱 간교하더라.
창3장을 여는 첫구절은 인류에게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지성인 그룹 사이에서 가장 미움받는 성경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창세기 3장이라고 단언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창세기 3장은 2-3세기 포프리, 셀수스 및 그 무리들에게도 증오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지금도 지성인 그룹에게 정확히 그러하다.
신학자, 철학자, 과학자 및 교육자들이 창세기 3장이 시사하는 바 그것으로부터 자신들을 숨기려고 얼마 만큼 노력했는가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와같은 극렬한 반대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바 그것은 창3장이 기록된 그대로를 의미하고 의미하는 바 그대로를 말하고 있다면 상아탑(대학)의 근거를 뒤흔들어 버리고 5가지의 가장 고약한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될 진리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 성경을 의심하고 성경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근원은 사탄에게 있다.
② 지구상의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삭제하고 덧붙임으로써 시작되었다
③ 지식에 관해 신처럼 되고 싶다던가 신과 같이(god like) 되고 싶은 인간의 현재 욕망은 사탄에서 유래되었다.
④ 사탄이야말로 지성세계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실제적인 세력이다.
⑤ 인간의 현재의 상태는 타락하고 미혹되고 속았으며 자기의 의를 내세우며,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존재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숨긴 채 말씀에 불복종하면서도 종교(religions)를 그 핑계로 삼는 그런 상태이다.
“뱀은 더욱 간교하더라.”
간교하다(subtle)는 단어는 매우 적합하다. 유혹은 늘 긍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며 그 유혹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유익하게 보인다. 먹음직하고 보기에도 즐겁고 현명하게 할 만큼 탐스럽다고 한 것을 주목하라. 이처럼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처음부터 그의 대적은 그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 최소한 10배 이상 간교하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담배 술 춤이 뭐가 나쁘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성경은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도 상당히 잘못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눅12:49-53)
눅12:49-53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으나 만일 이미 불이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그러나 나에게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내가 답답함을 어찌 견디어 내리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니라, 오히려 분쟁케 하러 왔노라. 이제부터는 한 집에 다섯이 있으면 갈라져서 셋은 둘에 대적하고 둘은 셋에 대적하리라. 아버지는 아들과 대적하고,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과, 딸은 어머니와,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대적하여 갈라지리라.
처음부터 우리는 성경의 관점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야만 한다. 성경은 들의 어떤 짐승들보다도 뱀은 더욱 간교하다고 말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다음 구절들은 뱀의 간교가 너무도 교묘해서 프로이드, 메닝거, 니체, 융, 파블로프, 라이프니츠, 혹은 스피노자 같은 성경비평가들은 뱀과 논리적 논쟁에 있어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쩌면 뱀은 이들을 상대조차 해주지 않을 것 같다.
뱀에 해당하는 단어 “나하쉬”를 해석하기 위해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이 뱀은 그가 나타날 때 전혀 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빛의 천사로서 나타난다.(고후11:13-14)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는 모두 33세의 남성이므로(마22:30 창6:1-6) 이브가 대하게 된 자는 멋진, 잘 생긴 신사로 후광과 빛의 구름을 대동하고 등장했을 것이다.
고후11:13-14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들이요, 기만하는 일꾼들이요,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하는 자들이라.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니 이는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
마22:30 부활 때에는 그들은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으니라.
이 뱀(Serpent)은 뱀(Snake)이 아니었다. 동물 중 그에게 상응하는 그 무엇이 뱀(Cattle)으로 나타나도록 저주를 받았을 때 이 뱀은 모든 가축들 위에 저주를 받았다.(창3:14) 어째서 가축(Cattle)이라고 했을까?
창3:14 주 하나님께서 그 뱀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것을 행하였으니 너는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저주를 받아 네 배로 다닐 것이며 네 평생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최대한 간략하게 그 이유를 성경으로 찾아 성경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사탄은 그룹이었다. 그룹은 송아지 혹은 황소로 정의되어 있다.(겔1,10장)
② 이 그룹은 5번째 그룹으로 파충류를 대표한다.(계4장 겔28장)
③ 두 뿔을 갖춘 발굽이 갈라진 짐승으로서(계4:7 겔1:7) 사탄은 이집트에서는 양 뿔 사이에 태양을 상징하는 동근원을 달고 있는 금송아지로 대표되었고(출32장) 따라서 가축(Cattle)으로 분류되었다.
계4:7 첫째 짐승은 사자 같고, 둘째 짐승은 송아지 같으며, 셋째 짐승은 사람과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 짐승은 날아다니는 독수리 같더라.
겔1:7 그들의 발은 곧은 발이며,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의 발바닥 같고, 그들은 광택나는 놋쇠의 색깔처럼 번쩍이더라.
④ 따라서 바알 숭배자들은 황소와 뱀을 신성한 것으로 인정한다.(호13:2 왕상17-19장 계2:20)
호13:2 이제 그들이 더욱더 죄를 짓고 자기들을 위하여 그들의 은으로 형상들을 부어 만들고 자기들의 고안대로 우상들을 만들었으니, 그 모두가 장인들이 만든 것이라. 그들이 그것들에 대해 말하기를 "희생제를 드리는 자들은 송아지들에게 입맞출지니라.
계2:20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이는 네가 자칭 여선지자 이사벨이란 여자를 용납함으로 그녀가 내 종들을 가르치고 유혹하여 행음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기 때문이라.
창3:1에 나오는 짐승은 계4:7의 짐승이다. 모세가 그를 뱀(Serpent)이라고 부른 것은 계12:9에 따르면 정확한 호칭이었다. 이 짐승은 어머니 이브에게 나타날 때 빛의 전달자(Lux-fero Lucifer)로서 나타난 것이 틀림없다.
계4:7 첫째 짐승은 사자 같고, 둘째 짐승은 송아지 같으며, 셋째 짐승은 사람과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 짐승은 날아다니는 독수리 같더라.
계12:9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나더라.
그가 여자에게 말하기를
사탄이 여자에게 먼저 접근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은 창2:16-17의 명령을 남편으로부터 간접적으로 들었으며 그녀는 이 명령에 대한 준수의무에 있어 남자보다는 한 단계 멀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여자는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여자는 흙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유일한 존재로 매우 독특한 존재였다.
창2:16-17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참으로(Yea)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말씀이 제공하는 계시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그 어떤 성경기자도 이처럼 간단한 질문이 갖고 있는 영원한 의미를 짐작할 수 없었으리라. 우리는 이 말씀이 지난 6000년 간 산출해 낸 그 열매로 인해 이 말씀이 영감받았음을 알고 있다. 어떻게 평범한 기록자가 이러한 걸작을 쓸 만큼 영적세계에 대한 본질적인 진리들을 붙잡을 수 있었겠는가? 다음 사실들을 주목해 보라.
①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예(yes)는 진리의 파괴에 모든 것을 바치게 되는 그 자에 의해 발설되었다.(Yea, hath God said 한글킹제임스성경에는 ‘참으로“로 번역되었음)
② 창3장 이후 뱀이 무슨 말을 하려 할 때면 그는 꼭 질문으로 시작한다(욥1장, 마4장, 눅4장) 어떻게 창세기 기자는 향후 1000년 동안 그의 뒤를 이어 성경을 기록할 사람들이 그가 채택한 방식을 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는가? 그 당시 그는 뱀에 대해 완전한 계시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염두에 둘 때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③ 이후 6000년간 이 땅에 사는 그 어떤 자도 그 어느 지역에 살든 그 어느 시대에 살든 한결같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것은 거부하고 자신들의 종교를 의지했을 때, 자신들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아무런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실로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인종, 그 어느 곳이든지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문제요 영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무슨 종교든지 간에 참으로 하나님께서도 그렇다고 하셨느냐라는 질문은 종교를 시작하기에 꼭 알맞은 질문이다. 공자도, 부처도, 사탄만큼 멋진 출발은 하지 못했던 것같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하시더냐?"
이 질문은 오늘날도 여전히 과학적 연구 성숙을 향한 도약, 심리연구 등으로 탈을 쓴 채 진리로부터 도피할 알리바이를 구하는 자들에게 5만원을 받고 그럴싸한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Y.H.G.S.학회(Yea Has God Said?의 첫글자) 사람들을 특징짓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존재해 온 모든 작가, 예술가, 음악가, 시인, 과학자, 교육자 그리고 철학자들의 90%는 이 사회에서 매우 적극적 활동가이다. 이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육신을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권력있는 자도 많지 않으며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자도 많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Y.H.G.S.학회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은 자들은 사탄, 이브, 카인, 님롯, 아합, 파라오, 요나, 베드로, 모세, 벨사살, 이세벨, 사울, 삼손, 시드키야, 코이냐이며 명예훈장을 사후 추서받은 사람으로는 요세푸스, 플리니, 필로, 오리겐, 셀루스, 포피리, 어거스틴, 교황 이노센트, 교황 그레고리, 교황 레오, 토마스 아퀴나스, 아벨리드, 안셀무스, 칼빈, 피의 메리, 아르미니우스, 볼테르, 루소, 톰 페인, 클레런스, 다로우, 에머슨, 홉스, 흄, 헉슬리, 다윈, 아인슈타인, 기본, 듀이, 럿셀, 마르트, 브루너, 틸리히 등등이 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더냐? 정말 하나님께서 빌4:13을 말씀하셨느냐? 실로 하나님께서 빌4:19도 말씀하셨느냐? 롬8:28을 정말로 믿을 수 있는 것이냐? 하나님께서 계20:1-7에서 1000년이라는 말을 6번 말씀하셨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1000년을 의미하는 것이냐?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의미하느냐? 그 말씀은 조금 불투명하고 애매모호하며, 상징적이지 않은가? 푸리나, 샤스트라, 비가바지타, 어록집 등도 영감받은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정말 마23장을 말씀하셨을까? 참으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일부러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필요가 있을까? 창3장은 모세가 썼는가? J문서 혹은 E문서가 아닐까?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9 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영광 가운데서 그의 풍요함을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라.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과 그 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탄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나 혹은 말씀하지 않은 것, 그것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말씀한 그 사실을 의심하도록 만드는데 온갖 관심을 갖고 있다. 요한복음에 보면(요18:38) 사탄의 자식 중의 하나인 어떤 자가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물은 것이 아니고 다만 진리가 무엇이냐고 말하고서는 답변도 듣지 않은 채 나가버렸다. 빌라도는 미국의 대법원처럼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요, 정의 문제에 있어 결정적인 요소는 정치적 편의주의라고 생각했다. 만약 모든 진리가 상대적이라면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재판관과 자기 자신의 하나님이 되든지 아니면 자기에게 하나님 노릇을 하게 될 종교조직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계13,17장)
요18:38 빌라도가 주께 말하기를 "진리가 무엇이냐?"고 하더라. 이 말을 한 후에 그가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와서 말하기를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잘못도 찾지 못하였노라.
사탄은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없는 만큼이나 관심이 없다. 이것은 콜롬비아나 하버드 대학교수진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모든 성공적인 방책을 얻는 것이요, 모든 인간으로 인간의 비인간성을 종식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과학과 연구를 총동원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은 진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시59:14)
사59:14 심판이 뒤로 돌아서고 공의가 멀리 섰나니, 이는 진리가 길에 쓰러졌고 공평이 들어가지 못함이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구절에서 여자의 본능에 호소하는 듯한 시사적 표현을 주목해 보라. ”하나님께서 동산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먹지말라 하더냐“ 이브는 포도를 씹기 오래 전에 벌써 사탄의 미끼를 물어 버렸다. 이브가 먹은 열매는 포도나무 열매였음을 잊지 말라.
2 여자가 그 뱀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동산 나무들의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
드디어 지상에서 저질러진 최초의 죄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그 죄는 중세 신학자들이 가르쳤던 것같이 간음이 아니었으며 보수적 전천년주의자들의 책에서 주장되는 것같이 말씀에 대한 행위도 아니었다. 그 죄는 분명히 말씀으로부터 삭제시킨 죄였다.
이브는 창2:16을 인용하면서 ”마음대로“(freely)라는 단어를 삭제해 버렸다. 하나님의 말씀들(Words : 사상이 아니고 가르침도 아니고, 교리도 아니다) 주의 말씀들(the words of the Lord)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도가니에 7번 단련된 것 같다.(시12:6)
창2:16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시12: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아시아, 미국, 유럽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이브와 뱀과의 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기껏해야 어리석은 우화에 불과할 것이다. 오늘날 현대적 사고 혹은 이교적 사고는 자기 중심적 입장을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하고자 한다. 그러나 창3장의 이브의 짤막한 대화에 등장하는 뭔가 못마땅하고 불만에 찬 피심문자의 태도는 너무도 선명히 묘사되어 있어 21세기의 심리학 교재 중 그 어느 것도 이보다 더 개선된 것이 없다.
“우리가 동산 나무들의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라고 이브가 말했지만 이것은 잘못된 인용이었다. 원본에는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창2:16)라고 되어 있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 둘 사이의 차이는 너무도 커서 1,200쪽을 넘겨보면 성경에서 구원을 위해 초청하는 장면에서 이 마음대로(freely)라는 단어가 또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수를 값없이(freely) 마시게 할지어다.”
이 생명수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불린다.(창2:15-17)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나무 중에는 생명의 나무도 있었다.(창2:9,16) 아담과 이브는 먹기만 하면 되었다. 그들이 생명나무를 먹었더라면 창조주와 모든 피조물들과 죄없는 천진난만한 상태에서 교제하며 영원토록 살았을 것이다.
창2:9 주 하나님께서 보기에 즐겁고 양식으로 좋은 모든 나무를 그 땅에서 자라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도 있더라.
나무 열매가 영원한 생명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인가 혹자는 묻겠지만 성경은 그렇다고 말한다. 겔47:12와 계22장에서 나무들이 약과 치료에 사용된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의학협회와 대학연구소 및 핵물리학자들은 생명을 만들어내고자 혹은 생명을 유지하는 물질을 만들어내려고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가? 영생과 완전한 건강을 잃어버린 인간이 이것들을 되찾기 위해 적어도 생애의 4분의 1을 사용한다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
겔47:12 뚝 위에 강가로 이편과 저편에는 양식이 될 모든 나무가 자라고, 그 잎사귀들은 시들지 아니하며, 그 과실도 다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로운 과실을 내리니, 이는 그 물이 성소에서 나옴이라. 또 과실은 양식이 되고 그 잎사귀는 약이 될 것이라.
지난 500여 년간 과학과 의학이 성경에서 말한 대로 잃어버린 생명과 건강을 되찾으려고 애쓴 것 말고 뭐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있는가? 창3장은 이 모든 것들의 배경을 보여준다. 이들 열매들은 분명 초자연적 나무임에 틀림없다. 오늘날의 과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능력을 갖춘 나무들이었다. 그러니까 오늘날도 이런 것을 만들어 내려고 환각제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아나겠는가?
3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나무는 지식의 나무이다. 오늘날 모든 현대인들이 그렇게 열렬히 찾아나서는 나무이다. 읽는 자는 지도자가 된다.(Readers are leaders)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 계몽된 사람은 노예가 될 수 없다.(An enlighted people cannot be an enslaved) 등의 격언들이 지식의 위대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현명하고 정확한 평은 밥 존스 시니어 박사가 내린 것이다. 구원없는 교육은 저주다.(people Education without Salvation is Damnnation) 교육은 현재 돈과 섹스 다음으로 현대인들에게 제3의 우상이 되었다. 따라서 교육자들이 성경의 다음 구절들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은 놀랄 일이 못된다.(창3:3 고전1장, 사28:9 29:11-14 눅10:21-22 약3:13-16)
사28:9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그가 누구에게 교리를 깨닫게 해 줄 것인가? 젖을 떼고 젖가슴에서 물러난 자들에게로다.
사29:11-14 모든 환상은 너희에게 마치 봉인된 책의 말과 같으니, 사람들이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건네주며 말하기를 "청컨대 이것을 읽으라." 하나, 그가 말하기를 "봉인되어 있으니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 또 그 책을 무식한 자에게 건네주며 말하기를 "청컨대 이것을 읽으라." 하나, 그가 말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그들의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으며 나를 향한 그들의 두려움도 사람들의 법규로 가르친 것이라. 그러므로 보라, 내가 이 백성 가운데서 놀라운 일을 추진하리니, 놀라운 일과 이적이라. 그들의 현자들의 지혜가 없어지고 그들의 총명한 자들의 명철이 숨겨지리라." 하셨도다.
눅10:21-22 바로 그 시간에 예수께서는 영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시여, 이런 일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나타내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그러하옵니다. 아버지시여, 이는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선함이니이다. 모든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기에 누가 그 아들인지를 아버지 외에는 모르며 또 누가 아버지인지는 그 아들과 그 아들이 아버지를 계시하고자 하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모르나이다.
약3:13-15 너희 가운데 현명하고 지식을 갖춘 자가 누구냐? 그는 선한 행실을 통하여 지혜의 온유함으로 자신의 행함을 나타내 보일지니라. 만일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며,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요,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이니라.
*지식은 당신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다.(고전8:1)
*지혜는 지식을 머리 속에 쌓아놓은 후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 것이다.(대하1:10 욥28:28)
*명철은 지식과 지혜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잠9:10 단1:20)
고전8:1 우상들에게 바쳐진 것들에 관하여는 우리 모두에게 지식이 있음을 알거니와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워 주느니라.
대하1:10 이제 나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시어 나로 이 백성 앞에 나가고 들어가게 하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으리이까?" 하더라.
욥28:28 또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주를 두려워함이 곧 지혜요,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잠9:10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거룩한 이에 대한 지식은 명철이니라.
단1:20 왕이 지혜와 지식에 대해 그들에게 묻는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 그들이 자기의 온 나라에 있는 모든 마술사들과 점성가들보다 열 배나 더 나은 것을 알더라.
현대의 교육제도에 있어서는 지식의 나무야말로 모두가 관심을 보이는 유일한 나무이다.(지혜와 명철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와같은 이유로 세상적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부유하고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고등학교 혹은 그 이하의 학력만을 갖고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는 기치 하에 코카사스인(백인)들은 도덕과 예언에 있어서의 진리는 제거해 버리고 진리를 물리적 심리적 발견에만 한정시켜 버렸다. 오늘날의 교육자들이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라고 말할 때는 실상은 여러분이 자기 확신을 포기하고 열린 마음으로 우리에게 온다면 우리는 당신의 사고방식을 바꾸어서 나머지 생애동안 죄로 시달림 받지 않고 살게 해 주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언급된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는 포도나무임이 틀림없다. 요즘도 주요 통신사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브가 먹은 열매는 사과가 아니었다 든가 그것은 동양에서 나는 살구였다고 놀랄만한 뉴스를 배포하고 있다. 이러한 어리석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자들은 다름아닌 유명대학 박사들이다.
우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창3장에서 전혀 다른 사실을 발견한다. 창3장에서 거명되는 나무는 올리브, 무화과, 포도, 가시 및 엉겅퀴이며 이들은 재판관기 9장에 나오는 나무들과 상응된다. 또한 복음서에도 이들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올리브나무 : 겟세마네, 올리브 기름짜는 틀, 생명나무
*무화과나무 : 복음서에서 저주받음, 자신의 의를 예표함(렘24장)
*포도나무 : 민수기 6장에서 금지된 열매이며 포도가 예표하고 있는 피는 성경 전체에서 금지되어 있다.(창9장 레17장 행25장)
*가시나무 : 피조세계와 피조물의 속죄를 상징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쓰였음(사11장과 롬8장에서 두 가지 것이 어떻게 회복되는가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살펴본 결과 생명나무는 분명 올리브나무였으며 포도나무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겔15장)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이로써 우리는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발효된 음료가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로잡은 잔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술을 마시고 자라난 박카스신의 추종자들인 철학자들은 그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계시를 거부해 왔다. 바빌론은 계17장에서 이 잔을 높이 들고 있으며 이 음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시기 500여 년 전에 바빌론 주화에 잔을 높이 들고 있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었다.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혹 죽을까 함이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이미 말씀에서 마음대로라는 말을 삭제시켜 버린 – 그런데 이 행위는 율법하에서도 범죄이며(신4:2) 은혜시대에서도 범법행위이다.(계22:19) 이브는 여유만만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없는 말을 덧붙여 버린다. 이 행위야말로 오늘날 확대역본(Amplified Version)을 만들어 낸 자들이 취하는 태도이다.
신4:2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그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에서 빼지도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지니라.
계22:19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만지지도 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신 적이 없다. 이것은 마리아는 영원토록 처녀로 있었다가 첫 번째 부활 전에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주장하는 교황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짓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완전히 무시한 행위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알아내려는 의도도 없고 다만 그분이 결코 말씀하신 적도 없고 결코 말씀하시지도 않으실 그러한 말을 그분께서 하신 것이라고 거짓 인용하는 행위일뿐이다.
이브는 말씀에 더하였고 반드시 죽으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도 혹 죽을까 함이라로 변개시켰다. 어쩌면 그녀는 히브리어 어휘사전이나 히브리어 학자들과 의논한 후에 그렇게 고쳤을 것이다. 물론 당시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면 말이다. 오늘날 근대 보수주의자들이 하고 있는 짓과 이브가 한 짓이 어찌 그리도 정확히 알치하는지! 그녀는 근본적인 사항들(fundamentals)은 믿었으나 그것들을 가르쳐주는 말씀들(Words)은 믿지 않았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혹 죽을까 함이라“는 이 말씀을 느슨하게 풀어 놓은 것이다. 이 두 말씀의 차이는 정확히 말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인간이 하나님께서 하기를 원하는 말씀과의 차이이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절대적이고 무오하고 오류없는 교리적 진리인 반면 혹 죽을까 함이라는 양가죽을 쓴 이리 박사님들에게나 어울리는 말로써 기회의 법(laws of chance)과 통계적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브는 모든 불가지론자를 대변해서 말했다. 혹 죽을까 함이라. 여인이여 하나님 말씀에 언제 혹이란 말이 있었는가. 그대는 절대적으로 반드시 죽게 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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