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빈주의의 개론적 요점들 >
칼빈주의는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칼빈은 종교 개혁 초반부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출신의 목사이며 종교 개혁자이다. 그의 작품 중 기독교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기독교 강요」이다.
그는 1530년경에 로마 카톨릭교회를 떠나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도망하였으며 1536년에 스위스에서 「기독교 강요」 1판을 출간하였다. 1541년에 그는 제네바에서 **교회 국가(The Church State)를 형성하였다. 이론적으로 칼빈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믿었지만 실제로 제네바에서는 교회와 국가가 하나로 작동하였다. 제네바의 모든 시민들은 자기 자녀들이 유아 세례를 받게 해야만 했고 - 이것을 어기면 심한 핍박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 이렇게 유아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은 그 교회(국가)의 회원이 되었다.
* *정교분리 - 교회와 국가의 분리란 국가가 특정 종교를 국교로 인정해서 국민들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 위원회는 시 위원회와 함께 법규를 어긴 사람들에 대한 징계를 시행하였다. 또한 제네바에서는 모든 악기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칼빈이 죽은 뒤에는 베자(Theodore Beza, 1519-1605)가 제네바 교회의 수장으로 일하였다.
1555년 초부터 칼빈은 영국에서 메리 여왕의 박해를 피해 대륙으로 오려는 프로테스탄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였다. 그들은 낙스(John Knox)와 휘팅엄(William Whittingham)의 주도하에 교회를 형성하였는데 휘팅엄은 제네바 성경(Geneva Bible, 1560)을 편찬한 위원회의 의장이었다.
제네바에서 칼빈은 시편집을 출간하였는데 여기에는 마롯(Clément Marot), 칼빈, 부르조이(Louis Bourgeois) 외 여러 사람들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시편집에는 부르조이가 지은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Praise God from Whom All Blessings Flow)가 들어 있다(기존 새찬송가 1장).
칼빈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 학교를 창설하였다. 하나는 칼리지라고 불리는 문법 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아카데미라 불리는 고급 학교였다. 이 학교는 처음에 베자가 교장으로 있었다. 후에 칼리지는 칼빈 대학(College Calvin)이 되었고 아카데미는 제네바 대학(University of Geneva)이 되었다.
칼빈의 신학은 장로교회와 개혁 교회의 근간이 되었고 영국과 미국에 있는 침례교회들 안에도 넓게 퍼졌다. 칼빈 신학은 네덜란드 개혁 교회(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과 벨기에 교리 문답)의 기초가 되었고 헝가리 개혁 교회(2차 헬베틱 신앙 고백)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그리고 영국 장로교회의 근간이 되었다. 1646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만든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은 칼빈주의 신앙 고백이며 회중 교회(1658년의 사보이 선언)와 **특수침례교회(1689년의 2차 런던 침례교 신앙 고백) 역시 이것을 신앙 고백으로 채택하였다.
**특수침례교회와 일반침례교회 - 전 세계 침례교회 안에는 두 부류, 즉 일반침례교인(General Baptists)과 특수침례교인(Particular Baptists)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하므로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침례교인이며 반면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예정된 자들에게만 유효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특수침례교인이다. 미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적으로는 일반침례교인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
칼빈주의 신학의 근본 교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sovereign election)인데 이것은 종종 주권적 은혜(sovereign grace)라고도 불린다. 칼빈은 즉각적으로 자신이 어거스틴 신학에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하였는데 어거스틴은 카톨릭교회가 추앙하는 네 명의 박사들 가운데 하나이다. 칼빈은 자신의 ‘선택의 교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우리는 예정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뜻한다고 믿으며 이 작정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각 사람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셨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조건하에서 창조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고 다른 사람들은 영원한 저주에 이르도록 예정된다. 각 사람은 이 둘 중의 어느 한쪽 결말에 이르도록 창조되므로 우리는 각 사람이 생명이나 또는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왔다고 말한다(「기독교 강요」, 3권 21장 5항,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
By predestination we mean the eternal decree of God, by which he determined with himself whatever he wished to happen with regard to every man. All are not created on equal terms, but some are preordained to eternal life, others to eternal damnation; and, accordingly, as each has been created for one or other of these ends, we say that he has been predestinated to life or to death(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Book III, chapter 21).
이것은 보통 ‘칼빈의 이중 예정’(Double predestination)이라고 불리며 이것의 핵심은 구원받아 천국에 갈 자들과 저주받아 지옥에 갈 자들이 이미 세상의 창조 이전에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칼빈주의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한 가지 근본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위에서 요약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다.
① 나는 칼빈주의를 정통으로 연구하였다
칼빈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나는 과거와 현재에 나온 많은 영향력 있는 칼빈주의 저자들의 저작물을 공부하였고, 내가 구원받은 이후로 47년 동안 칼빈주의를 연구해 왔다. 나는 신학 대학을 다닐 때 회심하였는데 그 당시 칼빈주의는 학생들 사이에 열띤 논쟁을 하던 많은 주제 중 하나였다. 바로 그때에 나는 처음으로 칼빈주의를 공부하였다. 나는 이전에 칼빈주의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칼빈주의를 이해하고 이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기 위해 핑크(Arthur Pink, 1886-1952)6)의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책과 그 주제에 대한 다른 많은 책을 읽었다. 그 시점에 어떤 학생들은 칼빈주의자가 되었다.
사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몇 가지 좋은 논점을 이끌어 내며 하나님의 위상을 인간 위로 높이 두려고 매우 애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방식을 좋아하며 구원은 100%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교리에 동의하고 미국의 많은 독립침례교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인간 중심의 피상적이며 교묘한 전도 방식을 싫어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록 칼빈주의가 몇몇 성경 구절에 의해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나는 스스로 이 주제를 깊이 연구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칼빈주의가 성경기록들의 명백한 말씀들과는 너무나 많은 점에서 모순을 일으킨다고 결론을 내렸다.
2000년에 나는 인디애나주 그린우드에 있는 헤리티지 침례 대학에서 열린 칼빈주의 학회에서 설교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는데 그 대회는 다음 해인 2001년 4월에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 학회는 칼빈주의를 반대하는 모임이었으며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신학 대학에 다니면서부터 심도 있게 검증해 왔고 그 결과 반대 입장에 대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설교를 하기로 동의하였다.
그러나 그 학회를 위한 설교 자료를 수집하기 전에 나는 조금 더 철저한 방식으로 칼빈주의를 재검증해 보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영국 런던에 있는 마스터스 박사(Dr. Peter Masters)에게 연락하여 그와 칼빈주의의 주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나는 칼빈주의에 대해 그와 그의 전임자인 스펄전 목사(Charles Spurgeon)7)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 사실 이것 말고도 동의하지 않는 다른 주제들이 몇 가지 더 있다 - 그럼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스펄전을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그에게 말했다. 칼빈주의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들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나는 마스터스 박사에게 그 주제에 대해 그가 믿는 것을 내가 제대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추천해 줄 수 있는 책들이 무엇인지 물어보기를 원했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전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가지 중에 마스터스 박사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머레이(Iain Murray)의 「스펄전과 극단적 칼빈주의자들: 복음 선포를 위한 전쟁」(Spurgeon vs. Hyper- Calvinists: The Battle for Gospel Preaching,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1995)이라는 책을 읽으라고 추천해서 나는 그것들을 읽었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칼빈주의를 반대하는 진영과 찬성하는 진영의 입장에서 그 이론을 샅샅이 재검토하였다. 나는 헌트(Dave Hunt)의 「대체 이게 무슨 사랑인가?」(What Love Is This?)와 「이성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해결된 한 칼빈주의자의 정직한 의구심들」(A Calvinist’s Honest Doubts Resolved by Reason and God’s Amazing Grace)이라는 책을 읽었고 헌트와 화이트(James White)가 논쟁을 벌이며 작성한 「칼빈주의 논쟁: 다섯 가지 강령, 두 가지 관점」(Debating Calvinism: Five Points, Two Views)이라는 책을 읽었다. 또한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과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을 상세하게 다시 읽었다. 또한 싱가포르에 있는 극동 성경 대학(Far Eastern Bible College)에서 칼빈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출간한 100쪽짜리 자료를 검토하였는데 이 학교는 장로교 신학교이다.
내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나는 진리를 알고 그 진리가 어디로 나를 인도하든지 기꺼이 그 진리를 따르려는 유일한 소망을 가지고 이러한 자료들을 연구하였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독자들이 추천할 수 있는 모든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칼빈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잘못 설명하지 않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이 주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옳은 것을 이야기해도 결국은 항상 비(非)칼빈주의자가 이 주제를 잘못 이해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최선을 다해 연구하였다.
② 침례교인들은 칼빈주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칼빈주의는 논쟁을 일으키는 주제이지만 이 이론 자체가 성경적 진리의 가장 중요한 논점들의 일부를 다루고 있고 또 복음과 하나님을 인식하는 문제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이론을 정직하게 직시해야 한다. 칼빈주의에 대해 침례교인들 사이에 항상 분열이 있어 왔다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영국의 초기 침례교인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시 말해 그분의 속죄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인지(즉 일반적인 것인지), 아니면 오직 선택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지(즉 특별한 것인지)에 따라 일반침례교인(General Baptists)과 특수침례교인(Particular Baptists)으로 구분되었다.
테일러(Adam Taylor)가 지은 「영국의 일반침례교인들의 역사」(History of the General Baptists of England, 1818)라는 책은 영국의 비(非)칼빈주의 침례교인들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들은 수가 굉장히 많았다. 내가 알기로 테일러는 19세기 영국 침례교 역사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칼빈주의자가 아닌 인물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대다수 침례교 역사서들이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그 결과 그런 책들이 일반적으로 비칼빈주의 침례교도들의 역사와 믿음을 무시하거나 때로는 잘못 보고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침례교인들이 항상 칼빈주의 문제로 대립해 왔다는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다룸에 따라 분열이 생긴다고 해도 오늘날 이 문제를 다루는 일에서 뒤로 물러서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③ 칼빈주의보다 성경적 복음 전도를 더 많이 방해하는 것은 거의 없다
칼빈주의는 18세기와 19세기에 영국 침례교회들의 복음의 열정을 거의 말살하였다. 칼빈주의자들 가운데서 이루어진 복음 전도에 대한 노력은 칼빈주의 때문이 아니라 칼빈주의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 침례교 역사가인 아르미티지(Thomas Armitage, 1819-1896)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인도 선교의 아버지로 알려진]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 1761-1834)가 지은 「이방인들의 회심을 위해 여러 수단을 활용해야 할 크리스천들의 의무에 관한 연구」라는 책이 1792년에 출판되었지만 이것을 읽는 독자들은 거의 없었고 사실 이것은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대부분의 침례교인들에게 그의 관점은 환상적이고 심지어 거칠기까지 했으며 하나님의 주권과 공공연하게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 되었다. 라일랜드가 회장을 맡고 있던 목회자 모임에서 캐리는 다음 회의 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려는 시도에 대해 논의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라일랜드는 충격을 받고 펄쩍 뛰어오르며 캐리에게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회심을 기뻐하신다면 그분은 당신이나 나의 도움 없이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앉으라고 명령했다.
스펄전이 1854년에 처음 목회를 시작했을 때도 사정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머레이가 지은 「스펄전과 극단적 칼빈주의자들: 복음 선포를 위한 전쟁」에 잘 묘사되어 있다. 많은 칼빈주의자들은 스펄전이 죄인들을 차별 없이 광범위하게 그리스도께 나오도록 초청하는 것을 비난하였다. 예를 들어 스펄전 당시에 한 칼빈주의 저술가는 “구원받을 만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설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토기」(Earthen Vessel), 1857)라고 경고하였다.
④ 칼빈주의는 아직까지도 틀이 확립되지 않은 불안정한 신학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자기들끼리도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으며 이런 추세는 늘 그러하였다. 그들은 ‘타락 이전 선택설’(전택설, Supralapsarianism), ‘타락 이후 선택설’(후택설, Infralapsarianism), ‘원죄 이후 선택설’(Sublapsarianism) 등을 놓고 늘 다툰다.
타락 이전 선택설은 하나님이 아담의 타락을 작정하셨다고 주장하며 타락 이후 선택설은 그분이 그것을 허용하셨다고 주장한다(매클린톡과 스트롱의 주장, McClintock & Strong). 네덜란드의 도르트 종교 회의(Synod of Dort, 1618-1619)에서 칼빈주의자들은 이런 **선택설을 포함하여 많은 주제들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遺棄)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중에 무엇이 선행하는지에 관해서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즉, 인간의 최초 범죄가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포함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① 타락 전 선택설과 ② 타락 후 선택설로 나뉜다. 도르트 회의에서는 후택설을 취하였고 칼빈은 전택설 입장을 견지하였다. <교회용어사전>
1675년에 스위스 일치(헬베틱) 신조(Helvetic Consensus Formula)를 작성한 칼빈주의자들은 소뮈르 학교의 프랑스 칼빈주의자들과 갈등 관계에 있었다. 칼빈주의 진영에는 극단적 칼빈주의와 비극단적 칼빈주의가 있고 엄격한 칼빈주의자들과 온건한 칼빈주의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개 영원히 버림받는 교리(유기)와 속죄의 범위, 그리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지 아닌지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다르고 **5포인트, 4포인트, 3포인트, 2포인트 신봉자로 나뉜다. 또 미국에서 칼빈주의자들은 구학파(Old school)와 신학파(New school)로 분열되어 있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영국의 칼빈주의자들은 19세기에 분열되었다.
** 영어권에서는 한 사람이 칼빈주의 5대 강령(Five points, 다섯 가지 포인트) 가운데 몇 개를 믿느냐에 따라 2포인트, 3포인트, 4포인트, 5포인트 칼빈주의자라는 명칭이 붙는다. 우리말로는 이것을 표현하기가 어려우므로 이 책에서는 포인트를 그대로 두고 2포인트, 3포인트, 4포인트, 5포인트 칼빈주의자라고 부르려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신이 칼빈주의의 TULIP 신학을 언급하며 그것을 논박하려 할 때마다 “당신은 칼빈주의를 잘못 설명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당신과 논쟁하려는 칼빈주의자들이 항상 나타난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당신은 칼빈주의를 잘못 설명하지 않았다. 당신은 많은 칼빈주의자들 혹은 심지어 칼빈 자신의 말을 직접 인용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당신이 그들의 칼빈주의를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칼빈주의 진영에는 칼빈을 따르는 칼빈주의자와 풀러(Andrew Fuller, 1754-1815)를 따르는 칼빈주의자 그리고 핑크를 따르는 칼빈주의자가 있다. 또한 장로교 칼빈주의자, 침례교 칼빈주의자 그리고 다른 종류의 많은 칼빈주의자가 있다.
사실 많은 칼빈주의자들은 심지어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직접 읽어 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단지 근거도 없이 칼빈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을 추종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사실 칼빈 역시 스스로 자기가 어거스틴을 따른다고 시시때때로 말하였다.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칼빈의 결론들을 거부하거나 일부분을 수정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들의 의견에 100% 동의하며 나아가서 우리 또한 칼빈주의가 성경기록에 의해 지지받지 못한다고 확신한다면 그것 전체를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⑤ 칼빈을 따르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그는 기독교 믿음의 가장 근본적인 것도 건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칼빈은 본인이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증언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카톨릭교회의 유아 세례를 새로운 탄생으로 보았다. 「기독교 강요」에 기록된 다음의 인용문을 살펴보기 바란다.
우리가 침례(세례)를 언제 받았든지 그때 우리는 전 인생에 단 한 번 씻겨서 정결하게 되었다(「기독교 강요」, 4권 15장 3항).
세례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진다.… 유아들은 세례를 받아야 하며…그리스도인의 자녀들은 그들이 태어나는 날 바로 언약의 상속자들로서 하나님에 의해 수용되므로 세례의 자격을 얻는다(「기독교 강요」, 4권 16장 24항). {곧바로 나오는 3장 <칼빈의 점진적 과정 구원 신학>을 참조하기 바란다.}
칼빈은 희생물을 집어삼키려는 늑대와 같이 자신의 대적들을 사악하게 다루었는데 이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과 전적으로 반대가 된다. 역사가 존스(William Jones)는 ‘칼빈의 일생에 걸쳐 천주교의 가장 악의적 특성인 박해의 영이 그에게 들러붙어 있음을’ 목격하였다. 그가 어떻게 신학적으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명하고 있는지 주목해보라.
온갖 추행과 악행을 지닌 자들… 하나님의 위엄을 대적하기 위해 자신의 오물을 토해 내며 모든 종교를 왜곡시키는 미친개들, 이런 자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 (1555년 10월 16일)
「칼빈의 자서전」(Calvin: A Biography)에서 코트렛(Bernard Cottret)은 칼빈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36건 이상의 처형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자기에게 반대하는 자들에게 혹독한 투옥과 무서운 고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칼빈은 재침례교도들(Anabaptists)을 미워했는데 사실 이들은 칼빈보다 훨씬 더 신약 교회의 성경적 형태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들을 ‘사탄의 심복들’이라고 불렀다. 누가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칼빈과 의견을 달리했던 4명은 참수되거나 사등분으로 찢겼고 그들의 시신 일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서 제네바에 있는 전략적 장소에 걸렸다. 그는 유아 세례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다는 이유로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를 화형시켰다. 칼빈은 세르베투스에 대해 **“단순히 그러한 사람을 죽이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되며 그들을 잔인하게 불에 태워야 한다.”라고 기록하였다.
** 칼빈과 동시대에 같은 곳에 살면서 그의 비인간적 만행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는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⑥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나는 칼빈이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교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크고 불필요한 분열을 가져왔다고 확신한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단순히 성경 자체가 말하는 바를 성도들이 믿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또 사람이 만든 칼빈주의나 아르미니우스주의 중 하나를 결정하도록 성도들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기독교 세계는 훨씬 더 상황이 좋아졌을 것이며 또 인위적이고 불필요한 여러 가지 분열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은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고 말한다(살전5:21). 성경 자체는 진리를 시험하는 수단이지 어떤 사람의 조직 신학이 아니다. 나는 성경으로 모든 신학을 시험해 볼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주님 앞에서 그런 신학의 일부분이나 전부를 거부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인간이 만든 신학들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나는 크리스천 믿음과 실행의 유일한 권위인 성경, 그 위에서만 확실하고도 견고하게 설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칼빈주의자들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 논쟁에 대한 진실」과 「토기장이의 자유」 등 다수의 책을 지은 화이트(James White)는 1999년경에 내게 편지를 보내 공개 토론을 하자고 도전을 하였다. 자기가 칼빈주의를 옹호할 테니 나더러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옹호하라고 그는 다그쳤다. 사실 나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따르지도 않고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대해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의 말은 사실 내게 낯선 개념이었다.
나는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의 신학에 대해 얼마간 공부하면서 칼빈의 신학에서 오류들을 발견했던 것처럼 그의 신학 안에서도 몇 가지 오류들을 발견하였다. 나는 아르미니우스가 칼빈보다 진리에 더 가깝다고 믿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방어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화이트는 칼빈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 생각, 즉 어떤 사람이 칼빈주의자가 아니면 그는 분명히 아르미니우스주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미니우스 - 네덜란드의 개혁파 신학자. 라이든과 함께 제네바에서 공부한 뒤 암스테르담의 목사가 되었다. 그는 칼빈주의 예정론에 의문을 가졌기 때문에 라이덴 대학 교수직에 임명되었을 때 선임자인 고마루스 등의 반대를 받았다. 그의 사망 후 이듬해, 그의 문하생들이 ‘센텐티아 레몬스트란 티아(선언문)’라는 5항의 문서를 공표했다. 그 문서의 요점은 칼빈주의 예정론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에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는 도르트 회의를 열어서 이 주장을 반박하고 아르미니우스파를 네덜란드에서 추방했다. 이들에 대한 핍박은 후에 완화되었고 영국에서는 요한 웨슬리 등의 복음 전도자들이 아르미니우스의 신조에 기초하여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만인 구원설’ 복음을 널리 전하였고 그 결과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칼빈주의자들보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
이런 개념은 사실 칼빈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는 무조건적 선택에 대한 자신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복음의 원수로 취급했고, 사람이 칼빈주의를 거절해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47년 전 내가 하나님의 놀랍고 거저 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던 때부터 바로 이날까지 나는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말씀, 즉 성경기록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해하고 신실한 종이 되기를 원했다. 내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나는 그것을 나의 유일한 권위로 만들었다. 나는 조직 신학을 좋아하여 성경 교리 강의를 하고 성경 신학에 관한 책들을 출판하였지만 오직 성경기록만으로 모든 다양한 신학들을 검증하였으며 어떤 사람의 어떤 조직 신학에도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내가 칼빈주의나 아르미니우스주의 중 하나를 따라야 하는 절대적 의무 아래 있지 않음으로 인해 나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⑦ 칼빈주의는 성경의 전체 취지보다는 그 추종자들이 선호하는 몇 가지 증거 본문 위에 수립되었다
칼빈주의의 렌즈를 통해 문맥에 상관없이 따로 떼어 해석하는 경우 칼빈주의를 지지하거나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 구절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성경기록 전체를 증거로 취하면 칼빈주의는 곧바로 무너져 버린다. [이제 독자께서는 이 말이 사실임을 곧 보게 될 것이다.]
'칼빈주의 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빈주의 비평 - 칼빈주의 TULIP 신학의 개요 (0) | 2025.04.09 |
---|---|
칼빈주의 비평 - 칼빈의 점진적 과정 구원 신학 (1) | 2025.04.09 |
칼빈주의 비평 - 구원에 관하여 우리가 믿는 것 (1) | 2025.04.07 |
칼빈주의 비평 - 칼빈의 실체③ (3) | 2025.04.06 |
칼빈주의 비평 - 칼빈의 실체② (1) | 2025.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