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빈주의 TULIP 신학의 개요 >
칼빈주의는 16세기에 칼빈(John Calvin)이 발전시킨 신학이다. 그는 「기독교 강요」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 신학을 발표하였으며 이것은 후에 장로교와 개혁주의 신학의 시금석이 되었다. 이 신학은 종종 TULIP이라고도 불린다. 칼빈 자신은 자신의 신학을 설명하기 위해 TULIP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 단어는 간단하면서도 정확하게 그의 관점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TULIP 신학의 모든 기준점은 칼빈의 저서인 「기독교 강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칼빈 신학은 아르미니우스와의 교리에 대한 논쟁에서 제시된 5개의 강령으로 요약될 수 있다. 아르미니우스는 제네바에서 칼빈의 후계자인 베자(Theodore Beza) 밑에서 수학하였지만 칼빈주의를 배척하고 네덜란드에서 비칼빈주의 신학을 가르쳤다. 아르미니우스 추종자들은 그의 교리(혹은 신학)를 다음의 5개 강령으로 정리하여 1610년 네덜란드 교계에서 반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자유 의지 또는 인간의 능력(Free will or Human ability)
② 조건적 선택(Conditional Election)
③ 보편적 속죄 또는 일반적 속죄(Universal or General Atonement)
④ 저항할 수 있는 은혜(Resistible Grace)
⑤ 불안전한 믿음(Insecure Faith)
이러한 5개 강령은 1618-1619년에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도르트 종교 회의(Synod of Dort)에서 거기 참석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영국의 대표들에 의해 거부되었으며 그들은 이 회의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반대하는 칼빈의 5대 강령을 공식화하였다.
아르미니우스 추종자들은 그 이후 교계에서 추방되었으며 칼빈주의 형제들에게 심한 박해를 받았다. 18세기 후반에 칼빈의 5대 강령은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그것들의 머리글자를 따서 TULIP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①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으며 자신의 죄로 인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인간에게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복음에 반응조차 할 수 없는데 심지어 이렇게 복음에 반응하는 것도 선택받은 자들 중 하나여야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죽어 있는 죄인에게 능력을 부여하셔야 할 뿐 아니라 주권적으로 그를 되살려서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셔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서 전적 타락이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죄의 상태로 들어갔기 때문에 구원에 동반되는 어떤 영적인 선(미덕)에 이르는 모든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선(미덕)을 심히 싫어하며 죄들 가운데 죽어 있는 자연인(본성에 속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회심시키거나 자신이 그러한 회심에 이르도록 준비시킬 능력이 없다.
** 칼빈주의에서 구원이나 영벌과 관련해서 자주 사용되는 ‘주권적으로’(sovereignly)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주권으로 천국에 갈 자들과 지옥에 갈 자들을 미리 정하신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이 책에서도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전적 타락에 대한 칼빈의 교리는 죄인은 자기 자신의 의가 전혀 없다는 것과 자신의 마음이 부패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의 의지가 복음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죄에 완전히 속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사람이 믿을 수 있기 전에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다시 태어나야만 함을 의미한다.
핑크(Arthur Pink)는 이 교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믿음은 새로운 탄생(즉 구원)을 가져오는 원인이 아니라 그것의 결과이다. 이것은 결코 논쟁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믿음은 하나의 영적인 은혜요 영적인 본성의 열매이다. 다시 태어나지(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즉 ‘범법들과 죄들 가운데서 죽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로부터 믿음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어떤 것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주권」, p. 73).
②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주권적으로’ 구원받을 사람들을 선택하시며 이 선택은 죄인의 행위, 즉 복음을 믿는 것을 포함하는 그 어떤 것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의 내용을 고찰해 보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친히 작정하심으로써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미리 정하여졌다. 이렇게 예정되고 미리 운명이 정해진 천사들과 사람들[구원받는 자들]은 특별하게 그리고 불변하게 계획되어 만들어졌으며 그들의 숫자는 확실하게 정해져서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없다.… 나머지 인류[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뜻에 따른 헤아릴 수 없는 계획에 따라 - 그 계획에 따라 그분께서는 친히 기뻐하시는 대로 긍휼을 베풀기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신다 -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주권적 권능의 영광을 위해, 그들을 간과하심으로써 그들이 그들의 죄로 인한 불명예와 진노를 받도록 그들의 운명을 정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는데 이것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양하기 위함이다.
칼빈은 무조건적 선택에 대한 교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우리는 예정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뜻한다고 믿으며 이 작정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각 사람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셨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조건하에서 창조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고 다른 사람들은 영원한 저주에 이르도록 예정된다. 각 사람은 이 둘 중의 어느 한쪽 결말에 이르도록 창조되므로 우리는 각 사람이 생명이나 또는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분명히 보여 주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하고도 변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구원에 이르도록 받아 줄 사람들과 멸망에 이르도록 정죄할 사람들을 영원히 확정하셨다고 말한다.
선택된 사람들에 관한 한 이 계획은 그들의 인간적 가치와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긍휼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정하고 흠이 없으면서도 이해가 불가능한 심판에 의거하여 정죄에 이르도록 내어 주신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문을 닫으셨다.… 부르심과 칭의에 의해 자신의 선택받은 자들을 봉인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또한 버림받은 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과 성령님의 거룩하게 구분하심에 이르는 것을 끊어 버리심으로써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심판의 표징을 주신다(「기독교 강요」 3권 21장 5항,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
칼빈은 주권적 영벌(영원히 버림받는 것, 즉 유기)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끄신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어떤 결점이 없어도 오직 그분의 주권적 의지로 인해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들의 운명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작정과 계획에 의해 정하시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모태에서부터 사망에 이르도록 태어나며 이로써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파멸로 인해 영광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자녀들로 택하시지만 다른 사람들은 거절하시고 영원히 내버리신다(「기독교 강요」, 3권 23장, 하나님의 유기에 대하여).
③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칼빈은 복음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반대하였다.
구원의 교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유익을 주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제공된다면, 그것은 특별히 교회의 자녀들만을 위해 예비된 것이라고 선포된 것을 부패시켜 악용하는 것이다(「기독교 강요」, 3권 22장,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④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선택받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유효하며 아무도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죽어 있던 죄인은 주권적으로 다시 살아나고 그 뒤에 ‘믿음의 선물’을 받는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의거하여 때를 따라 어떤 사람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을 갖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하나님의 모든 일은 그분께서 아시기 때문이다(행15:18; 엡1:11). 그분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마음은 아무리 단단하더라도 부드럽게 하시고자 하는 그분의 작정에 따라 결국은 믿음을 갖도록 굴복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을 자신의 심판을 통해 그들 자신의 완악함과 완고함에 남겨 두신다(도르트 종교 회의 문서에서 요약 발췌).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이 효과적 부르심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에서 나오며, 결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것을 하나님이 미리 보시고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 점에서 사람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성령님에 의해 소생하고 새롭게 된 이후에 사람은 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되며 또한 이 부르심 가운데 주어지며 전달된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선택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말씀의 사역에 의해 부르심을 받고 성령님의 어떤 일반적 효력을 체험할지라도, 결코 그리스도에게로 참되게 나아오지 아니하며 그러므로 구원받을 수 없다.
⑤ 성도들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하나님에 의해 주권적으로 선택을 받고 소생하게 된 사람들은 계속해서 믿음 안에 거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그리스도) 안에서 수용하시고 자신의 영으로 거룩히 구별한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은혜의 상태에서 결코 전적으로 떨어져 나갈 수 없으며 확실하게 끝까지 견디어 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태만과 유혹을 통해 죄에 떨어질지라도 또 이로써 그들이 성령님을 슬프게 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와 위로들을 훼손하며 교회의 수치가 되고 일시적 심판에 처해질지라도 그들은 다시 회개에 이르도록 새롭게 되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존될 것이다(「원리의 요약」(Abstract of Principles),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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