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빈의 점진적 과정 구원 신학 >
최근에 나는 세상에 널리 잘 알려진 침례교 역사학자인 비일 박사(Dr. David Beale)13)에게 “칼빈이 단 한 번이라도 유아 세례를 통해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세례 중생 교리를 반박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비일 박사의 회신
성경의 구원은 결코 점진적 과정이 아닙니다. 구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람이 복음을 듣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야 하지만 구원 자체는 일순간에 태어나는 출생입니다(요3:3). 구원은 영적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며(엡2:1) 어둠의 권능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일순간에 옮겨지는 것입니다(골1:13). 이렇게 일순간에 출생하는 구원 외에 다른 것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적이 없습니다. 오순절 날에 3,000명이 구원받은 것, 에티오피아 내시가 빌립의 전도에 의해 구원받은 것, 사울과 고넬료와 루디아와 빌립보 감옥 간수가 회심한 것 등이 모두 일순간에 구원이 이루어짐을 보여 줍니다.
“칼빈이 단 한 번이라도 유아 세례를 통해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세례 중생 교리를 반박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형제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결코 없습니다!”입니다.
칼빈은 자신의 **갈리아 신앙 고백(1559)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우리는 교황의 모임을 정죄한다.… 그럼에도 교황 제도 안에 여전히 참 교회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세례의 효력이 누가 세례를 주느냐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처럼 로마 카톨릭 시스템에서 세례를 받은 자들은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28항).
** 이것은 종교 개혁 시기의 개혁파 교회 신앙 고백의 대표적인 것 중 하나이며 프랑스 개혁파 교회 신앙 고백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의 초안은 칼빈이 직접 쓰고 그의 제자들이 가필했다. <종교학대사전>
이로써 칼빈은 천주교회의 유아 세례 및 세례에 의해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세례 중생’ 교리를 포용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칼빈의 책들은 구원이 점진적 과정임을 가르칩니다. 그는 어거스틴의 삶과 작품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았는데 어거스틴은 소위 자기의 **‘동산 체험’이라 불리는 체험과 물세례가 일생동안 지속되는 점진적 회심의 시작 단계라고 말합니다(「어거스틴: 그의 삶과 영향」(Augustine: His Life and Influence), David Beale, Historical Theology In Depth, 2013, 1:334-50).
** 어거스틴의 「고백록」에 따르면, 그는 30세가 넘은 나이에 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칼빈은 자기의 회심에 대해 자신의 「시편 주석」(1557) 서문에서 단 한 번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회심에 의해 하나님께서 내 생각을 누르시고 무언가를 가르치실 수 있는 형태로 내 생각을 이끄셨다.
내가 볼 때 이런 회심은 단순히 지적으로 조명을 받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칼빈은 자기의 회심을 일생 동안 지속되는 회심의 여러 단계 중 하나로 여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냐 여부에 상관없이 칼빈은 회심, 회개, 중생을 모두 같은 것으로 여기면서 구원을 점진적 과정으로 가르칩니다. 칼빈은 ‘회심의 시 작’(commencement of conversion)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는 이것에 의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다고 기록합니다(「기독교 강요」, 2권 3장 6항).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전적 회심이란 회개라는 말로 이해된다(「기독교 강요」, 3권 3장 5항).
다시 말해 나는 회개가 회심이라고 이해한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목표로 지정하시는데 그들은 그들의 전생애 동안 이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야만 한다(「기독교 강요」, 3권 3장 9항).
칼빈이 이렇게 중요한 단어들을 구분하지 않고 섞어서 쓰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청교도들이 믿고 가르치는 ‘점진적 과정의 구원’이라는 교리는 칼빈에게서 나왔습니다. 영국의 종교 개혁은 왕(헨리 8세)의 명령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거기에는 개개인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즉각적으로 회심하는 것이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청교도들의 설교에는 심히 율법적으로 들리는 요소들이 많고 구원의 확신을 주지 못하는 ‘구약식 희생에 따른 복음’ 같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모르간(Edmund Morgan)이 지은 「눈에 보이는 성도들: 청교도 사상의 역사」(Visible Saints: The History of a Puritan Idea)를 보기 바랍니다.
개혁신학은 ‘점진적 과정의 구원’의 기초인 ‘유아 세례 중생 교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제 나는 기독교 역사가 샤프(Philip Schaff)의 「기독교계의 신조들」(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에 들어 있는 종교 개혁 개신교의 주요 신조와 신앙 고백이 가르치는 유아 세례에 대해 기술하겠습니다.
①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1563, Q and A, pp. 69-74)
성경은 세례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죄들을 씻어 버리는 것이라고 부른다.
질문: 유아들도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답변: 물론이다. 아이들의 부모와 아이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백성에 속하므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죄에서 구속받는 것과 믿음을 세우시는 성령님이 그들의 부모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약속으로 주어져 있다. 그들도 언약의 징표인 세례에 의해 그리스도의 교회로 접붙여지고 불신자들의 아이들과 구별된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할례에 의해 성도들의 아이들이 구별된 것과 같으며 신약 시대에는 유아 세례가 할례를 대신하여 이 목적을 위해 지정되었다.
② 칼빈의 갈리아 신앙 고백(1559, 28 및 35항)
우리는 교황의 모임을 정죄한다.… 그럼에도 교황 제도 안에 여전히 참 교회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세례의 효력이 누가 세례를 주느냐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처럼 로마 카톨릭 시스템에서 세례를 받은 자들은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28항).
유아 세례는 우리가 양자로 입양되는 것에 대한 서약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세례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으로 접붙여지기 때문이다(35항).
③ 벨기에 신앙 고백(1561, 34항)
우리는 진지하게 영생을 얻기 원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평생에 단 한 번 이 유일한 세례(유아 세례)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두 번 다시 태어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또다시 이것을 반복해서 받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자기들이 이전에 받았던 유일한 세례(즉 유아 세례)에 만족하지 않고 심지어 유아 세례를 정죄하는 재침례교도들의 오류를 몹시 미워한다. 우리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아이들이 할례를 받았던 것처럼 우리 유아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동일한 약속 위에서 반드시 유아 세례를 받아 언약의 징표로 봉인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④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1560, 21장)
우리는 [유아 세례 같은] 성례들이 단지 별것 아닌 허무함의 표징이라고 주장하는 자들 - 아마도 재침례교도들 - 의 헛된 말을 정죄한다. 아니다. 우리는 유아 세례에 의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접붙여짐을 확실하게 믿는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죄들을 덮고 사면해 주시는 그분의 공의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⑤ 도르트 종교 회의 법규(1619, 17항 초반부)
믿는 자들의 아이들은 본성에 의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은혜의 언약의 효력에 의해 거룩하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들과 함께 이 언약 안에 포함되어 있다. 경건한 부모들은 자기들의 아이들이 선택받은 것과 구원받은 것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릴 때에 이 세상의 삶에서 그들을 불러내신다.
⑥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1647, 28장)
본 신앙 고백은 요한복음 3장 5절 즉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에게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에 나오는 물이 물세례와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물세례는 성례이고… 은혜의 언약의 징표요 봉인이다. 또한 이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접붙여지는 것, 다시 태어나는 것, 죄들의 사면을 받는 것 등의 징표요 봉인이다.
⑦ 1차 헬베틱 신앙 고백(1536, 벌링거에 의해 기록됨)
물세례, 즉 거룩하게 목욕하는 것은 다시 태어나게 하는 목욕이다(21항). 디도서 3장 5절의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은 곧 물세례이다.
⑧ 2차 헬베틱 신앙 고백(1566, 19-21장)
물세례는 우리가 양자가 된 것을 영구히 봉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받는 것은 언약과 가족 안으로 영접되어 등록되는 것이며 이로써 하나님의 아들들의 상속 유업이 주어진다. 그렇다. 그 결과 이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따라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며 죄들의 더러움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수여받는다(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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