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비평

칼빈주의 비평 - 칼빈의 실체③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6. 13:53

5. 칼빈의 철권 독재의 이유

왜 칼빈은 이토록 무섭게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압제하였을까? 그 이유는 그의 왜곡된 교회관 때문이었다. 총신대학교 총장을 지낸 정일웅 박사의 논문 「독일 교회를 통해 배우는 한국 교회의 통일 노력」에는 ‘종교 개혁을 통한 교회의 분리와 연합’이라는 장에 칼빈의 교회관이 정확하게 들어 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중세기로 오면서 두 번째 분열의 위기를 겪게 된다. 직접적 동기는 1517년 10월 31일에 루터가 제기한 95개 조항의 반박문에 있었다. 그러나 더 구체적으로는 면죄부 사건과 관련해 로마 교회의 구원론에 문제가 있었다. 또 기독교 신앙의 근거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원칙이 되지 않고 인간 교황과 제도와 전통적 권위가 중요성을 띠면서 카톨릭교회는 많은 문제를 낳게 되었다. 루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 개혁의 기치 아래 더 많은 동조자를 얻게 됐고 종교 개혁은 그 시대의 사회적 상황과 연관돼 유럽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수차례에 걸쳐 로마 카톨릭교회는 교회 일치를 위해 프로테스탄트들과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끝내 연합과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는 로마 교황의 절대적 통치 제도와 성경의 권위 그리고 성만찬의 화체설이 서로 간에 좁혀지지 않는 논쟁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 교회 역시 하나의 교회로 통일되거나 교리에 일치를 이루지는 못하였으며 유감스럽게도 루터파와 칼빈파 교회로 나뉘는 불행을 겪었는데 문제의 핵심은 성만찬[주의 만찬]에 대한 견해 차이였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심각한 분열에도 불구하고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 정신을 가장 많이 보여 줬다. 칼빈의 교회 일치에 대한 관심과 입장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특별히 칼빈이 ‘교회의 하나 됨’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천주교의 **트리엔트 종교 회의를 통해서였다.

** 트리엔트(혹은 트렌트) 공의회는 종교 개혁에 따른 교회 분열을 수습하기 위해 소집되었지만 실질적으로 프로테스탄트들의 참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517년 루터(Luther, 1483-1546)의 종교 개혁 이후 교회 개혁을 위한 공의회 개최 요구가 꾸준히 나타났다.

1545년부터 1563년까지 18년 동안 이탈리아 북부 도시 트리엔트에서 열린 이 공의회에서는 종교 개혁가들이 제기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카톨릭의 교리를 정의하고 카톨릭교회의 규율과 제도 개혁을 결정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성경을 유일한 권위로 인정하고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음을 내세워 카톨릭교회의 권위를 부정했고 믿음으로만 면죄를 얻을 수 있다고 하며 세례와 성찬이라는 두 가지 성사만을 받아들였다. 또한 하나님이 미리 정해진 사람들에게만 은총을 부여한다는 예정설을 강조하고, 성모와 성인들에 대한 숭배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루터의 주장을 배격하고 성경과 성전, 즉 교회의 전통 모두를 신앙의 원천으로 확인했다. 아울러 성경의 해석은 교회만이 권위를 가짐을 명백히 하여 교황의 권위와 성직계서제를 재확인했다. 또한 예정설과 믿음에 의한 면죄설을 배격하며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신앙과 더불어 선행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면죄는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이루어지며 그 은총은 성사를 통해 인간들에게 내려온다고 하여, 성사를 집행하는 성직자들을 일반 신도들과 엄격히 구분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카톨릭교회는 로욜라가 결성한 예수회의 확장과 더불어 프로테스탄트의 진출을 막으며 카톨릭 신앙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다.<두산 백과>

약 18년간 계속됐던 트리엔트 종교 회의 기간에 칼빈은 제네바의 개혁자로 활동하면서 이러한 종교 회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칼빈은 자신의 「기독교 강요」 제4권 제1장의 제목에서 벌써 교회의 하나 됨(일치)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그것은 참된 교회에 관한 설명으로 “참된 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어머니이므로 우리가 그 교회[천주교회]와 더불어 하나 됨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칼빈에게는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단지 성취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켜야 할 법으로 이해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갈라놓을 수 없듯이 교회가 둘 혹은 셋으로 분열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하늘나라가 나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 분열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서로 분열하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는 반증’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와 같이 칼빈은 ‘교회의 하나 됨’에 있어서 분명한 교회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그 ‘하나 됨’의 실현을 위해 모범을 보인 인물이다. 칼빈은 마지막까지 카톨릭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1540년의 하게나우 종교 회의와 1540-41년에 개최된 보름스 종교 회의, 레겐스부르그 종교 회의에 대표로 참석했다. 비록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 모든 노력들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로마 카톨릭교회와의 하나 됨(일치)을 위해 힘썼던 노력의 역사적 사건들이다.

이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칼빈은 개신교회와 카톨릭교회와의 일치를 가장 큰 목표로 여겼고 카톨릭교회의 모든 통치 제도의 근간을 놓은 어거스틴의 사상을 통해 이를 실행하려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칼빈주의자들은 언제나 자기들의 계보를 어거스틴까지로 한정한다.

베버가 지은 「칼빈의 교회관」(김영재 역, 합신대학원 출판부, 2008)에도 칼빈의 교회관과 카톨릭주의의 교회관이 같다는 점이 드러나 있다. 칼빈 연구가 중 하나인 베버는 독일 괴팅겐 대학교의 신학 교수였으며 개혁주의 신학에 공헌을 많이 한 신학자이다. 1938년에 그가 번역 출판한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1572년 최초의 번역판 이후 처음으로 나온 독일어 완역판이다. 다음은 그의 저서의 제2장 「칼빈의교회관(pp. 132-133)에서 인용한 것이다.

칼빈은 이러한 교회관에 근거하여 실천하였다그는 교황 교회에 하나님께서 참된 교회의 흔적이나 잔재를 남겨 두신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세례는 모든 교회에 다 공통적이다교황 교회가 교회이며 교회로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그 교회는 실재하지만 참되고 법도에 맞는 교회관은 갖고 있지 않다.… 칼빈은 교황을 상대로 하는 싸움에서 거의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화해는 점점 불가능하게 되어 갔다그는 카톨릭적으로 사고했으며 본래적 의미의 카톨릭교회라는 개념은 그의 가르침에서 늘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카톨릭교회를 개신교 안에서 발견했던 것이다그래서 그는 이 개신교 교회 내에서 좀 더 나은 일치를 위하여 진력하는 것을 의무로 알았다.

칼빈이 말한 ‘본래적 의미의 카톨릭교회’는 ‘어거스틴이 가르쳐 준 카톨릭교회’이며 그것은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교회를 통해 온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땅에 오직 한 교회, 한 믿음, 한 성례만 있어야 한다고 확신하였고 그런 일은 구약 시대의 신권 통치를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교회를 신정 국가로 이해하려면 성경을 비유적으로 영해해야만 한다. 「칼빈의 교회관」(p. 135)에서 볼 수 있듯이, 칼빈이 핍박한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는 칼빈의 이러한 영해를 반대하였다. 원래 *사도 신경에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사흘 동안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부활하셨다는 대목이 있다. 카스텔리오는 사도 신경의 이 대목, 즉 그리스도께서 실재하는 지옥으로 실제로 내려가셨다는 대목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에 반해 칼빈은 지옥이 실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재(不在)와 진노로 인해 비상한 경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영적 해석을 하였다.

* 사도신경 - 영어와 원어 그리고 카톨릭교회의 사도 신경에는 ‘He descended into hell’이 있지만 우리나라 개신교 사도 신경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어 없다. 원래대로라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지옥에 내려가셨다’고 번역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카톨릭주의에서 주장하는 연옥과 림보 등의 개념과 연관되기 때문에 아마도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약속하신 대로 낙원, 즉 지하 세계의 지옥 부분에 내려갔다가 올라오셨음을 말한다(마12:40; 행2:27; 시16:8-11; 엡4:8-10). 개역성경은 이런 구절들에서 ‘hell’을 지옥이라 하지 않고 음부라고 하여 불교 냄새를 피운다.

이에 관하여 멜랑크톤, 츠빙글리, 베자 등의 개혁자들은 카스텔리오와 견해를 같이 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지옥을 장소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이 없는 것, 즉 ‘장소로 서술할 수 없는 상태’로 이해했다. 이러한 설명은 지옥을 ‘하나님의 결핍’(carere Deo)이라고 표현한 어거스틴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중세의 신비주의자들이 주로 이런 견해를 지지하였다. 루터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것을 단호히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지옥을 비유로 보는 견해는 사실 현시대 자유주의자들의 견해이며 성경 신자들은 이에 반대하며 예수님께서 문자 그대로 지옥에 다녀오셨음을 믿는다.

사실 카스텔리오는 무슨 이단 교리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대로 문자 그대로 그분께서 땅속의 지옥에 내려가셨음을 말하였으나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의 영해를 신봉한 칼빈은 이런 견해를 묵살하고 그를 이단자로 몰아 핍박하였다. 즉 제네바에서는 오직 칼빈의 말만 법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던 신정 정치 신봉자들의 이상을 자신의 섭리로 묘하게 바꾸셔서 자본의 축적을 통한 자유 시민들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이 출현하는 근간으로 삼으셨다.

칼빈주의는 모든 점에서 개인주의와 개인의 맹렬한 욕구를 파괴하고 관의 권위를 강화한다. 칼빈주의는 그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게서 정확한 하인, 겸손하고 지속적으로 전체에 소속된 인간 유형, 그러니까 관리와 이상적인 중산층 인간을 조형적으로 만들어 냈다. 그러므로 막스 베버(Max Weber)가 유명한 자본주의 연구서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다른 어떤 요소도 절대적 복종을 가르치는 칼빈주의만큼 산업화에 기여한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옳았다. 이미 대중은 학교에서 종교적 방법으로 동일한 계층화와 기계화의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칼빈, 베자, 녹스 등 ‘기쁨을 죽이는 자들’이 그 최초의 조잡한 형태의 요구로 온 세상을 정복했다면 얼마나 두려운 세상이 되었을까? 그랬더라면 얼마나 재미없고 단조롭고 빛깔 없는 특성들이 유럽을 사로잡았을까! 예술을 싫어하고 기쁨을 미워하고 삶을 미워하는 이 신도들이 존재의 그 모든 풍족함과 사랑스런 여유에 반대하며 날뛰었더라면...

다행히도 유럽은 칼빈주의 기율 [즉 도덕상으로 여러 사람에게 행위의 표준이 될 만한 질서]에 물들지 않았고 청교도로 변하지도 않았으며 제네바처럼 되지도 않았다. 세계를 단 하나의 체계 속에 욱여넣으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언제나 저항해 왔던 삶의 의지는 이번에도 영원한 새로움을 갈망하면서 강한 반발력을 보여 주었다.단지 유럽의 일부에서만 칼빈의 공격이 성공을 거두었다.

칼빈의 가르침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그 지나친 가혹함을 잃어버렸고 칼빈주의가 권력을 잡은 곳에서도 칼빈주의는 엄격한 성서 독재를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다. 칼빈의 신정 정치가 지속적으로 전권을 휘두른 나라는 없었다. 그가 죽고 나자 곧장 현실의 저항 앞에서 그 옛날 그토록 가혹했던 ‘기율’은 삶과 예술에 대한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인간적으로 변화했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려 했던 칼빈주의 체계는 극히 이상한 방식으로 변해 정치적 자유의 이념이 되었다. 칼빈주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네덜란드, 크롬웰이 통치하던 영국, 그리고 미국은 가장 너그럽게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국가 이념을 받아들인 나라들이 되었다(동일 문서, pp. 277-282).

6. 칼빈의 삶과 사상 총정리

위에 열거된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칼빈의 삶과 사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신정 정치 교회: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무력까지도 동원하여 신정 정치를 구현하는 국가 교회가 유일한 교회이다.

② 무천년주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이 땅에서 다스리는 왕국은 없다.

③ *이스라엘 대체 신학: 아브라함의 실제 자손인 유대인들에게는 전혀 미래가 없고 신약의 교회가 곧 구약의 왕국이므로 구약 성경에 약속된 이스라엘의 모든 복은 신약의 교회가 받는다.

④ 인간의 자유 의지 박탈: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인간의 자유 의지는 완전히 박탈되었다.

⑤ 세례 중생: 사람은 유아 세례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⑥ 무력 통치: 그는 시민 10,000여 명에 불과한 제네바시를 통치하며 처음 5년 동안에 13명을 교수대에 매달고 10명의 목을 베었으며 35명을 화형시키고 76명을 추방하였다.

⑦ 목사의 권위: 그는 목사가 이 땅에서 무소불위의 권위를 갖는 것을 가르쳤고 모든 사람이 목사의 말에 순종할 것을 가르쳤다.

*이스라엘 대체 신학 - 종교 개혁자들은 하나같이 반셈족주의(Anti-semitism)를 신봉하여 유대인들을 핍박하였다. 특히 이 같은 경향은 루터에게서 심하게 나타났고 칼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그때까지 1,000년 이상 카톨릭교회가 어거스틴의 교리를 수용하면서 유대인들을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중세 암흑시대 1,000년 동안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모든 교회가 이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인 유대인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구약 시대의 왕국과 신약 시대의 교회를 구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천주교회와 장로교회는 지금도 어거스틴주의와 칼빈주의를 추종하며 유대인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교회와 왕국을 구분하지 못한다.

칼빈의 사상은 마리아 숭배나 성인들의 공적과 연옥 인정을 제외하고는 지난 1,500년 이상 로마 카톨릭교회의 믿음을 지탱해 준 어거스틴의 사상과 동일하다. 현시대 칼빈주의자들 중에도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기득권과 인간 지성의 추구라는 짜릿한 맛을 포기하지 못해 사람의 사상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칼빈은 그 당시의 시대정신, 즉 무력을 써서라도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는 국가 교회를 몸으로 철저히 실행하려 했던 불굴의 의지를 지닌 무서운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프로테스탄트들의 교황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고 또 그렇게 불린다.

칼빈주의자들은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가 신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이며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에 동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의 저서가 유명해도 그것에 성경과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권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상 숭배요 이단 교리이다.

우리는 칼빈의 신학이 그의 사후 기독교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철저하게 역사의 증언을 들어 보아야 한다. 칼빈 신학은 하나님의 왕국의 확장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 영생을 얻을 자들과 지옥 정죄를 받을 자들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전도와 선교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또한 구약과 신약을 혼합한 칼빈 신학은 성경의 이해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였다. 그는 요한계시록 20장과 구약의 대언서들에 수없이 나오는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무천년주의를 신학의 기본 틀로 전했는데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칼빈주의의 벽은 너무도 두터워서 일반인은 근방에 가기도 어렵다.

그러나 예수님과 바울이 전한 복음은 너무나 단순한 복음이라 아이들도 이해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 그것은 누구든지 [의지적으로 복음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런 단순한 복음을 어거스틴을 추종하면서 인간의 사상과 철학으로 뒤범벅을 해 놓은 시스템, 그것이 바로 칼빈주의라는 국가 교회 지침서이다.

사도 바울의 다음의 경고는 인간 시스템을 추종하는 자들에게 성경이 주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고후11:1-4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어리석은 것을 조금 용납하라. 참으로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해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너희를 한 남편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그러나 뱀이 자기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 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선포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선포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이나 너희가 수용하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너희가 받아 들이게 하면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도다.

갈5:1 그리스도께서 해방의 자유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그 자유 안에 굳게 서고 다시 속박의 멍에에 얽매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