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빈주의자들의 증거 본문 검증 >
이제 우리는 TULIP으로 요약되는 칼빈주의의 핵심 교리, 즉 ‘전적 타락’, ‘무조건적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들의 견인’을 지지하는 데 사용되는 중요한 증거 본문들을 분석할 것이다. 우리는 TULIP 신학의 마지막 강령인 ‘성도들의 견인’은 다루지 않으려 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고 있고 또한 단순하게 이것이 성경대로 구원받은 자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 역시 그것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경험상 나는 충실하게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신학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다음 구절들에 대한 나의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많은 열정적 칼빈주의자들과 대화를 해 왔고 그들이 모든 것에 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또한 그들이 비칼빈주의자들은 칼빈주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항상 불평하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라도 칼빈주의를 깊이 연구할 수 있고 칼빈의 「기독교 강요」도 읽을 수 있으며 그들의 저서들로부터 직접 무언가를 인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비칼빈주의자라면 그들은 항상 그가 칼빈주의를 오해하고 잘못 해석한다고 비난한다.
나는 현시대에 새로 칼빈주의를 접하게 될 많은 신자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이런 칼빈주의 확산 추세는 지금 미국의 근본주의 침례교계에서도 널리 일어나고 있다. 비칼빈주의 교회로 설립되고 비칼빈주의 교리적 진술을 가지고 있는 많은 교회들에 칼빈주의자들이 기어 들어오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교회를 가로채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인 독자께서 하나님이 주신 해석의 자유라는 권리를 발휘할 것을 요청한다. 이 말은 믿음을 가진 성도는 누구라도 자기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자신의 영적 인도자로 모시고 있어서 진리를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너희가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므로 어떤 사람이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으며 바로 그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느니라. 또 그것이 진리요 거짓이 아니니 그것이 너희를 가르친 대로 너희는 그 분 안에 거할지니라(요일2:27).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어야 하며’(살전5:21)
‘그것들이 그러한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해야 한다’(행17:11).
어떤 사람이 그분의 뜻을 행하려하면 그 교리가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혹은 내가 스스로 말하는지 알리라(요7:17).
1.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하기 위해 칼빈주의자들이 애용하는 구절들
칼빈주의의 근본적 오류는 구원에 관한 한 사람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성경이 분명히 말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어떤 선택권도 가질 수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는 이런 잘못된 기초 위에 계속해서 교리를 세우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은 성경기록 어디에도 나오지 않지만 칼빈주의자들은 이 말을 왕 같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표현하면서 성경적 교리를 왜곡하는 데 사용한다.
** 주권(sovereignty) -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하나님께서 온 우주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심지어 낙엽이 떨어지는 것조차 다 미세하게 미리 예정하여 조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영어로 ‘micro control’이고 매사에 세세하게 혹은 세밀하게 간섭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장악하시고 자신의 뜻대로 섭리로 세상을 운영하신다. 이것은 영어로 ‘in control’이다. 삼성전자 회장이 자기 회사에 속한 모든 직원의 출퇴근 시간,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 모든 것을 일일이 간섭할까, 아니면 모든 것을 장악한 채 회사를 운영하면서 직원들이 회사의 목표를 알고 자율적으로 모든 것을 하게 할까? 일개 회사의 회장도 후자처럼 일을 하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제할 수 없어서 인간의 자유를 다 빼앗고 리모트 콘트롤을 사용하여 자기 뜻대로 일일이 세세하게 간섭하신다면 이것은 성경의 하나님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사탄과 그의 마귀들, 천사들,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지능이 있는 짐승들도 자유 의지가 있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물에게 허락하신 일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은 증언한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우리는 예정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뜻한다고 믿으며 이 작정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각 사람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셨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조건하에서 창조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고 다른 사람들은 영원한 저주에 이르도록 예정된다. 각 사람은 이 둘 중의 어느 한쪽 결말에 이르도록 창조되므로 우리는 각 사람이 생명이나 또는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왔다고 말한다(「기독교 강요」, 3권 21장 5항,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
극단적 칼빈주의자 중 하나인 팔머(Edwin Palmer, 1922-1980)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뒤에 계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일어나도록 결정하시고 모든 것이 일어나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죄와 불신도 정해 놓으셨다”(「칼빈주의 5대 강령」(Five Points of Calvinism), Baker Books, 1980, pp. 25, 202).
핑크는 자신의 책 「하나님의 주권」에서 앞의 세 장을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할애하였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신다고 말하는 에베소서 1장 11절과 같은 핵심 절들을 인용한 후에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을 내린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분께서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일어나게 의도하시지 않으셨다면 세상이 회전하는 것도, 별이 빛나는 것도, 폭풍우도 있을 수 없으며 어떤 창조물로 움직이지 않는다(p. 46).
사실 핑크가 이러한 결론을 입증하기 위해 인용한 구절들은 결코 그러한 것을 보여 주지 않으며 따라서 신학을 검증할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이런 것에 주의해야 한다. 합당한 성경 해석은 사람의 신학을 성경 말씀 속으로 강제로 집어넣어 자기 뜻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기록의 단어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중대한 뜻과 프로그램을 항상 궁극적으로 성취하시기 위하여 마귀들과 죄인들의 뜻을 억누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마귀들과 죄인들이 어떤 효과적 의지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거나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을 미리 의도해 놓으셨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악한 것과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을 허용하시고 그것이 여러 시대들 속에서 자신의 전체적 프로그램 안에서 일하게 하시는 것과 그런 것을 의도적으로 정해 놓는 것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칼빈주의자들의 주요 증거 본문들을 검증해 보자.
①. 에베소서 1장 11절: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이것은 놀라운 말씀이며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러나 이 구절은 결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는지 아닌지 그리고 사람이 어느 정도로 그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또한 죄인이 그리스도를 구원받을 만하게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의 계획대로 모든 것을 이루신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하나님께 반응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창조하셨다는 교리와 결코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칼빈주의자들이 하는 일은 근거가 희박한 이런 문제를 만들어 내고는 성경기록의 분명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의 논리로 거기에 대답하는 것이다.
② 다니엘서 4장 35절: 그분께서는 땅의 모든 거주민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 안에서든지 땅의 거주민들 가운데서든지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아무도 그분의 손을 멈추게 하거나 그분께 이르기를, 당신이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없느니라.
이것은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 뒤 자기의 이성이 자기에게 돌아오자 자신의 교만을 회개한 이후에 한 말이다. 이 구절은 단순하게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그분께서 인간의 일들을 궁극적으로 통치하신다고 말할 뿐이다. 이 구절은 인간이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는지 없는지 혹은 하나님의 은혜가 불가항력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결코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어떤 사람은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정죄하시는지에 대해서도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프로그램은 이런저런 문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관계없이 바르게 굴러가기 때문에 죄인이 회개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계획을 막는 것이 아니다.
③ 시편 115편 3절: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하늘들에 계시며 무엇이든지 친히 기뻐하신 것을 다 행하셨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친히 기뻐하는 것을 다 하신다고 확실히 믿으며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항상 옳고 선하므로 그분의 이름을 찬양한다. 사실 하나님은 성경기록에서 자신의 기쁨이 무엇인지 드러내셨으며 성경기록은 ‘예수님을 믿는자는 누구든지 결코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분께서 친히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었다고 말한다.
④ 이사야서 14장 27절: 군대들의 주가 계획하였으니 누가 그것을 취소할 수 있으랴? 그가 자신의 손을 펼쳤으니 누가 그것을 돌이키랴? 하셨느니라.
이 구절의 맥락은 민족들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심이다.
이것은 온 땅을 향해 작정된 계획이며 이것은 모든 민족들을 향해 펼쳐진 손이니라(사14:26).
참으로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의도하시면 어떤 것도 그분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나 주권적 영벌(유기), 불가항력적 은혜 또는 칼빈주의 TULIP 신학의 다른 강령들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⑤ 사도행전 15장 18절: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하나님의 모든 일은 그분께 알려져 있느니라.
이 구절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일들을 아시고 항상 그것들을 아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TULIP의 5대 강령들 중 어느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시작부터 자신의 모든 일을 아신다는 것은 인간이 주권적으로 구원받거나 영벌(유기)을 받도록 선택받았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미리 정하신다는 것을 말하지도 않는다.
⑥ 잠언 16장 9절: 사람의 마음이 그의 길을 계획하지만 주께서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느니라.
이 구절은 사람의 마음이 그의 길을 계획한다고 말하므로 전혀 칼빈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사실 이 구절은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결정들을 지배하시고 모든 문제에서 최종 결정권을 가지신다는 사실은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의지를 사용해서 자신과 상관하시는 하나님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다는 교리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⑦ 잠언 19장 21절: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주의 뜻, 그것이 서리라.
이 구절 역시 인간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들을 도모한다고 말하므로 칼빈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획이 인간의 의지를 지배한다(혹은 누른다)는 사실은 칼빈주의를 방어해 주지 않는다. 칼빈주의자들이 (통상적으로 잘못되게) ‘아르미니우스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이것을 믿는다.
⑧ 잠언 21장 1절: 왕의 마음이 물 있는 강들같이 주의 손안에 있으므로 그분께서 친히 원하시는 곳으로 그것을 돌리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지배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의 운명을 주권적으로 미리 정하신다는 칼빈주의 교리나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없다는 칼빈주의 교리를 증명하지 않는다. 이 잠언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자유의 범위 안에서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자기의 의지를 행사하도록 허용하느냐, 아니냐를 궁극적으로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간단하고도 중요한 교리를 가르칠 뿐이다.
⑨ 잠언 21장 30절: 주를 대적하는 지혜나 명철이나 계략은 없느니라.
이 구절은 주님을 대적하는 궁극적 계략은 없다는 것과 그분이 항상 최종 발언권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다른 성경 구절들로부터 마귀와 죄인들이 주님을 대적하는 많은 계략들을 만들었지만 그런 계략들은 설 수가 없음을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은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주님을 위하거나 대적할 수 있는 어떤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사람은 그러한 의지를 분명히 발휘할 수 있으며 실제로 사람은 그러한 의지를 발휘하고 그리함으로써 자신의 밧줄에 스스로 목을 매고 만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항상 최종 발언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라고 확고하게 말씀하셨다(막16:16).
⑩ 시편 33편 11절: 주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분 마음의 생각들은 모든 세대에 이르리로다.
주님의 계획이 영원히 서고 우리가 그것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스스로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존재, 하나님을 믿거나 혹은 믿지 않을 정도까지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시기로 주권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⑪ 이사야서 14장 27절: 군대들의 주가 계획하였으니 누가 그것을 취소할 수 있으랴? 그가 자신의 손을 펼쳤으니 누가 그것을 돌이키랴?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것 중에 취소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주 공간에서 일어날 모든 것, 즉 인간과 마귀들의 결정이나 행동들까지도 다 미리 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계획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그 문제에 있어서 선택권을 주셨다는 것은 그분의 주권이나 권능을 무너뜨리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다.
⑫ 이사야서 46장 9-10절: 옛적의 이전 일들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요, 나 외에는 다른 자가 없나니 나는 하나님이니라. 나 같은 자가 없느니라. 내가 처음부터 끝을 밝히 알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한 일들을 옛적부터 밝히 알리며 이르기를, 나의 계획이 설 것이며 내가 나의 기뻐하는 모든 일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하나님의 계획이 서고 그분께서 자신이 기뻐하는 모든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은 핑크의 주장처럼 “하나님께서 영원히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어떤 행동이나 일들이 발생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허락하시고 궁극적으로 그 일이 여러 시대에 걸쳐 자신의 전체적 프로그램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하신다는 것은 그것이 그렇게 되도록 의도하신다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계획은 성경기록에 나타나 있으며 우리는 성경기록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의지를 주셨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들과 아담과 이브의 첫째 아들 가인의 예, 홍수 이전 세상의 예, 바벨탑의 예, 그리스도의 초림 이전과 그리스도의 공생애 동안의 이스라엘의 예, 그리고 오늘날 죄인들의 예와 역사 전체를 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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