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비평

칼빈주의 비평 - 칼빈주의자들의 증거 본문 검증②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13. 13:21

2. 전적 타락이라는 칼빈주의 교리를 지지하는 데 사용되는 구절들

전적 타락이라는 칼빈주의 교리에 따르면, 인간은 불의할 뿐 아니라 범법들과 죄들로 인해 죽었으며 인간은 그런 의미에서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을 수도 없고 구원과 관련된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다. 타락 이후로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제안에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속박 가운데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서 전적 타락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죄의 상태로 들어갔기 때문에 구원에 동반되는 어떤 영적인 선(미덕)에 이르는 모든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선(미덕)을 심히 싫어하며 죄들 가운데 죽어 있는 자연인(본성에 속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회심시키거나 자신이 그러한 회심에 이르도록 준비시킬 능력이 없다.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칼빈주의의 전적 타락 교리는 인간이 완전히 불의한 상태에 있으며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과 마음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행위로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교리는 또한 ‘의지의 속박’이라고 불리는 것을 포함한다. 싱가포르 극동 성경 대학의 학장인 제프리 구 박사(이분은 크리스천 믿음 특히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믿음을 충실하게 옹호하시는 분이며 신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귀하게 여기는 분이다)는 “선택에 대한 인간의 자유는 타락 이후 박탈되었다.… 성경은 인간의 무능력과 전적 타락을 가르친다.”라고 썼다(「아르미니우스 주의 검증」, p. 4).

‘인간의 무능력’에 대해 말하면서 구 박사는, 죄인은 자신의 행위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제안에 믿음으로 반응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것을 가르치는 성경기록을 단 한 구절이라도 내게 제시해 달라고 여러 칼빈주의자들에게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증거 본문을 찾기 위해 칼빈주의자들이 쓴 책들을 검토해 보았으나 이런 것을 가르치는 성경기록을 결코 하나도 찾지 못했다. 우리가 곧 보게 되겠지만 그들이 증거 본문으로 내놓는 성경기록들은 인간의 의지와 믿음을 발휘할 수 없는 무능력에 대한 그들의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본성에 속한 사람이 부패했고 불의하며 그런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선이 하나도 없고 또한 그런 사람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사람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는 데 완전히 동의한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이것을 넘어서서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 사실, 즉 죄인은 믿을 수도 없으며 그의 의지는 죄에 속박되어 있어서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도 없다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주장으로 성경을 비틀고 자기 생각을 더한다.

다음은 칼빈주의자들이 전적 타락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 구절들이다.

① 에베소서 2장 1-3절: 범법들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도다.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 행로를 따라 걸었고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활동하는 영을 따라 걸었느니라. 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들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이 구절은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죄인에게 결여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것과 관련된 그의 의지의 상태에 대해서 결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단순히 죄인이 범법들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고 이 세상의 행로와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를 따라 걸으며 불순종의 자녀로서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라고 말할 뿐이다.

이 구절은 성경기록의 실제 단어들, 즉 위의 성경 말씀들 안에서 발견되는 단어들을 넘어서는 전적 타락이라는 칼빈주의 교리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칼빈의 이 교리는 이런 구절이 이야기하지 않는 죄인의 의지에 대해 무언가를 더함으로써 그 죄인을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② 이사야서 64장 6-7절: 그러나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 불법들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갔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 숨기셨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우리를 소멸시키셨기 때문이니이다.

이 구절은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가 제시하는 의는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누더기 같다고 가르치지만 인간의 의지나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나 무능력에 대해서는 결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고 스스로 분발하여 하나님을 붙잡는 자도 없다는 것은 결코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할 수 없다거나 복음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이 홀로 남겨지는 경우 죄인은 하나님을 찾지도 부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죄인들은 아무런 도움도 없이 홀로 남겨지지 않는다. 세상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빛을 받았고(요1:9) 성령님에 의해 죄에 대하여 확증을 받으며(요16:8) 그리스도께로 이끌림을 받는다(요12:32). 하나님은 복음이 모든 죄인에게 선포될 것과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명령하셨다(막16:15-16). 빛을 주시고 죄를 깨우쳐 주시며 이끄시는 하나님의 일에 죄인이 반응하며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결코 이사야서 64장 6-7절에 나오지 않는다.

③ 로마서 3장 10-18절: 이것은 기록된 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었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돌무덤이고 그들은 자기 혀로 속임수를 썼으며 그들의 입술 밑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들의 입은 저주와 쓴 것으로 가득하며 그들의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므로 파멸과 고통이 그들의 길에 있어 그들이 화평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타락한 사람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는 의롭지 않다. 그는 하나님을 이해하지도 찾지도 않는다. 그는 길에서 벗어나 무익하게 되었다. 그는 선을 행하지 않으며 그의 입은 속임수와 저주와 쓴 것으로 가득하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구절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믿음을 행사하기 위한 인간의 의지나 능력 또는 무능력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죄인이 본성적으로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빛(요1:9)과 성령님의 죄의 확증(요16:8)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끄심(요12:32)의 맥락에서 그에게 복음이 주어졌을 때 그가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

④ 창세기 6장 5절: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그가 마음으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계속 악할 뿐임을 보시고는

다시 말하지만 이 구절은 인간의 의지나 그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지 없을지 혹은 그분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⑤ 예레미야서 17장 9절: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오?

이 구절은 죄인의 마음을 설명하는 것이지 그의 의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은 죄인의 마음이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다고 명백하게 가르친다. 오늘날 이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믿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결코 죄인이 복음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믿음을 행사하는 것과 관련하여 죄인의 의지의 상태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⑥ 고린도전서 2장 14절: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며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것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이 구절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영적인 것들을 분별할 능력이 없다고 가르치지만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의지의 상태나 그가 복음을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죄인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조명, 성령님의 죄의 확증, 그리스도의 이끄심이 없이는 어떤 죄인도 복음에 반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조명, 죄의 확증, 이끄심을 모든 죄인에게 차별 없이 주신다(요1:9; 16:8; 22:32).

그것[그 빛 즉 예수님]은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었느니라(요1:9).

⑦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 그러나 주께 사랑받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로 인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려야만 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과 진리를 믿는 것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이라.

핑크는 새로운 출생이 믿음보다 앞서 일어난다는 칼빈주의 교리를 세우기 위한 증거로 이 구절을 사용한다. 그러나 다음의 구절들로 비추어 볼 때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은 이런 일들의 정확한 순서를 언급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남에 대한 중요 구절들은 요한복음 3장에 있다. 1-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그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다고 가르치신다. 9절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분께 묻는다. 10-1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답하시며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지를 설명하시는데 그 답은 그가 믿음으로써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요3:14-16).

그런데 이것은 곧 칼빈주의자들이 죄인은 결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바로 그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어떻게 죽은 사람이 믿을 수가 있느냐고 말한다. 우리가 ‘죽은 사람’이라는 유비(類比)를 문자 그대로 취한다면 죽은 사람은 죄를 지을 수도 없다. 죽은 사람은 문자 그대로 말하자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복음을 거절할 수도 없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죽은 죄인이 복음은 거절할 수 있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죄인이 범법들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다고 성경이 말할 때 이것은 그가 죄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생명에서 분리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유비를 성경의 실제 가르침 이상의 의미로 취하는 것이나 여기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 즉 예를 들어 죄인은 범법들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기 때문에 결코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추론하는 것은 진리를 이단으로 옮기는 것이다.

에베소서 1장 13절은 또한 구원의 순서를 알려준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리스도를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는데” 먼저 죄인은 믿고 그다음에 성령님을 받고 그분에 의해 영원토록 봉인된다.

구원의 순서는 또한 사도행전 16장 30-31절에 나오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의 이야기 에서 분명하게 나온다. “[간수가] 그들을 데리고 나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므로 그들이 이르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며” 자기가 무엇을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 간수는 다시 태어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이때 바울은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답하였다. 분명히 바울은 구원받지 않는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래서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았다.

구원의 순서는 또한 에베소서 2장 8-9절에 분명히 나와 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구원받는 수단임을 발견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가 그분께 내미는 손’이다. 구원 과정에서 가장 먼저 믿음이 오고 그 결과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앞의 구절들 및 성경의 매우 명백한 다른 구절들로 미루어 보아 분명하다.

이와 함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성령님의 거룩히 구별하심과 진리를 믿는 믿음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중요하다. 비록 우리가 믿음을 통해 구원받지만 그 믿음은 빛을 주시고 이끄시며 죄를 깨우쳐 주셔서 마침내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거룩히 구별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 안에서 발휘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임의로 ‘진리에 대한 믿음’과 ‘성령님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시간적 순서대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