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비평

칼빈주의 비평 - 개혁주의 신학의 위험들③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15. 15:24

< 중생(다시 태어남)이 믿음보다 앞선다고 가르치는 위험 >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사람의 전적 타락 교리를 사람의 무능으로 왜곡해서 전적으로 잘못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16:30-31, 행2:37-38 비교)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이 그 당시 바울의 입장에 있었다면 다음과 같이 답을 주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요! 당신은 영적으로 죽었고 따라서 다시 태어나기(중생하기) 전에는 결코 하나님께 반응할 수 없습니다!”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중생(구원)이 믿음보다 먼저 있어야 하고 사람은 믿기 전에 먼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사람이 믿을 수 있기 전에 먼저 영원한 생명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죄들 안에서 죽은 사람은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중생이 없는 믿음은 불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그들이 채택한 신학 체계에 근거해서 그들에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성경기록들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성경은 “믿으면 네가 살 것이다!”라고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진실로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요6:47).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니라(요3:15).

그런데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살면 네가 믿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음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A가 맞고 B는 맞지 않습니다.

A. 그분을 받아들 인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B. 중생한 자들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들에게는 다 그분의 이름을 믿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또한 “믿음으로써 너희가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요한복음 20장 31절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이것들을 내가 기록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너희가 믿게 하려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니라.

이 구절은 결코 “다시 태어나서 생명이 있기 때문에 너희가 믿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무력하고 소망 없는 조건 속에 있는 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요3:14-16)! [우리가 부르는 찬송 중에는 “보고 살라”(Look and Live)가 있습니다. 그런데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이 단어들을 “살고 보라”(Live and Look)로 바꿔야 할 것입니다.]

잠시 동안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이 맞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일 중생(구원)이 믿음보다 앞선다면 죄인이 중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극단적 칼빈주의자들 중 아무도 결코 만족스럽게 이것에 대해 답하지 못했습니다. 쉐드의 답변은 전형적입니다.

죄인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도록 지시 받았다.

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다. ② 마음을 그 진리에 심각하게 적용한다. ③ **확신과 중생을 위해 성령님의 선물을 달라고 기도한다.

** W. G. T. Shedd, 「Dogmatic Theology」, Vol. 2, pp. 472, 512, 513.

이 답에 대한 앨드리치의 반응은 매우 적절합니다.

믿음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전적 타락 교리는 또한 ‘말씀을 듣는 것’, ‘하나님의 진리를 진지하게 적용하는 것’, 그리고 ‘확신이나 중생을 위해 성령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의 가능성도 반드시 배제해야 합니다. 그들은 죽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사실상 극단적 칼빈주의자는 살아 있는 영적 시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교리의 가장 큰 비극은 그것이 복음을 왜곡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인들에게 구원의 조건은 믿음이 아니고 기도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16장 31절과 정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죄인은 확신과 중생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스프로울(R. C. Sproul)을 포함한 몇몇 개혁주의 목사/신학자들은 심지어 사람이 유아처럼 다시 태어나고도(구원받고도) 그 뒤 수년이 지날 때까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치는 위험 >

이 가르침은 에베소서 2장 8-9절을 잘못 해석한 데서 나온 오류입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많은 개혁주의 신봉자들은 여기의 대명사 ‘그것’을 ‘믿음’이라고 잘못 해석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실제로 가르친 것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IFCA 교리문은 이 점에 대해 정확하고 분명합니다.

우리는 구원이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는 것을 통해 그 구원을 받음을 믿는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향해 뻗어나가 그것을 받는 ‘마음의 손’입니다. 우리는 선물과 선물을 받는 데 필요한 손을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구원(영생, 의로움)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은 신약 성경이 전체적으로 반복해서 가르쳐 줍니다(요4:10; 롬5:15-17; 6:23 등). 비록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은혜롭게 능력을 주시며 계몽해 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을 구원하는 믿음이 실행될 수 없음을 분명히 인정할지라도, 신약 성경에서 ‘선물’이란 단어는 단 한 번도 사람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리킨 적이 없습니다(요6:44-65; 마11:27; 16:16-17; 행16:14 등).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가르침은 매우 실제적 영향력을 갖게 되어 사람이 복음을 이해하는 방법과 복음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만일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내가 이 선물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내가 믿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가 이 선물을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첫째 방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권적으로 그 믿음을 주실 것을 바라는 것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 중의 하나이기를 바라는 것

둘째 방안: 하나님께 부르짖어 그분께서 내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선물을 주실 것을 기도하는 것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는 둘째 방안을 택했습니다. 그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치며 죄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입니다.… 그것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은 순종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당신에게 주었고 그분은 그것을 유지하십니다.… 구원에 이르는 진실한 믿음, 즉 겸손함과 죄에 대해 상한 마음을 가짐으로 시작되고 의에 이르는 순종으로 마감되는 그 영원한 선물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허락해 주시기 원합니다. 그것은 진실한 믿음이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것을 얻기 소망한다면 그분께서 그것을 당신에게 주시도록 기도하고 구하십시오.

맥아더 목사가 하고 있는 일에 주목하십시오. 그는 죄인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하지 않고(행16:31) 오히려 믿음의 선물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기도를 구원의 조건으로 만듦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명령을 받았지 믿음이라는 선물을 받기 위해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