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비평

칼빈주의 비평 - 개혁주의 신학의 위험들④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15. 15:31

< 구원하는 믿음에 부가적 요소를 더하는 위험 >

최근에 개혁주의 신봉자들은 ‘로드십 구원’이라 불리는 믿음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로드십 구원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순한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 확실하게 순종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주재권(주인 되심)에 굴복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명령들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구원의 필수 조건입니다. 즉 죄인은 영생을 얻기 위해 제자로서의 요구 사항들을 충족시키거나 적어도 그것들을 충족시키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 자기를 위해 죽으신, 사랑 많으신 구원자 그리스도의 긍휼 위에 자기 자신을 던지기 때문에 구원받는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약속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항복이나 굴복이 아니고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구원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 혹은 하겠다고 약속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결과를 구원의 요건으로 만드는 위험한 실수를 피해야 합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에 항복합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순종하면서 그분을 따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나는 제자의 신분과 요구 사항에 동의합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권위에 복종합니다.

행동과 열매는 사람을 구원하는 믿음의 증거들이지만 그것들이 사람을 구원하는 믿음의 본질은 아닙니다. 열매를 뿌리와 혼동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거저 의롭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의 완전한 요구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고후5:21).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제자로서의 요구 조건에 충분히 다다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눅14:25-33 등). 제자로서의 요구 조건은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요구 조건은 우리의 구원자를 단순히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많은 약속을 해도 그것들은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은혜로 나를 구원하십니다. 내가 그분께서 주님이시라는 사실에 굴복하는 것은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자신의 은혜로 구원하십니다. 내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은혜로 나를 구원하십니다. 내가 구원자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은혜로 나를 구원하십니다. 제자의 신분이 요구하는 모든 사항을 충족하는 능력이 내게 있다고 해도 혹은 부족하다고 해도 그것은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은혜로 나를 구원하십니다. 나의 행동은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은혜로 나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안에서만 발견됩니다. 그분만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우심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에 의해 얻거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은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거저 받는 선물입니다. 구원의 이 영원한 생명은 모든 믿는 자들이 현재 소유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모든 동사가 현재시제로 되어있음]

당신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그분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까? 당신의 소망은 당신이 한 일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피와 의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까? 저는 예수님의 이름만을 온전히 의지하고 다른 어떤 달콤한 것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약속과 같이 언제든지 밑으로 가라앉는 모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굳건한 반석 위에 우리가 다 온전히 서기를 원합니다.

< 성도는 더 이상 옛 본성을 소유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위험 >

모든 개혁주의 신봉자들이 성도들 안에 있는 옛 본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마틴 로이드 존스(M. Lloyd-Jones), 데이빗 니드햄(David Needham)을 포함한 많은 개혁주의자들은 옛 본성을 부정합니다.

** 맥아더는 예언에 관한 부분에서는 세대주의의 입장을 취하지만 대부분의 교리 측면에서는 개혁주의 신자이다. 그는 로드십 구원에 대해 기록한 자신의 두 책에서 자신이 세대주의자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세대주의를 공격한다. 개혁주의 신학자인 거쓰너(J. Gerstner)는 그가 세대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세대주의자로 불릴 수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1986년 9월 27일 제네바 대학에서 선포한 메시지 테이프로부터). 미들타운성경교회 웹사이트에서 <The Teaching of John MacArthur with respect to Dispensationalism>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니드햄은 자신의 책 「타고난 권리 - 크리스천이여, 당신이 누구인지 아십니까?」(Birthright - Christian, Do You Know Who You Are?)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에게 ‘옛 본성’은 없고 오직 새 본성만 있다는 것을 세상에 퍼뜨렸습니다.

맥아더는 다음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오직 새 본성만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변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은 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 개선되거나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한 변화이다. 새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다음의 말씀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즉 새로 다시 태어나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이것은 단순히 그가 새로운 어떤 것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새 본성은 옛 본성에 추가되지 않고 그것을 대체한다. 변화된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나’이다.
그러므로 성경적 용어는 크리스천이 두 개의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본성 하나만 가지고 있다.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살고 있다. 이 둘은 서로 같이 존재하지 않는다. 크리스천이 죄를 짓는 이유는 남아 있는 옛 본성 때문이 아니라 남아 있는 죄 많은 육신의 옷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두 본성을 가진 ‘영적 정신 분열증 환자’가 아니라 하나의 새 사람, 완전히 새 창조물이다.… 종합적인 사람으로서 성도는 변화되었지만 아직 온전히 완벽하지는 않다. 그에게는 내주하는 죄가 있지만 그는 더 이상 죄의 통치 아래 있지는 않다. 그는 더 이상 부패된 옛 사람이 아니고 이제는 온전한 구원을 기다리며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로운 사람이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구원받을 때에 새로운 자아를 받지만 또한 옛 자아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경우 구원은 변화가 아니고 부가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성경적 가르침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이 구원받을 때 옛 자아는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는 고후5:17과 롬6:6을 인용한다] 구원은 변화이다. 옛 자아는 없어졌고 새 자아로 대체되었다.

맥아더의 주장과 같은 견해에는 아주 실제적인 중요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일 구원받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본성만을 소유한다면 우리는 그가 현저하게 죄에서 자유로운 존재임을 기대해야 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성도가 실로 예외적으로 뛰어난 삶의 질을 보여 줄 것을 기대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맥아더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절대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지 요한일서 2장 28절을 보기 바랍니다.

②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므로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죄도 이 교제를 깰 수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런지 요한복음 13장 8절을 보기 바랍니다.

③ 그리스도인들은 빛 가운데 있으므로 어두움 가운데 걸을 수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런지 에베소서 5장 8절을 보기 바랍니다.

④ 그리스도인들은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서 죄들을 고백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런지 요한일서 1장 9절과 시편 51편을 보기 바랍니다.

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죄의 속박 아래서 살 수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런지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