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1-11)

창세기 7장 17절 - 24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29. 11:32

17 땅에 홍수가 사십 일 동안 있는지라, 물이 불어나서 방주를 띄우니 방주가 땅 위로 들리더라.

18 물이 널리 퍼져 땅 위에 크게 불어나니 방주가 수면을 떠다니더라.

이 묘사는 결코 국지적인 홍수가 아님을 말한다. 이 홍수가 중동지역만의 것이라면 노아의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무를 수가 없다.

비는 쏟아졌고 산꼭대기는 물에 잠겨 사라져 버렸다. 만약 거인들과 함께 하던 거대한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면 그들 역시 물에 잠겨 버렸다. 만약 온갖 공룡들이 살고 있었다면 이들은 무게 때문에 가라앉아 죽었을 것이다. 비는 쏟아지고 화산은 폭발음을 내고 천둥번개는 굉음을 내는 천재지변이 닥쳤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은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벧전3:20-21)

땅은 뒤집혔고 깊은 틈이 갈라지고 지구궤도 위에서 흔들렸다.(사13:13 사24:18,20 시82:5) 이런 일들은 곧 다시 보게 될 것이다.(계6장) 비가 내린지 한 시간 만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물에 잠겼다. 기원전 2347년 둘째 달 제17일에 지구에서 최초로 천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새벽 6시 하늘을 검게 물들었고 천둥이 치기 시작한다. 상쾌한 아침을 기대하고 잠에서 깬 사람들은 즉시 등줄기가 오싹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무슨 일인가?’

사13:13 그러므로 내가 주의 맹렬한 분노의 날에 만군의 주의 진노로 하늘들을 흔들고 땅을 그 자리에서 옮겨 버리리라.

사24:18 두려움의 소리로부터 도망친 자는 함정에 빠질 것이며, 또 함정 가운데에서 올라온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높이 있는 창문들이 열리고 땅의 기초들이 흔들림이라.

사24:20 땅이 술취한 사람같이 비틀거리며 오두막같이 흔들거리고 죄악이 그 위에 무겁게 되리니, 그것이 떨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시82:5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암흑 속에서 행하나니, 땅의 모든 기초가 흔들리는도다.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방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방주는 거대한 관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그것은 아담의 유물(사망)에 대한 증거였다.(롬6:23) ‘노아! 무슨 일이요! 거기 있고?’ 저 높이 약 30m에 창문에 보인다. 3층에 정착한 노아의 가족들은 비로소 그들이 품었던 의심을 버리게 된다. 그들 아래에는 수천 마리의 동물들 즉 사자와 어린 양, 곰, 개, 고양이가 함께 조용히 그들의 창조주에게 순종하여 안식하고 있다. 인간만이 창조주께 복종하지 않는 유일한 동물이다. 아마 노아와 그의 가족은 감당할 시험 외에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롬6:23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

아침 7시쯤 이미 5만 여 명의 사람들이 방주 주의에 가득 메웠다. 방주를 두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노아! 노아! 제발 우리도 들어가게 해줘! 문좀 열어달라구!’ 그러나 문은 닫혀 있고(마25:10) 닫혀 있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노아의 세대는 잠1:22-30을 배웠을 것이다.

마25: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으니, 준비하였던 처녀들만 그와 함께 혼인식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더라.

잠1:22 너희 우매한 자들아, 언제까지 너희가 우매함을 사랑하겠으며, 조롱하는 자들이 조롱하기를 즐기며, 어리석은 자들이 지식을 미워하겠느냐?

잠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내 영을 네게 부어 너에게 나의 말들을 알게 하리라.

잠1: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거역하였고, 내가 손을 내밀었으나 아무도 개의치 아니하였으며

잠1:25 오히려 나의 모든 조언을 무시하였고 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므로

잠1:26 나도 너희가 재앙을 당할 때 비웃을 것이요,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 조롱하리니

잠1:27 이는 너희의 두려움이 멸망같이 이르고 너희의 재앙이 회오리바람처럼 닥칠 때요, 고난과 고통이 너희에게 임할 때라.

잠1:28 그때에 그들이 나를 부를 것이나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그들이 일찍 나를 찾을 것이나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잠1:29 이는 그들이 지식을 싫어하며 주를 두려워하기를 원치 아니하였음이라.

잠1:30 그들은 나의 조언을 결코 원치 아니하며 나의 모든 책망을 경멸하였도다.

인간의 행위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비하고 오직 자비하실 뿐이라는 착각은 광신적 교리에 불과하다. 히로시마에서는 그 어떤 남자, 여자, 어린아이 혹은 갓난아이에게조차도 아무런 자비가 없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도(창19:24) 자비는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항상 용서한다는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도 분명히 어긋날 뿐아니라(막3:29) 상식에도 어긋나고 역사에도 어긋난다.

막3:29 성령을 거슬러 모독하는 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정죄의 위험에 처하리라.

아우스비츠, 트레블랑카, 부첸발트에서 죽어 간 6백만의 유대인들은 아무런 자비도 받지 못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사실들에 관해 나쁜 일들은 인간의 무지에 전가하고 좋은 일은 하나님께 돌림으로서 죄의 심판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일부러 잊으려 한다. 현대의 자유주의 설교가들이 노아의 홍수 당시에 있었다면 물속으로 가라앉으면서도 기상을 통제하지 못한 과학자들과 교육부재를 탓할지 모르겠다. 그들의 두뇌에는 하나님께서 심판한다는 생각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당대의 두뇌들과 지식인들의 견해와는 반대로 불가능한 일로 판정되었던 그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런 불가능한 것같은 일이 베드로후서 3장에 나와 있는 대로 다시 일어날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라. 실로 끔찍하고 비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엄마들은 아이를 움켜 앉고 물이 차오르는 계단을 뛰어올라 위로 위로 올라갔을 것이며 지붕 위에서는 비명소리, 기도소리, 저주소리, 이빨가는 소리 등이 들려왔을 것이다. 이때는 아무런 자비가 보이질 않았다. 다윈이 기뻐하겠지만 사람들은 원숭이처럼 나무 위로 기어올라 갔을 것이다. 결코 자비는 없었다. 성경을 거부하는 자들이여, 이 사실을 잊지 말라. B. C. 2347년 당시의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과 현재 T.V.를 시청하는 인간들과 무엇이 다른가?

“비는 쏟아 졌다.”

19 물이 땅 위에 심히 널리 퍼지니 온 하늘 아래 모든 높은 산들이 잠기더라.

20 물이 15높이로 오른지라, 산들이 잠겼고

나는 창7:4-6을 주석하면서 본문 에 관해 언급할 때 현재의 산맥들이 – Himalayas, Sierra Madres, Appalachians, the Andes, Pyreness, Alps, Sierra Nevadas, Rockies, Caucasus 등 – 창세기 6-7장 시점에서 완전히 형성된 것으로 간주했다. 만약 나의 생각이 잘못이라면 그 당시의 산들은 언덕 정도일지도 모르겠다.(30m-300m) 그렇게 되면 지면을 덮은 물의 양은 엄청난 규모로 축소되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앞서 언급한 대로 구름이 담고 있는 비의 양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쨌든지 물고기 화석들과 석유가 높은 산맥들에서 발견되고 있다. 데이비스 대령은 런던 빅토리아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Journal of Transactions)의 1930년 제10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해저가 융기할 수 있고 대륙이 가라앉을 수 있다면 전세계적인 홍수가 있었을지라도 그에 필요한 물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이 평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은 신비스럽다.

만약 오늘날의 산맥들이 그 당시에 형성되었다면, 물의 높이는 에베레스트 산높이인 8848m보다 6-10m 정도 더 높았을 것이다. 다윈과 리엘의 균일설(Uniformitarianism)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지질학자들은 이런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황금률에 따라 우리고 그들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실제 어떤 일이 일이 있었느냐? 이것이 과학자로서 합당한 태도이다. 물은 증발하지 않고도 해수가 약12000m까지 올라갈 수 있다.

21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육체가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짐승과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기는 것들과 모든 사람이라.

22 마른 땅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코로 생명의 호흡을 하던 모든 것은 죽었더라.

23 지면에 있는 모든 생물이 멸망하였으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이라. 이들은 땅에서 멸절되었으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이 살아남았더라.

24 물이 150일 동안 땅 위에서 차고 넘치더라.

우리는 21-24절에 대해서는 이미 주석을 한 바 있다. 문맥을 정확히 고려해서 찾아낸 이 구절들의 정확한 의미는 홍수는 방주에 들어갔던 8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간을 소멸시켜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눅17:27에서, 베드로도 벧후2:5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다.

눅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으나,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진멸시켰느니라.

벧후2:5 또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셨으나 여덟 번째 사람인 의의 전도자 노아는 구원하시고 경건치 않은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느니라.

이 분명한 기록을 믿지 않는 것은 고집일 뿐 그 어떤 과학적 탐구나 새로운 증거나 지질학적 발견이나 사실을 확인코자 하는 열정이나 사실에 대한 중립적 태도나 현대인들의 명석한 투시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것은 오히려 죄인들이 인격적인 창조주께서는 죄에 대해 심판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항상 두려워해 왔던, 죄인들의 불신일 뿐이다. 이 사실은 죄를 심판하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인간의 재앙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정신적 강박관념이라고 판명된 바 있다.

어떤 사람의 현명한 얘기를 들어보라. ‘인간이 영원히 불타는 실제의 지옥을 현대인들이 거부하는 것은 그 어떤 헬라어 성경이나 이 성경이 기록된 이래 발견된 과학적 사실들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거부는 어떤 사람도 헬라어 신약에 묘사되어 있는 지옥이라는 말로 자기의 집을 묘사하는 사람을 존경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주관적 편견은 그 어떤 새로 계시된 진리나 새로운 빛 혹은 더 나은 번역 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글자 그대로 편견일 뿐이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의를 내세우는 인문주의자는 그때나 오늘날이나 다를 바 없다.

창7:4-6에 근거하여 계산해 보면 이 주일 정도의 홍수로는 해발 3500m 정도 아래에 살고 있던 모든 생물은 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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