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해/창세기(1-11)

창세기 8장 20절 - 22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4. 29. 11:46

20 노아가 주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가운데서 취하여 제단에 번제를 드리더라.

제단은 거친 돌로 하나님 이 외의 그 누구도 손대거나 연장을 대어서는 안되었다.(출20:25) 바로 여기에 성경에서 처음으로 제단(Altar)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출20:25 네가 만일 내게 돌로 제단을 세우려거든 다듬은 돌로 세우지 말라. 이는 네가 도구를 그 위에 대면 그것을 부정하게 하는 것임이니라.

21 주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 주께서 그 마음 속으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니

여기에 다신 신인동형적 표현이 등장한다. 이 표현에 대해 실족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수학적으로 너무 엄격하고 형이상학적으로 너무도 멀리 계셔서 하나님께서 사랑, 성, 직업, 종교, 수입, 죄, 타락, 가족, 책, 음악, 미술 혹은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기를 바라는 과학자들 뿐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냄새(향기)는 고후2:15-16에서 노아의 제사와 비유되어 있다.

고후2:15-16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나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이기 때문이라. 정녕 이 사람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사망의 향기이나 저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향기라. 누가 이런 일들을 원만히 감당하겠느냐?

창조주께 향기로운 것은 피조물에게는 악취가 나는 것임을 주목하라.(눅16:15 잠29:27)

눅16:15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마음을 아시느니라. 이는 사람들 가운데서 크게 높임을 받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스러움이니라."고 하시더라.

잠29:27 불의한 사람은 의인에게 가증함이고,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가증함이니라.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향기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안전일변도 기독교가 등장해서 판을 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참으로 헌신한 그리스도인은 너무도 신사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사랑스러운 증거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는 노만 빈센트 필 타입의 기독교로 현대인들을 미혹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성령님을 속일 수는 없다.

당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건전하고 훌륭한 악취를 내고있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런 증거도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바울 예레미야 노아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들의 사역이 펼쳐지는 그 동네에 악취를 풍겼고 이들의 참된 증거는 이 악취가 높이 올라간 사실들로 입증된다.

1969년 이안 페이슬러의 증거는 썩은 달걀과 토마토로 된 것으로 그 어떤 공기 청정기로도 없앨 수 없는 아름다운 향기로 새예루살렘의 처소들을 가득 채웠다. 반면 Eugene Carson Blake 박사님의 증거는 온갖 휘향찬란한 것으로 장식되었지만 영광스러운 순교자의 반열에 나무도 나쁜 냄새를 풍겨서 천사들이 방독면을 써야만 할 정도였다.(히11:33-39)

히11:33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왕국들을 정복하기도 하고 의를 이루기도 하며, 약속들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히11:34 불의 세력을 소멸시키기도 하고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함 중에 강하게 되기도 하고 전쟁에서 용맹스럽게 되기도 하며, 외적들을 패주시키기도 하며

히11:35 여자들은 그들의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이 면하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들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함이라.

히11:36 또 어떤 사람들은 잔혹한 조롱과 채찍질의 시련도 받았고, 더욱이 결박당하고 감옥에도 갇혔으며

히11:37 돌로 맞고, 톱으로 켜지고, 시험을 당하고, 칼로 살해되었으며, 양의 가죽과 염소의 가죽을 쓴 채 유리하며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당했느니라.

히11:38 세상은 그들이 살 만한 데가 못되었으므로 그들은 광야와 산속과 동굴과 토굴에서 유리하였느니라.

히11:39 이 사람들이 모두 믿음을 통하여 좋은 평판을 얻었으나 그 약속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주께서 그 마음 속으로 말씀하시기를”

모세가 이렇게 기록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록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내가 다시는 ... 저주하지 않으리니 ... 죽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창7,8장의 사건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며, 창3;17도 되풀이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창3:17의 저주는 창1-12장까지의 모든 언약과 마찬가지로 천년왕국 때까지는 그대로 유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저주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창3:17 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까닭에 내가 네게 명하여 말하기를 너는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너로 인하여 땅은 저주를 받고 너는 너의 전생애 동안 고통중에서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이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다시는 내가 행한 것과 같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이지 아니하리라.

이 증오문학은 마23장, 요8장, 요엘2장 등과 나란히 놓을 수 있는 내용이다. 프로이드는 위 구절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끝부분의 악함이라를 ‘잘못되어 있다’ 혹은 ‘뒤섞여 있다’ 혹은 ‘성적으로 확정되어 있다’로만 고쳤을 뿐이다.

악함이란 말은 지나친 결백증에 사로잡힌 심리학자들과 과학자들에게는 너무도 강한 말인가 보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책이 면제되기를 희망하며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여 위안을 줌으로써 자기 자신들의 죄값을 치르려고 한다.

이들 심리전문가들은 종교적 전통이라고 하는 폭군으로부터 생각을 해방시켜 주는 사명을 받은 자로서 시간당 50달러씩 받고 자기 고객들은 해방시켜 줌으로써 자기 자신의 죄책과 두려움을 보상하며 인생을 보낸다.

악이란 말은 죄란 말과 더불어 성경을 거부하는 죄인들이 어떻게든 강단에서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낱말이다. 필요하다면 강제적으로라도 설교시 이런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그러한 자들에게 꼭 필요한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런 표현을 과감히 사용한 6사람은 모두 이들의 공격대상이다

① 주 예수 그리스도 : 너희가 악하다 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마7:11)

② 사도 바울 : 의인은 없나니... 선을 행하는 자는 없으니...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롬3:10,12,23)

③ 침례 요한 : 오 독사들의 세대야, 누가 너희에게 다가오는 진노에서 피하라고 경고하더냐?(눅3:7)

④ 시몬 베드로 :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다가... 음욕이 가득찬 눈... 죄로부터 단절될 수 없고... 저주받은 자들이니라(벧후2장)

⑤ 이사야 :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에게 화로다(사5:20)

⑥ 예레미야 : 내 백성은 ... 악을 행하는 데는 현명하나 선을 행하는 데는 지식이 없도다.(렘4:22)

악(evil)이란 단어는 <킹제임스성경 1611>에 300번 걸쳐 나오며 성경을 읽는 독자라면 성경을 펴들고 처음 두 장째 10구절도 못가서 선악 악의 지식의 나무라는 표현에서 악이란 단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창2:9) 창6:5에 보면 선악과 악에 대한 지식이 절정에 달했고 다윗은 악이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 타고나는 본성의 특징임을 인정하였다.

창2:9 주 하나님께서 보기에 즐겁고 양식으로 좋은 모든 나무를 그 땅에서 자라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도 있더라.

창6:5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구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아비들은 자식들이 마땅히 가야할 길로 훈육해야 한다.(잠22:6) 왜냐하면 아이들은 마땅히 가지 말아야 할 길로 가도록 훈육시킬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은 본성적으로 어리석은 짓과 죄에 대해 기울어 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 이미 잘못되어 있다.(잠22:15,13)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부모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이 현실을 1900년경 미국에서는 무시하기 시작했다.

잠22:6 아이를 그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훈육하라. 그리하면 그가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22:15 아이의 마음속에는 어리석음이 매여 있으나, 징계하는 막대기가 그에게서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23:13 아이로부터 징계를 거두지 말라. 네가 그를 매질할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John Deway(1859-1952)와 Bertrand Rusell(1872-1970)이 이런 새로운 사고방식에 제일 커다란 책임이 있으므로 그들은 그들의 가르침이 거둔 열매에 대해 심판석에서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죄성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들의 적합한 교육에 잘못된 접근 방법이라고 한다. 현대의 교육제도는 듀이의 실용주의 철학과 럿셀의 행동주의 심리학에 근거하는 것으로 타락한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도 근ㄴ본적이고도 기본적인 진리를 거부한 결과이다. 이 진리는 여기 창8:21 말씀대로 “사람의 마음의 상상이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잘못되어 있다. 현대 미국의 교육의 딜레마는 이 기본적인 진리를 무시하는 데 기인한다. 어린 아이에 대한 징계와 점검과 통제와 제어가 사라지고 나면 교육은 자기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그곳에 가야하는지도 모르는 제멋대로 날뛰는 대학생들을 양산하고 만다. 그들의 관심은 시위와 스포츠행사일 뿐이다. 이 지구상 그 어느 곳에든 대학생의 대부분은 그들이 죽은 후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 이들과 저 남태평양의 토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현대 교육은 교육받은 유인원을 양산해 낼 뿐이다.

성경에 따르면 과학도, 종교도, 교육도 고칠 수 없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인간에게 있다.(창4:1-8) 그런데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바로 이점에 대해 못마땅해 한다. 이들은 교육 종교 과학 등을 체계화시켜 이 기본적인 진리를 가리거나 없애려고 한다. 오늘날에는 어떤 사람이 자기의 악한 심성을 인정하려면 그는 그것을 지식의 부족탓으로 돌리며 그것을 심판할 분은 없다고 생각해 버린다. 반면 악한 심성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와 시대적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의 내적 삶은 그런대로 괜찮다고 신뢰해 버린다. 바로 이것이 현대사회가 말하는 선함이다.

창4:5-8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더라. 그러므로 카인이 몹시 격노하고 안색이 변하더라. 주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찌하여 격노하느냐? 어찌하여 네 안색이 변하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시니라.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과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이니라.

선함이란 현대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는 옳고 그른 행동이나, 도덕이나, 부도덕, 좋고 나쁜 윤리, 혹은 적절한 행동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오늘날 교육받은 유인원들에게는 선행이란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 자신을 적응시키도록 행동함으로써 사회구성원 전체의 최대 유익을 보존토록 하는 행위이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이 멍청한 낙관주의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서로 다른 모든 사회들을 하나로 통합시켜 함께 살도록 함으로써 전체가 보존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고방식은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전체를 위해 개인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역사 6000년이 입증하고 있듯이 그 어떤 형태의 정부나 사회적 통합도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문제의 핵심은 각 개인의 내적 사고에 관련하여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의 상상(창6:5) *눈(롬3:18) *입(롬3:14) *혀(롬3:13) *마음(렘16:12) *생각(사55:7-8 잠24:9) *귀(행28:27 딤후4:3) *손(행2:23 사59:3) *발(롬3:15) *길(사55:7-8 롬3:16)

창6:5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구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롬3:18 그들의 눈 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도다."라고 하였느니라.

롬3:14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 차고,

롬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들이 자기 혀로는 속였으며, 그들의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고,

렘16:12 너희는 너희의 조상들보다 더 악하게 행하였으니, 보라, 이는 너희가 각기 자기 악한 마음의 생각을 따라 행하여 나에게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라.

사55:7-8 악인은 자기의 길을, 불의한 사람은 자기 생각들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주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넘치게 용서하실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

잠24:9 어리석은 생각은 죄요, 조롱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가증함이니라.

행28:27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 귀는 듣는 데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하고 개심하지도 못하게 되어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느니라.

딤후4:3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정욕에 따라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 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

행2:23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을 따라 내어주신 그를 너희가 붙잡아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사59:3 이는 너희 손들이 피로, 너희 손가락들이 죄악으로 더럽혀졌으며, 너희 입술이 거짓을 말하였고, 너희 혀가 사악함을 속삭임이라.

롬3:15 그들의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롬3:16 파멸과 비참함이 그들의 길에 있고,

찰스 다윈은 이들 구절들이 전파되는 것을 들었을 것이고 <킹제임스성경>에서 이 구절들을 찾아낼 수도 있었다. 그가 세운 진화론 체계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 진실을 피하려는 심리적 방어체계에 불과하다. 이미 여러번 언급했듯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잘못되어 있다. 이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고칠 수가 없다. 오직 거듭나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요3:7)

요3:7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22 땅이 있는 동안에는 씨 뿌리는 시기와 추수하는 시기와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하리라." 하시더라.

여기서 우리는 태양과 달이 존재하는 목적인 계절에 관한 첫 번째 언급을 보게 된다.(창1:14) 따라서 이때까지는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이 없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창1:14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낮과 밤을 나누기 위하여 하늘의 창공에 광명들이 있으라. 그것들로 하여금 징조와 계절과 날짜와 연도를 위해 있게 하라.

노아는 해발 4000m 지점에서 방주에서 나와 방주를 떠나기 전 83일 동안 추위를 맛보았을 것이다. 그는 눈길을 걸어 산 아래쪽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씨뿌리는 시기와 추수하는 시기는 봄과 가을을 가리킬 것이고 이로써 여름 가을 겨울 봄의 4계절이 완전히 갖추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6계절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씨뿌리는 시기(10월과 11월)

*겨울(12월과 1월)

*추위(2월과 3월)

*추수하는 시기(4월과 5월)

*여름(6월과 7월)

*더위(8월과 9월)

10월과 11월은, 첫서리가 내리는 시기로 갈릴리 지역에서 나오는 늦은 포도와 올리브를 거두어 들이면서 동시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시기이다. 나뭇잎은 떨어지기 시작하고 11월에는 우박과 더불어 눈발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때는 아직 옥수수가 심겨져 있다.

12월과 1월에는 풀과 잔디가 자라나고 아몬드 나무의 꽃이 피며, 때로 보리를 심기도 한다.

2월과 3월에는 오렌지와 레몬이 익으며, 기후는 다시 한번 쌀쌀해진다. 이때 겨울 무화과와 더불어 늦은 비가 내린다.

4월과 5월에는 밀 이삭이 패기 시작하고 보리는 수확기를 맞는다. 강물은 불어나고 비 없는 구름이 지나가며 대부분의 지역이 심한 가뭄을 겪게 된다.

6월과 7월에는 아침 일찍 많은 이슬이 내리고 벼는 수확기를 맞고 일찍 심은 무화과가 익는다. 포도와 올리브는 7월말에 익는다.

8월과 9월에는 석류가 익으면서 열기가 증대된다. 포도는 수확기를 맞고 이른 비가 내리기 직전이어서 매우 덥고 건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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